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몽의 집

 

                  김형수

 

 

떠벌이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죽음의 링에서
그 집을 발견했다

맞고 터지고 정신을 잃다보면
들어가 쉬고 싶은 방문이 보인단다

나, 지금 그 앞에 와 있다 

시대의 슬픈 관능 위에서
더불어 궁핍했던 지상의 촉수觸手들아
 

아프고 병든
인간들의 극장에서
맹인가수처럼
우리는 노래했다

세상의 혼란과 사랑의 목마름을
저 완강한 삶의 공허 앞에
주저앉은 사람을, 인생을, 이별을

이제는 목도 쉬고
듣는 이도 없다
나도 들어가 편하게 눕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하마드 알리가
링 위에 누우며 했던 말을 떠올린다

너를 먼저 보내고 싶었는데
내가 와서 이렇게 기다리는구나

 
초등학교 4학년 때 권투 글러브를 낀 주먹에 맞아본 적 있다. 단 한방으로 나는 기절했다. 그 둔중한 충격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만화에만 있는 줄 알았던 반짝이는 별,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 나도 봤다.  

아무리 때리고 맞는 것이 일인 권투 선수라지만 수없이 얻어터져서 쓰러지면 저런 문이 보일 것 같다. 그냥 의식을 놓고 들어가 쉬고 싶은 문 말이다. 무하마드 알리는 죽도록 맞고 쓰러졌을 때 저 문을 보았단다. 그는 그것을 ‘혼몽의 집’이라고 이름 지었다.

시인도 권투선수와 다르지 않다. 혼란한 세상의 펀치, 목마른 사랑의 어퍼컷, 완강한 삶이 날린 라이트 훅 모두 맞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같은 펀치를 맞은 사람들을 위해 노래도 불렀을 것이다. 이제 시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제발 ‘너를 먼저 보내고 싶었는데/내가 와서 이렇게 기다리는구나’라는 말이 단지 알리의 말에 그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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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2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2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0-03-04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요????전 초등학교때 태권도를 배우던 남동생에게 발길로 차인후로 그 아이를 아직도 두려워하는거 같아요~.ㅋㅎㅎㅎㅎ

반딧불이 2010-03-05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십여년이 지난 어느날 제 남동생이 학교 선배라며 데리고 온 녀석이 저를 때렸던 녀석이었거든요. 제가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그 얘길 했었는데...녀석은 기억도 못하더라구요. 하물며 남자가 어떻게 여자를 팰수 있냐며 자기는 그런놈 아니라고 발뺌까지 하더만요.

스트레인지러브 2010-03-05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릴 적에 얻어맞은 애한테는 어른이 된 후도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움찔하죠.
저도 그런 면에선 옛날에 저 팬 애랑 부딪히면 지금은 덩치도 비슷하고 꿇릴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움찔거리게 되더군요. 죄진 것도 없는데ㅠㅠ
아, "너를 먼저 보내고 싶었는데/내가 와서 이렇게 기다리는구나" 이 구절 보고 생각난 게
있어요. 오늘 나가이 다카시의 "로자리오의 사슬"이란 수필 읽었는데 거기서 백혈병 걸린 남편 두고 떠난 아내 심정이 저런 심정일까... 그런 생각드네요

반딧불이 2010-03-06 00:24   좋아요 0 | URL
어? 제게는 아주 생소한 이름이네요. 저도 꼭 읽어볼께요. 마음님은 일본문학에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스트레인지러브 2010-03-10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일본문학 수업 들으면서 알게 된 이름이었네요. 저도 요즘에 소세키나 아쿠타가와를 축으로 근대 일본문학에 관심이 생기면서 교양수업 하나 들었는데, 그 수업 첫 강의에서 듣게 된 이름입니다. 물리학자/의사로 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폭 당시의 생존자인 사람인데
http://blog.naver.com/dogona2006?Redirect=Log&logNo=80044201436
수필 전문입니다.(스캔본입니다마는) 요즘 세상에서 보면 아내가 너무 헌신적이라든가
"반딧불의 숲" 같은 기분도 들어 한국 사람이 꼭 공감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번 읽어보시려면 위 사이트 참조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

반딧불이 2010-03-11 01:49   좋아요 0 | URL
아, 마음님 방사능을 연구했던 학자라고 <로사리오의 사슬> <아버지의 기도>라는 책이 있어서 찜만 해두고 있었어요. 이렇게 바로 읽어볼 수 있게 링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일본문학을 전공하시나보군요.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스트레인지러브 2010-03-16 12:00   좋아요 0 | URL
저도 별로 아는 게 없어요. 일본어 부전공이긴 한데 막 시작한 단계라서 ^^;
제가 더 많이 배워야 할 입장입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