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1987 - 박종철과 한국 민주화
신성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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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사건 보도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5공 시절의 의문사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민주화는 결국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박종철 사건이 한국의 민주화를 최소한 몇 년은 앞당겼다고 본다.


1987년 1월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으로 불후의 기사를 만들어낸 신성호 기자의 말이다. <특종 1987>의 저자인 그는 1987년 당시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로서, 출입처인 검찰을 돌다가 대검찰청 이홍규 공안 4과장으로부터 "경찰, 큰일 났어."라는 단서를 잡아낸다. 서울대학교 1학년생 박종철 군이 고문으로 사망한 다음날이었다.

1980년대는 그냥 추억팔이로만 넘기기에는 너무도 아프고 슬픈 역사다. 하지만 그런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1987년 마침내 민주화의 꽃은 피어났다. 나는 억압과 슬픔을 딛고 민주화를 이뤄낸 그 뜨거웠던 1987년을 이야기하려 한다. 6월 항쟁 이야기는 이미 여러 책과 논문 등에서 다뤄졌다. 나는 당시 중앙일보 사회부의 법조 출입 기자로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특종으로 세상에 처음 알렸다. 이 책을 통해 박종철 사건과 6월 항쟁 과정에서 언론과 기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민주화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를 당시 취재기자의 시각으로 소개하려 한다. (p.9)

책은 신성호 기자의 수첩에 기반해 1987년을 회고한다. 특종의 단서를 그 날은 분 단위로 바뀐 일과를 기록했고, 1987년의 한 해는 박종철-이한열로 이어지는 민주항쟁의 국직한 사건을 단위로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박종철 사건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언론사적 의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전의 한국 언론은 전두환 정권의 통제 속에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보도지침에 따른 단순 보도가 주를 이뤘지만 박종철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도 탐사보도의 형태가 나타났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둘째, 국가 권력의 인권 유린 행위에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직접 맞섰다. 과거 국가의 탄압에 '나만 아니면 돼'로 방관했던 국민들이 공권력의 불합리성에 분노하며 인권 문제를 자신의 일로 인식하게 됐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박종철 사건이 민주화를 위한 시민운동으로 확산됐다는 점이다. 이전의 민주화 운동이 학생 중심이었다면 이후는 시민들을 모두 끌어들이는 효과를 냈다고 한다. 이런 세 가지 의의를 통해 대한민국은 6.10 항쟁을 거쳐 6.29 선언까지 도달한 것일테다.

저자는 박종철 고문사건을 계기로 변화하는 언론의 모습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는 자칫 언론에 대한 변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소극적이었던 취재나 보도가 심층적인 르포 형태를 띄게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박종철 사건과 유사한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 튀니지 재스민 혁명을 예로 든다. 모두 한 국가의 독재 체제/정권을 탈바꿈 시킨 사건들로 국민들의 열망으로 민주화를 이룬 사건들이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 미국의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재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 : 반유대주의 분위기 하에 프랑스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유대인 드레퓌스가 간첩으로 지목당하고 군사법정의 비밀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건 * 튀니지 재스민 혁명 : 만성적인 경기침체를 겪던 튀니지에서 한 청년이 분신자살을 하며 시민들 분노가 극에 달해 시위 및 대통력 퇴진 압박이 거세져 독재정권이 붕괴된 사건

당시를 겪지못한 사람들이 영화 <1987>을 보며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사건의 전말을 깨달았다. 하지만 영화는 모두가 뜨거웠던 한 순간을 집중 조명한다. 사건을 전후한 정치적 맥락과 분위기를 알기에는 스크린이 한없이 부족하다. 이를 포함해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팩트체크'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적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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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리학 카페 -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그곳
모드 르안 지음, 김미정 옮김 / 갤리온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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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해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하고 만다. 절망감에 빠져 술만 마시던 그녀는 어느 날 문득 '그저 성장하고 있는' 아이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한다. <파리의 심리학 카페>는 좌절과 고통을 심리치료로 극복한 후, 자기회복에서 한발짝 나아가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심리상담사로 성장한 '모르 드안'의 글이다.

