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써봤니? - 7년을 매일같이 쓰면서 시작된 능동태 라이프
김민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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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초 블로그에 적는 목표 중 빠지지 않는 게 있다. '글쓰기' 언제부터 글쓰기가 러브핸들처럼 내 옆에 붙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천이 쉽지 않는' 영역의 결심 중 하나다. 마치 영어나 운동처럼. 따라서 '1일 1글쓰기', '일주일에 1서평쓰기' 등의 목표를 지나 최근에는 '뭐라도 쓰기'로 결심이 진화했다. 시간과 분량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편하게 '풀어내고' 싶은 나의 꼼수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아무튼 밥먹고 운동하듯 글도 써야 늘고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 해소법이 내게는 '블로그'다. 해우소에 가까운 블로그에는 욕부터 자화자찬의 글까지 다양한 범주의 글들이 실리곤 한다. 이름을 달고 나가는 글이 아니니 부담이 적고, 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아도 되니 꿈틀대는 또 다른 자아들을 마음껏 펼쳐보일 수 있다.

저자 김민식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공대졸업, 외국계 영업, 통역사를 거쳐 MBC PD가 되었다. 이 마저도 '김장겸은 물러나라'로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인생의 반전은 빈틈에서 오는 법. 드라마 연출을 못하는 대신 시간이 생겼다. 이때부터 김민식PD는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육아일기, 영어공부법 등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의 글들을 하나 둘 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마침 <매일 아침 써봤니?>라는 'To be Blogger'의 바이블과 같은 책을 펴 내는 데 이른다. 최근에는 블로그로 입소문이 나 책을 펴내고 강연도 하고 원고청탁도 들어온다고 한다. MBC에서 벌어들이는 월급을 넘어선다고. 매일 아침 6시, 블로그에 무조건 글을 한편씩 올린다는 저자의 요지는 명확하다. "매일 뭐라도 쓰자. 쓰다보면 는다. 너도 할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잠시 기자로 있었다. 단 9개월이었지만 박봉에, 일주일에 하루는 꼬박 (의무적으로)밤을 새야 하는 고된 시간이었다. 대기업의 허영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된 때라 '내가 왜 이고생을?' 자문했고, '청년보수/좌파' 따위로 사람들을 구분짓는 치기어린 때였다. 일주일에 5일은 취재를 했고 동시에 글을 생산해야 했다. 취재가 곧장 기사로 연결되는 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분으로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매일매일 무언가를 써냈다. 대부분 폐기처분되었지만. 그 9개월 전후로 나의 글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어떤 글을 쓰더라도 '매끈하다'고 평을 받는 건 당시의 훈련때문이리라. 하여 저자가 말하는 '뭐라도 쓰자' '쓰다보면 는다'는 말에 나는 공감한다. 뭐라도 쓰다보면 쓸거리가 눈에 보이고 그러다 보면 꽤나 긴 글을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써내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글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어요. 머릿속 생각이나 말 한마디는 나를 붙들지 못하지만, 글로 남긴 약속은 인생을 바꾸는 마법의 주문이 됩니다. 세상일이 잘 안 풀릴 때 나라 탓이나 회사 탓, 상사 탓을 하며 술로 분을 삭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래 봤자 내 몸만 축나요.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저는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늘 무엇을 해야 내일은 이렇게 힘들지 않을까? (P.135)

<매일 아침 써봤니>를 읽으며 잊었던 꿈이 기억났다. 칼럼니스트. 글을 쓰고 신문 칼럼을 공부했다. 그리고 정보통신분야의 칼럼니스트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그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흔적들이 사라졌지만, 다시금 마음에 불을 지펴본다.  매일 글을 쓰자. 그리고 기사와 칼럼을 읽자. 잘 쓴 글을 공부하고 배우자. 매일 하다보면 어느 순간 되어있겠지. 김민식PD처럼. 글자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오늘부터 글을쓰며 주문을 외워본다. 


<발췌>
남미 여행을 떠났어요. 한 달 동안 파타고니아 산을 오르고 이구아수 폭포를 따라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p.5)
: 삶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날까?
 
