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버거운 당신에게 달리기를 권합니다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김지연 옮김 / 가나출판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달리기에 대한 동경이 있다. 바람을 가르는 날쌘 몸, 그 안에서 피어나는 땀, 장시간의 버티기 기술이 필요한 운동. 어디 이뿐이랴. 새벽이슬을 맞으며 시작하는 조깅, 바다를 벗하는 달리기, 에어팟과 함께하는 최첨단 러닝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며, 그 생각에 근사함이 덧붙여졌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다. '적어도 걷지는 않았다'는 묘비명을 탐내기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달리기에 대한 욕망을 품어왔지만, 실천은 요원했다. 새벽 운동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달리기가 매번 아침 잠과의 사투에서 번번히 실패했기 때문이다.(고 변명해본다.)

2006년 마쓰우라 야타로는 잡지 <생활의 수첩> 편집장을 맡게된다. 매일매일 일로 고민하다 번 아웃에 빠진 그는 무심결에 '달리기' 시작한다.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 일도 잊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 뭐가 있을까?(p.8)'에 대한 답이었단다. 마흔세 살의 겨울, 그렇게 저자의 달리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9년이 흘렀다. 부상으로 달라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저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 삶의 지지대를 얻었다. 책 <삶이 버거운 당신에게 달리기를 권합니다> 역시 이런 과정의 산물이다. 책은 달리기를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달리기를 통해 변화된 저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자꾸만 달리고 싶어지는 건 왜 일까?

자발적으로 계속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는 그 사람을 향한 주위의 평가, 즉 신뢰와 신용으로 이어진다.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고 늘 위험 요소만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큰일을 맡기지 않는다. 중대한 일을 의논하려 들지도 않는다. 누구나 도전을 계속하는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실패를 겁내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에게 기회는 잇따라 찾아온다. (p.125)

책의 기저에는 삶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가 있다. 그는 실패를 '하고 싶어'한다. 그에게 실패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배움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어떤 일이든 실수가 생기기 마련인데, 여기서 저자는 배움을 끌어내 성공의 단초로 바꾸는 기술을 선사한다. 무턱대고 달리다가 발목과 허리 부상을 입었지만, 자신에게 맞는 운동화를 골라 점점 달리기에 적합한 몸으로 변화된 모습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또, 그는 '비전'을 강조한다. 저자는 일, 달리기 무엇이든 "'비전이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 (중략) 비전을 보며 견디는 것은 억지로 참고 버티는 것과 다르다(p.120)"고 말한다. 달리기에서 그의 비전은 '아름다움'이다. 이건 美가 아니라 '고수에게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즉, 일종의 아우라라고 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저자의 삶은 '비전 > 도전 > 실패 > 배움'의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나아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마저도 달리기를 통한 생각이라고 하니, 점점 더 뛰고 싶어진다.

책에는 달리기 고수 - 니시모토 다케시 - 와의 대담도 수록되어 있다. 니시모토 다케시는 <호보 일간 이토이 신문>의 마라톤 콘텐츠 제작자다. 9년 정도 달리기 경력을 지닌 그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머리를 쉬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대담에는 달리기에 대한 생각과 정보가 농축되어 있다. 선수들의 자세, 달리는 목적, 앞 코보다 발 뒤축에 맞춰 신는 게 중요한 운동화 까지. 수다같은 대담이지만 나는 한 지점에 오래 머물렀다. 니시모토가 말한다. 중년에 접어들어서 마라톤에 빠지는 사람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체력이 떨어져서 힘에 부치는 현실 앞에서도 '난 아직 살아있어!'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이건 중년이 아니라도 중요하다. 자신의 생을 느끼게 하는 지점, 그 활력소 유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생각은 너무 극단적인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가능성과 믿음을 선사하는 마라톤, 더 빠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옮긴이 김지연의 말데로 이 책은 '본격 달리기 권장도서'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달리고 싶어진다. 건강을 위해서, 삶을 단단히 다지기 위해서. 계획적이고 규칙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생활 속 습관을 하나 더 들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권유를 덥썩 받아들여, 은글슬쩍 '달리기'라는 아름다움을 추가하고 싶다. 그리고 '8할 너머의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 일정시간을 버티며 나아가야 보이는 경지를, 그것도 달라기를 통해서 경험한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싶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두려움과 망설임 앞에서 자신감으로 단련된 빛나는 눈빛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본격 달리기 권장도서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키우고 다지게 하는 어느 선배의 조언같은 (폰트마저)따뜻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부터 달릴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의 맛 - 무엇이 당신의 독서를 가로막는가 5가지 맛으로 알아보는 인생 독서법
김경태 지음 / 프로방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에 발을 내딛으며 독서를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그 중 하나가 독서였다. 지하철의 백색소음은 독서하기에 맞춤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글에도 관심이 생겼다. 블로그를 개설했고, 느낌과 생각을 썼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좋은 책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이제 독서는 삶에서 제법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독서는 그렇게 시작됐다.

