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김남우 김동식 소설집 3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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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두 권보다 서사적이다. 그 전 책(<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에서는 인류가 요괴/외계인/악마/혹은 인간끼리 대립하다가 예상을 벗어난 반전 결말로 끝이났다. 이번에는 등장 인물들의 가치관에 따른 번뇌와 깨달음 등의 생각요소가 더 담겨있다. 예를들면, 선의의 거짓말(<죽음을 앞둔 노인의 친자확인>), 성공과 출산의 갈림길(<가족과 꿈의 경계에서),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도와주는 전화통화>), 타인에게 대물림되는 욕망의 꼬리(<퀘스트 클럽>) 등이다. 특히, <친절한 아가씨의 운수좋은 날>에서는 '왜 선을 행해야 하는가'라는 도덕적 질문에 답을 주는 듯한 스토리로 감동을 주기까지 한다.

젊은 세대들의 난독증이 심하다고 한다.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읽기를 즐기다 보니 서문과 제목만 훑어보고 '다 읽었다'고 생각하는 '휘발성 읽기' 때문이란다. 하여 어떤 글을 읽었는지 물어보면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김동식 작가의 단편집들이 최근 이슈다. 반전 결말, 작가의 직업, 글을 쓴 방법 때문일텐데 그보다 나는 그의 글이 '요즘 세대를 붙잡아두는 글'의 좋은 예시가 된다고 본다. 고루하지 않고, 재미있고, 쉽고 빠르게 읽혀 '느낌만 채집'하는 '읽었으나 읽지 않는' 세대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를 잘 읽고 싶은데 기존 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김동식 시리즈로 '읽기'를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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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겠습니다 (민트) - 책을 읽는 1년 53주의 방법들 + 위클리플래너 매일 읽겠습니다
황보름 지음 / 어떤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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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나는 회사에서 책을 한 권 받았다. 내가 쓴, 심지어 제목에 내 이름이 들어간, 나의 책이었다. 회사에서 진행한 글쓰기 교육에 참여하게 됐고, 또 타이밍이 잘 맞아 교육 과정의 성과물로 단독 저서를 내는 것으로 결정나 '나만의 책'을 갖게 된 것이다. 이름하여 <OOO의 독서일기>. 어떤 주제로 쓸 것인지 논의하면서 나는 대뜸 읽은 책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다. 마침 블로그에 끄적인 리뷰나 서평이 몇 편 있었고 틈 날때 읽어둔 좋은 책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내가 쓴 17편의 글을 모아 책 한권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오해하지 말자. 서점에서는 팔지 않는, 나에게만 총 200부가 주어진 [비매품] 책이다.)  

원고를 쓰기 전에 <매일 읽겠습니다>를 읽었다면 어땠을까. 황보름 저자의 책을 읽으며 많이 후회했다. 이렇게 쓸걸! 구성을 이렇게 잡을걸! 이런 내용은 나도 생각했었는데! 저자가 읽은 책이 내가 읽은 것들과 제법 겹쳐(심지어 내 원고에 들어간 책도 있다) 내 생각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좋은 롤모델을 뒤늦게 발견했다는 생각이 계속 나를 붙잡았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감히 책에 관한 글을 쓰겠다고 말하지 못했으려나? 그럴 수도 있겠다. 너무 솔직하고 담백하고 재미있고 심지어 유익한 에세이라서 따라하기 힘들어 보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게 있다. 저자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회사를 그만뒀고, 가능하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이공계를 졸업하고 휴대폰과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글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글밥을 조금 먹다가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읽고 쓰는 일을 묵직하게 밀고 나가 현재에 다다랐고, 나는 읽고 쓰다 생활고를 못 이겨 지금의 회사(공학적 지식을 요하는, 글쓰기와 상관없는)에 들어왔다는 데 있다. 이렇게 결론내렸다. 내가 졌다. 나는 감히 당신처럼 글 못 썼을 거요!

