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즈마리 > [퍼온글] 언어철학 관련 책들2

 

자료 출처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108&eid=GUivX33r4O6jRsDRnHg+QxQ0uvI/fmp4

아래 글에 이어...네이버에서 퍼왔습니다. 사진은 제가 넣었습니다.

K. 포퍼, '추측과 논박'(1, 2권)
- 비엔나 학파를 격침시켰지만, 동시에 후계자로도 여겨지는 포퍼의 저작입니다. 보통 '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꼽지만, 절판된 탓에 이 책을 꼽았습니다. 포퍼의 입장들을 잘 반영한 여러 편의 글들을 싣고 있습니다.
- 여러 철학적 입장들에 대한 포퍼의 입장이 잘 나타나있고, 그의 입장을 대표하는 반증주의에 대한 설명도 잘 나와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 언어 철학의 두 주류를 형성한 위대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대표적인 후기 저작입니다. '논고'와 달리 요약적이지 않고, 많은 예와 실례를 곁들여 독자와 대화하는 듯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말이 쉽지만, 동시에 어렵기도 하죠.
- '논고'와 마찬가지로 여러 참고 문헌과 함께 읽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J. 오스틴, '말과 행위'


- '철학적 탐구'에서 비롯된 언어 철학의 거대한 흐름인 일상 언어 철학을 대표하는 오스틴의 강의록입니다. 총 12개의 강의를 싣고 있으며, 오스틴의 입장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발화행위, 발화수반행위, 발화효과행위 등과 같은 초기 화용론적 견해가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이후 설에 의해 정교화 됩니다.

J. R. Searle, 'Speech Acts'
- 언어 행위론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오스틴의 입장을 이어받아 정교화 시켰으며, 'Speech Act'(언어 행위)라는 이름으로 체계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세웠습니다.

H. G. Gadamer, 'Truth and Method'
- 언어 철학자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해석학에서의 '언어적 전환'(물론, 하이데거가 선구적이지만)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가다머의 대표적인 저작입니다. 심리학의 문제로, 혹은 심리학적 방법의 문제로만 여겨지던 이해를 언어의 차원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공헌을 세웠습니다.

 


J. 하버마스, '탈형이상학적 사유'


- 언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지는 않지만, 현대 철학의 언어적 전환을 사회 이론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하버마스의 저작입니다. 하버마스는 오스틴, 설의 언어 행위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날카로운 비판과 더불어) 가다머를 잇는 대표적인 해석학자이기도 합니다.
- 하버마스의 언어 철학에 대한 태도가 잘 정리되어 있는 글입니다.

 

 


W. 레제-쉐퍼, '칼 오토 아펠과 현대 철학'
- K. O. 아펠은 가다머, 하버마스와 함께 해석학의 거두로 꼽히며, 하버마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스승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하버마스의 선험 화용론은 아펠에게 힘입은 바 큽니다. 아펠은 영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언어적 전환을 독일 철학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하버마스에 대해서도 입문서를 쓴 바 있는 저자는, 이 글에서 아펠의 선험 화용론을 중심으로 그의 전반적인 사상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소쉬르, '일반 언어학 강의'
- 소쉬르는 비트겐슈타인도 그러했듯이 보통의 의미에서 '저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대표적인 저작은 그의 강의를 모아놓은 글이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달리 소쉬르는 언어학적 전통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양자 사이의 유사성을 꽤 발견할 수 있죠.

 

 

R. 해리스,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
- 현대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지만, 서로 간에 어떠한 교류도 없었던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을 다루고 있는 글입니다. 둘 모두 체스 게임과 언어 사이의 유비를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양자 사이의 유사점만큼이나 차이점도 많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저자는 대부분 소쉬르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 규칙이나 문법과 같은 주요한 내용을 이해하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W. V. O. 콰인, '논리적 관점에서'
- 콰인은 프레게-러셀적 전통에서 출발하여 현대 철학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분석철학계의 거장으로 꼽힙니다.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많이 수행했고, 철학의 고전적 문제인 분석성, 종합성, 동일성 등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었습니다. '존재론적 개입'은 그의 상대주의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표어로 등장하지만, 이는 조금 극단적인 해석이긴 하지요. 서로 다른 언어 사이의 번역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번역 불가능성 테제'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 본 저작은 그의 대표 논문들을 모은 것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인용되는 글입니다.