매일 블로그에 재미난 글을 올리려면, 나의 하루하루가 즐거워야 합니다. 회사가 나에게 일을 주지 않아도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p.7)
 
그냥 혼자 산을 타다 보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지는데요, 이제 블로그에 산행일기를 올립니다. <월간 산>의 프리랜서 기자가 됐다는 기분으로 산을 탑니다. 서울 둘레길을 완주하려고 마음먹었어요. 멋진 풍광이 보이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둡니다. 길마다 하나하나 나름의 평점을 매겨요. (중략) 이제는 혼자 평일에 산타는 백수가 아니라 등산 전문 프리랜서 기자가 된 느낌입니다. (p.8)
: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어떤 목표, 어떤 방향, 어떤 태도.
 
드라마 연출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살았다면 지난 몇 년간 제 삶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겠지요. 매일 아침 글을 한 편씩 쓰면서,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되새겼어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그 순간 가장 쓰고 싶은 글을 그냥 썼습니다. (p.10)
: 해야할 일이 아닌 내 마음이 가장 설레는 일로 시작하는 하루는 정말 멋지다.
 
사람은 성장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습니다. (P.19)
 
자아실현과 표현의 욕구 말이에요. 그걸 채우기 위해 우리는 놀이의 피라미드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위로 올라갈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미디어의 소비자에서 헤비 유저로, 다시 생산자로 오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P.21)
 
팟캐스트 <페리스 쇼>를 운영하는 팀 페리스는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을 만나 성공으로 이끈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대가들의 성공 비법을 모아 펴낸 책이 <타이탄의 도구들>입니다. 여기에는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자기계발 도구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사업가, 예술가, 운동선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는지 살펴볼 좋은 기회입니다. (P.27)
: 나도 항상 이런 주제의 인물탐구를 꿈꾼다. 내가 가슴뛰거나 몰입하는 습관들은 대개, 소위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의 강연을 듣거나 저서를 읽는 등 일대기를 직간접적으로 접할 때다. 하여 누군가를 대면하는 일이 꽤 즐겁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자시절에 이런 기회가 적잖이 있었는데 그 가치를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역시 사람은 지난 후에 알게되는 존재인가.
 
사람들에게 놀이를 권하는 이유는 놀이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든 일이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동기부여입니다. 동기부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P.31)
 
특히 블로그로 노는 사람은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을 타인과 나누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P.36)
 
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고, 돈 때문에 내 시간과 건강을 해치지 않으며, 하면 할수록 머리와 몸이 단련되고 기술이 늘어나는 일, 이것이 바로 생업이다.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이토 히로시 저)> (P.37)
 
<행복의 기원>에 보면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아무리 강도 높은 행복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곧 사라집니다. 로또를 맞아도 행복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아요. 한 번 먹으면 포만감이 사라지지 않아 오래도록 행복한 원시인과 배가 불러도 토끼가 눈에 띄면 금세 식욕이 돋아 달려나가는 원시인 중 행복한 삶을 누린 건 전자겠지요. 하지만 생존의 확률이 더 높은 건 후자랍니다. 렇기에 좋은 기분은 금세 사라지는 쪽으로 진화했어요. 오래도록 행복하려면 강한 자극 한 방을 추구하는 것보다 소소한 즐거움을 자주 맛보는 편이 낫다고 하는군요. (P.43)
 
사람은 명령이 아니라 꿈에 의해 움직인다. (P.72)
 
성장은 오로지 자신의 책임입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방법을 깨우쳐야 하지요. (P.86)
 
주위를 관찰하고 경험을 수집하는 행위에는 돈 한 푼 안듭니다. 이만한 취미도 없어요. 심지어 글쓰기는 취미인 동시에 공부입니다. 무언가를 공부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입니다. 머릿속 생각을 글로 옮기면 정리가 되고 앎이 단단해지거든요. (P.105)
 
무언가를 잘하고 싶을 때, 잘할 수 있는 길은 매일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수다 떨 듯이 글을 씁니다. (P.106)
 
새해 결심의 세가지 조건 : 첫째, 가능한 한 돈을 쓰지 않는 것. 둘째,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것. 셋째, 중도 포기하더라도 자책하지 않는 것입니다. (P.111)
 
독창성의 조건 : 1.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져야 하고,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업할 수 있어야 하고, 3.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이 일반화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될 것. (P.119)
 
한 번 반짝 빛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불을 꺼트리지 않고 내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창작자로서 직업을 만드는 길이겠지요.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블로그를 쓸 때도, 반짝이는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끈기입니다. 나라는 사람의 색깔은 한 편의 글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올린 글들을 통해 나의 생각이 드러나고 내 삶의 문양이 더욱 뚜렷해지기를 희망합니다. (P.121)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자신의 루틴을 만드는 겁니다. (P.128)
 
