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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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30대, 영화평론가, 블로그 운영 정도로 알고있었다. 틀린 게 여럿이다. 첫째는 나이요, 둘째는 그의 직업이다. 불혹을 훌쩍 넘긴 그는 애초부터 영화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건 아니라고 한다. 신문사에서 영화 담당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를 알게 됐다는 것.  또, 그는 어릴 적부터 글을 읽고 쓰는걸 즐겼는데 글쓰기로 인해 엇나간다고 생각한 부모님이 글쓰기를 막기도 했다고 한다. 이동진 작가의 블로그에는 그의 생각, 삶 그리고 영화가 있다. 개인적으로 '올해 최고의(최악의) 영화' 또는 '별점과 한줄평'은 쉬운 언어를 이용해 압축적으로 영화를 소개하고 있어 거의 중독되어 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일명 닥끌오재)>는 이동진이 대하는/읽는 책에 대한 책이다.

책은 이동진 작가의 '독서' 관련 이야기를 다룬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는 책에 대한 작가의 생각, 2부는 씨네21 이다혜 기자와의 문답, 3부는 작가가 추천하는 주제별 도서 500선이다. 가장 이동진을 '이동진스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은 2부다. 

이다혜기자가 '목적 중심적인 독서보다 묻고자 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하는 독서'에 대해 묻는다. 이에 대해 작가는 "책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일부가 되도록 끌어안다보면 책이 우리에게 질문을 하게 해준다"며 "답을 주지는 않지만, 일종의 방향성이나 지향성 같은 걸 준다. (p.92)"고 대답하고 이를 책이 갖고 있는 '자기 반영성'이라고 정의한다. 자기반영성(Self-reflexivity)은 자신의 위상에 관심을 두는 태도를 말한다. 보통 책을 읽는 목적은 정보를 얻거나, 위안을 받거나, 문제해결을 위함이 아닐까. 그러나 책이 작가가 가진 지식, 생각, 주관의 결정체라는 걸 볼때 독자의 특정 상황을 적확히 묘사하고 이를 타개/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건 (간혹 있을 수 있지만)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가 글로써 보여주는 생각의 흐름과 이야기를 반면교사 삼아 독자가 스스로에게 대입해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책을 읽고 이를 통해 독자 개개인이 위상을 변형시키고 달라진다는 점에서 이동진 작가의 말에 공감하게된다.

또, 작가는 "가치를 갖고 있음에도 도서시장에서 최소한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책에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p.119)"며 서평가로서의 철학도 보여준다. 책을 읽고 서평을 써본 독자라면 동의할지 모르겠다. 서평은  특정 책에 대해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글 정도로 정의할 수 있는데, 해당 책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가 있을 때 가능하다. 특히, 출판사의 소개글과 달리 책의 장단점을 모두 아우르기 때문에 특정 책을 독자에게 읽힐 수도 있지만 반대로 멀어지게 할수도 있다. 그만큼 독자들에 대한 영향력이 크기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덜 받는 좋은 책을 소개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아닐까.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와 같은 그 시공간 속에서
일단 습관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채우고,
최소한의 결정이 남는 시공간을 여집합으로 두는 거죠.
(중략)
우리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이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거예요. (P.142)


이동진 작가는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곧, 실제로 행복한 사람이라며, 그 습관 중의 하나로 책읽기를 권한다. 아마도 자신이 책읽기를 통해 위안 받고 행복하게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어왔고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습관을 만들며, 책에 대해 써온 그다. 영화평론가가 아닌 책읽는 이동진의 남다른 철학과 재미와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책 <닥끌오재>는 책을 어떻게 대할지, 읽을지, 책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한번쯤 고민해본 독자라면 상당부분 공감하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씨네21의 이다혜 기자라는 사람을 알게돼 이 책이 고맙기도 하다. 2부에서 이동진과 나눈 대담을 보면 책에 대한 남다른 그녀의 공력도 느낄 수 있다. 가을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없어 아쉬운, 그래도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어, 행복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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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1987 - 박종철과 한국 민주화
신성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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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사건 보도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5공 시절의 의문사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민주화는 결국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박종철 사건이 한국의 민주화를 최소한 몇 년은 앞당겼다고 본다.


1987년 1월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으로 불후의 기사를 만들어낸 신성호 기자의 말이다. <특종 1987>의 저자인 그는 1987년 당시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로서, 출입처인 검찰을 돌다가 대검찰청 이홍규 공안 4과장으로부터 "경찰, 큰일 났어."라는 단서를 잡아낸다. 서울대학교 1학년생 박종철 군이 고문으로 사망한 다음날이었다.