 

S. 크립키, '이름과 필연'
-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철학자로 꼽히는 크립키는 '고정 지시어'라는 개념을 통해 동일성, 필연성, 선험성 등과 같은 고전적인 철학적 개념들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들을 탐구합니다. 필연성, 가능성 등을 다루는 양상 논리학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죠.
- 본 저작은 3회에 걸친 강연을 모은 것으로, 프레게-러셀의 고유명사에 대한 기술 이론을 비판하면서, '고정 지시어' 개념을 통해 필연성과 선험성을 구분하고, 동일성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법을 제시합니다.

 



R. 로티,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
- 로티는 언어적 전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비트겐슈타인, 듀이, 하이데거를 위대한 철학자로 분류합니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에 기반하고 있고, 언어는 기본적으로 관행을 따른다는 점에 기초하여, 우리의 사고는 실재를 그대로 반영하는(혹은 해야 하는)거울과 같다는 이미지를 깨는 데 그의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정신이라는 것이 하나의 허상임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 그는 분석철학적 입장에서 가다머의 해석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대화를 지속시키는 중개자로서의 철학 개념을 구상합니다. '자민족 중심주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상대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죠.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이 종횡무진 나열되고 있어서, 그 현란한 지식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혹은 반감을)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N. 촘스키, '언어 지식'
- 촘스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생성 문법' 개념을 통해 현대 언어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국내 번역된 촘스키의 저작들은(정치적 에세이를 제외하면) 대개 그의 기본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는 듯 하며, 이 책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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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세상은 속고 싶어한다(Mundus vult decipi)

세상은 속고 싶어한다(Mundus vult decipi)

오늘 갑자기 전에 쓴 "서평"이 생각나서 뒤적이다 펴보았다. 거기에 보니 지금의 우리 현실하고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 있어서 일부만 다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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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스트 푸어만은 중세의 최고 통치 권력자 중 하나였던 교황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까닭은 중세의 이중적인 권력 체계에서 황제를 능가하는 전유럽적인 권력, 실질적으로 중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고의 권력은 역시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는 최초의 교황 베드로부터 시작된 교황이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런데 로마 주교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임명하면서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하면서 로마 사람 클레멘스를 후계자로 임명했다고 하는데, 이 내용은 위조된 편지에 들어 있었고, 이것이 진짜가 아니란 사실은 아주 일찍부터 알려졌지만 언제나 인용되고 있다. 이 부분은 다시 4부에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제4부 위조의 시대'였다. 그것은 어떻게 한 시대의 역사를 다루는 책에서 그것도 중세 1,000년의 역사를 위조의 역사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저자의 혜안에 이마를 짚지 않을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앞서 베드로가 로마인 클레멘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 그들이 대대로 이어진 로마교황청의 교황이 되고, 다른 신부들, 다른 성직자들 보다 상위에 서게 되는 권위의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중세가 얼마나 엄청난 위조의 시대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심지어 "어쩌면 중세의 문서 전체가 위조일지도 모른다"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중세의 사람들은 그토록 도덕성이 결핍된 이들이었던가? 토마스 만은 중세에는 "세계가 그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그것은 세계 속에서 현실이 되었다"고 말하고 허구와 전설이 실질적인 작용을 하던 시대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위조란 것은 형식의 위반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은 규정되고 객관화된 법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조는 중범죄로 다스려지고, 법조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따지기 위해 전문적인 지식을 요할 만큼 구문 자체에 집요하게 집착한다. 그러나 중세는 이와 다른 시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세의 사람들은 법은 곧 신의 명령이었다. 법은 인간이 규정한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 인간에게 내려온 것이다. 현대인들에게는 법이 곧 정의는 아니지만, 중세인들에게 법은 곧 정의였다. 그러므로 법조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정의만이 법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법령 안에 적힌 내용이 제 아무리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중세적 가치 판단에 의해)불의라고 판단되면 효력을 잃었다. 중세의 정의는 개인적으로 느낀 정의와 일반적인 도덕성이 합쳐진 개념이었다. 즉, 오늘날엔 판결이 내려지기 전엔 누구나 무죄로 추정되는 법 원칙이 설령 여론이 느끼기엔 확실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지켜져야 하는 시대이지만 중세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세를 지배하던 체제는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어야 했다. 그것은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신의 섭리가 합당하게 일치되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만 올바른 질서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가령 11세기 교회에서는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한 번 더 성수를 뿌리는 것을 낭비로 여겼다. 그러자 얼마 뒤 초대 로마 교황 클레멘스1세가 썼다는 편지 한 통이 나타났고, 그 편지엔 이런 일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중세의 사람들은 이것을 구분해낼 수 있을 만한 지각이 없었던 것일까? 그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의 영역에서 위조는 범죄겠지만 신의 영역에서는 그것도 진리라고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속고 싶어했고, 그리고 기꺼이 속아주었다. 예수 사후 수백여 년, 거의 천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짊어졌던 십자가의 목재부스러기와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던 아마포 천쪼가리가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이것들을 기꺼이 믿음의 증거로 삼았고, 수도원은 이런 예수나 성인의 물건들을 신주처럼 받들었다. 설령 누군가가 이것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더라도 효력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 시대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유일한 근거는 그것이 이단이냐? 그렇지 않은가라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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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말을 조금만 바꿔보면...

