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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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의 기억을 보라>는 1928년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계 미국인 교수이자 198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에 관한 글 입니다. 이렇게 길고 장황한 수식을 앞도하는 그에 대한 단 하나의 설명이 있습니다. 바로 홀로코스트 생존자라는 사실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중 유대인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가족이 모두 게토로 이주되었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아우슈비츠에서 사망, 아버지와 그는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아버지마저 사망합니다. 그 후 1945년 4월 부헨발트 수용소가 해방되면서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그에게 남은 건, 왼팔에 남은 수감자 번호 'A-7713'입니다.


살아 생전 위젤은 일주일에 한번씩 대학교에서 강의하며 학생들과 토론했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위젤의 삶과 통찰을 알고 싶어했다고 하네요. 책에 따르면 보통 학생들이 질문하고, 그에 대해 위젤이 답을 주고 받으며 토론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아리엘 버거의 책 <내 기억을 보라>에서 드러납니다. 아리엘 버거는 엘리 위젤 강의의 조교로서 매 강의 첫번째 줄에 앉아 모든 내용과 분위기를 살피고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즉 이 책은 엘리 위젤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리엘 버거의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 위젤은 무엇보다도 '교육'에 큰 뜻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해방 이후, 그는 나치 친위대나 학살의 주동자들이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대학에서 괴테, 칸트를 공부하며 윤리와 도덕 개념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위젤은 아마도 '교육이 곧 윤리적, 도덕적 선택을 하게 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지식의 배반'을 깨달았던 모양입니다. 그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교육이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 타락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뭔가 숨겨진 주요 요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요소만 찾아낸다면 지식은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지식은 쌓여 공감과 동정의 행위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엘리 위젤은 '그 요소'에 대한 답을 찾아냅니다.

과학자처럼 자신의 글쓰기와 사색을 통해, 특히 강의를 통해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고 마침내 그 숨겨진 주요 요소를 찾아내 이름을 붙였다. 바로 기억이었다. (P.38)

왜 제목이 <내 기억을 보라>인지 이해됩니다. 얼핏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고의 흐름일 수도 있습니다. 증오와 분노로 가득할 것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기억으로 지식의 저주를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 하지만 다소 불완전하게 여겨지는 그의 논리가 책에서 단단하게 펼쳐집니다. 특히, 책에는 나치의 후예나 특정 이해관계가 있는 학생들의 무차별적인 질문들이 있었던 수업사례가 등장합니다. 여기에 대해 엘리 위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수감번호를 보여달라는 요구에 그는 손쉽게 왼쪽 팔을 들어올립니다. 그리고 질문들을 받아들이고, 더 깊이 과거를 함께 고민하고 기억을 꺼내려 노력합니다. 오히려 점점 더 깊이있게 파내기 위해 애씁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란 좁다란 다리이며, 우리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계속 기억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실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또 실제로 어느 정도 잊어야 하는 일들도 있지요. (중략) 그런데 만일 우리가 정말로 그냥 잊어버리려 한다면 역사는 결국 되풀이 되고 말 겁니다. (P.52)" 여기서 그가 교육의 길을 선택한 이유이자 그가 기억을 꺼내는 이유가 밝혀집니다. 그건 결국 기억이 악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 그것에서 시작된 것 입니다.

책은 그의 단단하고 깊은 믿음을 전합니다. 그의 교육을 전하고, 인류에 대한 사랑과 믿음, 배려를 느끼게 합니다. 아리엘 버거는 마지막에 이렇게 끝맺습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부분들을 이해하도록 하자.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겪은 고통이나 즐거움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목격자가 될 수 있다. (P.388~389)"라고요. 모두가 인도주의자 혹은 박애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면 어둡고 힘든 나의 기억이 누군가에게는 배움이요, 나는 그것의 전달자가 될 수 있다는 위젤의 철학을 절감하게 됩니다. 엘리 위젤은 "무엇보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며, 죽을 때까지 가르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며 자신의 모든 활동을 교사로서의 역할의 연장으로 보았습니다. 2016년 엘리위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아생전의 그를 만나보지도, 알지도 못했지만, 저는 책 <나의 기억을 보라>를 통해 한동안 깊은 여운에 빠져들었고, 삶에 대한 태도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기억은 위대하게 남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저에게도 영향을 미쳤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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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료 텃밭농사 교과서 - 흙, 풀, 물, 곤충의 본질을 이해하고 채소를 건강하게 기르는 친환경 밭 농사법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오카모토 요리타카 지음, 황세정 옮김 / 보누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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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이 움트는 봄, 3월이 되면서 남편과 계획한 가장 중요 일정 중 하나가 분갈이였다. 식물을 가꾸고 그들을 돌보며 힐링하는 남편은, 20여종이 넘는 화분 하나하나의 생장을 모두 꿰고 있다. 이건 이래서 물을 이만큼 줘야하고, 저건 이래서 간접광만 쐬도록 해야해. 식물박사인 그와 함께 만들어갈 아름드리 정원을 상상하며 내가 선택한 책은 <무비료 텃밭농사 교과서>이다.