1980년대는 그냥 추억팔이로만 넘기기에는 너무도 아프고 슬픈 역사다. 하지만 그런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1987년 마침내 민주화의 꽃은 피어났다. 나는 억압과 슬픔을 딛고 민주화를 이뤄낸 그 뜨거웠던 1987년을 이야기하려 한다. 6월 항쟁 이야기는 이미 여러 책과 논문 등에서 다뤄졌다. 나는 당시 중앙일보 사회부의 법조 출입 기자로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특종으로 세상에 처음 알렸다. 이 책을 통해 박종철 사건과 6월 항쟁 과정에서 언론과 기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민주화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를 당시 취재기자의 시각으로 소개하려 한다. (p.9)

책은 신성호 기자의 수첩에 기반해 1987년을 회고한다. 특종의 단서를 그 날은 분 단위로 바뀐 일과를 기록했고, 1987년의 한 해는 박종철-이한열로 이어지는 민주항쟁의 국직한 사건을 단위로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박종철 사건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언론사적 의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전의 한국 언론은 전두환 정권의 통제 속에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보도지침에 따른 단순 보도가 주를 이뤘지만 박종철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도 탐사보도의 형태가 나타났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둘째, 국가 권력의 인권 유린 행위에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직접 맞섰다. 과거 국가의 탄압에 '나만 아니면 돼'로 방관했던 국민들이 공권력의 불합리성에 분노하며 인권 문제를 자신의 일로 인식하게 됐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박종철 사건이 민주화를 위한 시민운동으로 확산됐다는 점이다. 이전의 민주화 운동이 학생 중심이었다면 이후는 시민들을 모두 끌어들이는 효과를 냈다고 한다. 이런 세 가지 의의를 통해 대한민국은 6.10 항쟁을 거쳐 6.29 선언까지 도달한 것일테다.

저자는 박종철 고문사건을 계기로 변화하는 언론의 모습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는 자칫 언론에 대한 변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소극적이었던 취재나 보도가 심층적인 르포 형태를 띄게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박종철 사건과 유사한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 튀니지 재스민 혁명을 예로 든다. 모두 한 국가의 독재 체제/정권을 탈바꿈 시킨 사건들로 국민들의 열망으로 민주화를 이룬 사건들이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 미국의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재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 : 반유대주의 분위기 하에 프랑스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유대인 드레퓌스가 간첩으로 지목당하고 군사법정의 비밀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건 * 튀니지 재스민 혁명 : 만성적인 경기침체를 겪던 튀니지에서 한 청년이 분신자살을 하며 시민들 분노가 극에 달해 시위 및 대통력 퇴진 압박이 거세져 독재정권이 붕괴된 사건

당시를 겪지못한 사람들이 영화 <1987>을 보며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사건의 전말을 깨달았다. 하지만 영화는 모두가 뜨거웠던 한 순간을 집중 조명한다. 사건을 전후한 정치적 맥락과 분위기를 알기에는 스크린이 한없이 부족하다. 이를 포함해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팩트체크'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적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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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리학 카페 -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그곳
모드 르안 지음, 김미정 옮김 / 갤리온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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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해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하고 만다. 절망감에 빠져 술만 마시던 그녀는 어느 날 문득 '그저 성장하고 있는' 아이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한다. <파리의 심리학 카페>는 좌절과 고통을 심리치료로 극복한 후, 자기회복에서 한발짝 나아가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심리상담사로 성장한 '모르 드안'의 글이다.

바스티유의 한 카페, 목요일 저녁 7시가 되면 '아픈'사람들이 모르 드안을 찾아온다. 책에는 저자가 18년동안 카페에서 만난 5만명의 사연에서 걸러낸 심리학적 통찰 28가지가 들어있다. 인생, 일, 결혼, 삶의 자세, 인간관계, 세상, 성장이라는 주제에는 여러 내담자들의 사연이 녹아있다. 파브리스는 4년 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후 자살을 시도했다. 복수심에 불타는 파브리스의 상태를 저자는 '자기애적 분노' 즉,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화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화를 내는 방식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으며 상대방이 아무리 나를 화나게 만들어도 '내가 상대방에게 아무렇게나 화낼 권리는 없다.(p.94)'고 말한다. 그리고 글쓰기 등을 통해 감정과 상황을 객관화하라고 조언한다. 