글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어요. 머릿속 생각이나 말 한마디는 나를 붙들지 못하지만, 글로 남긴 약속은 인생을 바꾸는 마법의 주문이 됩니다. 세상일이 잘 안 풀릴 때 나라 탓이나 회사 탓, 상사 탓을 하며 술로 분을 삭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래 봤자 내 몸만 축나요.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저는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늘 무엇을 해야 내일은 이렇게 힘들지 않을까? (P.135)
 
알려진 이름만으로 영향력을 독점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어요. 콘텐츠를 가진 개인이 네트워크만 가진 미디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어요. (P.141)
 
매일 블로그에 새 글을 올리면서도 같은 고민을 합니다. ‘이게 과연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글일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글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은 없습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끈질기게 매일 올려야 날마다 찾아오는 사람이 늘고, 보는 사람이 늘어야 신이 나서 글도 쓰고, 그래야 결국 글도 는다고 믿거든요. (P.143)
 
꾸준히 즐겁게 하려면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는 첫 번째 비결은 무언가를 절절히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P.166)
 
나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쓸 때도 다섯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내가 맞닥뜨린 위기는 무엇이고, 그에 대응하는 나의 태도는 무엇인가? 블로그를 통해 드러나는 나의 캐릭터는 과연 매력적인가? 나의 꿈을 막는 장애 요소는 무엇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기울이는 노력은 무엇인가? 나의 포스팅에는 나만의 시각이 있는가? 매일 업데이트되는 나의 블로그는 현재 진행형인가? (P.184)
 
먼저 제작사의 예산을 따내야 하고, 얼굴이 알려진 유명 배우도 잡아야 합니다. (P.189)
: 정부 기관의 예산따기가 이 시점에 떠올랐다. 추경, 추경, 추경, 쪽지예산, 내년도 예산확보. .
 
블로그 글쓰기가 쉬워지는 세 가지 요령이 있어요. 이들 하나하나를 모아보세요. 어떤 일에 대한 과거의 경험이 하나, 그 일에 대해 검색이나 독서로 알아낸 정보가 하나, 그 일이 내게 던져준 주제가 하나입니다. (P.192)
 
책 읽기와 글쓰기, 사적인 욕망과 공적인 의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성장하는 즐거움을 맛보시길 희망합니다. (P.199)
 
그래서 결심했죠. 남들이 나를 괴롭힐 수는 있어도 적어도 내가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말자. (P.223)
 
안 보이던 꽃이 보이더라.”
블로그도 그래요, 하루하루의 삶을 기록하다 보면 주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내 삶의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여러분께도 감히 권해드립니다. 블로그로 삶의 순간순간을 기록하시길.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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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김남우 김동식 소설집 3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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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두 권보다 서사적이다. 그 전 책(<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에서는 인류가 요괴/외계인/악마/혹은 인간끼리 대립하다가 예상을 벗어난 반전 결말로 끝이났다. 이번에는 등장 인물들의 가치관에 따른 번뇌와 깨달음 등의 생각요소가 더 담겨있다. 예를들면, 선의의 거짓말(<죽음을 앞둔 노인의 친자확인>), 성공과 출산의 갈림길(<가족과 꿈의 경계에서),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도와주는 전화통화>), 타인에게 대물림되는 욕망의 꼬리(<퀘스트 클럽>) 등이다. 특히, <친절한 아가씨의 운수좋은 날>에서는 '왜 선을 행해야 하는가'라는 도덕적 질문에 답을 주는 듯한 스토리로 감동을 주기까지 한다.