'너는 책에 무얼 바라니?'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게 이어진다. 책을 읽으며 단단해지길 바란다. 덜 흔들리고, 더 의젓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오만하지도, 순진하지도 않게 되길 바란다. 감정에 솔직해지길,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길 바란다. 거창하게는 지혜를 얻길 바라고 일상생활에서는 현명해지길 바란다.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을 알게 되길 바란다. (p.121)

저자는 '책'에 대한 생각을 자유자재로 풀어놓는다. 어떤 책을 읽었고, 그 책이 왜 좋았고 혹은 왜 불편했고, 어떤 식으로 책을 대하는지. 책이라는 우주를 떠돌며 살피고 분석하고 탐험하고 만끽한 감각과 서사가 글에 온전히 녹아있다. 총 53개의 주제로 설명하고 있는데 - 베스트셀러 읽기, 고전읽기, 독서모임, 문장 수집의 기쁨 등 - 이는 일년이 53주기 때문이란다. (해당 책은 위클리플래너가 붙어있다)플래너 구성과 엮기 위한 출판사의 전략일 수도 있는데, 나는 이 마저도 '매일 책을 읽고 느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즉 피를 빨아먹어야 살 수 있는 흡혈귀처럼, 매일 책을 읽어야 숨쉴 수 있는 진정한 '책 덕후'의 진면목인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정말 졌다 졌어.

부럽고 아쉽고 얄궂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참으로 읽는 맛이 난다. 하나의 주제와 연결된 각 꼭지의 명언이 그렇고, 저자의 개인사를 적당히 섞어가며 책 내용과 엮는 묘미가 제법이라 일기장을 훔쳐보는 설레임마저 느껴진다. 나는 책을 읽으며 독서습관 두 가지를 바꿨다. 새 책을 들일 때 헌 책을 버리기(혹은 선물하기), 책에 밑줄 그으면서 보기가 그것이다. 첫번째는 제한된 책장에 읽은 모든 책을 꽂을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저 어쩌다 보니 갖게된 독서습관인데 이번에 황보름 저자의 책을 읽으며 둘 다 지키지 않았다. 날짜가 적혀 있지 않아 언제고 사용할 수 있는 다이어리라 두고두고 쓸 요량이고, 도대체 어떻게 혹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펴볼 '독서 바이블'과 같은 책으로 여겨졌기 떄문이다. 나는 요즘 <매일 읽겠습니다>를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있다.  특히, 새해맞이 독서계획을 세우고 있는 분들에게. 정갈하고 솔직하고 재미있고 따뜻한 글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책에 대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 힘들 때 책을 찾는 사람,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 지 모르겠는 사람. 두루두루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사람의 솔직한 글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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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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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이혼을 한단다.  몇 달을 별거했고, 몇 번의 싸움과 협의를 거쳐 지금의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자신의 딸 네번째 생일을 마지막으로 집이었던 곳을 나온다고 했다. 몸뚱아리 하나만 달랑. 이 사실을 전하는 엄마는 많이 우신 것 같았다. 오열하진 않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고 말의 간격마다 깊은 한숨이 배어 있었다. 나는 걱정말라는 판에 밖힌 이야기를 하기도, 미친놈 아니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는데, 사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오빠가 결혼하기 전날, 나는 '언니'가 되는 분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보자 고맙다 우리집에 와줘서 감사하다 등 감상이 빼곡히 적힌 글이었고 진심이었다. 그런데 오빠의 '집 나옴'으로 나는 이제 그 언니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살뜰히 챙기지는 않았지만 가끔 어린이 물건이 눈에 띌때면 자동 재생되던 조카도 이제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영원을 약속했던 일이 순식간에 결정되어 통보되는 비정한 시간이 밉고, 이 지경이 불가피했나 싶어 답답하고, 곧 있을 명절이 암담하다.

도피처가 필요했다. 책장에서 분홍색 은유 작가의 책을 빼들었다. 소설은 기분과 달리 내용이 두둥실 떠다닐 것 같고 역사, 과학, 사회도서 류는 눈에만 글자가 밖힐 뿐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패잔병 같은 씁쓸함과 복잡함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아 위로받고 싶었다. 표지의 풍선머리가 형이상학적이란 생각을 하며, 언젠가는 꼭 읽겠다고 사두기만 했던 책이다.

결혼도 이혼도 인연을 쓰는 한 방편일 뿐이다. 플라톤의 말대로 무엇이든 그 자체 단독으로 아름답거나 추하지는 않다.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미이고, 그것을 추하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비열함이다. 이혼도 그런 것 같다. 비열한 이혼도 아름다운 이혼도 있다. 그러니 권장할 일도 배척할 일도 아니다. 삶 전체를 위한 합리적인 골격을 짜는 하나의 과정으로 아픈 선택일 뿐이다. 삶의 어느 국면에서 생을 담은 물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p.24)