우리 시대에 진짜와 가짜는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국익에 보탬이 되느냐 아니냐?와 같이 종종 이단 심문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정말 속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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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지식형성의 사회학

 
지식형성의 사회학 - P.L.버거, T.루크만/ 박충선 옮김/ 기린원(1991)


인간은 동물의 세계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느 고등포유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그 종(種) 특유의 환경이 없다. 즉, 인간 자신의 본능적인 조직에 의해 완전히 구성된 환경이 없다. 즉, 인간 자신의 본능적인 조직에 의해 완전히 구성된 환경이 없다. 그런 의미의 인간의 세계란 없다. <본문 75쪽>


인간이 되어가는 방법이 인간의 문화만큼 다양하다는 것은 인종학적인 상투어이다. 인간다움이란 사회 - 문화적으로 바뀔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 - 문화적 형성의 변화성을 결정짓는 생물학적으로 고정된 토대라는 견지에서 볼 때, 인간의 본성이란 없다. <본문 78쪽>


인간다움이 형성되는 특별한 형태는 사회 - 문화적 형성에 의해 결정되며, 그것들의 수많은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인간은 본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 더 의미깊은 말이다. 더욱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생산해 낸다는 것이다. <본문 78쪽>


사회적으로 결정된 환경 속에서 인간 유기체와 인간 자아의 공통적인 발달은 특히 유기체와 자아 사이의 독특한 인간관계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관계는 특이한 것이다. 한편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의 유기체와 같이 육체로 되어 있다. 다른 한 편, 인간은 육체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육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실재로서 자신을 대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항시 육체임과 동시에 육체의 소유 사이의 균형, 즉 반복하여 옷을 입혀야만 하는 균형 속에서 방황한다. <80쪽>


인간이 고립된 존재로서 발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립된 인간이 인간의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고립된 인간의 존재는 동물적 차원(물론 이런  차원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공유하고는 있지만)에서의 존재이다. …<중략>…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항시, 그리고 동일한 정도로 호모 소시우스(Homo Socius)이다. <81쪽>


무인도에 사는 고립된 개인이라도 자신의 활동을 습관화한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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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책이라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사회학의 기초 이론서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제는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버거와 루크만의 "지식형성의 사회학"을 읽으며
인간은 육체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읽고 새삼 머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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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카를 > 윤리라는 철조망; 원함과 행함


원함과 행함

자크 엘룰 지음, 양명수 옮김 / 전망사
상품평점 ★★★★★ 

 

[To Will and To Do: An Ethical Research for Christians]라는 제목으로 1964년  출간된 이 책은, 국내에는 1990년 번역되었다가 절판되었다. 1964년은 기술의 역사 (The technological society)가 영문으로 번역될 무렵으로, 이 책은 현대사회의 기술지배하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대안이라 할 수 있는  윤리의 올바른 접근에 대해 바르트의 신학적 입장을 적용한 것이다.

