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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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책과 문학을 욕망한 두 소녀 이야기

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문화대혁명은 문화를 위한 운동일까? 오히려 그 반대다. 마오쩌둥이 추진한 사회주의 운동으로 1966년부터 10년간 지속된 문화대혁명은 자본주의적 사상과 문화를 몰아내자는 기치아래 추진되었다. , 사회주의가 아닌 모든 것을 배척, 각종 문화재와 예술품을 파괴하고 지식인과 학자들은 비판과 모욕 끝에 목숨을 잃거나 자살을 하곤 했다. 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문화대혁명 시기, 지식인의 자식으로 재교육을 받기 위해 두메산골로 보내진 의 이야기다.

 

재교육에 관해 몇 마디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968년 말 어느 날,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이자 혁명의 기수인 마오쩌둥 주석은 나라를 일대 변혁하는 운동을 벌였다. 모든 대학이 휴교했고 젊은 지식인들’, 다시 말해 중등교육을 마친 학생들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재교육을 받기 위해서 농촌으로 추방되었다. (13p)”

하늘긴꼬리닭이라 불리는 산으로 보내진 뤄와 나는 주로 똥물을 나르거나 탄광 일을 한다. 가끔 농민들에게 바이올린을 연주해주거나 영화를 보고와 재연하기도 한다. 산 생활에 적응할 때 즈음, 소년들은 재봉사의 딸 바느질하는 소녀와 고향친구 안경잡이를 만난다. 똥통과 석탄 먼지만 가득하리라 여겨졌던 소년들의 재교육 생활에 사랑과 문학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문학이 사상통제의 일환으로 금지되던 시기, 허락된 책들은 오직 마오쩌둥 주석을 찬양하는 이야기 뿐 이다. 주인공들은 말한다. “서양문학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 지금 그 책들은 어디 있는데? -...(중략)...- 문학이야기가 나를 몹시 우울하게 했다. 우리에게는 행운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마침내 술술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니까 이제는 읽을 만한 책이 하나도 없었다. (72p)” 그때 마침 그들 눈에 들어온 게 있었으니, 바로 안경잡이의 녹색 가방이었다. 작가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를 둔 안경잡이. 그의 노동을 대신해준 대가로 주인공들은 한 권의 낡은 책을 얻는다. 바로 발자크의 소설이다. 문화적 정서와 감정을 억압받던 열일곱 소년들에게 발자크는 이야기는 충격에 가까웠으리라.

 

소년들은 책을 아껴 읽으며 다른 세상에 눈을 떠간다. 뤄는 바느질하는 소녀에게 소설이야기를 영화처럼 재연한다. 그 애에게 반했냐는 질문에 뤄가 대답한다. “아직 개화가 덜 됐어. 아무튼 나한테 썩 어울리는 여자는 아냐!”(40p) 도시에서 온 뤄의 눈에 산골에서 바느질 외의 것은 꿈꾸지 않는 소녀는 그저 예뻐서 관심 가는 아이에 불과했다. 뤄는 그녀를 개화시키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두 소년은 또 다른 책들을 얻어내는 데 골몰하고 소녀와의 감정은 점점 깊어진다.

 

책에서 그려지는 두 소년의 문학에 대한 열망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는 저자 다이 시지에의 이력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작가는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실제로 산골에서 재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지목됐기 때문. 그의 문학에 대한 욕구가 뤄와 나에게 투영된 건 아닐까. 재교육이 마오쩌둥의 죽음으로 마감된 후 저자는 프랑스의 영화학교에 들어가 공부한다. 캐릭터를 창작하고 영상과 미디어로 꾸며지는 문화의 범주로 향한 그에게 (다양한 문학적)책은 꿈이자 삶의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소설은 바느질 하는 중국소녀의 변신으로 마무리된다. 중국도 마오쩌둥의 사망 후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덩샤오핑 주석이 추대되며 1980년 중국식 시장경제 흑묘백묘론이 등장한다. 색깔과 상관없이 고양이만 잘 잡으면 된다는 이 말은 곧, 자본주의 혹은 공산주의와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된다는 걸 의미한다. 댕기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하늘긴꼬리닭 산을 벗어나 도시로 향한 중국소녀는 이런 말을 남긴다.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 걸.(252p)” 문학의 힘을 믿고 있는 작가의 마지막 메시지 아닐까.