첫번째 주제 '여자라는 본분' 첫번째 토막에 나오는 글이다. 정말 책을 잘 골랐구나 싶다. 점쟁이가 내 마음의 혼잡을 알아보고 읊조리는 사주라는 통계처럼, 우연히 맞아떨어진 문단에 눈이 머문다. 위로받고 싶었는데, 위안이 된다. 오빠 이혼 소식을 어제 처음 접한 건 아니다. 엄마를 통해 들어왔고 감히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다 1월 어느 주말, 오빠를 따로 만났다. 말려보라는 부모님의 요청이 있었고 이제 더는 안되겠다 싶었다. 사방의 어수선 속에 오빠는 '모든 사람의 동의를 구해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조용히 말했다. 할말이 없었다. 언니가 오빠를 붙잡으려 한다는 얘기가, 오빠가 왜 그렇게 마음이 멀어졌는지가, 아이를 생각해보라는 뻔한 얘기가 입 속에서 굴러 떨어졌다. 대신 저렇게 될 때까지 왜 몰랐을까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슬펐다. 오빠의 몸뚱이만 나가는 현장을 볼 수 없어 집을 미리 나가있겠다는 언니가, 아빠 나 잘놀다 올께라며 인사했다는 조카 생각에 울컥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오빠는 그저 '아픈 선택'을 한 것 뿐이다. 소상히 말하지 않는 성정상, 엄마와 아빠와 나는 그저 정황을 추정할 뿐인데, 오빠는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그냥 쉬고 싶다고 했다. 오직 걱정되는 건 아이여서, 지금까지 만들거나 이룬 것들은 모두 내어주고, 앞으로 살면서도 평생 양육비를 보내며 그저 일이나 하고 지내겠다고 한다. 아름답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다. 나는 인연의 끝남이 마음에 꽂혀 언니에게 장문의 편지를 몇 번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그만두고 말았다. 은유의 글을 읽으며 오빠와 언니를 번갈아 가며 생각한다. 그들이 삶을 벗어나는 것도 아닌데 자꾸 내가 번잡하다.

책을 단숨에 읽었다. 오빠와 엄마가 번갈아가며 등장했고 텍스트와 오버랩되어 밑줄 긋게 했다. 책을 덮고 고민했다. 곧 있으면 밥할 시간이다. 밥 하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진득하게 쓸가, 지금 뭐라도 적어둘까. 후자를 선택했다. 그것도 읽고-발췌하고-품고-쓰는 단계를 무시하고 읽고 바로 쓰기로.

책은 여자라는 본분, 존재라는 물음, 사랑이라는 의미, 일이라는 가치의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며 물음을 던지고 글을 썼다고 했다.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글쓰는 일로써 겪게되는 여러 결의 감정들에 결험을 버무렸다. 나는 여자이자, 딸이자, 며느리이자, 사회인이다. 치마를 입는 게 남자들의 성기 결합을 촉발시키는 일이라는 치마입지 않는 자들의 농담을 농담인지 아닌지 몰라 헷갈려하고, 우리 부모님은 (내가 물은것도 아닌데)오빠와 내 결혼 준비를 다르게 했음을 어느 날 고백하고 괴로했으며, 신부라는 이유로 결혼 전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내야 했으며, 출산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곧 자리를 뜰지도 모르는 직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작가의 글이 곧 내 생각 같았다. 언젠가 한번쯤 느껴봤던 감정인데 글로 읽고 무릎치는 기분이랄까. 오늘 내 기분을 꼭 닮은 사주풀이를 만난 느낌이다. 하여 반면교사 삼고, 작가의 언어로 내 생각을 해체시켜보았다. 아픈데 골몰하며 빠져들었다.

"불편해도 괜찮았다. 나의 평범하지 않음, 소수성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여러 갈래의 경험은 내가 사회학이나 여성학, 철학을 공부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 (p.115)"라고 말하는 작가는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물음을 끈질기게 붙들라고 말한다.  은유의 글에서 그 경험과 깨달음이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도 하루 분의 울컥을 삼켰습니다."라는 부제가 그저 분노로 끝나지 않음을 이해한다. 낯선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혼란과 갈등을 겪으며 자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성숙으로 이어진다는 걸 수많은 글로써 증명하기 때문이다.  하여 나에게도 빗대본다. 오빠의 이혼이 불편하지만 생각해본다. 불편함. 싸울수록 투명해진다는 제목은 직장에서, 관계에서, 존재에서, 삶에서 만나는 어떤 장벽들과 싸우며, 안온함에 쌓여있지 말고 아프지만 어설프게라도 경험하고 그 감정과 관계해보라고 말하는 것일 테다. 위로를 받고 싶었는데 가르침을 얻었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말고 반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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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김동식 소설집 2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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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갈 때마다 고민한다. '어떤 책을 가져갈까?' 장소와 기간을 고려해야하는 까다롭지만 행복한 고민이다. 지난 주 2박3일 통영 여행에는 김동식 작가의 책을 선택했다. 가볍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거라 믿었다. 역시나. 여행지에서 잠자기 전, 단 두 시간만에 독파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는 세 권의 시리즈 중 두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총 21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번 책은 요괴편인가! 인류와 대비되는 요괴/외계인/악마가 (마지막 편을 제외한)모든 편에 등장한다.

