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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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체 게바라.
반항과 저항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
사회주의 국가를 꿈꾸었던 체 게바라.
어릴적부터,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부정의 이미지를 부여받은 교육의 효과일까?
'체 게바라'라는 인물이 주는 느낌은 어둡고, 음울하고, 사회에 반하는,,, 감정없는(무조건 반항하는) 로봇같은, 
현실이라는 물에 융화될 수 없는 기름같은 존재로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은 그도 인간이며, 더더욱이 감정을 문학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인간적 감정노선을 지닌
인물임을 느끼게 해준다.

체 게바라 사망 당시 그의 가방에는 두권의 비망록과 한 권의 노트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 중 마지막의 그 노트가 바로 이 <홀쭉한 배낭>속의 작품들!
그 노트 속에는, 체의 사상과 느낌을 표현하는 '시'들이 들어있었다.
혁명과 시 - 뭔간 조화롭지 못한 이 요소들을 작가는 파헤쳤다. 
왜 체는 이시들을 필사했을까? 어디에서 했을까? 어떤 심경으로 했을까?
전운 속에서 시들을 필사했던 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하나하나 풀어낸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덧 나도 전장 속에 있는듯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체는 네 명의 저자의 시들을 필사했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콜라스기옌, 레온 펠리뻬.
총 69편의 시들로 이루어진 체의 노트를 작가는 아프리카, 쿠바, 볼리비아 시절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거대자본의 착취와 탄압에 토착 인디오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혁명이라는 길을 선택한 체 답게,
아프리카에서 그는 흑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시를 필사한다. 특히, <두 할아버지의 발라드>라는 기옌의 시를 통해서는
백인들의 흑인 성 착취의 산물인 물라토를 노래하며, 그 결과물들을 애통해 한다. 아프리카에 머물던 시절, 체는
주로 착취와 피착취로 대립되는 상황하에, 약탈당하는 착취 계급들의 아픔을 표현하는 시들을 필사한다. 피와 눈물로
범벅되는 피착취 인들의 삶에 가슴 아파했지만 그 아픔의 깊이만큼 녹록치 않았던 아프리카의 혁명은 결국 '성공'이라는
결과물을 낳진 못한다. 하지만 그 시절의 체가했던 혁명을 도화선으로 32년간의 독재를 무너뜨렸다니, 이것은 절반이상의 성공일지니!

니옌의 저항적 시들이 주를 이뤘던 아프리카 시절과는 달리, 쿠바시절의 체의 노트에는 바예호와 네루다의 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체 활동의 휴식기라는 이 시기에는 각종 정복자들이 등장하는 시를 필사하면서 혁명가로서 자신의 위치를 다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절의 시 중, 네루다의 <프라이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라는 시와 그 해석은 약간 충격적이다. 신대륙을 발견하여 문명화에
앞장섰다는 허실(?)속에 정복화의 무자비함이 - 그 정도가 이리 심할 것이라고는 -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디오'라는 존재를 인간의 한 부류가 아닌, 존재하지 않는 사람 아닌 그 어떤 것으로 치부한 문명인들의 행태는 참혹했다. 여성과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노리개 취급하고, 재미로 죽인다. 게임으로 인디오들을 베어나가고 화형시킨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목소리는 격앙되고 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을 자연 이상의 어떤 것으로 우월시하여, 지구라는 존재를, 사람이라는 존재를, 점점
파멸해가는 그 보습이 너무 마음 아프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볼리비아 시절의 체는 펠리뻬의 시들을 필사한다. 기독교의 허울 속에 자행되는 만행들을 보면서 불온(?)한 펠리뻬의
시들을 적으며 인간의 미약함을 곱씹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모험>이라는 장편 시를 필사한다. 작가는 정신적 여유를 갈망하는
처절한 심정으로 체가 이 시를 필사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듯한, 이 시가
그를 자극하고 좀 더 갈고 닦아 날카로워지도록 만들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전장 속에서 시를 필사했다는게 신기해서 어쩌면 이 책이 주목받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도 주눅들지 않는 눈빛과 저항할 수 있는 저력을 지난 체 였기에,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시들을 필사하고 음미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맹렬히 비판하며 '문명'이라는 주제에 피를 토했던 체가,
상업주의라는 현실 속에서 아이콘화 되고, 세계에 알려지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그의 사상이 작금의 현실과 얼마나 어울리는 지를 떠나,
일신하나 지키기에 급급한 현실에서 타인을 지켜내고 이끌어 나가려 했던 인간 체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 정신과 신념의 한 치를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무미건조한 싸움이 조금은 따뜻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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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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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듯이 섬뜩한 여인의 눈빛이 살아있는 [얼음공주]의 표지는 늦더위의 푹푹함을 날리기에 충분했다. 내게 추리소설이란 작가가 만든 범인이 내가 추리한 범인과 일치했을때, 그 때 성취욕을 주는 도전과제와 같았다. 하지만 이번 [얼음공주]는 시작부터 작가의 필력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책장을 덮어도 그 여운이 꽤 오래 지속된다. 어느 여인의 죽음을 계기로 스웨덴의 작은 마을 - 피엘바카 - 에서 숨막히는 사연들이 낱낱이 공개된다.
 