 

미디어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중국스럽지않은 책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저자의 배경을 빗대 프랑스 문학에 가깝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지극히 중국적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대륙 , 최대 국민 수라는 타이틀을 안고 있다. 허나 그 빛나는 수식어는 문화대혁명이라는 곡진 세월을 보낸 결과다. 우리나라와의 지리적 여건으로 중국은 남다른 의미의 관계를 갖는 나라다. 중국을 알고 싶다면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마침 여름휴가 시즌을 맞이해 가볍고 유쾌하게 읽을 책으로 여러 미디어에서 추천을 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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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신 프레야 프레야 시리즈
매튜 로렌스 지음, 김세경 옮김 / 아작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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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외모로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그녀를 사랑한다. 인간은 물론 신들도 그 미모에 반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번 외로움에 젖은 눈물을 흘려야 했는데, 여행을 좋아해 방랑하는 남편 때문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을 찾아 방황하기도 했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미, 사랑, 다산의 여신 프레야에 대한 설명이다. 게임 디자이너 매튜 로렌스가 장편소설 <프레야>를 출간했다. 저자 매튜 로렌스는 세계적 게임 <앵그리 버드> 제작사 로비오의 게임 디자이너다. 게임 디자이너이자 작가라는 저자의 이력이 흥미롭다.

 

소설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새라가 면회객 - ‘가렌’ - 을 만난 후,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하고 나단과 함께 병원을 탈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나단과 새라는 가렌을 피해 인간들 틈에 섞여 취업을 하고 집을 구하고, 신들이 모여 있는 곳에 부러 잡혀가 다른 신들을 도모해 전쟁을 계획, 탈출하기도 한다.

 

432쪽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소설 <프레야>는 어렵지 않게 완독할 수 있다. 즉흥, 환상, 전투 등 게임적 요소를 다분히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믿음으로 신이 만들어졌다는 설정, 인간의 믿음에 따라 신의 힘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 신간의 적대적이고 우호적인 관계, 신과 인간사이의 창조물 등. 소설의 내용은 한 마디로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반란과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주연이 북유럽 신 프레야 라면 조연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러 신들이다. 신들 간 다툼과 그 신적 에너지가 분출되는 모습 등은 독자들이 마치 IMAX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저자 매튜는 프레야 시리즈 - <프레야>가 첫 번째 작품이다 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프레야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입니다. 이 세계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신들이 있어요. 문제는 신들에게 삶을 주는 건 인간의 기도와 믿음인데, 현재 우리는 대부분 그들을 믿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남은 신들에게도 힘든 세상입니다.” 여신 프레야가 타의가 아닌, 병원이 가장 편안하다고 생각해 27년간 정신병원에 스스로 갇혀 살았다는 설정이 이런 사고에 근거한 게 아닐까. 저자는 프레야 같은 신 뿐 아니라 인간 역시 자신을 스스로 틀 안에 가두고 있다고 조언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가렌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소설은 존재나 가치관 등 철학적 탐구에까지 가닿는다. SF장르 요소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할만한 책. 내년에 영어 초판이 출간, 올해 한국어로 가장 먼저 출간되었다는 핀란드발 <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신 프레야>에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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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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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p.300)” , 정치적 목적에 충실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인데 그 증거는 저자의 여러 작품에서 발견된다. 1938년작 <카탈로니아 찬가>에서는 사회주의의 이중성을 묘사했고, 1949년 출판된 소설 <1984>에서는 미래의 관료화된 국가에 대한 공포를 그렸다. 소설 <동물농장>도 같은 계보를 따른다고 할 수 있다.

 

동물농장의 주인은 동물들이다. ‘인간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 동물은 모두 평등하다는 슬로건 아래 동물들은 질서와 규칙을 만들어 그들만의 세계를 이뤄나간다. 어느 날, 농장의 리더인 돼지들 간의 주도권 쟁탈전이 일어난다. 스노볼과 나폴레옹, 두 돼지는 풍차 건설을 두고 서로 대립한다. 육탄전을 방불케하는 싸움에서 나폴레옹이 이겨 풍차 건설은 무마될 듯 보인다. 그렇지만 나폴레옹은 사실 스노볼의 주장 풍차를 건설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은 본인의 의견이었으며 스노볼이 인간과 결탁해 동물농장을 와해시키려 했다고 거짓 정보를 유포한다. 다른 동물들은 자연스레 승자인 나폴레옹의 편에 서고 스노볼은 농장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사건들의 주범으로 지목받게 된다.

