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신이 찾아오는 집, 가난신이 숨어드는 집 - 다시는 불행해지지 않는 정리의 심리학
이토 유지 지음, 홍미화 옮김 / 윌스타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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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집에 대해 ‘물건이 많아 답답하다’고 말하곤한다. 이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어 내심 서운했는데, 돌이켜보면 나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독서는 항상 소파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상이 있었지만 물건이 잔뜩 쌓여있어 앉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책에 등장하는 유키네 집보다 조금 덜 어지럽지 않았을까.

책 <행운신이 찾아오는 집 가난신이 숨어드는 신>은 ‘다시는 불행해지지 않는 정리의 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의 저자 이토유지는 공간심리상담가로 공간, 특히 집과 심리를 관계를 바탕으로 진행한 상담 사례를 엮어 이 책을 냈다고 했다. 책에는 주인공 유키가 등장한다. 빚도 많고, 되는 일이 없고, 일은 그만두고 싶다. 외부 세미나에 다니며 돈 모으는 법을 연구하지만 현실은 녹록치않다. 게다가 무능한 남편과는 이혼하고 싶다는 마음 뿐. 어느 날 집에서 행운신과 가난신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행운신과 가난신은 일본의 신을 본땄다고 한다. ‘자시키와라시라’는 신은 다다미나 창고에 살며, 모습을 본 사람에게는 행운을 가져오고 풍요를 불러온다는 전설이 있는‘행운신’이다. 또 ‘빈보가미’는 벽장이나 지붕 위에 몰래 얹혀살며 그 집안을 궁핍하게 만드는 신이라고 전해지는데 바로 ‘가난신’을 말한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물건이 차고 넘치는 집’을 좋아하는 가난신과 유키가 만난다. 2장에서는 가난신이 ‘불행해지는 사고방식’을 유키에게 알려주기 시작하고, 3장에서는 가난신에게 불행한 사람의 사고방식을 배운 유키가 본능적으로 이를 거꾸로 실천하겠다 마음먹는다. 4장, 가난신의 말을 반대로 하자 점점 행운신의 마음에 드는 집으로 바뀐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된 유키, 5장에 가서는 가난신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행복’을 얻게 된다. 그리고 집을 소중히 하게 된다.

일본의 작가인 곤도마리에도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에서 '정리'가 곧 '행복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정리라는 행위는 마음을 바라보는 자세라고 곤도마리는 강조한다. 이토 유지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가난신은 유키에게 “인간은 마음과 현실의 상태에 모순이 없을 때 행복감을 맛보게 된다.(p.57)”라고 말한다. 즉 느끼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또 저자는 "내면을 숨기고 살면서 자신의 솔직한 욕구를 채울 수 없게 되면, 그것의 반작용으로 타인과 외부에 무언가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 결과 상대에게서 에너지를 빼앗는 나를 만들어가는 것 (p.145)”이라고 덧붙인다. 물리적으로 집을 정리하며 구석구석 소중한 물건과 감정으로 집을 알아가듯, 마음의 곳곳을 살펴보며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솔직하게 표현하라는 이야기로 읽힌다. 정리와 삶, 자신의 내면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저자의 생각이 참 인상적이다.

설부터 시작해 집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유키처럼 나도 집을 정리하면서 삶이 풍성해지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 증거로 독서량과 글쓰기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책상 위치를 옮기고 깨끗이 정리한 후부터는 나의 독서스팟은 서재방 내 책상이 되었다. 독서대에 책을 놓고 편안한 자세로 차 한잔을 곁들이며 책을 읽는 시간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그렇게 2월에만 읽은 책이 6권이다. 책은 동화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정리와 행복에 대한 철학을 쉽게 전달해준다. 모두가 부담없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특히,집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현재가 혼란스러운 사람에게는 약이 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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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거니즘 만화 - 어느 비건의 채식 & 동물권 이야기
보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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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다이어트를 계획합니다. 자연스레 건강식을 알아봤고 그 갈래로 ‘자연식물식’과 ‘채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가능한 채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간헐적 채식주의자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회식 때는 간혹 고기나 회를 먹기도 하거든요. 채식과 비건을 지향하면서 알게 된 점은 ‘채식도 참 맛있다’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작가 보선의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채식주의자는 말 그대로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그 말 안에는 식생활을 넘어 전반적인 생활양식과 가치관, 신념이 담겨 있어요. (p.19)

