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녀석들 - 인공지능에 대한 아주 쉽고 친절한 안내서
저넬 셰인 지음, 이지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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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벌어지던 2016년, 대한민국의 관심은 AI로 쏠렸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 인간 실력자의 대결. 최종 결과는 4승 1패, 알파고의 승리였다. 이후 뉴스는 ‘알파고’ 혹은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했고,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이슈로까지 확대되었다.

당시 가장 인상적인 뉴스 중 하나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직업 순위’에 대한 것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직업이 ‘안전’할지 따져보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속내가 숨어있다. 하나는 내 직업을 지능이 높은 기계에게 ‘빼앗기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또 다른 하나는 ‘고작 기계’ 따위에게 질 수 없다는 비웃음이다. 그 와중에 가장 재미있던 건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공무원만은 예외'라는 뉴스의 헤드라인과 '그럴 수 밖에 없지'라는 대중의 끄덕임이었다.

AI란 무엇일까. <좀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녀석들>의 저자 저넬 셰인은 ‘기계학습 알고리즘’이라는 특정 유형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정의한다. 즉, 프로그래머가 특정한 목표에 대한 성공률을 계속해서 측정하는 방식으로,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규칙을 알아내는 것이며, AI를 프로그래밍한다는 것은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한다기보다 오히려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것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특징 다섯가지를 책에서 설명한다. (1) AI가 위험한 이유는 AI가 너무 똑똑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다. (2)AI는 대략 곤충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다. (3) 우리가 무슨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지 AI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4)그러나 AI는 우리가 시키는 그대로 할 것이다. 또는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5)그리고 AI는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을 택할 것이다.


책은 다섯가지의 인공지능 특징을 설명하며 'AI가 이성에게 작업거는 방법', 'AI의 아재개그' 등을 예로 든다. 인공지능과 감히 연관지어 생각하지 못했던 예시를 보며, 독자들은 '인공지능 = 지능이 높은 기계 = 내 직업을 빼앗을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던 두려움이 괜한 것이 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저자의 그림과 설명은 너무나 이해가 쉽고 심지어 웃기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책은 전문분야라 자칫 어렵게 다가오는 부분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좀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녀석들>은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감히 알아볼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독자들이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인공지능 관련 입문서 혹은 개괄서라고 할 수 있겠다.

'내 직업은 안전하겠군.' 책을 읽고나서 든 생각이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말처럼 인공지능은 인간이 알려주는 대로 뱉어내는, 동량의 인풋/아웃풋이 작동하는 물건에 지난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결국 직업이 사라질까 걱정하던 사람들도 안도의 한숨을 쉴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쓰레기를 넣지 않는 한 그들은 쓰레기를 만들어내지도, 그걸 뱉을 생각도 하지 못한다. 다만 쓰레기를 넣어놓고 보석이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이 현재의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은 후의 효능은 바로 그 깨달음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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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의 언어 - 형용사는 명사의 적이다
유종민 지음 / 타래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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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싶거나 정치 지도자가 되고 싶은 분들이라면, 정당을 쉽게 옮기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감히 말씀드린다. 정당을 담장 넘어다니듯이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그 자체가 저로서는 마땅치 않다.” - 동아일보 <이낙연, 민생당 등 ‘李마케팅’에 “쑥스럽고 거북…사양한다”(4.2)>

이낙연 후보를 따르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입당 또는 복당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이 답에서 그는 두 가지 효과를 냈다. 첫째,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드러냈다. 둘째, 정치적 신념이나 민생에 대한 고민 없이 누군가의 인기를 등에 업으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술수를 막겠다는 생각을 대중에게 전했다.