  인간사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이  한 사건에서 드러난다면 과장일까?  

자신의 배우자를 사랑하고 아끼는 부부애. 자식을 지키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모성애. 같은 경험을 촉매로 뭉친 친구들의 우정, 미워도 사랑하기에 지켜야 하는 가족간의 애증. 보고싶고 서로 갈구하는 연인들의 열정. 복수를 할줄 아는 과감성. 사건을 파헤치는 행동력까지 책을 읽는 내내 인물들에게 보여지는 다양한 감정들을 보며, '피엘바카'가 인간세상을 압축해논 도시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마을 미스터리'라는 약간 생소한 장르를 통해 사회에서 접하게 되는 군상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된 느낌이다. 

 

  [얼음공주]의 관전포인트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안나와 루카스. 자칫 이 부부의 이야기는 주변 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본 카밀라 레크베리는 이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안데르스 사건과 대조를 통해 극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사랑이라는 공통분모하에 참고견디는 여인과 극단적 돌파구를 마련한 여인.

  둘째, 아니카와 파트리크. 사건의 전모를 알고보면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그러나 결말은 파국. 밝은 감정이 극한의 결과를 가져오는게 작가는 두려웠을까? 아니카와 파트리크라는 인물들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의 긍정적인 결과도 보여준다.

  셋째, 얀과 닐슨. '사람'이라는 존재는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나름의 사연과 아픔과 고민을 가지며, 또 그것들을 이겨내고 개선하고 발전시키며 각자를 다독이는게 살아가는게 세상만사이며 재미가 아닐까? 따라서 겉모습만 보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금물! 

 

  추리소설인 만큼 스스로 파헤쳐보는 재미가 쏠쏠한 얼음공주! 덕분에 스포일 방지를 위해 서평에서도 말을 아껴야했다. 무더위를 날리며 사람사는 세상을 알아가는 교훈도 있으니 이 보다 더한 한여름의 선물이 있을까! [얼음공주]라는 미스터리 소설을 통해 올 여름을 이겨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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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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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어휘와 다방면의 지식을 지닌 지인의 추천으로 집어들게 된 폴 포스터의 책.
'그는 담배를 피웠다.'의 한 문장을 네 줄로 표현할 줄 안다는 그의 글은 시적 감흥으로 가득찬,그러나 흥분이나 열정 따위가 아닌 차분한 음성의 소설이었다.

