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 Kafka Franz
박홍규 지음 / 미토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가장 싫어하는 장르 중의 하나가 자서전이다. 이 부류를 싫어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10여 년 전에 읽은 스콧 니어링 자서전이 가장 최근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평전도 자서전과 유사한 느낌을 가지고 싫어했다. 누군가에 대한 한 권의 책을 써야한다면 그 대상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 담보되어야 가능한 것이 평전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사랑과 동족인 애정은 언제든 제 눈에 씌울 콩깍지를 예비해두지 않는가?

이 책의 저자 역시 ‘들어가는 말’에서 “변신을 꿈꾸는 내 친구 카프카”라고 카프카에 대한 살가운 애정표현을 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카프카를 사랑하는 몇 가지 이유를 들고 자신이 카프카를 친구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있다. 카프카에 대한 사랑을 500쪽이 넘는 분량의 한 권 책으로 묶어낼 정도라면 사랑의 증거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니 용서 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으랴. 오히려 마음껏 사랑하시라고 눈감아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나는 눈감아도 저자는 눈 크게 뜨고 올곧게 사랑하기를 바라고 싶다. 왜냐하면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에 게 알려진 모습과는 다른 카프카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카프카에게 붙여진 ‘불안과 고독’이라는 규정이 영 못마땅하다. 그는 카프카에게 ‘권력과의 투쟁’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붙여주고자 한다. 그는 이 새로운 이름표를 위해 카프카의 대부분의 작품과 카프카에 대한 많은 연구서적을 동원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와 연극 등도 언급해두었다. 카프카의 생애에 대해서는 유년기 성장기 등 시간적인 순서 외에도 그의 생애에 두드러진 사건 또는 주제별 접근도 잊지 않았고 각 작품에 대한 다른 연구자들의 견해도 꼼꼼히 요약 정리해두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카프카의 성장 배경뿐만 아니라 카프카에게 중요한 인물이 아버지 이외에도 두 사람이 더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이나 약혼을 하고도 끝내 결혼에 이르지 못한, 그러나 사귀던 5,6년 동안 오백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던 펠리체라는 여성과 평생 카프카의 친구이고 문학 동료이자 조언자로서 카프카 살아생전 단 한번도 거절을 몰랐던 친구 브로트이다. 그러나 브로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불태워버리라는 카프카의 마지막 부탁을 처음으로 거절함으로써 우리에게 더 많은 카프카를 알려 주었다. 저자가 참조한 책들 중에서 구스타프 야누흐가 지은 『카프카와의 대화』는 따로 읽어두고 싶다.

읽다만 『마르크스 평전』이 책꽂이에서 벌겋게 빛나지만 나는 평전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평전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구입하는데도 또 읽는데도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그것은 순전히 이 책을 쓴 저자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책은 카프카에 대한 저자의 사랑을 확인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는 책이다. 저자는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는 피켓을 들고 "불안과 고독, 절망과 소외의 작가”라는 기존의 카프카에 대한 평가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 나도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구석들이 있다(유태인, 결혼, 정신적 왜곡 - 출근못할까봐 보류). 저자가 대부분 부정한 카프카에 대한 해석들은 모두 카프카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기존의 해석에 저자의 주장을 보태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만의 이름표를 붙이고 싶은 것은 당연한, 또 사랑받아 마땅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명의 독자가 읽고 억지가 아닌 천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온다면 그건 당신이 사랑하는 작가의 천재성에 다름 아니잖은가.  

 

사족이지만, 저자에게 “화풀이”로 책 쓰지 마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짧지도 않은 글의 재인용, 내가 읽는 책이 번역문인가 싶어 저자를 다시 확인하게 하는 비문, 수많은 오탈자들이 마치 말더듬이 변호사의 변론을 듣는 것처럼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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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03-29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객관적인 자서전이란 없고 냉정한 평전이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만
한국의 슈테판 츠바이크라 불리는 박홍규 선생도 카프카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아서
반딧불이님에게 지적을 당하는군요.ㅎㅎㅎ
근데 오탈자는 출판사 교정팀에서 교정을 하지 않은 책임도 있다 봅니다.

반딧불이 2009-03-30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근이죠. 파이프 담배를 비껴 문 멋진 턱수염의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공연히 마음이 뒤틀려서 한마디 덧붙여버렸네요~

소나무 2012-01-3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전을 쓰기위한 필요조건이 그 인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만...객관적인 시각을 잃고 자칫 찬양조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 글은 균형이 없어져 버리니깐요... 작가가 그 인물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평전의 기본이 된다는 이야기나 또한 카프카를 읽고 천개의 해석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천재라는 생각또한 진부하군요.

반딧불이 2012-01-31 00:28   좋아요 0 | URL
어떤 인물에 대해 최소한의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평전을 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애정이 균형을 읽고 자칫 찬양조가 되지 않을까 싶어 평전을 읽지 않았었구요. 그럼에도 이 평전을 읽었던 것은 저자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죠.

저의 오독인지 모르겠으나 저자의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서 카프카에 대한 다른 의견들을 무시하는 듯 여겨졌습니다. 저는 저자의 의견이 중요하듯이 다른 사람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의미로 적었습니다.

어떤 신선함을 보여드릴 생각으로 리뷰를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제 글의 진부함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