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이 이제는 복수와 치정의 혼합극으로 읽힌다. 햄릿의 복수라는 큰 줄기 안에서 클로디어스(삼촌)와 거트루드(어머니), 햄릿과 오필리아(썸녀)의 두 관계가 비극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햄릿은 인간으로서의 존재의미와 사랑, 복수, 환멸 등 다양한 결의 감정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햄릿이라는 ‘사람’의 정신을 분절시켜 극적으로 보여주는데 아마도 이것이 <햄릿>을 두고 마크트웨인, 프로이트 등의 대문호들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희곡’이라고 평한 이유일거라 짐작한다.
범인은 여기 있습니다. 햄릿 왕자님. 왕자님도 곧 목숨을 잃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약도 효과가 없을 겁니다. (중략) 왕비께서도 독살당하셨고, 저는 더 이상- 저 왕, 왕의 짓입니다. (p.243)
하지만 삼십대인 내게 햄릿은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다. 보다 더 확실한 복수가 있었을텐데? 범인을 알면서도 펜싱 시합을 해야했을까? 어머니를 음탕하다고 여기더라도 클로디어스의 계략에서 빼낼 수 있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레어티즈가 범인을 밝히게 하는 부분은 햄릿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를 원망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자신의 의도를 제 입으로 밝히지 못하는 것은 다소 비겁하게 읽히기도 한다.
극 형태의 진행이 흥미로웠다. 각 인물의 대사를 통해 캐릭터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면, 직접적으로 서술된 효과는 상상의 기회를 줄여 아쉬웠다. 하지만 어떤 맥락으로든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이 작품이 대단한 것 아닐까? 언제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제대로 몰랐던 <햄릿>을 이제야 완독하게 되었다. 훗날 사십대, 오십대,,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이 작품을 어떻게 이해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