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생전 위젤은 일주일에 한번씩 대학교에서 강의하며 학생들과 토론했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위젤의 삶과 통찰을 알고 싶어했다고 하네요. 책에 따르면 보통 학생들이 질문하고, 그에 대해 위젤이 답을 주고 받으며 토론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아리엘 버거의 책 <내 기억을 보라>에서 드러납니다. 아리엘 버거는 엘리 위젤 강의의 조교로서 매 강의 첫번째 줄에 앉아 모든 내용과 분위기를 살피고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즉 이 책은 엘리 위젤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리엘 버거의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 위젤은 무엇보다도 '교육'에 큰 뜻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해방 이후, 그는 나치 친위대나 학살의 주동자들이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대학에서 괴테, 칸트를 공부하며 윤리와 도덕 개념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위젤은 아마도 '교육이 곧 윤리적, 도덕적 선택을 하게 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지식의 배반'을 깨달았던 모양입니다. 그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교육이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 타락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뭔가 숨겨진 주요 요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요소만 찾아낸다면 지식은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지식은 쌓여 공감과 동정의 행위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엘리 위젤은 '그 요소'에 대한 답을 찾아냅니다.
과학자처럼 자신의 글쓰기와 사색을 통해, 특히 강의를 통해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고 마침내 그 숨겨진 주요 요소를 찾아내 이름을 붙였다. 바로 기억이었다. (P.38)
왜 제목이 <내 기억을 보라>인지 이해됩니다. 얼핏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고의 흐름일 수도 있습니다. 증오와 분노로 가득할 것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기억으로 지식의 저주를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 하지만 다소 불완전하게 여겨지는 그의 논리가 책에서 단단하게 펼쳐집니다. 특히, 책에는 나치의 후예나 특정 이해관계가 있는 학생들의 무차별적인 질문들이 있었던 수업사례가 등장합니다. 여기에 대해 엘리 위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수감번호를 보여달라는 요구에 그는 손쉽게 왼쪽 팔을 들어올립니다. 그리고 질문들을 받아들이고, 더 깊이 과거를 함께 고민하고 기억을 꺼내려 노력합니다. 오히려 점점 더 깊이있게 파내기 위해 애씁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란 좁다란 다리이며, 우리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계속 기억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실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또 실제로 어느 정도 잊어야 하는 일들도 있지요. (중략) 그런데 만일 우리가 정말로 그냥 잊어버리려 한다면 역사는 결국 되풀이 되고 말 겁니다. (P.52)" 여기서 그가 교육의 길을 선택한 이유이자 그가 기억을 꺼내는 이유가 밝혀집니다. 그건 결국 기억이 악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 그것에서 시작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