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마음 - 시인 문태준 첫 산문집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네 권의 시집을 낸 한국 서정시의 적자 문태준 시인의 첫 번째 산문집이다. 산문 역시 시 만큼이나 서정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책은 ‘느린 마음’ ‘느린 열애’ ‘느린 닿음’ ‘느린 걸음’ 의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런 구성에 맞춰 읽기보다는 어린 시절 그가 보아온 풍경과 가족들의 모습, 또 하나의 가정을 일구고 아내와 아이들을 거두는 중년 사내의 모습 그리고 그가 읽은 많은 책과 불교적 사유의 세 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읽었다. 나누어 읽기는 했지만 그 나눔은 수채화 같은 이미지로 그리고 시인이라는 느낌으로 언제나 수렴되곤 했다.

수채화의 주인공은 어린 아이였다가 어느새  한 여자의 남편이 되어 차를 끓이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또 어느새 여덟 살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일찍 귀가한 날은 우렁 각시처럼 아이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기도 한다. 그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또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남편이지만 나는 그가 천상 시인이라는 것을 잠시도 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어머니 아버지의 ‘얹힐라’ ‘소 받아라’ ‘이제 오느냐’ 등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 말 뒤의 미처 꺼내놓지 못한 어른들의 마음을 읽어 그것을 언어화하는 것이 그랬고, 예닐곱 살 아들의 자라나는 모습을 곰살맞게 지켜보면서 말버릇에서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아버지의 사랑에서도 또한 그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것은 산문에서 그의 시의 단초를 발견할 때였다.

   
  그 언젠가는 소복차림의 동네 아주머니가 아침 식전에 곡을 하는 것을 여러 날 보게 된 적도 있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그 아주머니는 남편의 무덤 앞에서 길고 긴 곡을 하고서야 내왔습니다. 까마귀떼가 요란하게 구천을 날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식전바람에 곡을 하고 내려갔고, 햇무덤은 누군가 급한 일을 보러가 덩그러니 남겨진 반죽처럼 또 마르고 있었습니다.             
                                                <상여가 지나가는 오전, 부분 >
 
   





햇무덤


까마귀가 한 마리 또 두 마리 울며 날아가
죽은 나무에
나무의 폐에
흉탄처럼 내려앉는

슬픈 九天

여자는 식전바람에 곡을 하고 내려갔네
누군가 치대다 급한 일 보러가
덩그러니 남겨진
반죽처럼

또,
마르는 
햇무덤 

         <시집『그늘의 발달』에 수록> 

 산문의 몇 구절이 말을 아끼고 행을 가르자 그대로 시가 된 경우다. 아니 시가 산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산문보다 시를 먼저 보았다. 누군가 치대다 둔 밀가루 반죽과 햇무덤의 비유가 가슴에 와 닿던 시였다. 시를 먼저 본 탓인지 여전히 시가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산문과 시의 제목이 같은 <아, 24일>도 있다. 또 어릴 때 시인이 그의 부모님께 듣고 자랐던 ‘이제 오느냐’라는 말을 이제 시인이 아버지가 되어 그의 아이들에게 한다. 시속에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다. 또 시인의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가 된 시인이 있다. 시인의 말대로 ‘얼금얼금 엮었으나 울이 깊은 구럭 같은 말’을 하는 풍경이 살뜰하게 드러나는 시다.

이제 오느냐

화분에 매화꽃이 올 적에
그걸 맞느라 밤새 조마조마하다
나는 한 말을 내어놓는다
이제 오느냐,
아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
나는 또 한 말을 내어놓는다
이제 오느냐,

말할수록 맨발 바람으로 멀리 나아가는 말
얼금얼금 엮었으나 울이 깊은 구럭 같은 말

뜨거운 송아지를 여남은 마리쯤 받아낸 내 아버지
에게 배냇적부터 배운 

시집과 산문집을 함께 읽는 즐거움은 남다른 것이었다. 또 보태어야 할 즐거움은 시인의 불교적 사유와 그가 읽은 책들이다. 시인에게 책은 단지 종이로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보르헤스가 자연만한 책이 없다고 했듯이 시인이 읽은 종이책뿐만 아니라 자연의 책을 읽는 것을 간접 경험하는 즐거움도 또한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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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7-27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저 이 책 담아갑니다.
문태준의 첫번째 산문집이라는 것만으로도.^^

반딧불이 2009-07-28 00:19   좋아요 0 | URL
넵! 읽으실 책이 많으신걸로 아는데....천천히 읽으셔용~

라로 2009-07-2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디불이님의 뽐뿌질이라니!!!ㅎㅎ

반딧불이 2009-07-28 00:20   좋아요 0 | URL
ㅎㅎ 나비님 자전거 바람이라도 빠지셨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