책은 ‘보선’의 ‘비거니즘’을 ‘만화’로 표현했습니다. 작가가 비거니즘을 알게되고 실천하며 경험한 일들, 동물해방, 채식의 영양과 환경 등 책은 ‘비거니즘’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다채롭게 풀어냅니다. 책은 비건의 정의와 단계로 시작해요. 보통 비건은 '맛없는 식물을 먹는' 정도로 알고 있지만, 비건에도 여러 단계 - (대표적으로)비건, 락토, 오보락토, 페스코, 폴로, 플렉시테리언, 프루테리언 - 가 있습니다. 이 분류에 따르면, 채식을 추구하지만 회식 때마다 고기나 회를 먹는 저의 삶은 플렉시테리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비거니즘이란 종 차별을 넘어 모든 동물의 삶을 존중하고, 모든 동물의 착취에 반대하는 삶의 방식이자 철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p.32)

책은 비거니즘, 특히, 생명을 대하는 마음을 설명합니다. 저자는 비거니즘을 단순히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보다 “나를 포함한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고 고통을 줄이는 데 있다(p.35)”고 설명합니다. 사람 생김새와 삶의 모습이 다양하듯, 인간을 포함한 존재를 대하는 태도도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저자는 그 중의 하나가 곧 채식이고, 비거니즘이라고 말합니다. 즉, 삶의 방향 중 하나라는 설명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모습을 그 자체로 인정하듯, 삶에 대한 태도도 그 사람 고유의 것이며 존중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채식을 공부하면 꼭 만나는 개념이 동물권입니다. 동물권이란 사람이 아닌 동물 역시 생명권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 당하지 않는 등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견해입니다. 동물권이 비거니즘과 연결되는 이유는, 비거니즘이 동물을 ’음식‘으로 보는 태도를 반대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책은 <음식 이전의 삶> 시리즈로 송아지, 닭, 돼지 등의 동물이 음식으로 다뤄지고 소비되는 과정을 묵직하게 설명합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소’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저도 작가와 마찬가지로 우유는 젖소가 1년 365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것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작가 보선은 ‘음식 이전의 삶, 젖소’편에서 이걸 심도있게 다룹니다. 그 일부를 소개합니다.

사람이 아이를 품게되면 젖이 나오듯, 소가 송아지를 품어야만 우유(젖)가 나옵니다. 임신한 어미소는 우유산출량을 높이기 위해 조명, 사료, 온도 등이 통제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305일간 매일 40kg의 우유를 짜냅니다. 이게 인간이 먹는 우유가 되는 거예요. 소는 보통 이 과정을 평균 3년 동안 3회 반복하고, 착유량이 줄어들게 되면 도축장에 끌려가 가공육이 된다고 해요. 그럼 송아지는 어떨까요? 송아지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3일 정도만 초유를 먹고 엄마소랑 이별하게 된데요. 이때 송아지는 우유가 아닌 우유 대체물을 먹고 자라게 되는 겁니다.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더 보탭니다. “소는 어미와 새끼의 유대감이 큰 동물이라 새끼를 빼앗긴 어미 소는 스트레스가 심해 며칠 동안 울기도 한다(p.102)”라고요. 이제 막 세상밖으로 나온 아가를 어미와 강제 격리시키는 것과 동일한 상황, 어떻게 보시나요?

소의 사례를 길게 말했는데요, 책에는 이보다 더 다양한 동물의 상황이 담겨 있습니다. 만화로 표현되어 이해가 쉽고 그만큼 잔혹함이 더 와닿기도 합니다. 또 작가는 동물복지 농장도 소개합니다. 동물복지 농장이란, 동물의 서식 환경을 조금 더 동물 편의데로 만들어 놓은 농장인데요, 안타깝게도 이것도 동물소비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대신 동물들이 조금 더 나은 상황에서 살 수 있도록 하고, 동물의 권리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공장식축산에서 한 발자국 나아간 개념인거죠. 일반인들이 동물복지 농장을 확인하는 방법은 동물복지’ 마크와 ‘유기축산물’ 마크에 있습니다. 두 마크는 본연의 습성대로 존중받으며 사는 동물들이 낳은 제품에만 붙일 수 있거든요. 계란을 살 때는 각 알에 붙어있는 시리얼번호의 끝자리가 1 또는 2인지 보면 되요. 1이 완전 자연상태라면, 2는 동물복지 농장에서 자란 닭의 알이랍니다.