경제 전문 케이블 방송 ‘한국경제TV’ 파트장인 유종민 저자의 책 <이낙연의 언어>은 이낙연 후보자의 ‘말’내공을 분석한다. 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쓰기의 언어’다. 저자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빗대어 이 후보자의 글을 설명한다. 저자는 이 후보자의 글에 대해 20년의 기자생활 덕에, 군더더기가 없고, 팩트와 감정을 명확히 구분하며 단문으로 알기 쉽게 쓴다는 특징을 꼽는다. 2부에서는 볼테르에 빗대어 ‘그의 말’을 설명한다. 특히 총리 시절, 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들이 예시로 등장한다. 여기서 그는 자신을 공격하는 적에게 흥분해 약점을 보이기 보다, 상대방의 질문을 역으로 이용해 질문자가 되려 자승자박이 되는 상황을 만든다. 그가 ‘사이다’라고 불리는 이유다. 3부에서는 한지바를 통해 ‘그의 생각’을 바라본다.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을 일깨우듯 그는 무던히도 ‘중용’을 강조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국민의 시각에서 민생을 먼저 돌보자는, 근본에 가닿고자하는 그의 의지가 읽히는 부분이다. 마지막 4부에서는 정치현실을 분석한다. 이 부분에서는 독자들은 정치라는 곳에서 이 후보자가 돋보이는 이유를 새삼 알게 된다.

한 사람의 생각은 말과 글로 알 수 있다. 또한 말과 글은 생각을 만든다. 생각이 바뀌면 생활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 (중략) 잘 쓰고 잘 말해야 한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 <이낙연의 언어> 서문

저자는 이 책이 '이낙연이라는 '사람'에 대한 글이 아니고, 정확히는 이 전 총리의 '언어'에 대한 책이다. (p.4)’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의 서문에서 보듯, 누군가의 말과 글은 곧 그의 삶이요 생각의 궤적이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이낙연 후보자 ‘사람’에 대한 글이기도, 혹은 아니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은 쉽고 간결하게 그의 특징을 서술한다. 문단이 짧고 예시가 많아 이해가 돕는다. 반면, 단점도 있다. 같은 내용이 수 차례 반복된다. 이를테면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찬조 연설을 다니다가 목이 상해 문자메세지의 달인이 된 사례, 정치인으로서 국민에게 요구되는 4대 의무 외의 ‘설명의 의무’는 1부와 2부에서 중복으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책의 가장 큰 울림은 ‘이낙연 총리의 우회화법’에 있었다. 평소 질문에 맞춤하게 딱 떨어지는 답을 하지 않는다면, 비겁한 태도라고 생각해왔다. 동문서답은 이해력 부족, 우회 답변은 맞대결을 피하려는 의도로 읽었다. 하지만 책을 통한 이 후보자의 우회답변은 힘이 있었다. 저자의 표현처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효과를 냈다. 특히 상대방이 추진력을 잃고 오히려 자신의 질문에 이용당하는 모습은 정치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표현법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힘을 알고 나니, 나도 구사하고 싶어진다. 간혹 정치인들의 말을 듣고 보며 혀를 찬다. 이 책을 통해 일부 그런 오해들도 해소되었다. 또, 말과 글에 대한 생각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이낙연의 언어>는 이낙연 후보자에 대한 이해를 넓힘과 동시에 말과 글이라는 ‘언어’를 짚어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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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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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전처 '레베카'의 흔적을 추적해 그녀의 죽음 뒤에 감춰진 비밀들을 하나씩 파헤쳐가는 뮤지컬 <레베카>가 있다. 20세기 초 소설이 원작임에도 주체적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긴장감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인상깊게 봤었다. 소설 <레베카>의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초기 단편소설 모음집이 나왔다. 책 <인형>에는 총 13편의 단편이 묶여있다. 집필순으로 묶인 소설들은 남녀관계, 결혼, 종교적 믿음, 계급 등의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고 있다. 짧은 분량만큼 서사는 집약적이다. 인물들의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고, 감정과 사고의 흐름에서 머뭇거림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소설집의 제목으로 등장해 가장 대표작으로 느껴지는 단편 <인형>은 압도적이다.