젊은 세대들의 난독증이 심하다고 한다.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읽기를 즐기다 보니 서문과 제목만 훑어보고 '다 읽었다'고 생각하는 '휘발성 읽기' 때문이란다. 하여 어떤 글을 읽었는지 물어보면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김동식 작가의 단편집들이 최근 이슈다. 반전 결말, 작가의 직업, 글을 쓴 방법 때문일텐데 그보다 나는 그의 글이 '요즘 세대를 붙잡아두는 글'의 좋은 예시가 된다고 본다. 고루하지 않고, 재미있고, 쉽고 빠르게 읽혀 '느낌만 채집'하는 '읽었으나 읽지 않는' 세대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를 잘 읽고 싶은데 기존 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김동식 시리즈로 '읽기'를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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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겠습니다 (민트) - 책을 읽는 1년 53주의 방법들 + 위클리플래너 매일 읽겠습니다
황보름 지음 / 어떤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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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나는 회사에서 책을 한 권 받았다. 내가 쓴, 심지어 제목에 내 이름이 들어간, 나의 책이었다. 회사에서 진행한 글쓰기 교육에 참여하게 됐고, 또 타이밍이 잘 맞아 교육 과정의 성과물로 단독 저서를 내는 것으로 결정나 '나만의 책'을 갖게 된 것이다. 이름하여 <OOO의 독서일기>. 어떤 주제로 쓸 것인지 논의하면서 나는 대뜸 읽은 책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다. 마침 블로그에 끄적인 리뷰나 서평이 몇 편 있었고 틈 날때 읽어둔 좋은 책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내가 쓴 17편의 글을 모아 책 한권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오해하지 말자. 서점에서는 팔지 않는, 나에게만 총 200부가 주어진 [비매품] 책이다.)  

원고를 쓰기 전에 <매일 읽겠습니다>를 읽었다면 어땠을까. 황보름 저자의 책을 읽으며 많이 후회했다. 이렇게 쓸걸! 구성을 이렇게 잡을걸! 이런 내용은 나도 생각했었는데! 저자가 읽은 책이 내가 읽은 것들과 제법 겹쳐(심지어 내 원고에 들어간 책도 있다) 내 생각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좋은 롤모델을 뒤늦게 발견했다는 생각이 계속 나를 붙잡았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감히 책에 관한 글을 쓰겠다고 말하지 못했으려나? 그럴 수도 있겠다. 너무 솔직하고 담백하고 재미있고 심지어 유익한 에세이라서 따라하기 힘들어 보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게 있다. 저자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회사를 그만뒀고, 가능하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이공계를 졸업하고 휴대폰과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글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글밥을 조금 먹다가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읽고 쓰는 일을 묵직하게 밀고 나가 현재에 다다랐고, 나는 읽고 쓰다 생활고를 못 이겨 지금의 회사(공학적 지식을 요하는, 글쓰기와 상관없는)에 들어왔다는 데 있다. 이렇게 결론내렸다. 내가 졌다. 나는 감히 당신처럼 글 못 썼을 거요!

'너는 책에 무얼 바라니?'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게 이어진다. 책을 읽으며 단단해지길 바란다. 덜 흔들리고, 더 의젓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오만하지도, 순진하지도 않게 되길 바란다. 감정에 솔직해지길,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길 바란다. 거창하게는 지혜를 얻길 바라고 일상생활에서는 현명해지길 바란다.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을 알게 되길 바란다. (p.121)

저자는 '책'에 대한 생각을 자유자재로 풀어놓는다. 어떤 책을 읽었고, 그 책이 왜 좋았고 혹은 왜 불편했고, 어떤 식으로 책을 대하는지. 책이라는 우주를 떠돌며 살피고 분석하고 탐험하고 만끽한 감각과 서사가 글에 온전히 녹아있다. 총 53개의 주제로 설명하고 있는데 - 베스트셀러 읽기, 고전읽기, 독서모임, 문장 수집의 기쁨 등 - 이는 일년이 53주기 때문이란다. (해당 책은 위클리플래너가 붙어있다)플래너 구성과 엮기 위한 출판사의 전략일 수도 있는데, 나는 이 마저도 '매일 책을 읽고 느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즉 피를 빨아먹어야 살 수 있는 흡혈귀처럼, 매일 책을 읽어야 숨쉴 수 있는 진정한 '책 덕후'의 진면목인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정말 졌다 졌어.

