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는 실제로 히틀러의 음식을 시식했던 인물 중 유일한 생존자인 마고 뵐크에 관한 기사가 계기가 된 소설이다. 마고 뵐크 여사는 아흔여섯이 되어서야 시식가로서의 과거를 고백했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왜 70년 가까이 함구해왔떤 걸까. 비밀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을까. 그 물음에 답하는 심정으로 이탈리아의 저자 로셀라 포스토리노가 로자 자우어를 내보낸 게 아니었을까.
삶을 살아내는 로자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초반 그녀는 10명의 ‘시식가’ 그룹에 온전히 속하기 위해 애쓴다. 마치 여고생 같다. 우유를 훔치기도 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기도 한다. 두려워했던 ‘음식을 먼저 먹는 일’에는 점점 적응해 간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일종의 특혜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일 역시 다른 일과 별다를 바 없는 일개 직업일 뿐(p.107)”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히틀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자책하는 순간도 온다. “내가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이유는 그래도 싸기 때문이다. 내가 그럴 만한 인간이기 때문(p.120)”라고 한다. 하지만 수년이 흐른 후 로자는 모든 과정들이 잘 기억나지 않음을 고백한다. 잊고 싶은 기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일테다.
손바닥으로 승자의 육체를 갖기 못한 모든 이들의 머리를 짓눌러버리는 상상을 하라.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인종은 영혼의 외관이다. 쭉 뻗은 팔에 영혼을 담아 총통에게 바쳐라. 그분은 너희들의 영혼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영혼의 무게만큼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 (p.143)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히틀러가 승리를 갈망할수록 사람들은 목숨을 잃어간다. 총통의 사상을 비난할 수도, 공감이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하다니. 채식을 하는 히틀러처럼, 로자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모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로자는 숨구멍을 찾아낸다. 사랑이라는 숨구멍.
목숨들이 부서져가는 와중에도 ‘사랑’은 작동한다. 그레고어를 그리워하던 로자는 친위대 수장 ‘치글러’를 사랑하게 된다. 치글러는 친위대의 수장으로 총통의 측근이지만 동시에 그저 나라에 봉사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사명감이나 애국심은 보이지 않는다. 당시의 사상에 공감하는지도 알 수 없다. 오히려 유대인에게 반감이 없지만 지시에 따라 사살을 자행하는 걸 보면 오히려 ‘무감’한 듯도 하다. 이 치글러가 어느 날 밤부터 로자를 찾아오고, 로자는 시부모님 댁의 헛간에서 그를 받아들인다. 로자는 스스로를 ‘창녀’로 표현한다. 히틀러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살기 위해 그의 음식을 시식하는 것과 친위대의 치글러를 사랑하는 것. 모순된 세상에서 스스로가 벌인 배반에 대한 분노로 읽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