액자소설인가? 소설은 E.스트롱맨 박사의 '머리말'로 시작한다. 독자들은 소설 안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는걸까 궁금해진다. 주인공은 '나'다. 나는 '내 안의 모든 것을 부서뜨리고 아픔을 주는 것은 허무함이다. (중략) 나를 채우는 것은 이성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다. (p.28)'라며 복잡한 마음을 드러낸다. 사랑에 빠진걸까. 실의에 빠진걸까. '나'는 말한다. '리베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p.29)'라고. 아, 그의 혼란스러운 감정은 리베카에 대한 사랑 때문이구나 싶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혼란스럽다. '나'와 리베카는 장미빛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 처럼 보였는데, 이야기 종반부 예상치 못한 '무엇'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줄리오'다.

이것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기 아니다. 내게는 두 인물이 보여주는 '각자의 (광적인)집착'으로 읽혔다. '나'가 사랑에 대한 불만족으로 고통스럽다면, '리베카'는 불안을 응축하고 있다. 특히 리베카의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대사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란 걸 보면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당신이나 다른 남자를 아무나 좋아할 수 있겠어? (p.52)"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녀의 모습은 흡사 '리얼돌'을 즐기는 사람들의 그것과 닮았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글을 쓰게 된걸까? 21세기인 지금도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소재와 표현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대프니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건지 궁금하다.

<인형> 외에도 책에는 <동풍>, <그러므로 이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등을 수록하고 있다. 술기운에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는 남자(<동풍>), 결혼으로 괴로워하는 연인(<성격차이>), 표리부동한 성직자(<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과거에만 몰입해 스스로 우울한 길로 걸어들어가는 이혼녀 딜리(<인생의 훼방꾼>) 등 불안한 영혼들을 주인공으로하는 소설 13편이다.

그간 접한 단편집들은 분량의 문제로 상대적으로 추상적이었다. 내용에 깊이 몰입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책 <인형>은 다르다. 각 소설마다 주제가 독특하고 표현방식도 예사롭지 않다. 풍자적이고 혹은 회의적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여운이 길어 오래 곱씹게 된다고 할까. 반전을 넘어서는 놀라움과 깊이가 있는 작품들이다. 지금 봐도 혁신적인 이런 소재와 내용들을 1900년 초에 만들어 냈다니 역시 대프니 듀 모리에가 '서스펜스의 여제'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소설을, 게다가 서스펜스를 즐기는 독자라면 무조건 봐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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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맘쇼 - 개그우먼 엄마들의 리얼 전투 육아기
정경미 외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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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내, 며느리, 직장인, 엄마. 여성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역할갈등 중의 최고는 뭐니뭐니 해도 ‘엄마’아닐까. 인구절벽이 도래했다지만 많은 여성들이 엄마되기를 희망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엄마인 여성들은 굳이 엄마될 필요 없다 말한다. 가진 자의 복에 겨운 소리인걸까? 책 <투맘쇼>를 보며 ‘복에 겨운 것 맞네’ 싶었다. 읽고나면 너무 부러워지는 건 나만의 마음이 아닐게다.

지금까지 이런 책은 없었다.

이것은 육아에세이인가 코믹북스인가.

- 김가연(탤런트), <투맘쇼> 추천사 중 일부

책 <투맘쇼>는 실제 <투맘쇼>를 진행하고 있는 개그우먼 김경아, 조승희, 정경미가 쓴 결혼과 육아에 대한 에세이다. 전국 투어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투맘쇼>는 세 개그우먼이 의기투합하여 시작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원하기 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 그 시간안에 엄마들을 위로하는 쇼를 만들고 싶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장소 대관은 정경미가, 회계와 관련한 각종 업무는 조승희가, 시나리오나 대본은 김경아가 맡았단다. 주인공들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얻었지만, 그것이 꽃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생활이 바뀌고, 매순간 엄마로서 부족한 건 아닌지 고민하고, 경력이 끊기지는 않을까 걱정한단다.