바스티유의 한 카페, 목요일 저녁 7시가 되면 '아픈'사람들이 모르 드안을 찾아온다. 책에는 저자가 18년동안 카페에서 만난 5만명의 사연에서 걸러낸 심리학적 통찰 28가지가 들어있다. 인생, 일, 결혼, 삶의 자세, 인간관계, 세상, 성장이라는 주제에는 여러 내담자들의 사연이 녹아있다. 파브리스는 4년 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후 자살을 시도했다. 복수심에 불타는 파브리스의 상태를 저자는 '자기애적 분노' 즉,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화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화를 내는 방식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으며 상대방이 아무리 나를 화나게 만들어도 '내가 상대방에게 아무렇게나 화낼 권리는 없다.(p.94)'고 말한다. 그리고 글쓰기 등을 통해 감정과 상황을 객관화하라고 조언한다. 

독자는 책에서 저자의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칭찬'은 상대방에 대한 긍정의 에너지를 심어주는 언어전달 행위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구분한다.
 "칭찬은 판단이자 통제 수단이며, 칭찬을 통해 자신의 기대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p.102)"이라며 라캉의 '인정욕망'을 빌어온다. 인정욕망은 남의 인정을 구하는 욕망으로 사회가 원하는 돈, 성공, 명예, 존경 등을 마치 내가 원래부터 원했던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즉, 칭찬과 인정은 결국 '타인에게 좋아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독자들이 어떤 행위의 근원이 스스로에게 시작된건지 되짚어보게 한다.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인생, 일, 결혼, 삶의 자세, 인간관계, 세상, 성장이라는 주제를 담았다. 각 챕터는 주제와 관련있는 명언에서 시작해, 내담자의 사례를 들고, 사례에서 등장한 감정을 학문적으로 서술한 후, 저자의 생각으로 마무리 짓는 구조다. 누구나 느껴봤지만 정의내린적도 곰곰히 생각해본 적 없기에 그냥 '느끼고' 스쳤을 감정들이 너무나 덤덤하게 적혀있다. 너무나 일반적이지라서 고민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무수한 감정들을 분리하여 쉬운 언어로 풀이해놓았다. 내게는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나는 책을 따라가며 나의 과거 감정들을 조금씩 이해했다. 후배에게 화가난 이유, 대답을 강요하는 메신저 등 불편하고 어려웠던 감정의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다.
작가는 말한다. "세상이 뭐라 하든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닌 당신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p.11)"라고.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나를 안다고 말하기 전에 내 안의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보자. 그게 진정 스스로 만들어가는 본인의 인생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길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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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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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스치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 '인연'은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꼭 연인이나 가족처럼 명시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 '의미'가 있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힘'이 되는 존재라면, 그 사람은 '인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연()'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라고 정의되니까.

그런 면에서 상수와 경애는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의 아들로, 빽이 있다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에, 가족과 연락도 닿지 않고, 끈 떨어진 낙하산 취급받는, 팀장(직무 대리)인 상수가 있다. 회사에서는 무능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버리는 카드 '팀장 상수'지만 집에서는 모든 여성들의 연애상담을 해주는 - 페이스북 페이지(언니는 죄가 없다, '언죄다')를 운영하는 - '언니'다. 경애는 호프집 화재에서 살아남은 한 명, 반도미싱에서 파업농성에 참여했고, 총무팀에서 소액물품을 담당하다가, 팀원이 필요하다는 팀장 직무대리의 요청에, 상수 팀에 발령을 받는 직원이다. 과거 사랑했지만 현재는 유부남이 된 산주에 대해 가끔 언죄다에 메일을 보내곤 한다.

상수와 경애의 인연은 세 지점에서 연결된다. 첫째, 반도미싱. 회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두 사람은 팀장과 팀원으로 만나 베트남 지사에 함께 영업을 하러 가기에 이른다. 없어도 되고, 있으면 불편한 서로의 존재가 타국의 땅에서 '어떤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쌀국수를 말아 먹으며 김부장과 오과장이라는 텃세를 이겨나갈 묘수를 고민하고 서로에게 떨어지는 부당함에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하기에 이른다. 둘째, 언죄다 페이지에 고민을 올리고, 답을 하며, 회사라는 영역에서 보이지 않던 부분을 '사람'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즉,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누군가의 '또 다른 면'을 알게한다. 학생때부터 6년간 연애를 했던 산주가 선배와 결혼한 것에  상처받은 경애가 보낸 편지에 상수는 다음과 같은 답을 한다."언니,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p.176)" 마지막은 E 또는 은총이다. 경애에게는 E이자 상수에게는 은총인  한 인물은, 두 사람에게 상실 그 자체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p.176)


