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소설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를 그린다. 감정이 없는 듯 보이는 뫼르소. 엄마의 장례를 치르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이튿날에는 여자와 사랑을 나누기까지 한다. 내연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편지를 대필해달라는 이웃 레몽의 부탁을 들어주고, 편지를 쓴다. 레몽의 초대로 해변을 즐기던 중, 내연녀의 오빠(아랍인들)과 마주치고, 우연히 레몽의 총을 들고 있던 그는 총을 쏘고 만다. 여전히 무감하던 그는 재판에서 사형에 처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사장은 내게 삶에 변화를 주는 데 관심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은 결코 삶을 바꿀 수 없다고, 모든 삶이 어쨌든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 법이며, 따라서 여기서의 삶도 내게는 전혀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
슬픔, 사랑, 분노, 욕망 등의 감정이 일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의 행적은 일반의 그것과 다르다. 엄마 장례식에서 밀크 커피를 찾고, 시체 옆에서 담배를 핀다. 이런 주인공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다. 감형을 받기 위한 노력이나 변명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죄를 뉘우쳤다고 말하는 것은 귀찮다고 까지 한다. 일반적인 사고와 다른 주인공의 궤적, 그 간극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카뮈의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는 말에서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사형선고는 타인의 나에 대한 재단이다. 이건 일반적인 사고의 산물이며, 해석된 결과다. 그러나 당사자는 울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즉 위의 간극은 거리감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살아있는’ 감정 자체와 인간이 ‘만들어낸’ 규범, 윤리, 편견 등. 그 둘의 괴리 말이다. 마지막 뫼르소는 “아무도, 그 누구도 엄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권리는 없다. (p.156)”고 말한다. 모두가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들이 꼭 그러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감정이 느껴질 때, 자신으로 존재할 때 가능하다는 것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