 

  나쉬는 '마치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바람에 부러진 잔가지가 별안간 발치에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마구잡이 식의 우발적인 만남'을 통해 포지를 만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 그 당시에는 - 나쉬는 방향없는 선택을 한다. 포커에 돈을 대주는것. 결국, 포지와 나쉬는 플라워와 스톤이라는 자들을 만나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삶에대해 흐릿한 정신의 나쉬와 혈기와 의욕으로 가득찬 포지는 나쉬의 돈을 담보로 게임을 해 나간다. 예견된듯, 전 재산을 잃은 그들. 가슴아리게 사랑하는 빨간 색 사브까지 잃고 심지어 빚을 지게 되어 플라워와 스톤의 저택 '벽쌓기'에 돌입한다.

   문제는 지금부터! 플라워와 스톤의 맹견, 마커스라는 '감시인'은 나쉬와 포지를 감독하고 일을 시킨다. 허허 벌판에서 돌을 나르는 일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 그들. 근 세달을 통해 빚을 다갚았다고 판달될 즈음, 그들은 알게 되었다. 트레일러에서 요구하고 제공받은 음식값이 계약 조항에 없었다는 것. 그들이 보낸 석달 동안의 기타 비용을 계산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 결국, 또다른 빚더미에 앉게 된다.

   감옥에 갖힌듯, 그곳을 탈출한 포지. 다음 날 주검 가까이 간 헐떡이는 심장이 된 포지. 그 모습을 본 나쉬. 살인을 감행할 듯한 자신을 발견한 나쉬. 그리고 그 감옥을 벗어날 때쯤 또 다른 자유를 찾아 나선 나쉬. 그렇게 결론나는 그들의 이야기. 나쉬와 포지. 

 

  나쉬가 마지막에 펼쳐드는 <음향과 분노>에서 보게 된 '어느 날 그는 너무도 싫증이 나서 아무렇게나 뒤집은 단 한 장의 카드에 모든 것을 걸 때까지....'라는 자신을 묘사한 듯한 글을 보게 된다. [우연의 음악] 우연한 선택으로 만나게 된 포지와 나쉬. 우연히 선택한 게임의 마지막 패를 통해, 또 우연한 노동의 순간에 알게 된 삶의 의미, 선택, 우연,,,,

 

  폴 오스터는 사람의 선택이 갖고 있는 그 힘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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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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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시모치 아사미는 일본에서 주목하는 미스터리 작가라고 한다. 게다가 최근에 나왔던 '용의자 X의 헌신'은 책, 영화 할것 없이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한 획을 긋고있는 일본문학계, 그 중에서도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이라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미스터리'라는 말에 혹자들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범인과 주변인들을 살피는 제3자의 시선, 불사조처럼 죽었다 살아나는 범인,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등장인물들의 사투, <유주얼서스펙트>,<식스센스>처럼 예상을 깨는 반전까지! 하지만 이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여느 미스터리물과 다르다.

 

  첫째, 인물들이 출연하는(?)  동기가 남다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숲을 헤치고 불길 속에 뛰어 들며 피가 튀는 그런 식상함이 아니다. 이 책에서 등장인물들이 모이는 계기는 대학시절 친구들의 오랫만의 재회, 즉 동창회 이다.

  둘째, 사건의 앞뒤 흐름을 전개하는 지루한 초반부와  절정으로 치닫는 사건을 묘사하는 숨가뿐 후반부의 뻔한 구조가 아니다. "문은 닫혔다"와 "문은 열렸다"로 크게 나뉘는 테마 속에서 등장인물은 시종일관 차분한 목소리와 어조로 흐름을 이야기한다.

  셋째,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가 차별화 되어있다. 누군가에 대한 복수, 세상에 대한 혈투,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칼부림등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어떤 행위 -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말을 아낀다. - 를 위해 사건은 일어난다. 그 과정과 결과 또한 뜻밖이다.

  넷째, 범인은 제 1장에서 드러난다. 마지막까지 책을 덮지 못하게 하기 위한 뻔한 전략으로 범인을 반전과 더불어 맨 마지막에 알려주는 구성이 아니다. 책을 펴는 첫장에서 범인은 등장한다.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 또한 치밀하고 섬세한 묘사로 첫장에서 드러난다.