책은 상수와 경애로 투영된 사람의 '마음'을 다룬다. 그 과정에서 가정에서의 폭력, 사회적 지위에 의한 억압, 학력지상주의, 직장이라는 공간에서의 구조조정, 권력구조, 화재사건을 중심으로 한 부당영업, 범죄 등을 등장시킨다. 현재 우리 삶에도 유효한 이런 요소들은 두 주인공이 살아가는 길을 만들고 바꾸게 하며 결국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한다. 김금희 작가는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어느 시간에 경험했던 다양한 요소들이 상수와 경애에게는 '그늘'이었지만 현재와 미래의 '빛'을 알아보는 눈과 그늘을 이겨내는 힘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아닐까.  살아간다는 건 얽히고 풀렸다가 다시 엉키고 마는 일들을 마주하고 버텨내는 힘이다. 어떤 아픔과 고통이 있더라도 현재를 밀고 나아가는, 파워가 뜻하는 힘과는 또 다른 묵직한 어떤 에너지가 사람의 '마음'에는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것의 해답은 좋아서 혹은 싫어서였는데 그 두가지는 사람들에게 무섭도록 이해받을 수 없는 말이라서 상수는 늘 자기가 설명서가 필요한 연마기나 절삭기 같은 기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p.37)


누구나 쓰고 적는 말이지만 형체가 없는 말 '마음'이다. 그래서 이것을 설명하자면 수식어가 장황하게 붙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마음이 아팠다, 기뻤다 정도로 설명하는 건 너무 야속하다. 만져지지 않아 시작과 끝을 모르는 마음은 절삭기마냥 싹뚝 자를 수 없다. 마음에 감정을 더하거나 소멸시키는 무언가가 작용하면, 그 소용돌이에  또 한번 휘청이고 움직이며 나아가는 게 인간이다. 작가는 물이 흐르듯 흐차분하고 편안하게 이어간다. 감정의 여운과 꼬리가 이어지는 순간순간의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인연'과 '살아감'에 탄복하게 된다. 미지수(언니)였던 상수와 피조(물)이었던 자가 상수로써, 경애로써, 한 '사람'으로 서게된다. 이 책의 힘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삶은 명료함을 요구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계속계속 이어진다. 어찌보면 귀찮고 부산스러운 그 마음들이 결국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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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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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집착은 같은 종류일까. 구분은 어느 지점에서 시작하는 걸까.  '사랑'은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그리고 '집착'은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이라고 정의된다.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소년과 소녀가 성인이된 후 서로의 인생에 철저히 개입한다. 오랜시간 상대방을 그리워하다 괴롭히고 결국 파국으로 끌어내린다. 이건 사랑일까 집착일까. 그저 정신병에 불과한걸까.

힌들리와 캐서린의 아버지 '언쇼'는 여행에서 돌아올 때 '히스클리프'라는 아이를 데려온다. 아이는 천대받는다. 가족들에게는 무시를, 하인들에게는 채찍질을 당한다. 책은 언쇼가 히스클리프를 데려온 이유를 - 영화에서는 종교적 이유를 잠깐 언급한다 - 설명하지 않는다. 결국 히스클리프는 정체성이 모호한 존재로 언쇼가문에 얹혀 살게되며, 자연스레 자신을 '사람답게' 대해주는 '캐서린'에게 의지하게 된다. 히스클리프가 가진 광기의 뿌리 여기서 시작한다. 만약 아버지가 히스클리프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혹은 데려와서 그를 정확히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시켰다면 어땠을까. 폭풍의 언덕의 미친 광풍같은 사건들은 벌어지지 않았을테다.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에게 사랑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 여러 지점에서 읽힌다. 어린 시절 폭풍의 언덕을 뛰어다니며, 물새 깃털을 가지고 함께 논다. 뿐만아니라 힌들리가 때리고 죠세프가 채찍질 할 때 캐서린은 언제나 히스클리프의 편에 서준다. 안타깝게도 두 주인공의 어긋남은 찰나의 순간에 결정되고 만다. 에드거에게 청혼을 받고 이를 하녀 넬리에게 고백하는 캐서린. "나는 에드거 린턴과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 저 안에 있는 고약한 인간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하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결혼 같은 것은 생각조차 안 했을걸.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나도 천해지는 거아." 여기까지 대화를 엿듣던 히스클리프는 집을 나가고 만다. 캐서린의 히스클리프에 대한 진심을 담은 마지막 말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p.130)"를 듣지 못한 채로. 바로 여기서 소설의 파국이 시작된다.