동물 해방이란 동물 복지와 다른 개념입니다. 동물 복지가 동물을 사람의 소유 안에 두고 동물의 안위를 챙기는 것이라면, 동물 해방은 인간이 동물 위에 군림하는 종차별주의가 해제된 상태, 즉 동물이 그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상태를 말하죠. (p.372)

책은 이외에도 비건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공격당하는 포인트 ‘식물은 안불쌍해?’도 다룹니다. 작가는 이 지점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조곤조곤 설명하는데요, 식물에게 뇌와 신경, 통각세포가 없다는 설명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식물은 빛이나 물 등의 자극에 반응할 뿐, 누군가 삼키고 씹는다고 해서 아픔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해요. 또 사슴이나 새들도 식물을 먹고 번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식물은 오히려 동물들이 번식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비건이라기 보다 비건의 삶의 지향합니다. 고기도 좋아하고 채소도 좋아해요. 하지만 하루 한 끼는 꼭 신선한 채소와 과일로 채웁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시작했고, 지금도 그 방향이 제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비건을 편협한 여성주의라며 색안경을 쓰고 보거나, 극단적인 사고라고 비난하는 분들께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삶이든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처럼, 비건을 추구하는 삶도, 동물의 생명도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성차별이, 대상화가, 누군가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고에서 시작되는 개념이듯, 동물소비도 ‘사람이 동물보다 우위’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생명에 우열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 지구에 산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맙시다. 저 또한 오늘 밤 이 영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제가 한 때 빠져있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2016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한 말이예요. 그는 비건을 추구하며 고기를 쓰지 않는 식품회사에 투자하고, 비건을 추구하는 광고에만 나가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비거니즘은 소소하지만 거대합니다. 그만큼 <나의 비거니즘 만화>도 편안하고 묵직합니다. 불완전하지만 동물을 생각하고, 저와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며, 저는 오늘도 비거니즘을 지향합니다. 저녁으로 버섯볶음 반찬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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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날 - 압도적인 힘으로 세계 경제 패권을 거머쥘 차이나 테크 타이탄이 몰려온다
레베카 A. 패닌 지음, 손용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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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직구를 제법 활용하는 편이다. 특징은 명확하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배송이 늦고, 화면과는 전혀 다른 상품이 오기도 한다. 물건을 다시 보내 제대로 받는 건 애초에 시도조차 않는다. 이런 상황을 주변에서 지켜보면 누군가 "과연 중국 답다"고 꼭 한 마디 한다. 저비용 생산국, 서구를 따라잡아 복제하기 바쁘다는 이미지를 가진 중국, 여전할까? 책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날>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기업 혁신 전문가이자, 미국 포브스지의 칼럼니스트인 레베카 A. 패닌은 중국에 집중한다. 전작 <실리콘 드래건>, <스타트업 아시아>에서도 볼 수 있듯 저자는 중국을 ‘테크 중심의 기회의 나라’이자 ‘세계를 압도할 강대국’으로 바라본다. 그 근거로 중국의 기업들을 분석해 제시한다. 특히, ‘BAT’이라 불리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의 주요 기업의 성공 사례를 이야기한다. 뉴스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수면 아래의 미묘한 사항들을 설명하며 그들이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또한 샤오미, 바이트댄스, 디디추싱, 메이투안 등을 통해 그 대단함이 계속 유지되고 확장될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이야기 한다.



중국이 테크 영역에서 ‘기회의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좋은 환경이다. 기존 산업이 의미있게 존재하지 않기에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려 끊임없이 시도한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기업과 긴밀하게 협력한다. 자국기업의 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규제도 서슴지 않는다.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무역분쟁을 일으키며 그 의지를 명확하게 내보인다. 또, 전 세계 투자금들은 중국을 주목하고 있는 것도 중국 테크기업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중국의 기업들은 기술 독립에 대한 의지로 화답하며 중국의 기술 장악력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혁신의 관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는 중국 기업가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경솔하다." (p.5)