부럽고 아쉽고 얄궂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참으로 읽는 맛이 난다. 하나의 주제와 연결된 각 꼭지의 명언이 그렇고, 저자의 개인사를 적당히 섞어가며 책 내용과 엮는 묘미가 제법이라 일기장을 훔쳐보는 설레임마저 느껴진다. 나는 책을 읽으며 독서습관 두 가지를 바꿨다. 새 책을 들일 때 헌 책을 버리기(혹은 선물하기), 책에 밑줄 그으면서 보기가 그것이다. 첫번째는 제한된 책장에 읽은 모든 책을 꽂을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저 어쩌다 보니 갖게된 독서습관인데 이번에 황보름 저자의 책을 읽으며 둘 다 지키지 않았다. 날짜가 적혀 있지 않아 언제고 사용할 수 있는 다이어리라 두고두고 쓸 요량이고, 도대체 어떻게 혹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펴볼 '독서 바이블'과 같은 책으로 여겨졌기 떄문이다. 나는 요즘 <매일 읽겠습니다>를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있다.  특히, 새해맞이 독서계획을 세우고 있는 분들에게. 정갈하고 솔직하고 재미있고 따뜻한 글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책에 대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 힘들 때 책을 찾는 사람,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 지 모르겠는 사람. 두루두루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사람의 솔직한 글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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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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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이혼을 한단다.  몇 달을 별거했고, 몇 번의 싸움과 협의를 거쳐 지금의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자신의 딸 네번째 생일을 마지막으로 집이었던 곳을 나온다고 했다. 몸뚱아리 하나만 달랑. 이 사실을 전하는 엄마는 많이 우신 것 같았다. 오열하진 않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고 말의 간격마다 깊은 한숨이 배어 있었다. 나는 걱정말라는 판에 밖힌 이야기를 하기도, 미친놈 아니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는데, 사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오빠가 결혼하기 전날, 나는 '언니'가 되는 분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보자 고맙다 우리집에 와줘서 감사하다 등 감상이 빼곡히 적힌 글이었고 진심이었다. 그런데 오빠의 '집 나옴'으로 나는 이제 그 언니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살뜰히 챙기지는 않았지만 가끔 어린이 물건이 눈에 띌때면 자동 재생되던 조카도 이제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영원을 약속했던 일이 순식간에 결정되어 통보되는 비정한 시간이 밉고, 이 지경이 불가피했나 싶어 답답하고, 곧 있을 명절이 암담하다.

도피처가 필요했다. 책장에서 분홍색 은유 작가의 책을 빼들었다. 소설은 기분과 달리 내용이 두둥실 떠다닐 것 같고 역사, 과학, 사회도서 류는 눈에만 글자가 밖힐 뿐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패잔병 같은 씁쓸함과 복잡함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아 위로받고 싶었다. 표지의 풍선머리가 형이상학적이란 생각을 하며, 언젠가는 꼭 읽겠다고 사두기만 했던 책이다.

결혼도 이혼도 인연을 쓰는 한 방편일 뿐이다. 플라톤의 말대로 무엇이든 그 자체 단독으로 아름답거나 추하지는 않다.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미이고, 그것을 추하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비열함이다. 이혼도 그런 것 같다. 비열한 이혼도 아름다운 이혼도 있다. 그러니 권장할 일도 배척할 일도 아니다. 삶 전체를 위한 합리적인 골격을 짜는 하나의 과정으로 아픈 선택일 뿐이다. 삶의 어느 국면에서 생을 담은 물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p.24)

첫번째 주제 '여자라는 본분' 첫번째 토막에 나오는 글이다. 정말 책을 잘 골랐구나 싶다. 점쟁이가 내 마음의 혼잡을 알아보고 읊조리는 사주라는 통계처럼, 우연히 맞아떨어진 문단에 눈이 머문다. 위로받고 싶었는데, 위안이 된다. 오빠 이혼 소식을 어제 처음 접한 건 아니다. 엄마를 통해 들어왔고 감히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다 1월 어느 주말, 오빠를 따로 만났다. 말려보라는 부모님의 요청이 있었고 이제 더는 안되겠다 싶었다. 사방의 어수선 속에 오빠는 '모든 사람의 동의를 구해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조용히 말했다. 할말이 없었다. 언니가 오빠를 붙잡으려 한다는 얘기가, 오빠가 왜 그렇게 마음이 멀어졌는지가, 아이를 생각해보라는 뻔한 얘기가 입 속에서 굴러 떨어졌다. 대신 저렇게 될 때까지 왜 몰랐을까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슬펐다. 오빠의 몸뚱이만 나가는 현장을 볼 수 없어 집을 미리 나가있겠다는 언니가, 아빠 나 잘놀다 올께라며 인사했다는 조카 생각에 울컥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오빠는 그저 '아픈 선택'을 한 것 뿐이다. 소상히 말하지 않는 성정상, 엄마와 아빠와 나는 그저 정황을 추정할 뿐인데, 오빠는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그냥 쉬고 싶다고 했다. 오직 걱정되는 건 아이여서, 지금까지 만들거나 이룬 것들은 모두 내어주고, 앞으로 살면서도 평생 양육비를 보내며 그저 일이나 하고 지내겠다고 한다. 아름답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다. 나는 인연의 끝남이 마음에 꽂혀 언니에게 장문의 편지를 몇 번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그만두고 말았다. 은유의 글을 읽으며 오빠와 언니를 번갈아 가며 생각한다. 그들이 삶을 벗어나는 것도 아닌데 자꾸 내가 번잡하다.