(여기서 미리 알아둘 것 한가지. 김경아, 정경미는 실제 육아맘이지만, 조승희는 미혼이다.) 책은 참 잘 짜여져있다. ‘시즌1. 결혼인가 전투인가’은 김경아, 정경미라는 개그우먼이 결혼하고 남편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시즌2. 육아인가 전투인가’은 육아 초반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담았다. ‘시즌3. 출퇴근인가 전투인가’에서는 경력과 엄마 사이에 고뇌하는 그녀들을 볼 수 있고, ‘시즌4. 전쟁인가 평화인가’에서는 변덕스러운 아이들 덕에 웃고 우는 엄마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구성의 백미는 매 시즌 오프닝과 엔딩의 책임지고 있는 조승희의 멘트다. 두 엄마 개그우먼과 함께 육아에세이를 쓰고 육아 관련 쇼를 하는 것도 어려웠을텐데, 책에서 이를 알맞게 배치해 한 명의 미혼이 외로워보이지도, 두 명의 엄마가 과해보이지도 않는다. 아주 맞춤한 구성이다.

물론, 내용도 찰지다. 그래서 '리얼 전투 육아기'라는 부제를 달 수 있었을 터. 회사에서 보면 보통 일 잘하는 동료가 뭐든 잘한다. 말도 재밌게 하고, 성격도 좋고, 놀기도 잘 논다. 책을 보면서도 그 생각을 했다. 웃기기까지 한 개그우먼들이 글도 이렇게 잘 쓰다니. 현실육아를 살아내면서 적은, 진정성 200%의 글이라 그런걸까. 아직 아이가 없는 기혼녀이지만 여러 지점에서 같이 울고 웃었다.

빵 터져 한참 웃었던 77p


정경미는 오랜 시간 연애하고 결혼하자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언제? 혹시? 라며 임신여부를 많이 물어봤다고 한다. 여기에 그녀는 “나도 하루빨리 엄마가 되고 싶었기에 ‘저 배 속에 아이 있어요.’라고 빨리 대답하고 싶었다. (p.13)”고 말한다. 어쩜, 지금 내 마음같은지. 나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묻고 여러 번 대답하고 있다. 그 와중에 대답을 하면 할수록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은 더 커져만 간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그 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책에는 미혼인 조승희와 육아맘인 정경미, 김경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기혼이지만 아이가 없기에 딱 그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다. <투맘쇼>를 읽으며 아이나 육아에 대한 환상을 더듬어보고,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을 돌이켜봤다.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짓고, 누군가가 했던 임신공격이 불쑥 떠올라 화가 나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이지만 언제나처럼 봄이 왔다. 주말 날씨는 화창하다. 책 <투맘쇼>는 봄처럼 따뜻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아주 좋은 책이다. 나는 오늘부터 저자 세 명을 더욱 응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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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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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뜨면 핸드폰으로 코로나 관련 기사를 흝어본다. 그리고 10시를 기다린다. 질병관리본부의 생중계를 듣기 위해서다. 일상이 코로나다. 회사에서는 탄력근무와 순환근무를, 지인들과의 만남은 온라인에서 진행된다. 겨울이 녹아 봄이 찾아왔지만 지난 12월에 시작된 코로나19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훗날 지금의 이 시기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까? 의사이자 역사학자인 로날트 D. 게르슈테는 이런 궁금증으로 과거를 바라보았다.

과거에는 질병으로 인한 사건이 얼마나 있었을까. 책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에서 게르슈테는 질병과 역사의 물결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관계를 ‘미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대중적으로 많이 논의된 사회적, 경제적 여파 외에 “역사의 물줄기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결정권을 지닌 정치가들 개개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뜻밖에 찾아온 죽음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다루고 넘어가야(p.8)”한다고 그는 말한다.

저자의 이러한 생각은 ‘만약 그 때 그랬다면 어땠을까?’와 같은 다소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만약 그 때 매독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 때 매독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면? 만약 그 때 콜롬버스가 신대륙에 귀환하지 않았다면? 저자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하나는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질병이고, 나머지 하나는 각종 질병에 걸린 권력자들 (p.10)”이라며 두 가지 요소 중심으로 설명한다고 밝힌다.