독자는 책에서 저자의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칭찬'은 상대방에 대한 긍정의 에너지를 심어주는 언어전달 행위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구분한다.
 "칭찬은 판단이자 통제 수단이며, 칭찬을 통해 자신의 기대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p.102)"이라며 라캉의 '인정욕망'을 빌어온다. 인정욕망은 남의 인정을 구하는 욕망으로 사회가 원하는 돈, 성공, 명예, 존경 등을 마치 내가 원래부터 원했던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즉, 칭찬과 인정은 결국 '타인에게 좋아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독자들이 어떤 행위의 근원이 스스로에게 시작된건지 되짚어보게 한다.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인생, 일, 결혼, 삶의 자세, 인간관계, 세상, 성장이라는 주제를 담았다. 각 챕터는 주제와 관련있는 명언에서 시작해, 내담자의 사례를 들고, 사례에서 등장한 감정을 학문적으로 서술한 후, 저자의 생각으로 마무리 짓는 구조다. 누구나 느껴봤지만 정의내린적도 곰곰히 생각해본 적 없기에 그냥 '느끼고' 스쳤을 감정들이 너무나 덤덤하게 적혀있다. 너무나 일반적이지라서 고민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무수한 감정들을 분리하여 쉬운 언어로 풀이해놓았다. 내게는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나는 책을 따라가며 나의 과거 감정들을 조금씩 이해했다. 후배에게 화가난 이유, 대답을 강요하는 메신저 등 불편하고 어려웠던 감정의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다.
작가는 말한다. "세상이 뭐라 하든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닌 당신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p.11)"라고.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나를 안다고 말하기 전에 내 안의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보자. 그게 진정 스스로 만들어가는 본인의 인생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길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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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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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스치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 '인연'은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꼭 연인이나 가족처럼 명시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 '의미'가 있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힘'이 되는 존재라면, 그 사람은 '인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연()'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라고 정의되니까.

그런 면에서 상수와 경애는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의 아들로, 빽이 있다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에, 가족과 연락도 닿지 않고, 끈 떨어진 낙하산 취급받는, 팀장(직무 대리)인 상수가 있다. 회사에서는 무능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버리는 카드 '팀장 상수'지만 집에서는 모든 여성들의 연애상담을 해주는 - 페이스북 페이지(언니는 죄가 없다, '언죄다')를 운영하는 - '언니'다. 경애는 호프집 화재에서 살아남은 한 명, 반도미싱에서 파업농성에 참여했고, 총무팀에서 소액물품을 담당하다가, 팀원이 필요하다는 팀장 직무대리의 요청에, 상수 팀에 발령을 받는 직원이다. 과거 사랑했지만 현재는 유부남이 된 산주에 대해 가끔 언죄다에 메일을 보내곤 한다.

상수와 경애의 인연은 세 지점에서 연결된다. 첫째, 반도미싱. 회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두 사람은 팀장과 팀원으로 만나 베트남 지사에 함께 영업을 하러 가기에 이른다. 없어도 되고, 있으면 불편한 서로의 존재가 타국의 땅에서 '어떤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쌀국수를 말아 먹으며 김부장과 오과장이라는 텃세를 이겨나갈 묘수를 고민하고 서로에게 떨어지는 부당함에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하기에 이른다. 둘째, 언죄다 페이지에 고민을 올리고, 답을 하며, 회사라는 영역에서 보이지 않던 부분을 '사람'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즉,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누군가의 '또 다른 면'을 알게한다. 학생때부터 6년간 연애를 했던 산주가 선배와 결혼한 것에  상처받은 경애가 보낸 편지에 상수는 다음과 같은 답을 한다."언니,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p.176)" 마지막은 E 또는 은총이다. 경애에게는 E이자 상수에게는 은총인  한 인물은, 두 사람에게 상실 그 자체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p.176)


책은 상수와 경애로 투영된 사람의 '마음'을 다룬다. 그 과정에서 가정에서의 폭력, 사회적 지위에 의한 억압, 학력지상주의, 직장이라는 공간에서의 구조조정, 권력구조, 화재사건을 중심으로 한 부당영업, 범죄 등을 등장시킨다. 현재 우리 삶에도 유효한 이런 요소들은 두 주인공이 살아가는 길을 만들고 바꾸게 하며 결국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한다. 김금희 작가는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어느 시간에 경험했던 다양한 요소들이 상수와 경애에게는 '그늘'이었지만 현재와 미래의 '빛'을 알아보는 눈과 그늘을 이겨내는 힘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아닐까.  살아간다는 건 얽히고 풀렸다가 다시 엉키고 마는 일들을 마주하고 버텨내는 힘이다. 어떤 아픔과 고통이 있더라도 현재를 밀고 나아가는, 파워가 뜻하는 힘과는 또 다른 묵직한 어떤 에너지가 사람의 '마음'에는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것의 해답은 좋아서 혹은 싫어서였는데 그 두가지는 사람들에게 무섭도록 이해받을 수 없는 말이라서 상수는 늘 자기가 설명서가 필요한 연마기나 절삭기 같은 기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p.37)