린턴에 대한 내 사랑은 숲 속의 잎사귀들 같아. 겨울이 나무의 모습을 바꾸듯 시간이 내 사랑을 변하게 하리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잇어. 하지만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땅속에 파묻힌 변치 않는 바윗돌 같아. 눈에 뵈는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거니까.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그 애는 내 마음속에 항상, 항상 있는 거야. 기쁨을 주려고 있는게 아니야. 내가 나 자신에게 항상 기쁨을 주지는 않잖아. 그 애는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있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진다느니 하는 말은 두 번 다시 하면 안돼.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어. (p132~133)


히스클리프는 장성해 폭풍의 언덕으로 돌아온다. 도박에 빠진 힌들리에게 재산을 빼앗으며 복수를 시작한다. 그리고 린턴과 결혼한 캐서린을 찾아가는 데 에드거의 동생 이사벨라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게 되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또 다른 복수가 야기된다. 이사벨라가 자신에게 빠지도록 해 함께 도망가지만 이사벨라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자 히스클리프를 떠나 그의 아이인 린튼을 낳아 혼자 기르다 죽는다. 반면,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의 도망에 충격을 받아 정신병을 얻어 생을 마감하고 에드거마저 세상을 떠나자, 히스클리프는 캐서린과 에드거의 딸인
캐시 린턴과 자신과 이사벨라 린턴아들인 린턴강제로 결혼시키고 언쇼가문과 린턴가문의 재산을 모두 차지한다. 복수는 성공한걸까. 결과적으로 실패다. 두 집안의 사람들을 모두 정신적/물질적으로 자신의 발 아래 두지만, 그는 캐서린의 망령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캐서린이 곁에 없었기에 애초부터 성공할 수 없는 싸움이었던거다. 그저 폭풍의 언덕으로 돌아와 가졌던 순간들은 악에 받친 시간으로 만들어낸 의미없는 광기의 표현에 불과했다.