 

여기서 독자들은 의구심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나폴레옹의 말이 사실일까? 다른 동물들은 이를 믿고 있는 걸까? 질문에 대한 답은 동물들이 투표에 임하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제대로 따질 말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면 그들 중 몇 명은 항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할 말을 떠올리지는 못했다.(p.54)’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다른 동물들은 돼지들이 낸 의견에 반박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순응한다.

 

귄위적인 나폴레옹, 같은 말만 반복하는 양, 일만하는 복서, 비관적인 벤자민 등. 농장의 동물들은 인간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결국 작가는 동물농장의 모습을 통해 인간 세상을 드러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특히 평등을 외치면서 계급을 나누고, 지식 또는 정보의 차등을 이용해 특권을 누리는 정치의 영역을 비판하고자 했던 건 아닌지 짐작하게 한다. 더 나아가 책을 읽으며 독자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바로 의견을 내지 못하는 동물은 아닌가? 변화나 조종을 인지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통치를 평화라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는 아닌 지 소설은 되묻는다.

소설 <동물농장>1945년 세상에 등장했다.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트로츠키의 반목이 있었던 때다. 정치인들은 정권 탈취만을 좇았고 군중들은 이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 당시는 사상통제라는 명분하에 정치적 검열이 자행되던 시대기도 했다. 작가는 정치적 목적이 결여된 글에서 허튼 소리를 하거나 의미 없는 문장을 적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동물농장>은 당시의 복잡한 정세와 한 나라의 정치를 녹여 저항하고 싶은 작가의 심정을 로써 표현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함축적이다. 반면 이야기의 주인공은 동물들로 누구나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작가 조지오웰 특유의 유머와 풍자를 통해 그가 폭로하고 싶었던 실상에 다가가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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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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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하루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1Q84> 로 알려진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능한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2003년 한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은 그의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자전적 소설을 묻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이러했다. “나는 회고록이나 자전적 소설을 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소설을 써왔다고 하는 것과 같은 실제적 기록은 어느 정도 남기고 싶습니다. 어떤 경위로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어떤 상태로 살아왔는가와 같은 것은 쓰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출간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총 9장으로 구성된 에세이다. 각 장은 달리는 장소 미국, 일본, 하와이 를 기준으로 나뉘는데, 저자는 각 지역의 날씨와 연관 지어 달리기에 임하는 마음가짐, 달리는 목적, 효과 등을 이야기한다. 흡사 마라토너의 대회 준비 일지 같다고 느낄 수 있지만 하루키가 달리는 행위의 시작과 끝, 시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은 사람하루키를 알게 하는 정수가 될 수도 있다.

 

작가는 이 책을 두고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나의 회고록으로 읽어주었으면 한다(서문)’고 말한다. 러너와 소설가의 삶을 엮어 적었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달리기를 체력적 연소라고 표현한다. 또 저자는 글쓰기를 육체를 혹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가의 일이란 책상에 앉아 연필을 끼적이는데 불과할 것 이라는 일반의 편견과 달리, ‘이야기라고 하는 의상을 몸에 감싼 채, 온몸으로 사고하고 작가의 육체능력을 남김없이 쓰는 걸 요구(p.126~127)’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고통과 닮은 달리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좋은 습관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지 않으면 여러 해 반복했어도 금방 몸에서 멀어지기 마련인데, 하루키는 말한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령 불공평한 장소에 있어도 그곳에 있는 종류의 공정함을 희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 (p.72)” 매일 일정 시간 쓰지 않으면 한 줄 쓰기도 버겁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달려야 몸이 달리기를 기억한다는 그. 얄궂은 삶의 단면을 달리기를 통해 하루키는 알게 된 듯하다.

 

작가의 우직함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왜 42.195km 마라톤 종주와 같은 혹독한 달리기에 매달리는지 이렇게 적는다. “나는 가령, 무슨 일이든 뭔가를 시작하면 그 일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정을 못 찾는 성격이다. (중략) 만약 어중간하게 하다가 실패한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이다.(p.57~58)” 가게를 꽤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사업가였고, 손꼽히는 일본 소설가, 그리고 42.195km를 완주한 장거리 러너, 그의 인생에서 보여준 여러 성취는 이런 우직한 노력 때문 아니었을까?