책을 단숨에 읽었다. 오빠와 엄마가 번갈아가며 등장했고 텍스트와 오버랩되어 밑줄 긋게 했다. 책을 덮고 고민했다. 곧 있으면 밥할 시간이다. 밥 하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진득하게 쓸가, 지금 뭐라도 적어둘까. 후자를 선택했다. 그것도 읽고-발췌하고-품고-쓰는 단계를 무시하고 읽고 바로 쓰기로.

책은 여자라는 본분, 존재라는 물음, 사랑이라는 의미, 일이라는 가치의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며 물음을 던지고 글을 썼다고 했다.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글쓰는 일로써 겪게되는 여러 결의 감정들에 결험을 버무렸다. 나는 여자이자, 딸이자, 며느리이자, 사회인이다. 치마를 입는 게 남자들의 성기 결합을 촉발시키는 일이라는 치마입지 않는 자들의 농담을 농담인지 아닌지 몰라 헷갈려하고, 우리 부모님은 (내가 물은것도 아닌데)오빠와 내 결혼 준비를 다르게 했음을 어느 날 고백하고 괴로했으며, 신부라는 이유로 결혼 전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내야 했으며, 출산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곧 자리를 뜰지도 모르는 직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작가의 글이 곧 내 생각 같았다. 언젠가 한번쯤 느껴봤던 감정인데 글로 읽고 무릎치는 기분이랄까. 오늘 내 기분을 꼭 닮은 사주풀이를 만난 느낌이다. 하여 반면교사 삼고, 작가의 언어로 내 생각을 해체시켜보았다. 아픈데 골몰하며 빠져들었다.

"불편해도 괜찮았다. 나의 평범하지 않음, 소수성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여러 갈래의 경험은 내가 사회학이나 여성학, 철학을 공부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 (p.115)"라고 말하는 작가는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물음을 끈질기게 붙들라고 말한다.  은유의 글에서 그 경험과 깨달음이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도 하루 분의 울컥을 삼켰습니다."라는 부제가 그저 분노로 끝나지 않음을 이해한다. 낯선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혼란과 갈등을 겪으며 자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성숙으로 이어진다는 걸 수많은 글로써 증명하기 때문이다.  하여 나에게도 빗대본다. 오빠의 이혼이 불편하지만 생각해본다. 불편함. 싸울수록 투명해진다는 제목은 직장에서, 관계에서, 존재에서, 삶에서 만나는 어떤 장벽들과 싸우며, 안온함에 쌓여있지 말고 아프지만 어설프게라도 경험하고 그 감정과 관계해보라고 말하는 것일 테다. 위로를 받고 싶었는데 가르침을 얻었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말고 반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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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김동식 소설집 2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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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갈 때마다 고민한다. '어떤 책을 가져갈까?' 장소와 기간을 고려해야하는 까다롭지만 행복한 고민이다. 지난 주 2박3일 통영 여행에는 김동식 작가의 책을 선택했다. 가볍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거라 믿었다. 역시나. 여행지에서 잠자기 전, 단 두 시간만에 독파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는 세 권의 시리즈 중 두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총 21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번 책은 요괴편인가! 인류와 대비되는 요괴/외계인/악마가 (마지막 편을 제외한)모든 편에 등장한다.

<황금인간>에는 인류를 황금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외계인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에는 사람들을 젊게 만들어주는 요괴가, <스마일맨>에는 웃는 사람 100명을 데려가는 악마가, <개미인가, 베짱이인간>에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악마가 등장한다. 요괴/외계인/악마가 인류를 시험에 들게하는 일종의 '지령'을 내리고, 인류가 이를 수행하는 방식에 따라 벌이나 축복을 받는다는 서사구조다.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인류에게 행해지는 결말이 '반전'이라는 게 묘미라 하겠다. 게임을 텍스트로 바꾸면 이런 식일까? SF영화를 글자로 나타내면 김동식의 글이 될 것 같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흥미로울 것 같고.가볍고 재미있지만 휘발성이 강하다. 여행지의 들뜬 마음과 어울리는 책! 3편 <13일의 김남우>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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