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진경문고
정민 지음 / 보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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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독서는 직접 자신이 책 속의 내용을

경험하며 산 것처럼 진한 흔적을 남기곤 하지.

책은 우리의 영혼에 늘 뭔가를 깊이 새겨 놓는다. (p.51)

 

언제였을까.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독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인생 책 있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뭐야? 지금은 뭐 읽어? 다른 사람과 제법 나눴던 질문인데 최측근인 남편과는 처음인 것 같아 새삼 놀랐다. 나는 대학생이 된 후부터 책을 읽어왔다고 답한다. 책을 직접 샀고 그때 처음으로 서평단에 참여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릴 적 어떤 제약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책을 읽지 않았고 가족 중에도 책읽는 사람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못한 아쉬움은 지식의 짧음이 아니다. 당시의 ‘나’가 느꼈을 '그 때의 감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데 있다. 2018년 여성의 글쓰기를 공부하면서 소설 <폭풍의 언덕>을 처음 접했다. 당시 강사는 브론테 작품을 '언제 읽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소설이라 설명했고 그 해 나는 <폭풍의 언덕>에 빠져 종이가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삼십대인 내게 소설은 '광적인 사랑과 집착'으로 읽혔다. 만약 사랑은 어른이 되어야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초등학생 때 읽었다면 어땠을까? 사랑을 정의내리기에 바빴던 고등학생때 브론테 소설을 접했다면 어땠을까? 영원히 알 수 없는 답이지만 너무 궁금하고 한편으로는 아쉽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독서법>은 한양대학교 국문과 정민 교수의 책으로 아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는 내용이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더 이상 책을 읽기 전의 내가 아니지. 눈빛이 달라지고 마음속에 무언가 뿌듯한 것이 들어앉게 된다.(p.6)"고 말하는 정민 교수는 조상들에게 책은 어떤 존재였는지,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책을 넘어서 모든 것을 배움이라 여겼던 삶의 지혜를 설명한다. 그 근거는 과거 조상들의 책읽기와 글쓰기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친근한 어투로 전달한다.

책은 조상들도 '독서'에 대해 오늘날 독서가들과 유사한 고민해왔다는 걸 알려준다. 정독과 통독의 방법에 대해 중국 진목이란 자는 소가 되새김질하듯 읽는 독서법과 통독은 고래가 큰 입을 벌려 새우를 삼키듯 읽는 독서법으로 설명한다. 되씹고 찬찬히 읽어야 하는 경우와 어마어마한 양으로 뱃속을 가득 채워야 하는 경우를 나눠 설명하며 "책의 성격에 따라, 또 나의 필요에 따라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p.54)고 말한다. 매년 독서계획을 세우며 '많이 읽느냐'와 '제대로 읽느냐'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얘기다. 또 책을 언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연암 박지원은 "책 읽는 방법은 날마다 일과를 정해서 읽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읽다 말다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다."(p.61)며 많이 읽거나 빨리 읽으려는 욕심은 불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신 몇 줄씩 읽을지 정하고 횟수로 제한해서 날마다 꾸준히 읽는다면 뜻이 정밀해지고 의미가 분명해진다고 조언한다. 이밖에도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고전은 무엇을 말하는지, 책이 왜 좋은지와 같은 '책'과 관련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렸을 때 내가 이런 책을 읽어봤다면 어땠을까. 남편에게 시기별 나의 인생 책을 말할 수 있지 았았을까? 책의 소중함을 아는 것도, 책을 통해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민 교수처럼 가족중에 책을 읽고 책을 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한 사람의 성장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고전독서법>은 2012년에 발매된 책이다. 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벼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버지 정민의 뜻처럼 책을 읽으며 지혜를 키우며 성장했을까. 정민 교수처럼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은 부모님들이 읽어보고 실천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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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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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서 한 소년이 조사를 받고 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건지, 답을 모르는건지, 현장에 있었던건 맞는지, 애매하고 답답한 대화가 계속된다. 화자의 눈에 경찰은 화가 나있고, 조사받는 소년은 생각이 다른 데 가 있는 듯 하다. 이 광경을 회상하는 '나'는 2002년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해에 살해당한 여고생의 동생, '다언'이다.

<안녕 주정뱅이>의 작가 권여선이 장편소설 <레몬>으로 돌아왔다. 술을 매개로 인물들의 사연을 풀어내던 내러티브가 이번에는 '여고생 살인 사건'에 집중한다. 추리소설인 걸까? 어느 날 발생한 사건에 대해 책은 어떻게, 왜 일어난건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여러 단서를 보여준다.