엘룰은 먼저 윤리의 기원이 인간의 타락에 있음을 지적한다. 선과 악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자기의 기준을 제시하는 순간 타락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제시하는 인간적 이성에 의한 선과 악의 구분은 결국 심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윤리의 결과는 자기정당성의 주장과 다른 사람에 대한 정죄이다. 에덴에서 그러했듯이... 더군다나 선과 악을 알기는 하나 스스로 그 기준을 충족시킬 능력은 없다.

선악의 기준인 윤리는 결국 타락의 질서이다. 계시가 아닌 인간규범내의 질서, 그리고 동시에 필연성의 질서이다. 필요한 것이 선이 된다. 선들은 새로 만들어지고 우선순위를 달리한다. 이것은 변화하는 가치에의 충성을 의미한다. 윤리란 항상 변하며 이것은 결국 불변하는 것과는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이 두가지의 가치를 가진 자는 이 충돌을 경험한다. 그리스도인 안에서의 갈등이다. 인간의 윤리(그것이 그리스도교 윤리라 할지라도)와 하나님의 계시 사이의 충돌이다.

도덕은 그것이 특정 윤리이론에 근거를 둔 이론도덕이든(공자, 모세, 스토아, 아퀴나스, 칸트, 니체, 마르크스, 사르트르), 사회의 영향을 받은 체험적 도덕이든(그리스도교 사회, 공산주의 사회,부르조아 사회) 인간을 자기 뜻대로 자유롭거나 해방되게 하기보다 이론 자체나 사회의 틀속에 인간을 소외시킨다. 비도덕은 그렇다고 대안인가? 도덕의 탈피는 다른 도덕으로 인도하고, 결국 인간을 서로 자기정당화로 분리시키고 서로를 은폐시키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의 현대사회는 부르조와윤리로 시작된 기술윤리가 지배하고 있다. 그 특징은 [행위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과(의도나 동기는 중요치 않다), 그 기준이 정상(normal)이냐, 다수에 속하느냐에 있다. 그래서  성공은 선이 되고 실패는 악이다. 이 시대는 [적응이 최대의 미덕]이며 덕은 노동과 훈련, 인내와 극기이다. 기술노동에 필요한 구조적 선이 윤리적 선의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엘룰은 따라서 그리스도교 윤리란 불가능하다고 한다. 결정된(defined) 선이란 존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과 윤리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윤리는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신앙을 상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이다. 이럴 때 윤리는 권고이어야 한다. 최소한의 요구이다. 또한 판단을 내세우지 않는 선한 행동이다. 이 윤리는 하나님의 뜻과 세상윤리 사이의 대립을 보여주는, 사람들 속에 나타남이다. 아무 자격이 없지만, 그리스도로 이 땅에 남겨진 사람은 사람들 속에 살며 그들을 위해 살아야하고 말해야하고 구부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수많은 선과 악의 기준 속에 살고 있다. 좌와 우, 노와 소, 빈과 부, 민족, 출신, 학식, 수입, 예의, 종교, 유대인인가, 흑인인가, 아랍인인가 수많은 철조망들이 바리새인과 같은 엄격한 이론으로 무장한 우리안에 살벌한  경계선을 드리우고 있다. 사랑하게 하려고, 서로 섬기게 하려고, 도와주게 하려고, 대접하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시고, 구하여 새사람 삼으셨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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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53)

오늘 저녁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발표한다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한 명의 작가'가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게 되는 특별한 제의(ritual)이기도 하다. 이번엔 한국 시인/작가의 수상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는데(이런 분위기라면 올해가 아니더라도 예상보다 빨리 우리는 노벨상 수상작가를 갖게 될 듯하다) 그럴 경우 특정한 작가에게 주는 상이라기보다는 '한국문학'에 주어지는 상이라는 성격이 더 강할 것이다. 그때 '한국문학'이란 (1)'한국어로 씌어진 문학'이면서 (2)'외국어로 번역된 한국문학'을 가리킨다. 문학상의 심사위원 누구라도 한국어로 우리 작품들을 읽(었)을 리는 만무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문학이란 '존재'는 즉자적이면서도 (번역에 의해 매개되는) 대자적인 존재이다. 즉, 즉자-대자적 존재이며, 이때 번역은 한국문학의 본질적인 규정항이다. 그거 없이 (한국)문학은 존재하지 않는다(사실, 사카이 나오키를 따라서 보다 일반화하자면, 번역 없이는 주체도 없다). 

