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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메 소세키 문학예술론
나쓰메 소세키 지음, 황지헌 옮김 / 소명출판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나쓰메 소세키는 1900년 그의 나이 34세에 영국유학 길에 오른다. 그의 말대로라면 영국에 머물렀던 2년여의 세월은 그에게 있어 가장 불유쾌한 시간이었다. 연간 1800엔이라는 비용이 정부로부터 지급되었지만 그 돈으로 영국에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듯싶다. 그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허름한 하숙집으로 이사를 하고 입고 먹는 것을 아껴 책을 사는 등 어려운 생활을 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의 작품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문학론』의 서문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본인의 소회가 가장 절절하게 나타나 있다.
<문학론 서>는 이 책이 어떻게 착상이 되었으며 어떤 인연을 거쳐 어떤 연고로 출판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밝혀두었다. 소세키는 이런 과정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듯싶다. 어째서 자신이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지, 영국에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공부했는지, 하라는 영어공부는 제쳐두고 왜 영문학을 공부했는지, 키 크고 피부가 투명할 만큼 흰 영국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등으로 서문을 가득 채웠다. 대부분의 이론서들이 글을 쓰게 된 목적이나 본문을 간결하고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으로 서문을 대신하는 경우와는 달리 소세키의 <문학론 서>는 억누르고 억눌러도 조금씩 터져 나오는 사적인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이 서문을 나는 여러 차례 읽었다. 읽을 때마다 조금씩 이 예민한 사내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었다.
문학론, 회화론, 연극론 등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그가 대학에서 강의 했던 자료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원래 유학당시 소세키는 문학이 어떤 필요에 의해 태어나고 발전화고 쇠퇴하는지를 심리학적으로 또 사회학적으로 규명하려 했다. ‘문학서를 읽고 문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피로써 피를 씻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의 이런 연구계획은 원래 10년을 기한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학을 마치고 동경에 돌아왔을 때 그는 대학 강의를 의뢰받게 되고 그는 이 연구 자료로 강의를 하게 된다. 때문에 이 책은 강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순문학을 하는 학생들을 배려한 탓인지 그는 설명을 위해 예를 드는데 그 예들은 너무나 탁월하다.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소설가라기보다 차라리 수사학자라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소세키는 문예가의 이상(理想)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미적정조, 진실에 대한 이상, 사랑 도덕에 대한 이상, 장엄에 대한 이상이 그것이다. 이 네 종류의 이상이 시세에 따라 유행하고 사람들에게 환영받는다는 것인데 소세키 당시의 문예의 이상은 ‘진’이었던 것 같다. ‘진;을 중시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넘어 미와 선과 장엄에 손상을 입히고 있다고 한다. 소세키가 예를 들고 있는 작품들은 모파상이나 셰익스피어인데 그들의 작품이 문예의 네 가지 이상 중 지나치게 한가지에만 편중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된 <문학예술론>은 문학전공자들이 읽어야할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사생문이나 비평가의 태도, 창작자의 태도 등 곱씹어 읽어야할 내용들은 따로 노트를 마련해 둔다. 공들여 읽어야했고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어쨌거나 이제부터는 그의 문학론을 토대로 작품을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너무 오래 소세키바라기를 하다 보니 자꾸만 다른 책에 추파를 던지고 싶어진다. 헤픈 여자의 고질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