오카모토 요리타카라는 일본인이 저자다. 종자은행 ‘씨앗학교’의 리더인 저자는 방송PD로 활동하면서 비료, 제초제 등이 자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비료로 건강하게 작물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일요? 책은 농사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에 대해 알려주고, 특히 텃밭을 중심으로 한 흙, 풀, 물, 하늘, 곤충 등을 다룬다. 인상 깊은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라 여겼던 물 주기다. 흙이 마르면 준다는 생각과 달리, 해와 달의 주기에 따라, 흙의 속성에 따라 물을 줘야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심지어 식물이 심어진 토양의 고저에 따라서도 물은 달라진단다.

무비료 재배의 다른 말은 ‘친환경 밭 농사법’이다. 농약이나 유기 비료 등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연의 자생적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기본 원리다. 사실 단순하면서 너무도 다양한 얘기. 인간이 생장을 촉진하기 여러 도구들을 만들어내기 전에도 우리가 먹는 채소와 식물들은 문제없이 자라왔다. 인공을 가미하며 토질이 나빠지고, 폐수가 생산되고, 식물들이 죽어나갔을 뿐이다. 책은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듯 하다. 모든 자연의 요소는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흙, 물, 풀, 하늘, 곤충. 그 어떤 것도 그냥 존재하는 것은 없으리라.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식물과 채소들을 돌보게 하는 책이 바로 <무비료 텃밭농사 교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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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세대 - 그러니까, 우리
이묵돌 지음 / 생각정거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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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퇴근 즈음, 회사는 전 직원에게 문자를 한 통씩 보냅니다. 일명 Phone-Off Day. 퇴근 후, 특히 주말에 업무적 연락을 지양하자는 일종의 캠페인인데, 직원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세상 참 좋아졌네. 또 다른 하나는, 이걸 회사가 시켜야 알아? 다들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소위 말하는 기성세대, 후자는 젊은세대의 반응이라는 것. <90년대생이 온다> 이후, 젊은 세대를 다룬 책들이 쏟아졌습니다. 주로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분석해 정의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결이 다르게 ‘세대 구분’을 다룬 책 <갈라파고스 세대(그러니까, 우리)>을 만났습니다. ‘리뷰가 가능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리뷰한다’는 모토로 활동했던 리뷰왕 김리뷰, 1994년생 저자 이묵돌님의 책입니다.


우선 저자는 ‘갈라파고스 세대’를 정의합니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에 관한 기초조사를 했던 중남미 에콰도르 영해에 위치한 군도 갈라파고스, 기술이나 서비스 등이 국제 표준에 맞추지 못하고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해 세계 시장으로부터 고립되는 현상 갈라파고스. 저자는 이런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뜻으로, 또 ‘모두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면, 다르다는 것 자체가 그 세대를 정의하는 특징이 될 수 있지 않을까’(p.9) 라는 생각에 '갈라파고스 세대'라 제목을 붙였다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서 저자의 독특한 관점을 봤습니다. 90년대 출생, 데모를 경험한 세대처럼, 사회문화적 현상에 따르기보다‘다르다’를 기준으로 세웠다는 것을요. 그래서 이건 기성/젊은세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밀레니얼/밀레니얼간의 이야기이자, 남자/여자, 강남/강북, 친구/지인 등 그 어떤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제가 앞에서 다른 책들과 ‘결이 다르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자는 갈라파고스 세대가 ‘취약하다’고 말합니다. “텍스트 의존도가 높은 간접적 언어 때문이기도 하고, 좀처럼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끼기 힘들어져버린 시대상과 명시적 의미에 집착하는 사회풍조에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 (p.32)”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한 후배가 떠올랐습니다. 회의록을 써오라고 했더니 녹음파일을 카톡으로 건내던 그 후배. 회의록이라는 건 참여자 간의 대화 요약과 시사점을 의미하는 거다라고 설명에 후배는 ‘저는 그런 걸 해본적이 없어서요’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이게 왜 환경탓, 남탓으로 읽힐까요? 게다가 갈라파고스 세대의 특징이 높은 텍스트 의존도라는 설명은 그들 선택의 결과로 보입니다. 업무시간에 친구들과 카톡을 나누는 건 괜찮지만, 퇴근 후 직장 관계자의 카톡은 불합리하다는 맥락처럼요. 하나 더, 작가는 ‘선 긋기’의 특징도 설명합니다. 극도로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젊은 세대들은 상처입을 만한 모든 상황들로부터 자신을 보존하고자 안간힘을 쓰며, 그 결과 선을 그어, 실패할 가능성 자체를 줄인다고 말이죠. 그리고 방점을 찍습니다. “90년대에 태어나 사회에 진입하기 시작한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불행 (P.24)”고 말이죠. 덜 불편하고 더 편리한 삶이 곧 더 행복한 삶이라고 착각하지 말자는 저자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불행'이라는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고작 기술의 발전만으로 어쩔 수 없는 차원에 있다. 수기에서 타자기로, 키보드에서 휴대폰 문자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 사람은 더 고독한 존재가 됐다. 셀 수 없이 많은 정보와 문자들 사이에 둘러싸였으나 진심 어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일은 예전보다 훨씬 복잡다단하다. (p.22~23)