각 장에서는 서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 반바지, 2002>에서 경찰은 한만우를 용의자로 간주하고 취조한다. 경찰의 말을 듣고 있으면 한만우가 범인인가 싶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복기하는 나는 말한다. "살인자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 죽을 때까지 내가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도 알고 있다.(p.30)"고. 나의 혼잣말을 보고 있으면 또 다른 의심을 하게 된다. <2. 시, 2006>에서는 (자매와 친분이 있는)상희가 등장한다. 그녀는 사건 후의 학교를 "그 사건과 연루된 아이들 중 학교에 남아 있는 아이는 (중략) 윤태림뿐이었다.(p.52)"라고 묘사한다. 현장에도 있었고 사건 후에도 유일하게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가는 태림. 독자는 이번에 태림을 용의선상에 올린다.

그 와중에 서로 다른 두 자매의 모습이 양념처럼 버무려진다. 사회적이지 못한 혜언, 언니를 챙기는 자상한 성격에 활발하기까지 한 다언. 성격만큼 얼굴도 서로 다르다. '아름답다'고 표현되는 언니의 얼굴에 대해 다언의 질투를 독자들은 여러 지점에서 만난다. 각자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상희가 대학생이 되어 오랜만에 다언을 만나게 된다. 모습이 변한 다언을 보며 상희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아련해진다. "나 또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오히려 더 치명적인 쪽은 나일 수 있었다. 다언은 자신이 뭘 잃어버렸는지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는 데 반해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p.63)"고 말한다. 혜언의 죽음에만 초점을 맞추던 독자들은 상희의 사연을 암시하는 대목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상희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거지?

 

소설 <레몬>은 과일 '레몬'처럼 읽힌다. 레몬은 터질듯 탱글한 속살, 하얗고 연약한 속껍질, 그리고 단단한 노란 외피가 있다. 그 때를 살아낸 인물들의 이야기와 삶의 의미를 묻는 시간속에 '2002년의 사건'은 숨겨져있다. 겉껍질에 숨어있지만 얄팍한 속껍질이 찢어지는 순간, 터질듯한 노란 속살이 '사건'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걸 확인한 후에야 내가 누구로 살지,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겠다.

(중략) 노란 천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레몬, 이라고 나는 의미 없이 중얼거렸다.

p.94~95

짧게 소설 <레몬>을 만나보며 인물들 모두의 삶이 엉크러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상희와 다언이 깊은 여운을 준다. 시에서 멀어진 상희, 삶의 안전지대를 벗어난 다언.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 개개인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반전을 경험했다. 더나아가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과제도. 막힘없이 읽었다. 남은 부분이 더할나위없이 궁금하다. 사건으로 빨아들여놓고 동시에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다니, 역시 권여선 작가다. 레몬의 복수는 뭘까. 과연 범인은 누구인걸까. 그 결말이 궁금해지는 소설 <레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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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자도 괜찮습니다 - 20년 경력 수면 전문의가 깨우친 인생 최고의 수면법
쓰보다 사토루 지음, 전지혜 옮김 / 길벗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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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자도 괜찮습니다' 이 얼마나 반가운 말인가. 적게 자고 싶지만 적게자면 손해보는 것 같고 지는 것만 같은 웃픈현실 아니던가. 엄마는 항상 내게 "잠 못자 죽은 귀신이 붙었나보다."라고 말씀하셨다. 잠자리를 가리지 않는 건 물론, 한번 잠들고 나면 세상이 떠들썩해도 나는 평온했다. 수능시험이 끝난 후 온전히 잠만 잤던 하루는 - 화장실도 가지 않고, 먹지 않고 36시간 지속된 나의 수면 - 아직도 친척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한다.

 

 

<적게 자도 괜찮습니다>의 저자 '쓰보다 사토루'는 일본수면학회 소속 의사이자 의학박사로, 20년 이상 수면전문의로 활동하는 분이다. 할 일은 넘쳐나고, 잠잘 시간은 부족하고, 그나마 잠을 자도 피곤하다. 이리도 '복잡한' 수면에 대해 저자는 '5시간 수면법'을 제시한다. 제대로 잘만 잔다면 5시간으로도 잠은 충분하다는 것. 책은 그 방법을 소개한다.

 

각 챕터는 나의 수면질과 패턴을 확인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솔루션 그리고 원리를 설명한다. 단순히 '적게 자도 사는 데 지장없다'는 경험적 이야기가 아닌 우리 신체에 대한 분석과 과학적 원리에 기반한다. 특히 논렘수면과 렘수면의 원리를 설명한 부분은 그저 '렘수면이 중요하다'로만 알았던 사실을 독자들에게 근본적으로 이해시킨다.

