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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ㅣ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1995년 3월 20일 아침, 일본에서 지하철 사린 사건이 일어났다. 12명이 사망하고 60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가벼운 기침, 울렁증, 구토 등의 증세를 보이는 사람에서부터 시야협착증, 마비, 기억상실 등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중환자들도 있다.
이 사건은 옴진리교 교주였던 아사하라 쇼코의 명령에 따라 옴진리교 간부들에 의해 행해졌다. 다섯 개 노선의 지하철 칸에 묘한 액체가 든 비닐봉지를 놓고 뾰족하게 간 우산 끝으로 봉지를 터뜨려 달리는 지하철 안에 사린가스가 유포되게 만들었다.
옴은 ‘우주의 창조유지 파괴’를 뜻하는 힌두교의 주술어로 주신은 파괴의 신인 힌두교의 시바라고 한다. 아사하라 쇼쿄 교주는 자신을 시바로 믿었던 것 같다. 옴진리교 교단을 만들고 조직을 갖추었고 인류의 종말을 예언하며 신도들을 끌어 모았다. 옴진리교 간부들은 심장혈관 외과 전문의, 응용물리학과 수석 졸업자 등 슈퍼 엘리트급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별다른 존재감이 없거나 일용노동을 하다가 출가한 사람, 또 인생의 고통이나 좌절을 경험한 사람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이었다. 그들에게서 어떤 일관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었고 사회적으로 격리된 범죄자도 적의에 가득 차 세상을 비난하는 자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명령을 하달 받았을 때 그 위험성을 충분히 짐작하고 윤리적으로도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언더그라운드』는 이 사건의 경험자들을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터뷰하고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미국에 체류 중이었던 하루키는 봄방학을 이용해 잠시 귀국해 있던 참이었다. 그는 “1995년 3월 20일 아침에, 도쿄의 지하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하는데 의문을 품었다. 그가 품었던 의문은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에 대한 논리와 시스템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똑같은 작업을 사건의 직간접적 피해자들에게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것이었다. 하루키는 아사하라가 그렇게 강렬한 카리스마를 얻기 위해서는 그가 격렬한 내적 지옥을 통과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반면 “옴 진리교에 귀의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아사하라가 수여한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를 얻기 위해 자아라는 귀중한 재산을 아사하라 쇼코라는 ‘정신은행’의 대여금고에 열쇠 째 맡겨버린 듯하다”고 한다. “아사하라 쇼코가 소유하는 ‘보다 거대하고 보다 깊고 균형이 깨진’ 개인적 자아에 자신의 자아를 고스란히 동화시키고 연동시킴으로써 그들은 의사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를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다. 거칠게 얘기하면 옴진리교 신자들이 심적 편안함을 위해 생각을 멈추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종교에서 구원을 찾는다. 그러나 만일 종교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원을 찾아야 할까?” 이것은 하루키가 인터뷰를 하면서 던진 질문이었다. 구원은 차치하고 나는 교주 아사하라 쇼코 또 그를 추종하는 맹목의 신도들, 대체 이들에게 믿음이, 이 맹신이 어떻게 시작되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궁금증은 에릭 호퍼에게서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길위의 철학자라 불리는 호퍼는 모든 광신적 신자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광신적 성향은 같다고 분석한다. 그것이 기독교도든, 이슬람교도든, 민족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대의와 교조의 내용은 다르지만 그것을 유효하게 만드는 것 속에는 이런 획일적 요소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대중운동이 추종자들을 끌어들이고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은 자기발전 욕구를 충족시켜서가 아니라 자기부정 열망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자신을 부정하게 되고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편이 가능한 것을 시도할 때보다 신뢰를 잃을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이들이 믿는 것은 자신의 경험이나 사고가 아니라 경전에서 나온 말이다." 결국 맹신은 자기 불신에서 나온다는 얘기. ‘광신’에 대해 호퍼는 이렇게 정의한다.
“자신과 화해한 자만이 세계에 대해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자신과의 조화가 깨지고, 자기로부터 거부당하고 자포자기하고 자기를 불신하거나 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고반응성 물질이 된다. 불안정한 화학원소 모양으로 손에 잡히는 아무것하고라도 결합하려 드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거부당한 자신만으로는 자신감을 일으키지 못하며 무엇이 되었건 오로지 자신이 신봉하게 된 그 무언가, 그 기둥에 열정적으로 매달릴 때만 자신감을 얻는다....... 그의 자신감은 자신이 지지하는 대의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행위에서 나온다. 광신자는 사실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가 어떤 대의를 신봉하는 것은 그것이 신성하며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자기가 열정적으로 매달릴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조화’ 이 말은 자기를 긍정하라는 말일 터인데 달리 말하면 내가 찌질한 것을 인정하자는 얘기다. 어렵게 얘기하면 ‘자기 배려’가 필요하다는 얘기. 무언가 모자라는 내가 바로 나이고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내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곳이 출발점이 될 때 구원은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이다. 구원은 외부의 어딘가에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원은 '나'에게서- 그 '나'가 아무리 찌질하다고 하더라도- 시작되며 나에게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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