책은 독특한 구성을 취합니다. 명시적이라고 할까요. 제목 > 한 사람의 이력서 > 그 사람이 참여하는 카톡 대화 > 저자의 설명이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누군가의 환경과 맥락을 보여줌으로써 작가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건내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책의 끝장을 덮으며 생각했습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말한 ‘젊은 이들이 가진 외로움이며 슬픔 같은 것들을 이해받는 데 아주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의도를요. 그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습니다. 다만 책을 읽으며 불편함이 계속 이어졌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해결방법을 기대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우리를 받아들여줘’라는 투정처럼 읽혔습니다. 앞서 저자가 말했듯이, 이건 같은 세대 안에 있는 서로간의 다름일수도 있습니다. 기성세대 중에서도 카톡 대화를 지양하고, 선긋기를 지향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밀레니얼 안에도 카톡으로의 업무지시도 허용하고, 격없이 모두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200쪽에 달하는 ‘지금 우리는 이런 상태입니다’라는 설명은 제게는 ‘자기사랑’의 부족함으로 읽힐 뿐 이었습니다.

자기사랑의 개념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을 했었는지에 관계없이 혹은 실패를 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라는 ‘자기사랑’은 말로만 하는 ‘ooo야, 사랑해’가 아닙니다. 자기 안의 우울, 불안, 부정과 같은 감정을 (물이 흐르듯)흘려보내고, 자기 안의 긍정, 기쁨, 행복과 같은 것들을 살피고 마주하라는 개념입니다. 무슨 헛소리냐 싶겠지만, 매 순간 이런 사랑의 감정으로 자신을 채우다보면 모든 것이 달리 보일 수 있습니다. 저도 연습하며 실천중이거든요. 책은 솔직하고 분석적입니다. 다만 이유를 나열할 뿐 그 어떤 희망이나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도 묻고 싶어요. '이해해줘'라는 목소리 전에,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누군가를 이해해보려는 해보았을까요? 이해와 배려는 단방향이 아닌 양방향이 될 때 이뤄진다고 봅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저도 80년대생, 밀레니얼 혹은 갈라파고스 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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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햄릿 (양장) - 1603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한우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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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나는 ‘햄릿’을 ‘무능한 남친’으로 봤다. 열렬히 고백하던 오필리아에게 어느 순간 냉랭해지고 죽게 만들어버리는 남자였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도, 비틀린 사랑에 대한 이유도 알려주지 못하는, 미적지근한 남친, 그런 사람이 바로 ‘햄릿’이었다.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전체를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To be or not to be’로 전체를 아는 듯한 느낌의 작품이 바로 <햄릿>이었다. 이번 더스토리 출판사에서 1603년 오리지널 초판본을 표지로 한 <햄릿>이 출판되었다. 연극 무대를 텍스트로 옮겨 놓은 듯 희곡 형식으로 꾸며진 작품은 죽은 선왕 – 햄릿의 아버지 – 의 혼령이 덴마크 성에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햄릿>이 이제는 복수와 치정의 혼합극으로 읽힌다. 햄릿의 복수라는 큰 줄기 안에서 클로디어스(삼촌)와 거트루드(어머니), 햄릿과 오필리아(썸녀)의 두 관계가 비극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햄릿은 인간으로서의 존재의미와 사랑, 복수, 환멸 등 다양한 결의 감정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햄릿이라는 ‘사람’의 정신을 분절시켜 극적으로 보여주는데 아마도 이것이 <햄릿>을 두고 마크트웨인, 프로이트 등의 대문호들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희곡’이라고 평한 이유일거라 짐작한다.