 

 

 

 

한글날도 들어 있고 해서 해마다 이맘땐 한글이나 한국어 관련서들이 여러 권 출간되는 듯하다. 그런 사정도 고려하여 첫번째 꼽은 건 최경봉 교수의 <우리말의 탄생>(책과함께)이다.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란 부제가 내용을 어림짐작하게 해주는데, 소개에 따르면 "우리말 사전이 만들어지기까지 50년 동안의 길고 험난했던 전 과정을 최초로 집중 조명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민족사의 격동기에 오로지 우리말 사전 편찬 하나에 온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의 좌절과 고통, 그리고 완성의 기쁨이 담담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거기에 내가 더 보탤 말은 없다(굳이 보태자면, 저자는 '우리말의 죽음'에 관한 책도 공저로 썼다는 것. <한국어가 사라진다면>(한겨레신문사, 2003)이 그것이다).

한국어와 관련한 또다른 현대사, 혹은 야사로서 고길섶의 <스물 한 통의 역사진정서>(앨피)도 꼽아둘 만한 책이겠다. 책의 형식에 대해서 말해주는 제목은 내용에 관해서는 별반 말해주는 바가 없는데, 소개에 따르면 "이 책에는 갖가지 형태로 된 언어가 주제어로 등장한다. 우리가 쓰는 일상어와 유행어.영어.특정 표현.한자.한글 등 '협소한 의미의 말'뿐만 아니라, 삐라.국가보안법.근로기준법.저항시.국어사전.한글맞춤법.문법 등 언어를 매개로 구성된 각종 역사적 사건과 지표 등 '광의의 말'이 망라돼 있다." 거기서 저자가 끄집어내려고 한 것은 이 말(언어)를 매개로 한 한국 현대사의 '권력투쟁'이다. 요컨대, "사실 우리 현대사에서 말(언어)과 역사의 관계는, 말하려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자의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직후 '삐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뿌려주었지만, 그 이후 전개된 상황은 이 상상력과 권리를 뺏고 빼앗기는 과정의 연속이었다"는 것.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보다 확장시키고자 하는 독자라면, 언어학자 장영준 교수의 <언어 속으로>(태학사)를 참조해볼 만하다. 책은 한국어를 매개로 한 알기 쉬운 언어학 입문서인데, "발음, 어원, 어형, 통사, 의미 등 다양한 분야의 언어학적 이론들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더불어 "우리말의 유래에 관한 학문적 발견들을 제시하고, 어휘의 음운변화 및 의미분화의 과정을 밝힌다. 북한어에서의 모음변화, 모음조화, 표기법 등도 함께 소개했다." 서점에서 들춰본 결과 편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혹 그 책을 읽다가 보다 '학문적인' 관심을 갖게 된 독자라면 김진우의 <언어>(탑출판사, 2004)를 펼쳐보시길. (교수신문에 따르면) 이미 '우리시대의 고전' 반열에 올라와 있는 언어학 입문서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니어서, 학부에서 '일반언어학 입문' 강의를 들을 때 제일 처음 교재로 사용했던 책이다(너무 쉬운 책이어서 나는 '언어학'이란 게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지 의아했었다. 물론 이후에 일반언어학을 하려면 10개 국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말에 기가 죽긴 했지만). 작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언어에 대해서 알고 사랑하기 위해서 반드시 '언어학'을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니다. 좀더 느긋하고 감칠맛 나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언어학과 출신의 작가/언론인 고종석의 책들을 애독해보시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감염된 언어>(개마고원, 1999)이지만,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96), <국어의 풍경들>(문학과지성사, 1999), <언문세설>(열림원, 1999) 모두 지적인 산문으로 씌어져 있으면서 우리말에 대한 시적인 사랑이 넘쳐나는 책들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고종석은 몇 달 전부터 한국일보 지면에 매주 수요일 '시인공화국'을 전면으로 연재하고 있다(해서 나는 매주 화요일, 수요일에는 한국일보를 본다. 화요일자엔 '나는 왜 공부하는가'와 시인 강정의 '나쁜 취향'이 연재된다).