독한 맛, 색다른 맛, 행동하는 맛, 묘한 맛, 변하는 맛

삼성디스플레이 수석연구원이자 모티베이터스랩 대표인 저자 김경태는 독서를 다섯 가지 맛으로 표현한다. 독한 맛, 색다른 맛, 행동하는 맛, 묘한 맛, 변하는 맛. 독한 맛은 독서의 맛. 독한 맛은 독(서)에 대한 맛이다. 책이 주는 위대함이 무엇이고, 책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 친숙하게 만들수 있는지 설명한다. 특히 저자는 정보의 질을 따져 책의 대단함을 설명한다. 색다른 맛은, 책이 주는 재미를 설명한다. 책은 깨닫게 하고, 집중하게 하고, 사색하게 한다. 행동하는 맛은 책을 통한 배움의 실천을 말한다. 묘한 맛과 변하는 맛은 책을 통해 달라지는 삶을 이야기한다.

독서는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인격을 만들고, 인격은 운명을 만든다.” (p.205~206)

저자는 책에 대한 글을 써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독서에 대한 세 권의 책을 내는 게 저자의 목표란다. 책 <일 년만 닥치고 독서>이 첫 번째라면, 이번이 두 번째이자 실전편인 셈. 저자는 생각 > 행동 > 습관 > 인격 > 운명으로 연결되는 고리에 '독서'를 이어붙였다. 간접경험이라는 독서를 통해 사람의 모든 것이 변화되는 그 격변을 몸소 경험했기에 나오는 생각일테다. 모두가 다 아는 '독서의 힘', 하지만 실천은 요원할 수 있다. 그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는 안내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개정판
김영서 지음 / 이매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페미니즘 책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라는 소제목을 단 책이 있다는 걸.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걸. 페미니즘 책에서는 신체적 우위를 통한 폭력을 설명하며 해당 책을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잠시 망설였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너무 여운이 오래남지 않을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봅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일단 이 프롤로그부터 읽어본 뒤 마음의 준비가 되면 계속 읽어나가기를 바란다. (p.16)”고 독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저는 고민했지만, 분명 힘들 수 있지만, 그렇기에 하루라도 더 빨리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클릭했고, 구매했고, 손에 들어 완독하기까지는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성폭력 한 것을 용서합니다. 어린 나이에 성폭력으로 임신하게 하고, 낙태까지 경험하게 한 것을 용서합니다. 수능 전날 밤 호텔에서 성폭력 하려다 말을 안 듣는다고 밤새 때린 것을 용서합니다. 하루는 기절할 때까지 나를 때리고,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니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때린 뒤 다음날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게 한 것을 용서합니다. (중략) 내가 기침 감기가 심하게 걸려 계속해서 기침이 나오는 데 그 짓거리 하겠다며 내 위에 올라타서는 계속 기침한다고 주먹으로 내 얼굴과 가슴을 내리치던 것을 용서합니다. (p.249)

책은 목사였던 아빠로부터 저자 김영서가 초등학교 5학년때 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당한 성적 학대와 폭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힘내라, 이겨내라 따위의 어줍잖은 말은 오히려 해가 될 것 같습니다. 감히 누가 저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것은 꼭 말하고 싶습니다. 책 안에서 저자 김영서는 살아 숨쉽니다. 자신의 과거에 징 밖혀 움직이지 못하는 인형이 아닙니다. 필명 '은수연'을 벗어내고 사람 '김영서'가 되었듯이, 자신의 삶을 기도하고 응원하며 힘차게 나아가도록 독려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과 같은 일을 겪었을, 현재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누군가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습니다.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상이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만 조금 바뀐다면, 자기가 겪은 일을 스스로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보다 편해질 수 있을 텐데 싶다. (중략) 그냥 치료가 필요한 상처로 봐주면 좋겠다. 칼자국은 그저 상처일 뿐, 다른 생각은 말아주시기를. (p.26)

저자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도움으로 치유를 시작했고, 문집에 글을 싣다가 책을 펴냈다고 합니다. 2012년 필명으로 책을 펴냈고, 8년이 지난 올해 실명으로 개정판을 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다른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상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네요. 그녀의 경험에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요. 지옥같던 집에서 도망쳐나와 쉼터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들었다는, 힘이 많이 됐다는,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저자에게 건내고 싶습니다.

+

그녀의 인터뷰를 읽어보길 권합니다.

<저자 인터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04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판본 이방인 - 194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최헵시바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소설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를 그린다. 감정이 없는 듯 보이는 뫼르소. 엄마의 장례를 치르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이튿날에는 여자와 사랑을 나누기까지 한다. 내연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편지를 대필해달라는 이웃 레몽의 부탁을 들어주고, 편지를 쓴다. 레몽의 초대로 해변을 즐기던 중, 내연녀의 오빠(아랍인들)과 마주치고, 우연히 레몽의 총을 들고 있던 그는 총을 쏘고 만다. 여전히 무감하던 그는 재판에서 사형에 처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사장은 내게 삶에 변화를 주는 데 관심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은 결코 삶을 바꿀 수 없다고, 모든 삶이 어쨌든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 법이며, 따라서 여기서의 삶도 내게는 전혀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