 

저자가 제안한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자기 전에 일어날 시간을 되뇌이기, 자기 전 2~4시간 전에는 음식 섭취 줄이기, 낮잠을 활용하기. 무엇보다도 모두에게 관심사항인 '잠'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 '원리'를 설명하고, 언제라도 도전해볼 수 있는 '과제'를 남겨주니 실용도가 높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일주일에 15분씩 잠을 줄여 궁극의 5시간 수면을 실천할 수 있다니, 과제도 어렵지 않아 도전의식을 건드린다. 나는 실제로 지금 당장 이 방법을 도전해보고자 한다. 잠들기 전 몸에다 말을 걸어보고, 베개를 치며 일어날 시간을 카운트하고, 내일 아침 일어나야 할 목표(운동)을 생각할 것이다. 나처럼 잠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히려 잠을 장악해 버리고싶은, 내 시간을 확실히 확보하고 싶은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발췌]

알람시계 없이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잠에서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을 머릿속에 강력히 되뇌기만 해도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p.76)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내성을 담당하는 호르몬으로, 인간의 체내에서 일어나기 한두 시간 전부터 이 호르몬이 빠르게 분비되기 시작합니다. 이 코르티솔 분비를 통해 마음이 단련되어 그날의 스트레스에 대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p.79~80)

 

논렘수면은 뇌의 수면이라고 불립니다. 논렘수면의 주요한 목적은 스트레스 해소와 호르몬 분비입니다. 뇌가 휴식을 취할 때는 몸의 신진대사가 촉진되어 면역기능이 높아지고 세포가 회복되죠. (중략) 한편 렘수면은 몸의 수면이라고 불립니다. 몸은 쉬고 있지만, 뇌는 활동하는 상태인 것이죠. 렘수면의 주요 목적은 기억의 고정화와 근육의 피로 해소입니다. 뇌가 활발히 작용하는 것은 기억을 정리하고 재구축하기 위해서입니다. (중략) 논렘수면과 렘수면의 균형을 잘 잡는 것은 고도의 뇌를 지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활동입니다. (p.93~94)

낮잠은 신체적인 활동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눈만 감거나 눕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까지 편안하게 다스려야 함을 잊지 마세요.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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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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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 헬기에서 환자를 들 것에 실어 나오는 장면을 뉴스에서 봤다. 선두에 그가 서 있었다. 지난달 故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읊고 있었다. 그것이 두번째였다. 의사라면 환자를 구하는 것이 당연지사요, 같은 의료계라면 누군가 떠나는 길에 추도사 정도는 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는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 과장이자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장으로 재직중이다. 동시에 의료계에서는 왕따이며, 병원에서는 외톨이다. 선진국의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해 애쓰는 외상외과 전공의이기 때문이다. 그 선진국형 시스템이라는 건 크게 두 가지가 필수다. 첫째,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장소를 막론하고 즉각 헬기로 날아 실어와야 한다. 둘째,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약을 투여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수술을 감행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에서 정한 의료행위와 약제 투약 기준을 한참 넘어서더라도 말이다. 책은 이국종 교수가 한국 의료계라는 척박한 현실에서 두 가지를 적용하기 위해 벌이는 분투기다.

왜 그렇게 싸워야 할까? 의사가 필요하면 육성하고, 시스템이 없다면 적용하고 개선해 나가면 될텐데. 이국종 교수는 "외상외과 환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노동자들이고, 정책의 스포트라이트는 없는 자들을 비추지 않는다.(p.8)"며 허망하게 날아가버리는 정책들을 언급한다. 또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벌이는 치료들이 보건복지부에서 정하는 기준을 훨씬 초과해 진료비 삭감을 일으키고(돈을 받지 못하게 되고) 결국 병원을 적자로 만들어버리는 문제도 얘기한다. "팀원들과 내가 열심히 일해서 살려낸 환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적자는 정비례해 커진다.(p.146)"며 의료진으로서의 최선과 조직원으로서 병원의 이윤추구라는 두 목적을 달성하는 게 불가능한 구조를 꼬집는다.

