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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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의 여성, 로자 자우어가 있다. 전장에 나간 남편 그레고어는 연락이 두절되어 생사를 알 수 없다. 남편의 고향에서 그의 사진을 보며, 그의 살냄새를 추억하며, 시부모님과 살고 있다. 어느 날, SS친위대가 그녀를 데리고 간다. 이유는 단 하나, 순수 아리아 혈통이기 때문. 피할 방법은 없다. 그렇게 가게 된 볼프스샨체에는 로자를 포함해 여성 10명 있었다. 식당에 둘러앉는다. 음식이 나온다. 맛을 본다. 로자는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가 되어, 히틀러 먼저 시식을 한다. 소화가 되고 문제가 없는지 확실해진 후에야 자리를 뜰 수 있다. 로자는 목숨을 걸고, 독을 거르고, 돈을 받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일종의 기미상궁이라고 할까.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누군가 “총통은 그뿐 아니라 가축을 도축하는 것이 너무 잔인한 행위라 고기를 먹을 수 없데.(p.83)”라고 말한다. 여기서 ‘총통’은 히틀러를 말한다. 무자비한 살육의 대명사처럼 느껴지는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나 보다. 채식과 총통이라니, 불협화음 같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어도 죽고,

전쟁이 끝나면 추종자란 명목으로 죽는다.

히틀러에 반대하면 그 역시 죽어야 한다.


책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는 실제로 히틀러의 음식을 시식했던 인물 중 유일한 생존자인 마고 뵐크에 관한 기사가 계기가 된 소설이다. 마고 뵐크 여사는 아흔여섯이 되어서야 시식가로서의 과거를 고백했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왜 70년 가까이 함구해왔떤 걸까. 비밀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을까. 그 물음에 답하는 심정으로 이탈리아의 저자 로셀라 포스토리노가 로자 자우어를 내보낸 게 아니었을까.


삶을 살아내는 로자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초반 그녀는 10명의 ‘시식가’ 그룹에 온전히 속하기 위해 애쓴다. 마치 여고생 같다. 우유를 훔치기도 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기도 한다. 두려워했던 ‘음식을 먼저 먹는 일’에는 점점 적응해 간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일종의 특혜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일 역시 다른 일과 별다를 바 없는 일개 직업일 뿐(p.107)”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히틀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자책하는 순간도 온다. “내가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이유는 그래도 싸기 때문이다. 내가 그럴 만한 인간이기 때문(p.120)”라고 한다. 하지만 수년이 흐른 후 로자는 모든 과정들이 잘 기억나지 않음을 고백한다. 잊고 싶은 기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일테다.


손바닥으로 승자의 육체를 갖기 못한 모든 이들의 머리를 짓눌러버리는 상상을 하라.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인종은 영혼의 외관이다. 쭉 뻗은 팔에 영혼을 담아 총통에게 바쳐라. 그분은 너희들의 영혼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영혼의 무게만큼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 (p.143)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히틀러가 승리를 갈망할수록 사람들은 목숨을 잃어간다. 총통의 사상을 비난할 수도, 공감이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하다니. 채식을 하는 히틀러처럼, 로자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모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로자는 숨구멍을 찾아낸다. 사랑이라는 숨구멍.


목숨들이 부서져가는 와중에도 ‘사랑’은 작동한다. 그레고어를 그리워하던 로자는 친위대 수장 ‘치글러’를 사랑하게 된다. 치글러는 친위대의 수장으로 총통의 측근이지만 동시에 그저 나라에 봉사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사명감이나 애국심은 보이지 않는다. 당시의 사상에 공감하는지도 알 수 없다. 오히려 유대인에게 반감이 없지만 지시에 따라 사살을 자행하는 걸 보면 오히려 ‘무감’한 듯도 하다. 이 치글러가 어느 날 밤부터 로자를 찾아오고, 로자는 시부모님 댁의 헛간에서 그를 받아들인다. 로자는 스스로를 ‘창녀’로 표현한다. 히틀러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살기 위해 그의 음식을 시식하는 것과 친위대의 치글러를 사랑하는 것. 모순된 세상에서 스스로가 벌인 배반에 대한 분노로 읽히는 대목이다.

소설은 전쟁의 파괴적 영향을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었던 것 같다. 로자가 베를린으로 돌아가고 그레고어를 만나는 장면은 그 영향을 버텨냈다는 증명이면서 동시에 ‘배반’했던 역사를 안고 살아야하는 무게로 다가오기도 한다. 무섭다는 정도로 알고 있던 전쟁이,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독일인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새롭게 이해해 볼 수 있게하는 소설이다. 생과 사, 전쟁과 사랑, 모순적인 가치들이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상처럼 다가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총통과 채식처럼 말이다. 로셀라 포스타리노는 로자라는 여성의 평범한 삶을 묘사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읽는 내내 격앙될 것이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생존에 대한 소설이다. 그리고 암흑기를 살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덤덤한 문체에서 느껴지는 어둠이 너무 무섭고 절절해 누구든 격앙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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