 

책은 저자의 작가로서의 진면목을 알려준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소설을 쓰게 된 경위, 그 과정을 임하는 자세 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종류의 마라톤과 달리는 과정 묘사가 여러 차례 등장하면서, 실제 마라톤과 같은 혹독한 달리기를 경험해보지 못한 독자에게는 다소 공감이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들은 물을 것이다. 하루키에게 달리기가 있다면, 내게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듯 철칙이라고 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누구에게나 어떤 종류의 관찰과 경험에서 얻은 법칙같은 게 있다. 신체를 움직이고 일정 고통 안에서 스스로를 단련하고 배우며 삶의 지혜를 얻게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독자에게 남기는 여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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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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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의 글을 처음 본 건 경향신문에서다. 이완구 전 총리가 고 성환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추정돼 총리직을 사퇴하고 그 후임자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목을 받은 때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성환종리스트 사건을 이총리의 사퇴로 갈무리하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고, 병역비리라는 흑역사를 가진 황장관이 그나마 깨끗하다는 이유로 총리로 임명된 데 분개했다. 서민교수는 이런 정황을 <황교안 총리를 지지한다>라는 글로 역설했다.

 

*경향, ‘15.5.2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5261406351&code=990100 

 

서민을 검색했다. 서민금융나들목, 서민경제가 연관검색어로 등장한다. 한 포털은 그를 대한민국의 기생충 학자이자 칼럼니스트, 방송인라고 설명한다. 책은 그 중에서 글쓰는 사람서민에 집중했다. 1부는 저자가 글을 쓰게 된 이유, 2부는 (그가 체득한)잘 쓰는 법, 글쓰기 노하우 등을 담았다.

 

서민 교수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부제(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를 통해 알 수 있다. 눈이 작고 못생겨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는 저자. 소심함과 외모를 극복하기 위해 글을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시절 동아리 편집부장을 맡아 회지를 자신의 글로 도배하고, 급기야 후배로부터 서민 칼럼을 고정적으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기에 이른다. 이를 지지대 삼아 <소설 마태우스>도 펴낸다. 그 후 한겨레를 거쳐 경향신문 칼럼니스트로 자리매김. 어디 그뿐이랴. ‘글쓰기가 배우자의 미모를 좌우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만큼 아름다운 아내도 글로써얻는다.

 

책은 저자의 솔직함을 부각시킨다. 1부에서 저자는 스스로를 못났다’, 처녀작을 쓰레기라 말하는 등 폄하에 가까운 자기비하 태도를 보인다. 하여 글을 쓰게 된 동기, 무작정 쓰고 보는 추진력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반면, 2부는 분량 채우기의 느낌이 강하다. 구성의 문제로 보이는데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소제목에서 볼 수 있듯 그가 터득한 글쓰기 노하우를 담으려고 했다. 그 방법은 이렇다. 쓰는 건 쉽게, 경험은 솔직하게, 시작은 인용으로, 구성은 기승전결로. 인용과 예시가 주를 이뤄 이해는 쉽지만 흐름이 산만하다. 저자가 언급한 글쓰기 방법 또한 여느 글쓰기 책과 콘텐츠 면에서 차별성이 떨어진다.

 

두 가지 관점에서 구성을 바꿔보면 어떨까. 그의 열등감을 분석해 전반부로, 극복기를 후반부에 담는다면? 모든 사람은 일종의 장애를 지니고 산다. 학벌, 가정사, 경제력 등 자신만의 콤플렉스로 위축되는 내적 장애 말이다. 저자 특유의 솔직함으로 열등감의 근원을 깊이 파고들었다면, 독자들도 본인의 장애열등의식을 반추하고, 더 나아가 장애를 극복하는 동력을 얻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에만 집중했어도 괜찮은 구성이 될 수 있었으리라. 독자들은 칼럼이 어떤 생태계 안에서 생성되는지 알지 못한다. 신문 고유의 색체를 담은 가이드라인 안에서 칼럼니스트들이 글을 쓰는지, 투고로 들어온 글 안에서 언론사가 글을 선별하는지. 여러 신문사를 종횡무진하며 글을 써온 저자인 만큼 칼럼쓰기에 초점을 맞춘 글도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그가 적은 칼럼, 에세이 등 장르별 성격, 각 글을 대하는 태도와 하나의 글을 낳기까지의 분투를 녹인다면 더 많은 독자를 끌어당길 수 있을 터.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생충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글 세상에서 명성을 떨치게 된 역사를 알게 된 건 큰 소득이다. 글쓰기가 곧 PR인 시대. 140자로 영화 대사를 남기든, 원고지 10매로 블로그에 글을 쓰든, 생각을 누군가에게 알리는글쓰기가 주목받는 세상이다. 이런 시대에 글과 좀 먼 분야에서 공부하거나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글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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