누구나 쓰고 적는 말이지만 형체가 없는 말 '마음'이다. 그래서 이것을 설명하자면 수식어가 장황하게 붙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마음이 아팠다, 기뻤다 정도로 설명하는 건 너무 야속하다. 만져지지 않아 시작과 끝을 모르는 마음은 절삭기마냥 싹뚝 자를 수 없다. 마음에 감정을 더하거나 소멸시키는 무언가가 작용하면, 그 소용돌이에  또 한번 휘청이고 움직이며 나아가는 게 인간이다. 작가는 물이 흐르듯 흐차분하고 편안하게 이어간다. 감정의 여운과 꼬리가 이어지는 순간순간의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인연'과 '살아감'에 탄복하게 된다. 미지수(언니)였던 상수와 피조(물)이었던 자가 상수로써, 경애로써, 한 '사람'으로 서게된다. 이 책의 힘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삶은 명료함을 요구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계속계속 이어진다. 어찌보면 귀찮고 부산스러운 그 마음들이 결국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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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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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집착은 같은 종류일까. 구분은 어느 지점에서 시작하는 걸까.  '사랑'은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그리고 '집착'은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이라고 정의된다.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소년과 소녀가 성인이된 후 서로의 인생에 철저히 개입한다. 오랜시간 상대방을 그리워하다 괴롭히고 결국 파국으로 끌어내린다. 이건 사랑일까 집착일까. 그저 정신병에 불과한걸까.

힌들리와 캐서린의 아버지 '언쇼'는 여행에서 돌아올 때 '히스클리프'라는 아이를 데려온다. 아이는 천대받는다. 가족들에게는 무시를, 하인들에게는 채찍질을 당한다. 책은 언쇼가 히스클리프를 데려온 이유를 - 영화에서는 종교적 이유를 잠깐 언급한다 - 설명하지 않는다. 결국 히스클리프는 정체성이 모호한 존재로 언쇼가문에 얹혀 살게되며, 자연스레 자신을 '사람답게' 대해주는 '캐서린'에게 의지하게 된다. 히스클리프가 가진 광기의 뿌리 여기서 시작한다. 만약 아버지가 히스클리프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혹은 데려와서 그를 정확히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시켰다면 어땠을까. 폭풍의 언덕의 미친 광풍같은 사건들은 벌어지지 않았을테다.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에게 사랑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 여러 지점에서 읽힌다. 어린 시절 폭풍의 언덕을 뛰어다니며, 물새 깃털을 가지고 함께 논다. 뿐만아니라 힌들리가 때리고 죠세프가 채찍질 할 때 캐서린은 언제나 히스클리프의 편에 서준다. 안타깝게도 두 주인공의 어긋남은 찰나의 순간에 결정되고 만다. 에드거에게 청혼을 받고 이를 하녀 넬리에게 고백하는 캐서린. "나는 에드거 린턴과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 저 안에 있는 고약한 인간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하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결혼 같은 것은 생각조차 안 했을걸.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나도 천해지는 거아." 여기까지 대화를 엿듣던 히스클리프는 집을 나가고 만다. 캐서린의 히스클리프에 대한 진심을 담은 마지막 말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p.130)"를 듣지 못한 채로. 바로 여기서 소설의 파국이 시작된다.

린턴에 대한 내 사랑은 숲 속의 잎사귀들 같아. 겨울이 나무의 모습을 바꾸듯 시간이 내 사랑을 변하게 하리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잇어. 하지만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땅속에 파묻힌 변치 않는 바윗돌 같아. 눈에 뵈는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거니까.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그 애는 내 마음속에 항상, 항상 있는 거야. 기쁨을 주려고 있는게 아니야. 내가 나 자신에게 항상 기쁨을 주지는 않잖아. 그 애는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있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진다느니 하는 말은 두 번 다시 하면 안돼.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어. (p132~133)