범인은 여기 있습니다. 햄릿 왕자님. 왕자님도 곧 목숨을 잃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약도 효과가 없을 겁니다. (중략) 왕비께서도 독살당하셨고, 저는 더 이상- 저 왕, 왕의 짓입니다. (p.243)

하지만 삼십대인 내게 햄릿은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다. 보다 더 확실한 복수가 있었을텐데? 범인을 알면서도 펜싱 시합을 해야했을까? 어머니를 음탕하다고 여기더라도 클로디어스의 계략에서 빼낼 수 있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레어티즈가 범인을 밝히게 하는 부분은 햄릿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를 원망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자신의 의도를 제 입으로 밝히지 못하는 것은 다소 비겁하게 읽히기도 한다.

극 형태의 진행이 흥미로웠다. 각 인물의 대사를 통해 캐릭터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면, 직접적으로 서술된 효과는 상상의 기회를 줄여 아쉬웠다. 하지만 어떤 맥락으로든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이 작품이 대단한 것 아닐까? 언제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제대로 몰랐던 <햄릿>을 이제야 완독하게 되었다. 훗날 사십대, 오십대,,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이 작품을 어떻게 이해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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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녀석들 - 인공지능에 대한 아주 쉽고 친절한 안내서
저넬 셰인 지음, 이지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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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벌어지던 2016년, 대한민국의 관심은 AI로 쏠렸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 인간 실력자의 대결. 최종 결과는 4승 1패, 알파고의 승리였다. 이후 뉴스는 ‘알파고’ 혹은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했고,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이슈로까지 확대되었다.

당시 가장 인상적인 뉴스 중 하나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직업 순위’에 대한 것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직업이 ‘안전’할지 따져보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속내가 숨어있다. 하나는 내 직업을 지능이 높은 기계에게 ‘빼앗기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또 다른 하나는 ‘고작 기계’ 따위에게 질 수 없다는 비웃음이다. 그 와중에 가장 재미있던 건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공무원만은 예외'라는 뉴스의 헤드라인과 '그럴 수 밖에 없지'라는 대중의 끄덕임이었다.

AI란 무엇일까. <좀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녀석들>의 저자 저넬 셰인은 ‘기계학습 알고리즘’이라는 특정 유형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정의한다. 즉, 프로그래머가 특정한 목표에 대한 성공률을 계속해서 측정하는 방식으로,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규칙을 알아내는 것이며, AI를 프로그래밍한다는 것은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한다기보다 오히려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것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특징 다섯가지를 책에서 설명한다. (1) AI가 위험한 이유는 AI가 너무 똑똑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다. (2)AI는 대략 곤충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다. (3) 우리가 무슨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지 AI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4)그러나 AI는 우리가 시키는 그대로 할 것이다. 또는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5)그리고 AI는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을 택할 것이다.


책은 다섯가지의 인공지능 특징을 설명하며 'AI가 이성에게 작업거는 방법', 'AI의 아재개그' 등을 예로 든다. 인공지능과 감히 연관지어 생각하지 못했던 예시를 보며, 독자들은 '인공지능 = 지능이 높은 기계 = 내 직업을 빼앗을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던 두려움이 괜한 것이 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저자의 그림과 설명은 너무나 이해가 쉽고 심지어 웃기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책은 전문분야라 자칫 어렵게 다가오는 부분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좀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녀석들>은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감히 알아볼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독자들이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인공지능 관련 입문서 혹은 개괄서라고 할 수 있겠다.

'내 직업은 안전하겠군.' 책을 읽고나서 든 생각이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말처럼 인공지능은 인간이 알려주는 대로 뱉어내는, 동량의 인풋/아웃풋이 작동하는 물건에 지난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결국 직업이 사라질까 걱정하던 사람들도 안도의 한숨을 쉴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쓰레기를 넣지 않는 한 그들은 쓰레기를 만들어내지도, 그걸 뱉을 생각도 하지 못한다. 다만 쓰레기를 넣어놓고 보석이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이 현재의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은 후의 효능은 바로 그 깨달음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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