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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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이혼을 한단다.  몇 달을 별거했고, 몇 번의 싸움과 협의를 거쳐 지금의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자신의 딸 네번째 생일을 마지막으로 집이었던 곳을 나온다고 했다. 몸뚱아리 하나만 달랑. 이 사실을 전하는 엄마는 많이 우신 것 같았다. 오열하진 않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고 말의 간격마다 깊은 한숨이 배어 있었다. 나는 걱정말라는 판에 밖힌 이야기를 하기도, 미친놈 아니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는데, 사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오빠가 결혼하기 전날, 나는 '언니'가 되는 분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보자 고맙다 우리집에 와줘서 감사하다 등 감상이 빼곡히 적힌 글이었고 진심이었다. 그런데 오빠의 '집 나옴'으로 나는 이제 그 언니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살뜰히 챙기지는 않았지만 가끔 어린이 물건이 눈에 띌때면 자동 재생되던 조카도 이제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영원을 약속했던 일이 순식간에 결정되어 통보되는 비정한 시간이 밉고, 이 지경이 불가피했나 싶어 답답하고, 곧 있을 명절이 암담하다.

도피처가 필요했다. 책장에서 분홍색 은유 작가의 책을 빼들었다. 소설은 기분과 달리 내용이 두둥실 떠다닐 것 같고 역사, 과학, 사회도서 류는 눈에만 글자가 밖힐 뿐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패잔병 같은 씁쓸함과 복잡함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아 위로받고 싶었다. 표지의 풍선머리가 형이상학적이란 생각을 하며, 언젠가는 꼭 읽겠다고 사두기만 했던 책이다.

결혼도 이혼도 인연을 쓰는 한 방편일 뿐이다. 플라톤의 말대로 무엇이든 그 자체 단독으로 아름답거나 추하지는 않다.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미이고, 그것을 추하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비열함이다. 이혼도 그런 것 같다. 비열한 이혼도 아름다운 이혼도 있다. 그러니 권장할 일도 배척할 일도 아니다. 삶 전체를 위한 합리적인 골격을 짜는 하나의 과정으로 아픈 선택일 뿐이다. 삶의 어느 국면에서 생을 담은 물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p.24)

첫번째 주제 '여자라는 본분' 첫번째 토막에 나오는 글이다. 정말 책을 잘 골랐구나 싶다. 점쟁이가 내 마음의 혼잡을 알아보고 읊조리는 사주라는 통계처럼, 우연히 맞아떨어진 문단에 눈이 머문다. 위로받고 싶었는데, 위안이 된다. 오빠 이혼 소식을 어제 처음 접한 건 아니다. 엄마를 통해 들어왔고 감히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다 1월 어느 주말, 오빠를 따로 만났다. 말려보라는 부모님의 요청이 있었고 이제 더는 안되겠다 싶었다. 사방의 어수선 속에 오빠는 '모든 사람의 동의를 구해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조용히 말했다. 할말이 없었다. 언니가 오빠를 붙잡으려 한다는 얘기가, 오빠가 왜 그렇게 마음이 멀어졌는지가, 아이를 생각해보라는 뻔한 얘기가 입 속에서 굴러 떨어졌다. 대신 저렇게 될 때까지 왜 몰랐을까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슬펐다. 오빠의 몸뚱이만 나가는 현장을 볼 수 없어 집을 미리 나가있겠다는 언니가, 아빠 나 잘놀다 올께라며 인사했다는 조카 생각에 울컥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오빠는 그저 '아픈 선택'을 한 것 뿐이다. 소상히 말하지 않는 성정상, 엄마와 아빠와 나는 그저 정황을 추정할 뿐인데, 오빠는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그냥 쉬고 싶다고 했다. 오직 걱정되는 건 아이여서, 지금까지 만들거나 이룬 것들은 모두 내어주고, 앞으로 살면서도 평생 양육비를 보내며 그저 일이나 하고 지내겠다고 한다. 아름답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다. 나는 인연의 끝남이 마음에 꽂혀 언니에게 장문의 편지를 몇 번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그만두고 말았다. 은유의 글을 읽으며 오빠와 언니를 번갈아 가며 생각한다. 그들이 삶을 벗어나는 것도 아닌데 자꾸 내가 번잡하다.

책을 단숨에 읽었다. 오빠와 엄마가 번갈아가며 등장했고 텍스트와 오버랩되어 밑줄 긋게 했다. 책을 덮고 고민했다. 곧 있으면 밥할 시간이다. 밥 하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진득하게 쓸가, 지금 뭐라도 적어둘까. 후자를 선택했다. 그것도 읽고-발췌하고-품고-쓰는 단계를 무시하고 읽고 바로 쓰기로.

책은 여자라는 본분, 존재라는 물음, 사랑이라는 의미, 일이라는 가치의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며 물음을 던지고 글을 썼다고 했다.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글쓰는 일로써 겪게되는 여러 결의 감정들에 결험을 버무렸다. 나는 여자이자, 딸이자, 며느리이자, 사회인이다. 치마를 입는 게 남자들의 성기 결합을 촉발시키는 일이라는 치마입지 않는 자들의 농담을 농담인지 아닌지 몰라 헷갈려하고, 우리 부모님은 (내가 물은것도 아닌데)오빠와 내 결혼 준비를 다르게 했음을 어느 날 고백하고 괴로했으며, 신부라는 이유로 결혼 전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내야 했으며, 출산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곧 자리를 뜰지도 모르는 직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작가의 글이 곧 내 생각 같았다. 언젠가 한번쯤 느껴봤던 감정인데 글로 읽고 무릎치는 기분이랄까. 오늘 내 기분을 꼭 닮은 사주풀이를 만난 느낌이다. 하여 반면교사 삼고, 작가의 언어로 내 생각을 해체시켜보았다. 아픈데 골몰하며 빠져들었다.

"불편해도 괜찮았다. 나의 평범하지 않음, 소수성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여러 갈래의 경험은 내가 사회학이나 여성학, 철학을 공부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 (p.115)"라고 말하는 작가는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물음을 끈질기게 붙들라고 말한다.  은유의 글에서 그 경험과 깨달음이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도 하루 분의 울컥을 삼켰습니다."라는 부제가 그저 분노로 끝나지 않음을 이해한다. 낯선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혼란과 갈등을 겪으며 자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성숙으로 이어진다는 걸 수많은 글로써 증명하기 때문이다.  하여 나에게도 빗대본다. 오빠의 이혼이 불편하지만 생각해본다. 불편함. 싸울수록 투명해진다는 제목은 직장에서, 관계에서, 존재에서, 삶에서 만나는 어떤 장벽들과 싸우며, 안온함에 쌓여있지 말고 아프지만 어설프게라도 경험하고 그 감정과 관계해보라고 말하는 것일 테다. 위로를 받고 싶었는데 가르침을 얻었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말고 반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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