여러 종류의 감정들이 울컥이게 하는 책이다.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캐서린이 에드거도 히스클리프도 선택하지 않았다면? 캐서린이 이사벨라의 마음을 눈치채고 히스클리프를 도발하지 않았다면? 첫째로
남녀간의 '진솔함' 이 아쉽다. 캐서린이 히스클리프에게 '내가 사랑하는 건 바로 너다' 혹은 '(이사벨라의 감정을 무시하고)내 옆에 있어달라고' 말했다면 히스클리프는 돌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심이 사랑의 가장 큰 무기라는 만고불변의 법칙은 소설에서도 통용된다. 두번째는 부모와 자식간의 '존중'이다. 히스클리프가 언쇼가문에게 복수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분노와 모멸을 각인시키기'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인데, 귀족가문의 핏줄로 태어났지만 히스클리프의 (의도된)모욕속에서 예의범절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그는 '분노'의 감정만을 가진채 짐승처럼 살아간다. 언행은 물론, 사고방식도 화와 모멸 그 자체다. 헤어턴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감정과 역할 등을 존중받는 상태로 컸다면 그의 말로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마지막은 '감정의 객관화'다. (무리한 요구일수 있지만)히스클리프가 자신의 사랑과 분노 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캐서린의 결혼을 보고 벽에 머리를 찣는 수고도, 복수로만 감정을 갈아먹는 일도 없었을 거다. 이는 폭풍의 언덕과 티티새 농원에만 한정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살면서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쌓일 때가 수도 없이 찾아온다. 히스클리프처럼 대처했다간 사회는 짐승들이 들끓는 정글이 될 것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순식간에 읽어나갔다. <폭풍의 언덕>의 주요 인물은 캐서린도 히스클리프도 아닌, 하녀 '넬리' 아닐까. 록우드라는 사람이 티티새 지나는 농원(린튼가 가문)에 들러 두 집안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린튼가와 언쇼가의 히스토리는 언쇼가의 하녀였던 넬리를 통해 록우드에게 전달된다. 넬리는 소설 속 화자이자, 두 가문에서 가장 정상적인 언행을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섬뜩한 결말에 치달을 때즈음 드는 생각.
 '넬리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모든 인물을 비정상적으로 언급하는 것에 비추어볼 때, 넬리의 성격을 드러내는 연출 방식에 따라 소설은 식스센스 버금가는 반전스릴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역시 브론테의 글 답다. 에밀리 브론테가 <폭풍의 언덕>으로 현세에 읽힌다면 언니 샬롯 브론테는 <제인에어>로 기억되고 있다. 브론테가 아이들은 영국 북부 요크셔의 황량한 고원에서 아일랜드인 목사를 아버지로 두고 언니, 동생과 이야기를 짓고 읽어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목사라는 절제된 직업, 폭풍의 언덕을 닮은 요크셔 지방. 그 안에서 만들어진 '상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미친사랑. 정도를 지키는 종교집안에서 만들어낸 비정상적 광기의 서사는 독자에게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간다.  <폭풍의 언덕> 저자 에밀리 브론테는 폐병으로 3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자신이 만들어낸 캐서린의 죽음을 그대로 따르려는 듯, 의사의 진찰을 거부한 채로 병마를 받아들인다. 삶과 이야기가 연결된 서사가 <폭풍의 언덕> 안팎에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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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써봤니? - 7년을 매일같이 쓰면서 시작된 능동태 라이프
김민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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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초 블로그에 적는 목표 중 빠지지 않는 게 있다. '글쓰기' 언제부터 글쓰기가 러브핸들처럼 내 옆에 붙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천이 쉽지 않는' 영역의 결심 중 하나다. 마치 영어나 운동처럼. 따라서 '1일 1글쓰기', '일주일에 1서평쓰기' 등의 목표를 지나 최근에는 '뭐라도 쓰기'로 결심이 진화했다. 시간과 분량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편하게 '풀어내고' 싶은 나의 꼼수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아무튼 밥먹고 운동하듯 글도 써야 늘고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 해소법이 내게는 '블로그'다. 해우소에 가까운 블로그에는 욕부터 자화자찬의 글까지 다양한 범주의 글들이 실리곤 한다. 이름을 달고 나가는 글이 아니니 부담이 적고, 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아도 되니 꿈틀대는 또 다른 자아들을 마음껏 펼쳐보일 수 있다.

저자 김민식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공대졸업, 외국계 영업, 통역사를 거쳐 MBC PD가 되었다. 이 마저도 '김장겸은 물러나라'로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인생의 반전은 빈틈에서 오는 법. 드라마 연출을 못하는 대신 시간이 생겼다. 이때부터 김민식PD는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육아일기, 영어공부법 등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의 글들을 하나 둘 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마침 <매일 아침 써봤니?>라는 'To be Blogger'의 바이블과 같은 책을 펴 내는 데 이른다. 최근에는 블로그로 입소문이 나 책을 펴내고 강연도 하고 원고청탁도 들어온다고 한다. MBC에서 벌어들이는 월급을 넘어선다고. 매일 아침 6시, 블로그에 무조건 글을 한편씩 올린다는 저자의 요지는 명확하다. "매일 뭐라도 쓰자. 쓰다보면 는다. 너도 할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잠시 기자로 있었다. 단 9개월이었지만 박봉에, 일주일에 하루는 꼬박 (의무적으로)밤을 새야 하는 고된 시간이었다. 대기업의 허영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된 때라 '내가 왜 이고생을?' 자문했고, '청년보수/좌파' 따위로 사람들을 구분짓는 치기어린 때였다. 일주일에 5일은 취재를 했고 동시에 글을 생산해야 했다. 취재가 곧장 기사로 연결되는 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분으로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매일매일 무언가를 써냈다. 대부분 폐기처분되었지만. 그 9개월 전후로 나의 글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어떤 글을 쓰더라도 '매끈하다'고 평을 받는 건 당시의 훈련때문이리라. 하여 저자가 말하는 '뭐라도 쓰자' '쓰다보면 는다'는 말에 나는 공감한다. 뭐라도 쓰다보면 쓸거리가 눈에 보이고 그러다 보면 꽤나 긴 글을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써내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글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어요. 머릿속 생각이나 말 한마디는 나를 붙들지 못하지만, 글로 남긴 약속은 인생을 바꾸는 마법의 주문이 됩니다. 세상일이 잘 안 풀릴 때 나라 탓이나 회사 탓, 상사 탓을 하며 술로 분을 삭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래 봤자 내 몸만 축나요.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저는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늘 무엇을 해야 내일은 이렇게 힘들지 않을까? (P.135)

