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침에 눈뜨면 핸드폰으로 코로나 관련 기사를 흝어본다. 그리고 10시를 기다린다. 질병관리본부의 생중계를 듣기 위해서다. 일상이 코로나다. 회사에서는 탄력근무와 순환근무를, 지인들과의 만남은 온라인에서 진행된다. 겨울이 녹아 봄이 찾아왔지만 지난 12월에 시작된 코로나19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훗날 지금의 이 시기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까? 의사이자 역사학자인 로날트 D. 게르슈테는 이런 궁금증으로 과거를 바라보았다.

과거에는 질병으로 인한 사건이 얼마나 있었을까. 책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에서 게르슈테는 질병과 역사의 물결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관계를 ‘미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대중적으로 많이 논의된 사회적, 경제적 여파 외에 “역사의 물줄기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결정권을 지닌 정치가들 개개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뜻밖에 찾아온 죽음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다루고 넘어가야(p.8)”한다고 그는 말한다.

저자의 이러한 생각은 ‘만약 그 때 그랬다면 어땠을까?’와 같은 다소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만약 그 때 매독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 때 매독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면? 만약 그 때 콜롬버스가 신대륙에 귀환하지 않았다면? 저자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하나는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질병이고, 나머지 하나는 각종 질병에 걸린 권력자들 (p.10)”이라며 두 가지 요소 중심으로 설명한다고 밝힌다.



예컨대, 매독과 관련한 부분을 보자. 저자는 ‘매독’에 대한 여러 일화를 소개한다. 첫째, 매독의 ‘이용’이다. 1495년 2월, 전장에서 승전보를 울리던 샤를 8세의 프랑스군이 나폴리에 입성한다. 이때 나폴리군은 여인들을 프랑스군에게 보낸다. 식량부족과 시간 끌기를 위해서. 여인들은 건강에 큰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매독의 정체를 알지 못했던 때에 나폴리 군은 여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전쟁에 보낸것이다. 여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프랑스 병사들은 성기 주변에서 시작된 질병에 시달리다 죽어갔고, 이 질병은 당시 ‘악성 천연두’로 불렸다고 한다.

둘째, 매독의 ‘발발’이다. 책에는 매독의 발발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을 소개한다. 콜럼버스가 이끈 탐사단이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들였다는 가설과, 콜롬버스(1492년) 이전에 이미 유럽 대륙에서 매독이 발발했다는 가설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유럽에 이미 존재했을 것이라는 가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전자에 무게를 둔다. 또한 매독의 발발을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이 자신들이 당할 고통을 예상하고 백인들에게 미리 가한 형벌이었을지도 모른다. (p.69)”며 역사적 의미를 덧붙인다.

셋째, 역사속에 녹아있는 매독의 ‘활용’이다. 매독이라는 성병은 고위 성직자들 뿐 아니라 귀족들에게 퍼져나가며 일종의 낙인으로 작용했다며 “왕조 계승 문제 등으로 국왕과 갈등관계에 놓인 정적들이 국왕을 음해하기 위해 매독 환자였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p.71)”고 저자는 말한다. 현존하는 자료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샤를 8세의 후계자 프랑수아 1세, 그는 라이벌이었던 황제 카를로스 5세도 매독 환자라는 설이 있었다고 예시로 든다.

마지막은, 매독의 ‘효과’다. 성병이 도대체 어떤 효과를 냈단 말인가. 저자는 파도바 대학의 해부학 교수 팔로 피오를 언급한다. 그는 1,100명의 표본 집단에게 성관계를 가질 때 리넨 천으로 만든 작은 덮개를 사용할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리넨 천에는 소금에 절인 약초 용액, 우유, 타액 등이 묻어있었다. (현재)성병 연구의 고전이라 불리는 팔로피오의 이 실험 덕에 그는 ‘콘돔의 창시자’로 서게 된다.

이처럼 저자는 의학과 역사적 지식을 결합해 페스트, 천연두, 통풍, 독감, 결핵, 에이즈 등의 질병과 그 병들과 얽힌 조지워싱턴, 히틀러, 루즈벨트, 케네디 등의 인물의 삶과 죽음을 설명한다. 질병은 황제, 대통령, 독재자를 가리지 않았다. 먹이 사실의 마지막 소비자로 보이는 인류도 ‘병균’에게는 하나의 숙주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 고찰을 통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희망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21세기가 된 지금 감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페스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접어들면서 폐결핵은 매독이나 페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콜레라와는 달리 ‘아름다운’ 질병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비단 영국에서만 일어난 현상은 아니었다. 일단, 폐결핵 희생자들 중 많은 이들이 젊은 층이었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게다가 폐결핵에 걸린 환자들의 외모는 시간이 흐를수록 창백해졌는데, 새하얀 피부를 선호하던 당시의 미인상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다가올 최후를 감지한 덕분인지, 폐결핵 환자들 중에는 폭발적인 창의력을 발휘한 이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위대한 문필가 집안인 브론테 가문을 들 수 있다. 지방 교구의 사제였던 패트릭 브론테의 자녀들은 모두 폐결핵에 걸렸다. (p.244)

질병은 발병한 후보다 ‘예방’이 먼저라고 한다. 치료법이 명확하지 않다면 더욱이. 그래서 코로나19로 혼돈의 시간을 보내는 지금도 정부는 ‘거리두기’라는 묘책을 쓰고 있을 것이다. 지금 시각 국내 사망자는 144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로 우리의 역사는 바뀌고 있다. 먼 훗날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어떤 역사적 의미로 읽히게 될까. 혹 빅토리아 시대의 폐결핵처럼 아름다운 질병으로 미화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는 과거와 빗대어 현실을 살펴보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