예컨대, 매독과 관련한 부분을 보자. 저자는 ‘매독’에 대한 여러 일화를 소개한다. 첫째, 매독의 ‘이용’이다. 1495년 2월, 전장에서 승전보를 울리던 샤를 8세의 프랑스군이 나폴리에 입성한다. 이때 나폴리군은 여인들을 프랑스군에게 보낸다. 식량부족과 시간 끌기를 위해서. 여인들은 건강에 큰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매독의 정체를 알지 못했던 때에 나폴리 군은 여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전쟁에 보낸것이다. 여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프랑스 병사들은 성기 주변에서 시작된 질병에 시달리다 죽어갔고, 이 질병은 당시 ‘악성 천연두’로 불렸다고 한다.

둘째, 매독의 ‘발발’이다. 책에는 매독의 발발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을 소개한다. 콜럼버스가 이끈 탐사단이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들였다는 가설과, 콜롬버스(1492년) 이전에 이미 유럽 대륙에서 매독이 발발했다는 가설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유럽에 이미 존재했을 것이라는 가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전자에 무게를 둔다. 또한 매독의 발발을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이 자신들이 당할 고통을 예상하고 백인들에게 미리 가한 형벌이었을지도 모른다. (p.69)”며 역사적 의미를 덧붙인다.

셋째, 역사속에 녹아있는 매독의 ‘활용’이다. 매독이라는 성병은 고위 성직자들 뿐 아니라 귀족들에게 퍼져나가며 일종의 낙인으로 작용했다며 “왕조 계승 문제 등으로 국왕과 갈등관계에 놓인 정적들이 국왕을 음해하기 위해 매독 환자였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p.71)”고 저자는 말한다. 현존하는 자료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샤를 8세의 후계자 프랑수아 1세, 그는 라이벌이었던 황제 카를로스 5세도 매독 환자라는 설이 있었다고 예시로 든다.

마지막은, 매독의 ‘효과’다. 성병이 도대체 어떤 효과를 냈단 말인가. 저자는 파도바 대학의 해부학 교수 팔로 피오를 언급한다. 그는 1,100명의 표본 집단에게 성관계를 가질 때 리넨 천으로 만든 작은 덮개를 사용할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리넨 천에는 소금에 절인 약초 용액, 우유, 타액 등이 묻어있었다. (현재)성병 연구의 고전이라 불리는 팔로피오의 이 실험 덕에 그는 ‘콘돔의 창시자’로 서게 된다.

이처럼 저자는 의학과 역사적 지식을 결합해 페스트, 천연두, 통풍, 독감, 결핵, 에이즈 등의 질병과 그 병들과 얽힌 조지워싱턴, 히틀러, 루즈벨트, 케네디 등의 인물의 삶과 죽음을 설명한다. 질병은 황제, 대통령, 독재자를 가리지 않았다. 먹이 사실의 마지막 소비자로 보이는 인류도 ‘병균’에게는 하나의 숙주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 고찰을 통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희망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21세기가 된 지금 감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페스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접어들면서 폐결핵은 매독이나 페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콜레라와는 달리 ‘아름다운’ 질병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비단 영국에서만 일어난 현상은 아니었다. 일단, 폐결핵 희생자들 중 많은 이들이 젊은 층이었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게다가 폐결핵에 걸린 환자들의 외모는 시간이 흐를수록 창백해졌는데, 새하얀 피부를 선호하던 당시의 미인상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다가올 최후를 감지한 덕분인지, 폐결핵 환자들 중에는 폭발적인 창의력을 발휘한 이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위대한 문필가 집안인 브론테 가문을 들 수 있다. 지방 교구의 사제였던 패트릭 브론테의 자녀들은 모두 폐결핵에 걸렸다. (p.244)

질병은 발병한 후보다 ‘예방’이 먼저라고 한다. 치료법이 명확하지 않다면 더욱이. 그래서 코로나19로 혼돈의 시간을 보내는 지금도 정부는 ‘거리두기’라는 묘책을 쓰고 있을 것이다. 지금 시각 국내 사망자는 144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로 우리의 역사는 바뀌고 있다. 먼 훗날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어떤 역사적 의미로 읽히게 될까. 혹 빅토리아 시대의 폐결핵처럼 아름다운 질병으로 미화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는 과거와 빗대어 현실을 살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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