<매일 아침 써봤니>를 읽으며 잊었던 꿈이 기억났다. 칼럼니스트. 글을 쓰고 신문 칼럼을 공부했다. 그리고 정보통신분야의 칼럼니스트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그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흔적들이 사라졌지만, 다시금 마음에 불을 지펴본다.  매일 글을 쓰자. 그리고 기사와 칼럼을 읽자. 잘 쓴 글을 공부하고 배우자. 매일 하다보면 어느 순간 되어있겠지. 김민식PD처럼. 글자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오늘부터 글을쓰며 주문을 외워본다. 


<발췌>
남미 여행을 떠났어요. 한 달 동안 파타고니아 산을 오르고 이구아수 폭포를 따라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p.5)
: 삶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날까?
 
매일 블로그에 재미난 글을 올리려면, 나의 하루하루가 즐거워야 합니다. 회사가 나에게 일을 주지 않아도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p.7)
 
그냥 혼자 산을 타다 보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지는데요, 이제 블로그에 산행일기를 올립니다. <월간 산>의 프리랜서 기자가 됐다는 기분으로 산을 탑니다. 서울 둘레길을 완주하려고 마음먹었어요. 멋진 풍광이 보이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둡니다. 길마다 하나하나 나름의 평점을 매겨요. (중략) 이제는 혼자 평일에 산타는 백수가 아니라 등산 전문 프리랜서 기자가 된 느낌입니다. (p.8)
: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어떤 목표, 어떤 방향, 어떤 태도.
 
드라마 연출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살았다면 지난 몇 년간 제 삶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겠지요. 매일 아침 글을 한 편씩 쓰면서,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되새겼어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그 순간 가장 쓰고 싶은 글을 그냥 썼습니다. (p.10)
: 해야할 일이 아닌 내 마음이 가장 설레는 일로 시작하는 하루는 정말 멋지다.
 
사람은 성장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습니다. (P.19)
 
자아실현과 표현의 욕구 말이에요. 그걸 채우기 위해 우리는 놀이의 피라미드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위로 올라갈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미디어의 소비자에서 헤비 유저로, 다시 생산자로 오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P.21)
 
팟캐스트 <페리스 쇼>를 운영하는 팀 페리스는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을 만나 성공으로 이끈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대가들의 성공 비법을 모아 펴낸 책이 <타이탄의 도구들>입니다. 여기에는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자기계발 도구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사업가, 예술가, 운동선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는지 살펴볼 좋은 기회입니다. (P.27)
: 나도 항상 이런 주제의 인물탐구를 꿈꾼다. 내가 가슴뛰거나 몰입하는 습관들은 대개, 소위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의 강연을 듣거나 저서를 읽는 등 일대기를 직간접적으로 접할 때다. 하여 누군가를 대면하는 일이 꽤 즐겁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자시절에 이런 기회가 적잖이 있었는데 그 가치를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역시 사람은 지난 후에 알게되는 존재인가.
 
사람들에게 놀이를 권하는 이유는 놀이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든 일이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동기부여입니다. 동기부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P.31)
 
특히 블로그로 노는 사람은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을 타인과 나누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P.36)
 
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고, 돈 때문에 내 시간과 건강을 해치지 않으며, 하면 할수록 머리와 몸이 단련되고 기술이 늘어나는 일, 이것이 바로 생업이다.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이토 히로시 저)> (P.37)
 
<행복의 기원>에 보면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아무리 강도 높은 행복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곧 사라집니다. 로또를 맞아도 행복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아요. 한 번 먹으면 포만감이 사라지지 않아 오래도록 행복한 원시인과 배가 불러도 토끼가 눈에 띄면 금세 식욕이 돋아 달려나가는 원시인 중 행복한 삶을 누린 건 전자겠지요. 하지만 생존의 확률이 더 높은 건 후자랍니다. 렇기에 좋은 기분은 금세 사라지는 쪽으로 진화했어요. 오래도록 행복하려면 강한 자극 한 방을 추구하는 것보다 소소한 즐거움을 자주 맛보는 편이 낫다고 하는군요. (P.43)
 