<황금인간>에는 인류를 황금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외계인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에는 사람들을 젊게 만들어주는 요괴가, <스마일맨>에는 웃는 사람 100명을 데려가는 악마가, <개미인가, 베짱이인간>에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악마가 등장한다. 요괴/외계인/악마가 인류를 시험에 들게하는 일종의 '지령'을 내리고, 인류가 이를 수행하는 방식에 따라 벌이나 축복을 받는다는 서사구조다.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인류에게 행해지는 결말이 '반전'이라는 게 묘미라 하겠다. 게임을 텍스트로 바꾸면 이런 식일까? SF영화를 글자로 나타내면 김동식의 글이 될 것 같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흥미로울 것 같고.가볍고 재미있지만 휘발성이 강하다. 여행지의 들뜬 마음과 어울리는 책! 3편 <13일의 김남우>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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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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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회색인간>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오유(오늘의 유머)의 공포게시판에 올라온, 댓글로 소통하며 고친, 10년간 공장에서 일하며 지은 글. 작가의 등장배경이 유독 눈에 띈다. 어떤 글일까? 어떤 내용일까? 무엇보다 오유에 등장하는 간증(?) 댓글들이 궁금증을 일으킨다. 얼마나 대단할까?
     
소설 <회색인간>은 작가 김동식의 글 300편을 묶은 신간소설 세 권 -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 - 중 첫 번째 단편집으로 총 24편을 담고 있다. 각 이야기 속 인물들은 인류와 외계인, 다수와 소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등으로 나뉜다. 인물들은 부귀, 영생, 탈출, 생존을 위한 과정을 겪는데 모든 단편에는 반전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결말을 일종의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로 읽히는 부분이다. 단편 <신의 소원>을 보자. 어느 날 인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신의 메시지가 울린다. 헌데 빛의 기둥이 범죄자, 군인, 장애인 등 특정인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조금 더 ‘완벽’하고 ‘적절’한 소원을 빌기 위해 그 사람들의 ‘흠’을 찾고 결국에는 죽이고 만다. 결국 마지막에는 빛이 – 흠결을 찾아볼 수 없는 – 한 소녀를 비춘다. 사람들은 안심하고 소녀는 소원을 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인간처럼 똑똑해졌으면 좋겠어요!”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사람들은 물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바퀴벌레도 그 물음에 대답해줄 수 있는 세상이, 와버렸다. (P.85)
     
이기적인 인류에게 형벌이 주어지는 반전이다. 작가의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이다.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상, 인류 최후의 지성들이 만든 벽이 있다. 그 벽을 통과해야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한 소년과 소녀는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남아 어렵사리 그 벽에 도달한다. 벽 너머에서 소년과 소녀를 살펴본 지성들은, 식량 부족 등을 이유로 한 명만 벽 안으로 들여보내려 한다. 지성들의 대다수는 마음속으로 소녀를 응원하지만 결과는 소년으로 결정. 소녀가 마지막 남은 초코바를 소년과 나눠먹은 후, 그 쓰레기를 무단 투기해 비도덕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때 선택받은 소년은 품 안에 마지막 남은 통조림을 혼자 먹기위해 숨기고 있었다.
     
책은 빠르게 읽힌다. 호흡이 급하고 전개가 빠르다. 순수하게 문장만 툭툭 던져놓는데 독자의 눈과 감정은 거침없이 쭉쭉 내지른다.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장을 덮기 전까지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한다. 홀힌다고할까.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옥의 티’를 발견했다. <아웃팅>의 ‘공치열이 설마 하는 생각에 다급히 김남우를 돌아보았다. (p.68)’이라는 문장인데 해당 단편에는 김남우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챕터에 있던 문장이 잘못 복붙(복사+붙이기)되어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책을 읽고 두 가지 바람이 생겼다. 김동식이라는 작가를 한 번 보고 싶다. 글에서 드러나는 번뜩임과 추천사에서 느껴지는 순박함이 어떻게 어우러져 있을까. 또 하나는 나머지 두 권의 소설을 읽고 싶다는 거다. 마지막 권을 보고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번뜩임, 이 반전 속에 눈물을 빼는 감동이란 어떤 것일까. 오늘 밤은 나머지 두 권을 주문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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