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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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스치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 '인연'은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꼭 연인이나 가족처럼 명시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 '의미'가 있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힘'이 되는 존재라면, 그 사람은 '인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연()'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라고 정의되니까.

그런 면에서 상수와 경애는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의 아들로, 빽이 있다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에, 가족과 연락도 닿지 않고, 끈 떨어진 낙하산 취급받는, 팀장(직무 대리)인 상수가 있다. 회사에서는 무능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버리는 카드 '팀장 상수'지만 집에서는 모든 여성들의 연애상담을 해주는 - 페이스북 페이지(언니는 죄가 없다, '언죄다')를 운영하는 - '언니'다. 경애는 호프집 화재에서 살아남은 한 명, 반도미싱에서 파업농성에 참여했고, 총무팀에서 소액물품을 담당하다가, 팀원이 필요하다는 팀장 직무대리의 요청에, 상수 팀에 발령을 받는 직원이다. 과거 사랑했지만 현재는 유부남이 된 산주에 대해 가끔 언죄다에 메일을 보내곤 한다.

상수와 경애의 인연은 세 지점에서 연결된다. 첫째, 반도미싱. 회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두 사람은 팀장과 팀원으로 만나 베트남 지사에 함께 영업을 하러 가기에 이른다. 없어도 되고, 있으면 불편한 서로의 존재가 타국의 땅에서 '어떤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쌀국수를 말아 먹으며 김부장과 오과장이라는 텃세를 이겨나갈 묘수를 고민하고 서로에게 떨어지는 부당함에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하기에 이른다. 둘째, 언죄다 페이지에 고민을 올리고, 답을 하며, 회사라는 영역에서 보이지 않던 부분을 '사람'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즉,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누군가의 '또 다른 면'을 알게한다. 학생때부터 6년간 연애를 했던 산주가 선배와 결혼한 것에  상처받은 경애가 보낸 편지에 상수는 다음과 같은 답을 한다."언니,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p.176)" 마지막은 E 또는 은총이다. 경애에게는 E이자 상수에게는 은총인  한 인물은, 두 사람에게 상실 그 자체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p.176)


책은 상수와 경애로 투영된 사람의 '마음'을 다룬다. 그 과정에서 가정에서의 폭력, 사회적 지위에 의한 억압, 학력지상주의, 직장이라는 공간에서의 구조조정, 권력구조, 화재사건을 중심으로 한 부당영업, 범죄 등을 등장시킨다. 현재 우리 삶에도 유효한 이런 요소들은 두 주인공이 살아가는 길을 만들고 바꾸게 하며 결국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한다. 김금희 작가는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어느 시간에 경험했던 다양한 요소들이 상수와 경애에게는 '그늘'이었지만 현재와 미래의 '빛'을 알아보는 눈과 그늘을 이겨내는 힘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아닐까.  살아간다는 건 얽히고 풀렸다가 다시 엉키고 마는 일들을 마주하고 버텨내는 힘이다. 어떤 아픔과 고통이 있더라도 현재를 밀고 나아가는, 파워가 뜻하는 힘과는 또 다른 묵직한 어떤 에너지가 사람의 '마음'에는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것의 해답은 좋아서 혹은 싫어서였는데 그 두가지는 사람들에게 무섭도록 이해받을 수 없는 말이라서 상수는 늘 자기가 설명서가 필요한 연마기나 절삭기 같은 기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p.37)


누구나 쓰고 적는 말이지만 형체가 없는 말 '마음'이다. 그래서 이것을 설명하자면 수식어가 장황하게 붙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마음이 아팠다, 기뻤다 정도로 설명하는 건 너무 야속하다. 만져지지 않아 시작과 끝을 모르는 마음은 절삭기마냥 싹뚝 자를 수 없다. 마음에 감정을 더하거나 소멸시키는 무언가가 작용하면, 그 소용돌이에  또 한번 휘청이고 움직이며 나아가는 게 인간이다. 작가는 물이 흐르듯 흐차분하고 편안하게 이어간다. 감정의 여운과 꼬리가 이어지는 순간순간의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인연'과 '살아감'에 탄복하게 된다. 미지수(언니)였던 상수와 피조(물)이었던 자가 상수로써, 경애로써, 한 '사람'으로 서게된다. 이 책의 힘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삶은 명료함을 요구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계속계속 이어진다. 어찌보면 귀찮고 부산스러운 그 마음들이 결국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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