슬픔, 사랑, 분노, 욕망 등의 감정이 일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의 행적은 일반의 그것과 다르다. 엄마 장례식에서 밀크 커피를 찾고, 시체 옆에서 담배를 핀다. 이런 주인공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다. 감형을 받기 위한 노력이나 변명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죄를 뉘우쳤다고 말하는 것은 귀찮다고 까지 한다. 일반적인 사고와 다른 주인공의 궤적, 그 간극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카뮈의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는 말에서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사형선고는 타인의 나에 대한 재단이다. 이건 일반적인 사고의 산물이며, 해석된 결과다. 그러나 당사자는 울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즉 위의 간극은 거리감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살아있는’ 감정 자체와 인간이 ‘만들어낸’ 규범, 윤리, 편견 등. 그 둘의 괴리 말이다. 마지막 뫼르소는 “아무도, 그 누구도 엄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권리는 없다. (p.156)”고 말한다. 모두가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들이 꼭 그러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감정이 느껴질 때, 자신으로 존재할 때 가능하다는 것으로 읽힌다.

"나와 세계가 무척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무감하고 소외된 듯 보인 그는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재판에서의 뫼르소의 태도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모두가 - 진실을 왜곡해 도우려는 변호사, 하느님을 언급하며 주인공을 설득하려는 재판관, 구원하겠다며 찾아온 사제 -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는 그대로 사건을 내버려둔다. 결국 뫼르소는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났기에 '이방인'이 된다. 주인공은 유독 “무의하다”는 말을 자주한다. 작가의 실존주의를 의미하는 것일까. 실존주의는 이성, 인간성과 같은 보편적 본질보다 인간의 실존, 존재가 선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무감하던 뫼르소가 사형의 순간 행복을 느끼는 것이 이를 대변하는 것으로 읽힌다. 책은 얇지만 다소 난해했다. 뫼르소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그의 생각에 온 마음이 동할 수 없었다. 실존주의라는 철학에 대한 거리감과 마찬가지리라. 고전이라는 타이틀과 카뮈라는 작가의 권위가 제대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학생 때 읽었던 <이방인>보다는 세밀한 결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훗날 나이를 더 먹으면, 내가 살아낸 시간이 늘어나면, 이 책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 게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이렇지 않을까? 돈을 벌면 사고싶은 걸 다 살 수 있지 않을까? 직장에 다닌다면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겠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너무나 행복하겠지? 학창시절 꿈꾸는 환상의 세계, 어른의 세상 말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때문에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그 환상의 세계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또 내 신념에 따라 더 이루어질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17세의 홀든 콜필드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말이죠.


1951년에 발표된 JD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17세의 홀든 콜필드의 '가출 3일'을 그립니다. 짧을수도 길수도 있는 이 3일이라는 시간,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호텔에 가고,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아는 여자를 불러 공연을 보고, 담배를 피고, 또 여자를 만나고. 그는 뉴욕 골목을 배회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딱 '비행'이었어요. 그는 한 마디로 찌질합니다. 덩치 큰 벨보이가 여자를 만나겠냐 묻자, 지지 않으려 그러마 라고 답합니다. 정작 여자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자 후회하면서요. 그는 매우 자주 '나는 우울해졌다'고 말합니다. 후회할 것이면 애초에 시도를 하지 말지. 읽는 내내 연신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던 그가, 여동생 피비를 만납니다. 그가 너무나 사랑하는 피비.

소설 <호밀밭은 파수꾼>은 청소년의 가출기이자 동시에 순수한 영혼의 이야기라고 회자됩니다. 저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를 묻고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친구, 룸메이트, 졸업생, 영화베우, 벨보이 등 그 누구도 곱게 보지 않던 홀든은 자신을 따라서 가출하려는 피비를 말리고, 회전목마를에 태웁니다. 그러고는 "나는 갑자기 행복을 느꼈다. (P.311)"고 말합니다. 아마도 순수하고 영롱한 피비를 지켰다는 행복을 말하는 것이겠죠. 허무하게도, 이로써 홀든은 가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피비를 위해서, 피비를 지키기 위해서.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진행됩니다. 홀든 콜필드 사고의 흐름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꺼내놓습니다. 너무나도 세세하게 표현된 그의 시선은 마치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선사합니다. 세간의 평가를 차치하더라도, 이 책이 대단한 건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다소 지루하기도 합니다. 내가 뭘 읽고 있는거지? 하며 갑자기 멍해지는 순간도 옵니다. 아마도 홀든 콜필드를 따라가다 보니 그러는 거겠죠. 즐거웠다가 갑자기 우울해지고, 웃겼다가 갑자기 허무해지는, 종잡을 수 없는 주인공을 따라가고 있으니까요. 초반의 장황하고 반항적이었던 주인공이 후반에 갑자기 착해지면서 독자들은 갸우뚱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제목이 <호밀밭은 파수꾼>인 것은 누구나 끝장을 덮으며 알 수 있게됩니다. 저는 책을 보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1995년 발표된 노래 <Come Back Home>이 떠올랐습니다. 가출 청소년들을 주제로 한 그 노래가, 청소년들을 선도해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죠? <호밀밭의 파수꾼>도 같은 효과를 낼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