  마지막, 사건의 결말이 의외이다. 활극을 통해 복수를 이루거나, 자결하는 모습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도구가 용해되어 오히려 사건이 미화되기 까지 한다.

 

  '목숨을 지키기 위한 목숨의 낭비'라는 절제된 내용을 보면서 작가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추리해 봤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이것을 지키기 위해 더 아름다운 저것을 희생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인간 삶의 풍요를 위해 짓는 건물들이 자연을 희생시키고 터전을 척박하게 만드는 것처럼,,, 어쩌면 작가는 미스터리 라는 장르를 통해 그런 아름다운 인간 세상의 지키고 싶은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목숨처럼 지켜야 할, 우리가 살아있을 때 실천할 수 있는 존귀한 것들에 대해,,,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작가와 함께 하는 두뇌싸움과 존귀한 그 어떤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주는 책이다. 미스터리라고 긴장과 스릴만을 생각하진 말자! 더 뜻깊은 무엇을 얻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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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장진성 지음 / 강남 지성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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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금강산.

굶주림.

핵.

우리.

통일.

 

  북한이란 존재는 우리에게 참 특별하다. 소를 보내 협력관계를 맺는가 하면, 소위 말하는 한,민,족 이지만 그들과 이야기 하려면 바다 건너 멀리 있는 나라들의 힘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항상 슬프도록 서로를 경계한다. 그런 북한에게 우리는 - 통일에 대한 의견을 차치하더라도 -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북한이 보여주는 경이에 가까운 군무처럼 그들은 삶을 우리에게 보여줄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북한에 대한 목마름이 절정에 달하는 요즘의 남한에게 그 북한의 실상을, 자세히는 북한의 우두머리 김정일의 실체를 밝혀주는 서사시가 있다.

 

  북한의 미녀가수 윤혜영. 그녀의 눈을 통해 북한과 김정일은 조명된다. 보천보전자악단의 가수 윤혜영. 그녀를 아끼는 김정일. 한 국가의 통치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버려야 했던 그는 윤혜영의 순수함에 빠져든다. 산해진미와 값비싼 보석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엔 다른 사람이 있다. 예쁜 옷과 예쁜 손길로 영광에 마지않는 총수를 받들어 모시지만 그녀도 사람, 그녀의 그도 사람이었다. 결국 김정일의 말을 거역해 가면서 둘이 하나임을 증명하는 그 사랑들의 모습이란,,,

 

  시인 장진성은 윤혜영을 대변하고 싶었던것 같다. 김정일의 눈에 든 여자가 아닌, 자신의 사랑을 지켜나갈 줄 아는 윤혜영을,,, 저자는 그녀에 대해 시적 표현들로 애절함을 보여준다.  극한에에 달한 성진과 혜영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 특히 군인과 남녀의 행동이 대구를 이루는 부분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리고 저자는 북한의 실상을 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쌀베개라고 알고 있었지만 모래임을 알아버린 아들과 진실을 밝히지 않으려는 엄마의 울부짖음. 코에 새끼줄 치듯 철사로 엮어 끌려가는 북한인들의 모습. 직접 그곳에서 생활했었기에 더욱 적나라 했을 것이다.

 

  이 책은 김정일의 여자였던 - 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선택한 - 윤혜영의 이야기 이다. 그리고 북한의 이야기 이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이런 북한에 대해 남한은? 이런 김정일 독재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처참한 생활의 이면은? 등등 갖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할 것이다. 딱히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또 있다하더라도 개인 차원에서 손쓸 수 있는 방법도 없으리라. 하지만 이동순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남,북한 문학인들, 더 나아가 남한의 민족에게 우리 반쪽을 한번 살펴보라는 경각심을 충분히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미래를 일기를 쓰며 다져나가듯 이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를 읽으며 북한의 앞날과 한민족이 통일될 미래를 한번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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