사람은 명령이 아니라 꿈에 의해 움직인다. (P.72)
 
성장은 오로지 자신의 책임입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방법을 깨우쳐야 하지요. (P.86)
 
주위를 관찰하고 경험을 수집하는 행위에는 돈 한 푼 안듭니다. 이만한 취미도 없어요. 심지어 글쓰기는 취미인 동시에 공부입니다. 무언가를 공부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입니다. 머릿속 생각을 글로 옮기면 정리가 되고 앎이 단단해지거든요. (P.105)
 
무언가를 잘하고 싶을 때, 잘할 수 있는 길은 매일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수다 떨 듯이 글을 씁니다. (P.106)
 
새해 결심의 세가지 조건 : 첫째, 가능한 한 돈을 쓰지 않는 것. 둘째,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것. 셋째, 중도 포기하더라도 자책하지 않는 것입니다. (P.111)
 
독창성의 조건 : 1.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져야 하고,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업할 수 있어야 하고, 3.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이 일반화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될 것. (P.119)
 
한 번 반짝 빛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불을 꺼트리지 않고 내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창작자로서 직업을 만드는 길이겠지요.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블로그를 쓸 때도, 반짝이는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끈기입니다. 나라는 사람의 색깔은 한 편의 글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올린 글들을 통해 나의 생각이 드러나고 내 삶의 문양이 더욱 뚜렷해지기를 희망합니다. (P.121)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자신의 루틴을 만드는 겁니다. (P.128)
 
글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어요. 머릿속 생각이나 말 한마디는 나를 붙들지 못하지만, 글로 남긴 약속은 인생을 바꾸는 마법의 주문이 됩니다. 세상일이 잘 안 풀릴 때 나라 탓이나 회사 탓, 상사 탓을 하며 술로 분을 삭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래 봤자 내 몸만 축나요.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저는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늘 무엇을 해야 내일은 이렇게 힘들지 않을까? (P.135)
 
알려진 이름만으로 영향력을 독점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어요. 콘텐츠를 가진 개인이 네트워크만 가진 미디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어요. (P.141)
 
매일 블로그에 새 글을 올리면서도 같은 고민을 합니다. ‘이게 과연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글일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글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은 없습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끈질기게 매일 올려야 날마다 찾아오는 사람이 늘고, 보는 사람이 늘어야 신이 나서 글도 쓰고, 그래야 결국 글도 는다고 믿거든요. (P.143)
 
꾸준히 즐겁게 하려면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는 첫 번째 비결은 무언가를 절절히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P.166)
 
나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쓸 때도 다섯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내가 맞닥뜨린 위기는 무엇이고, 그에 대응하는 나의 태도는 무엇인가? 블로그를 통해 드러나는 나의 캐릭터는 과연 매력적인가? 나의 꿈을 막는 장애 요소는 무엇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기울이는 노력은 무엇인가? 나의 포스팅에는 나만의 시각이 있는가? 매일 업데이트되는 나의 블로그는 현재 진행형인가? (P.184)
 
먼저 제작사의 예산을 따내야 하고, 얼굴이 알려진 유명 배우도 잡아야 합니다. (P.189)
: 정부 기관의 예산따기가 이 시점에 떠올랐다. 추경, 추경, 추경, 쪽지예산, 내년도 예산확보. .
 
블로그 글쓰기가 쉬워지는 세 가지 요령이 있어요. 이들 하나하나를 모아보세요. 어떤 일에 대한 과거의 경험이 하나, 그 일에 대해 검색이나 독서로 알아낸 정보가 하나, 그 일이 내게 던져준 주제가 하나입니다. (P.192)
 
책 읽기와 글쓰기, 사적인 욕망과 공적인 의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성장하는 즐거움을 맛보시길 희망합니다. (P.199)
 
그래서 결심했죠. 남들이 나를 괴롭힐 수는 있어도 적어도 내가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말자. (P.223)
 
안 보이던 꽃이 보이더라.”
블로그도 그래요, 하루하루의 삶을 기록하다 보면 주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내 삶의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여러분께도 감히 권해드립니다. 블로그로 삶의 순간순간을 기록하시길.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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