히스클리프는 장성해 폭풍의 언덕으로 돌아온다. 도박에 빠진 힌들리에게 재산을 빼앗으며 복수를 시작한다. 그리고 린턴과 결혼한 캐서린을 찾아가는 데 에드거의 동생 이사벨라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게 되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또 다른 복수가 야기된다. 이사벨라가 자신에게 빠지도록 해 함께 도망가지만 이사벨라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자 히스클리프를 떠나 그의 아이인 린튼을 낳아 혼자 기르다 죽는다. 반면,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의 도망에 충격을 받아 정신병을 얻어 생을 마감하고 에드거마저 세상을 떠나자, 히스클리프는 캐서린과 에드거의 딸인
캐시 린턴과 자신과 이사벨라 린턴아들인 린턴강제로 결혼시키고 언쇼가문과 린턴가문의 재산을 모두 차지한다. 복수는 성공한걸까. 결과적으로 실패다. 두 집안의 사람들을 모두 정신적/물질적으로 자신의 발 아래 두지만, 그는 캐서린의 망령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캐서린이 곁에 없었기에 애초부터 성공할 수 없는 싸움이었던거다. 그저 폭풍의 언덕으로 돌아와 가졌던 순간들은 악에 받친 시간으로 만들어낸 의미없는 광기의 표현에 불과했다.


여러 종류의 감정들이 울컥이게 하는 책이다.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캐서린이 에드거도 히스클리프도 선택하지 않았다면? 캐서린이 이사벨라의 마음을 눈치채고 히스클리프를 도발하지 않았다면? 첫째로
남녀간의 '진솔함' 이 아쉽다. 캐서린이 히스클리프에게 '내가 사랑하는 건 바로 너다' 혹은 '(이사벨라의 감정을 무시하고)내 옆에 있어달라고' 말했다면 히스클리프는 돌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심이 사랑의 가장 큰 무기라는 만고불변의 법칙은 소설에서도 통용된다. 두번째는 부모와 자식간의 '존중'이다. 히스클리프가 언쇼가문에게 복수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분노와 모멸을 각인시키기'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인데, 귀족가문의 핏줄로 태어났지만 히스클리프의 (의도된)모욕속에서 예의범절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그는 '분노'의 감정만을 가진채 짐승처럼 살아간다. 언행은 물론, 사고방식도 화와 모멸 그 자체다. 헤어턴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감정과 역할 등을 존중받는 상태로 컸다면 그의 말로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마지막은 '감정의 객관화'다. (무리한 요구일수 있지만)히스클리프가 자신의 사랑과 분노 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캐서린의 결혼을 보고 벽에 머리를 찣는 수고도, 복수로만 감정을 갈아먹는 일도 없었을 거다. 이는 폭풍의 언덕과 티티새 농원에만 한정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살면서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쌓일 때가 수도 없이 찾아온다. 히스클리프처럼 대처했다간 사회는 짐승들이 들끓는 정글이 될 것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순식간에 읽어나갔다. <폭풍의 언덕>의 주요 인물은 캐서린도 히스클리프도 아닌, 하녀 '넬리' 아닐까. 록우드라는 사람이 티티새 지나는 농원(린튼가 가문)에 들러 두 집안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린튼가와 언쇼가의 히스토리는 언쇼가의 하녀였던 넬리를 통해 록우드에게 전달된다. 넬리는 소설 속 화자이자, 두 가문에서 가장 정상적인 언행을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섬뜩한 결말에 치달을 때즈음 드는 생각.
 '넬리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모든 인물을 비정상적으로 언급하는 것에 비추어볼 때, 넬리의 성격을 드러내는 연출 방식에 따라 소설은 식스센스 버금가는 반전스릴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역시 브론테의 글 답다. 에밀리 브론테가 <폭풍의 언덕>으로 현세에 읽힌다면 언니 샬롯 브론테는 <제인에어>로 기억되고 있다. 브론테가 아이들은 영국 북부 요크셔의 황량한 고원에서 아일랜드인 목사를 아버지로 두고 언니, 동생과 이야기를 짓고 읽어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목사라는 절제된 직업, 폭풍의 언덕을 닮은 요크셔 지방. 그 안에서 만들어진 '상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미친사랑. 정도를 지키는 종교집안에서 만들어낸 비정상적 광기의 서사는 독자에게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간다.  <폭풍의 언덕> 저자 에밀리 브론테는 폐병으로 3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자신이 만들어낸 캐서린의 죽음을 그대로 따르려는 듯, 의사의 진찰을 거부한 채로 병마를 받아들인다. 삶과 이야기가 연결된 서사가 <폭풍의 언덕> 안팎에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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