저자는 서두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꼭 들어라’며 한국을 저격하며 시작한다. 짝퉁국가라는 색안경을 쓰고 중국을 바라볼 게 아니라 거대 자본력과 인구, 저렴한 인건비, 여기에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쇼핑 등 IT를 기반으로 한 강국으로 인식하라는 경고로 읽힌다. 중국 기업들은 이제 내수시장을 장악하고 전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날>은 중국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책이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발원국이라는 현 상황이 중국 성장에 악재로 작용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의 테크 기업들은 보란 듯이 극도의 집요함과 불굴의 의지로, 기술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공격적으로 밀고 들어올 것이다. 우리나라는 과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모조품과 박쥐고기의 나라로 손가락질 할 게 아니다. 레베카의 지적처럼, 우리만의 경쟁력으로 IT강국 대한민국을 지키고 키워야 할 방법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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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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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의 여성, 로자 자우어가 있다. 전장에 나간 남편 그레고어는 연락이 두절되어 생사를 알 수 없다. 남편의 고향에서 그의 사진을 보며, 그의 살냄새를 추억하며, 시부모님과 살고 있다. 어느 날, SS친위대가 그녀를 데리고 간다. 이유는 단 하나, 순수 아리아 혈통이기 때문. 피할 방법은 없다. 그렇게 가게 된 볼프스샨체에는 로자를 포함해 여성 10명 있었다. 식당에 둘러앉는다. 음식이 나온다. 맛을 본다. 로자는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가 되어, 히틀러 먼저 시식을 한다. 소화가 되고 문제가 없는지 확실해진 후에야 자리를 뜰 수 있다. 로자는 목숨을 걸고, 독을 거르고, 돈을 받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일종의 기미상궁이라고 할까.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누군가 “총통은 그뿐 아니라 가축을 도축하는 것이 너무 잔인한 행위라 고기를 먹을 수 없데.(p.83)”라고 말한다. 여기서 ‘총통’은 히틀러를 말한다. 무자비한 살육의 대명사처럼 느껴지는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나 보다. 채식과 총통이라니, 불협화음 같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어도 죽고,

전쟁이 끝나면 추종자란 명목으로 죽는다.

히틀러에 반대하면 그 역시 죽어야 한다.


책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는 실제로 히틀러의 음식을 시식했던 인물 중 유일한 생존자인 마고 뵐크에 관한 기사가 계기가 된 소설이다. 마고 뵐크 여사는 아흔여섯이 되어서야 시식가로서의 과거를 고백했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왜 70년 가까이 함구해왔떤 걸까. 비밀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을까. 그 물음에 답하는 심정으로 이탈리아의 저자 로셀라 포스토리노가 로자 자우어를 내보낸 게 아니었을까.


삶을 살아내는 로자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초반 그녀는 10명의 ‘시식가’ 그룹에 온전히 속하기 위해 애쓴다. 마치 여고생 같다. 우유를 훔치기도 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기도 한다. 두려워했던 ‘음식을 먼저 먹는 일’에는 점점 적응해 간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일종의 특혜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일 역시 다른 일과 별다를 바 없는 일개 직업일 뿐(p.107)”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히틀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자책하는 순간도 온다. “내가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이유는 그래도 싸기 때문이다. 내가 그럴 만한 인간이기 때문(p.120)”라고 한다. 하지만 수년이 흐른 후 로자는 모든 과정들이 잘 기억나지 않음을 고백한다. 잊고 싶은 기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일테다.


손바닥으로 승자의 육체를 갖기 못한 모든 이들의 머리를 짓눌러버리는 상상을 하라.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인종은 영혼의 외관이다. 쭉 뻗은 팔에 영혼을 담아 총통에게 바쳐라. 그분은 너희들의 영혼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영혼의 무게만큼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 (p.143)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히틀러가 승리를 갈망할수록 사람들은 목숨을 잃어간다. 총통의 사상을 비난할 수도, 공감이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하다니. 채식을 하는 히틀러처럼, 로자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모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로자는 숨구멍을 찾아낸다. 사랑이라는 숨구멍.


목숨들이 부서져가는 와중에도 ‘사랑’은 작동한다. 그레고어를 그리워하던 로자는 친위대 수장 ‘치글러’를 사랑하게 된다. 치글러는 친위대의 수장으로 총통의 측근이지만 동시에 그저 나라에 봉사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사명감이나 애국심은 보이지 않는다. 당시의 사상에 공감하는지도 알 수 없다. 오히려 유대인에게 반감이 없지만 지시에 따라 사살을 자행하는 걸 보면 오히려 ‘무감’한 듯도 하다. 이 치글러가 어느 날 밤부터 로자를 찾아오고, 로자는 시부모님 댁의 헛간에서 그를 받아들인다. 로자는 스스로를 ‘창녀’로 표현한다. 히틀러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살기 위해 그의 음식을 시식하는 것과 친위대의 치글러를 사랑하는 것. 모순된 세상에서 스스로가 벌인 배반에 대한 분노로 읽히는 대목이다.