환자는 사고 직후 한 시간 이내에 전문 의료진과 장비가 있는 병원으로 와야한다. 이를 두고 '골든아워'라 한다. 먼 거리는 구급차로 이송이 불가하고 러시아워라도 되면 길에 환자들이 묶인다. 그는 해결책으로 헬리콥터를 제시한다. 2011년 아데만 여명작전으로 석해균 선장을, 2017년 총상을 입은 북한군 병사를 살려낸다. 덕분에 '닥터헬기' 정책을 도입할 수 있었다. 병원의 누적된 적자와 헬리콥터 소음으로 인한 민원발생으로 오래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포기한걸까? "가까운 미래에 대한민국에서, 국가 공공의료망의 굳건한 한 축으로서 선진국 수준의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겠다는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마음이겠지만 그래도 그가 버텨주었으면 한다. "주변의 걱정을 모르지 않으나 칼을 들었으므로 끝까지 가보고자 했다(p.11)"는 의지를 끝까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책은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많은 환자들이 침상과 수술방을 거치며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갔을 테다. 이국종 교수 그리고 그와 함께 중증외상센터를 지키고 일궈온 사람들도 그 경계를 넘나들며 지내왔으리라. 중증외상센터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구조가 우리나라가 가진 단 하나의 결점은 아닐 것이다. 여론을 의식해 앞뒤가 바뀌는 정책, 수익이 되지 않으면 처분해 버리는 원칙,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현실. 안보고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한 명의 시민으로서 숨이 막혀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국종 교수의 건강은 적신호고 여전히 외상센터는 암흑속이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그가 꿋꿋이 버텨줬음 좋겠다. 내가, 내 가족이 언젠가 석해균 선장이 될지 북한군 병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도 존재하는 이국종 교수가 없다면, 응급환자인 나와 내 가족을 치료해줄 사람이 없다면, 처참하고 암담하다. 더 나아가 그가 버티고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 의료계를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바꿔갔음 좋겠다. 감동의 눈물과 처참함의 슬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골든아워1>가 그 역할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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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출판사 21세기 취직하지 않고 살기 1
시마다 준이치로 지음, 박정소 옮김 / 북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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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엔지니어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했고, 마침 ''과 관련한 동호회를 운영하는 분이 괜찮은 출판사라고 소개해 준 곳 이었다. '정말? 출판사?'라는 생각으로 출근한 첫 날, 대표님은 나를 인근 출판사 사장님들께 인사를 시켰고, 함께 작업하는 디자이너와 번역가를 소개시켜주셨다. 그리고 나는 홍보파트 '김팀장'이 되었다. 둘째날, 대표님이 살펴보라고 교정 원고를 주셨고 회사 티테이블에서 임금 협상을 했다. 그리고 셋째날, '내일부터 안나와도 될 것 같다', 권고사직을 경험했다.
 
삼일천하로 끝났던 홍보파트 김팀장 이야기는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 내게는 충격이었다. 출판은 나와 맞지 않는 건가,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던가, 이전 회사로 다시 가야 하나. 수많은 번뇌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잠을 자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았다. 시마다 준이치로의 <내일은 출판사>를 읽으며 그 때 생각이 많이 났다.
 
<내일은 출판사>는 시마다가 사촌 ''을 잃은 후 그의 부모님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를 '책'으로 출판하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출판업과 책 그리고 그가 사랑한 책방들에 대한 이야기다. 출판업이나 책에 관심없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시마다가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는지' '켄을 그리워하는지'를 절절하게 전달하며 감동을 준다. 그리고 책을 대하는 사마다의 자세는 소중한 것을 대하는, 어떤 것을 애지중지할 때 느껴지는 조심스러움과 같은, 책에 대한 일종의 경배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문장을 읽으면 '아, 이것은!'하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 있던, 언어화되어 있지 않은 무언가가 여기 이렇게 문장으로
재현되어 있다는 데 전율을 느낀다. (p.87)

 
나도 꼭 이런 마음이었다. 일에 지치고 힘들 때 책을 읽으면 '마치 책이 나를 기다렸던 것 처럼' 내 얘기를 풀어놓은 것 같았다. 복잡한 내 생각들을 꿰뚫어보고 적어놓은 듯 했다.그런 책을 만나고 나면 어둡고 음울했던 마음에 안개가 걷히고 해가 비추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듯 했다. 책을 읽으며 힐링한다고나 할까. 그런 측면에서 ''''에 반했던 것 같다.
 
책은 시마다의 이야기를 줄곧 다룬다. 처음에는 켄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중반에는 시집을 내기까지, 마지막은 주인공이 만들고 싶은 책방 도감을 이야기한다. 특히 세번째 책방 도감 시리즈는 일본 지역에 있는 작은 책방들을 상세히 소개한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듯한 느낌의 소개글은 책방 주인들의 심성과 그들이 책방을 대하는 마음, 그 따뜻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일본에는 이렇게 아기자기한 동네 책방들이 많구나 감탄하게 된다. 더불어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있는 책방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열의를 품기도 한다. 
    
출판사 권고 사직 후, 나는 정보통신업계로 돌아왔다. 기술을 공부하고 정책 보고서를 쓰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읽는 사람을 좋아하고, 책 쓸 기회를 찾고, 책과 관련된 일을 찾아다니며, 책 만드는 일을 해볼 수 있을까 이곳 저곳 기웃거린다. <내일은 출판사>를 읽으며 그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책은 시마다 준이치로의 에세이다. "내 일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책을 만들고 그것을 독자 한 명 한 명에게 전달하는 것이다.(p.144)" 라고 말하는, 책과 출판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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