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독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인생 책 있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뭐야? 지금은 뭐 읽어? 다른 사람과 제법 나눴던 질문인데 최측근인 남편과는 처음인 것 같아 새삼 놀랐다. 나는 대학생이 된 후부터 책을 읽어왔다고 답한다. 책을 직접 샀고 그때 처음으로 서평단에 참여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릴 적 어떤 제약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책을 읽지 않았고 가족 중에도 책읽는 사람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못한 아쉬움은 지식의 짧음이 아니다. 당시의 ‘나’가 느꼈을 '그 때의 감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데 있다. 2018년 여성의 글쓰기를 공부하면서 소설 <폭풍의 언덕>을 처음 접했다. 당시 강사는 브론테 작품을 '언제 읽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소설이라 설명했고 그 해 나는 <폭풍의 언덕>에 빠져 종이가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삼십대인 내게 소설은 '광적인 사랑과 집착'으로 읽혔다. 만약 사랑은 어른이 되어야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초등학생 때 읽었다면 어땠을까? 사랑을 정의내리기에 바빴던 고등학생때 브론테 소설을 접했다면 어땠을까? 영원히 알 수 없는 답이지만 너무 궁금하고 한편으로는 아쉽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독서법>은 한양대학교 국문과 정민 교수의 책으로 아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는 내용이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더 이상 책을 읽기 전의 내가 아니지. 눈빛이 달라지고 마음속에 무언가 뿌듯한 것이 들어앉게 된다.(p.6)"고 말하는 정민 교수는 조상들에게 책은 어떤 존재였는지,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책을 넘어서 모든 것을 배움이라 여겼던 삶의 지혜를 설명한다. 그 근거는 과거 조상들의 책읽기와 글쓰기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친근한 어투로 전달한다.
책은 조상들도 '독서'에 대해 오늘날 독서가들과 유사한 고민해왔다는 걸 알려준다. 정독과 통독의 방법에 대해 중국 진목이란 자는 소가 되새김질하듯 읽는 독서법과 통독은 고래가 큰 입을 벌려 새우를 삼키듯 읽는 독서법으로 설명한다. 되씹고 찬찬히 읽어야 하는 경우와 어마어마한 양으로 뱃속을 가득 채워야 하는 경우를 나눠 설명하며 "책의 성격에 따라, 또 나의 필요에 따라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p.54)고 말한다. 매년 독서계획을 세우며 '많이 읽느냐'와 '제대로 읽느냐'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얘기다. 또 책을 언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연암 박지원은 "책 읽는 방법은 날마다 일과를 정해서 읽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읽다 말다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다."(p.61)며 많이 읽거나 빨리 읽으려는 욕심은 불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신 몇 줄씩 읽을지 정하고 횟수로 제한해서 날마다 꾸준히 읽는다면 뜻이 정밀해지고 의미가 분명해진다고 조언한다. 이밖에도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고전은 무엇을 말하는지, 책이 왜 좋은지와 같은 '책'과 관련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렸을 때 내가 이런 책을 읽어봤다면 어땠을까. 남편에게 시기별 나의 인생 책을 말할 수 있지 았았을까? 책의 소중함을 아는 것도, 책을 통해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민 교수처럼 가족중에 책을 읽고 책을 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한 사람의 성장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고전독서법>은 2012년에 발매된 책이다. 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벼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버지 정민의 뜻처럼 책을 읽으며 지혜를 키우며 성장했을까. 정민 교수처럼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은 부모님들이 읽어보고 실천해볼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