소설은 전쟁의 파괴적 영향을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었던 것 같다. 로자가 베를린으로 돌아가고 그레고어를 만나는 장면은 그 영향을 버텨냈다는 증명이면서 동시에 ‘배반’했던 역사를 안고 살아야하는 무게로 다가오기도 한다. 무섭다는 정도로 알고 있던 전쟁이,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독일인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새롭게 이해해 볼 수 있게하는 소설이다. 생과 사, 전쟁과 사랑, 모순적인 가치들이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상처럼 다가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총통과 채식처럼 말이다. 로셀라 포스타리노는 로자라는 여성의 평범한 삶을 묘사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읽는 내내 격앙될 것이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생존에 대한 소설이다. 그리고 암흑기를 살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덤덤한 문체에서 느껴지는 어둠이 너무 무섭고 절절해 누구든 격앙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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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법, 변호사가 알려드립니다 동물법, 변호사가 알려드립니다 1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지음 / 리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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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TV 프로에서 ‘강아지 공장’을 다룬 적이 있다. 오물이 가득한 철창안에는 모견들이 가득했다. 공장주인은 발정유도제를 먹이고 수컷의 정액을 빼 암컷 자궁에 주입시키는 방식으로 수정을 시켰고, 그렇게 한 마리의 개가 1년에 3번 정도 출산을 한다고 했다. 제왕절개를 너무 많이해 몸이 좋지 않은 모견들은 식용으로 팔려나갔다. 당시 이 사건은 전파를 탄 후, 크게 이슈가 되었고 강아지들 구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산책을 하다보면 개나 고양이와 함께하는 이웃을 쉽게 볼 수 있다. 여행갈 때 반려동물을 꼭 챙기는 지인들도 꽤 있다.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은 늘었다. 그렇다면 법적 제도나 장치들은 어떨까? 책 <동불법, 변호사가 알려드립니다>는 관련 법제가 미비하다는 점을 꼬집는다. 예를들어 축산법과 축산물위생관리법의 모순을 들 수 있다. 개는 축산법으로 ‘가축’에 포함되어 대량 사육이 가능하다. 그러나 축산물관리위생관리법에서 개는 ‘가축’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개고기는 존재할 수 없다. (축산물관리위생관리법은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로 닭, 오리 등을 말한다) 개고기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환경이나 절차에 대해 어떠한 관리나 법적 제재도 받지 않는다.

책은 동물관련 법원의 판결도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반려동물을 환영하면서도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인간 우선주의’에 따른 의사결정을 내리곤 한다. 동물의 소송에 대한 당사자능력(권리와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 법인이나 재단처럼 실체가 어려운 경우에도 당사자능력이 인정되곤 한다)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생존권과 개발의 우선권 사이에서는 늘상 개발의 손을 들어왔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산양의 서식지 파괴,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위해 천성산에 사는 동료뇽의 서식지를 몰살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동물권이란, 모든 동물에게 생명체(삶의 주체)로서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물들도 고유한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권리의 주체이며, 그들에게 이런 권리 주체성이 인정되는 한 그들의 권리 또한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상이다. (p.124)

<동물법, 변호사가 알려드립니다>는 PNR(People for Non-Human Rights)의 동물법에 대한 책이다. PNR은 동불보호를 위해 힘쓰는 15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비영리 단체다. 현재는 전문활동가와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책은 변호사들이 바라보는 동물법을 총 네 챕터에 걸쳐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우리곁에 존재하는 생명으로서의 동물을 소개함으로써 '동물권이 인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2부에서는 반려인들이 알아야 할 법률을 소개해 '일상에서 동물법을 어떻게 지키고 수호해나갈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마지막 3부와 4부에서는 동물들 그리고 야생동물들과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동물법을 실천해 적용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법령을 다루고 있어 용어 등이 독자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이 책은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정독하여야 할 책이다. 살면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반려동물과의 이슈를 법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해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동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삶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요즘에는 꼭 필요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제 동물은 인간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정책이나 법령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 빈틈에서 동물들을 악용하고 학대하고 몰살하는 몰지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책은 그런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동물은 ‘생명 그 자체’이다. 따라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삶의 주체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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