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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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하루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1Q84> 로 알려진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능한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2003년 한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은 그의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자전적 소설을 묻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이러했다. “나는 회고록이나 자전적 소설을 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소설을 써왔다고 하는 것과 같은 실제적 기록은 어느 정도 남기고 싶습니다. 어떤 경위로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어떤 상태로 살아왔는가와 같은 것은 쓰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출간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총 9장으로 구성된 에세이다. 각 장은 달리는 장소 미국, 일본, 하와이 를 기준으로 나뉘는데, 저자는 각 지역의 날씨와 연관 지어 달리기에 임하는 마음가짐, 달리는 목적, 효과 등을 이야기한다. 흡사 마라토너의 대회 준비 일지 같다고 느낄 수 있지만 하루키가 달리는 행위의 시작과 끝, 시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은 사람하루키를 알게 하는 정수가 될 수도 있다.

 

작가는 이 책을 두고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나의 회고록으로 읽어주었으면 한다(서문)’고 말한다. 러너와 소설가의 삶을 엮어 적었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달리기를 체력적 연소라고 표현한다. 또 저자는 글쓰기를 육체를 혹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가의 일이란 책상에 앉아 연필을 끼적이는데 불과할 것 이라는 일반의 편견과 달리, ‘이야기라고 하는 의상을 몸에 감싼 채, 온몸으로 사고하고 작가의 육체능력을 남김없이 쓰는 걸 요구(p.126~127)’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고통과 닮은 달리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좋은 습관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지 않으면 여러 해 반복했어도 금방 몸에서 멀어지기 마련인데, 하루키는 말한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령 불공평한 장소에 있어도 그곳에 있는 종류의 공정함을 희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 (p.72)” 매일 일정 시간 쓰지 않으면 한 줄 쓰기도 버겁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달려야 몸이 달리기를 기억한다는 그. 얄궂은 삶의 단면을 달리기를 통해 하루키는 알게 된 듯하다.

 

작가의 우직함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왜 42.195km 마라톤 종주와 같은 혹독한 달리기에 매달리는지 이렇게 적는다. “나는 가령, 무슨 일이든 뭔가를 시작하면 그 일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정을 못 찾는 성격이다. (중략) 만약 어중간하게 하다가 실패한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이다.(p.57~58)” 가게를 꽤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사업가였고, 손꼽히는 일본 소설가, 그리고 42.195km를 완주한 장거리 러너, 그의 인생에서 보여준 여러 성취는 이런 우직한 노력 때문 아니었을까?

 

책은 저자의 작가로서의 진면목을 알려준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소설을 쓰게 된 경위, 그 과정을 임하는 자세 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종류의 마라톤과 달리는 과정 묘사가 여러 차례 등장하면서, 실제 마라톤과 같은 혹독한 달리기를 경험해보지 못한 독자에게는 다소 공감이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들은 물을 것이다. 하루키에게 달리기가 있다면, 내게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듯 철칙이라고 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누구에게나 어떤 종류의 관찰과 경험에서 얻은 법칙같은 게 있다. 신체를 움직이고 일정 고통 안에서 스스로를 단련하고 배우며 삶의 지혜를 얻게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독자에게 남기는 여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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