매주 한 시인, 혹은 한 권의 시집 읽기를 선보이는데, "요즘도 시를 읽나?"라고 생각하는 '교양 없는' 독자라면 이제라도 그의 시 읽기에 동행하면서 우리말과 시에 대한 사랑을 배워보시길 바란다. 사유는 언어라는 옷을 입고 있는바, 입는 옷만 패션을 따지지 말고 자신이 입은 사유의 옷이 혹 누더기는 아닌지 우리는 가끔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군말 하면 잔소리지만, 시란 게 바로 언어의 '명품' 아닌가. 비록 엽기시 같은 '전위적인' 명품도 있지만). 잘만 하면, 우리도 하이데거나 데리다 같은 사유의 거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어로 사유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최근에 나온 시비평집도 한권 소개하기로 하자. 얼마전 시집 <마징가 계보학>(창비)을 냈던 시인 겸 평론가 권혁웅의 <미래파>(문학과지성사)가 그것이다. 제목만으로는 책이 비평집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듯한데, 영어로는 'Futurism'이라고 하는 '미래파' 혹은 '미래주의'는 지난 세기초 이탈리아와 러시아에서 각각 발흥했었던 전위적(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을 가리킨다. 마리네티 등이 주도했던 이탈리아 미래파에 대해서는 <미래주의>(열화당, 2003)란 책이 요긴한 안내서로 보인다. 저자는 이 미술운동이 "전통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거의 것이나 낡은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 속도, 기계, 전쟁 등을 찬양하고 무정부주의를 지향함으로써 자국과 유럽 미술계뿐 아니라 문화계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러시아의 경우에, 미래파의 주동자는 마야코프스키 같은 시인들이었다(물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합류했지만). 그들의 선언문을 포함하고 있는 책이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책세상, 2005)이며, 책제목은 그대로 '미래파 선언문'의 제목이기도 하다(한번 맞아볼텨?).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새비평집의 제목을 감당할 만한 전위적인 시운동(이건 정치운동과 분리되지 않는다)이 과연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해서, 우리의 '미래파'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말 그대로의 미래파이다. 저자의 말을 잠시 옮기면, "나는 여전히 시의 역사가 감각의 역사라고 믿고 있으며, 그래서 시사의 기술은 전대 시인과 후대 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각의 주고받음, 곧 시적 영향의 수수관계에 대한 해명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감각적 현실이 이후의 감각을 보증하고 예견하는 것, 시는 그런 형식으로 발전해 왔다." 해서, 새로운 시는 새로운 감각(들뢰즈의 용어론 'sensation'), 새로운 센세이션을 보증하고 예견하는 시이기도 할 테다. 겨우 그런 게 너희가 느끼는 세계인가?, 라고 우리를 다그치며 따귀를 때려줄 시인들을 우리는 기다린다.  


 

 

 

세번째 책은 거꾸로 과거에 관한 책이다. 중세학의 대가로 인정받는 자크 르 고프의 <중세를 찾아서>(해나무)가 그것인데, 소개에 따르면 "중세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프랑스 역사학계의 거장 자크 르 고프의 학문적 여정을 집약해놓은 대담집이다. 이 책은 열정적이면서도 읽기 쉬운 문체로 감춰져 있던 혁신적인 모습의 중세, 종말론 때문에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던 중세의 정신을 오롯이 그려내고 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장-모리스 드 몽트르미가 대담을 정리했다." 중세는 사실 나의 직접적인 관심사가 아닌데, 특별히 이 책을 고른 건 '대담집'이기 때문이다(나는 '거장들'의 대담집을 좋아한다).

르 고프의 책은 이미 여러 권이 소개돼 있는데, 내가 갖고 있는 건 <서양중세문명>(문학과지성사, 2001)과 <연옥의 탄생>(문학과지성사, 2000) 등이다(물론 아직 완독하지 못했다). <서양중세문명>은 작년에 러시아어본이 나왔는데, 국역본보다 더 크고 더 두꺼운 판본이다(이 러시아어본에 대한 한 현지 서평은 러시아의 중세사에 대해선 이 만한 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었다). <연옥의 탄생>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 "즉 '제3의 처소'에 대한 신앙이 고대 유대, 기독교 이래 수세기에 걸쳐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추적하고, 중세유럽 문명의 개화기인 12세기에 탄생한 이후 급속히 발전한 과정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책이다. 개인적으로 르 고프보다 좋아하는 중세사가는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호이징하이며, 그의 <중세의 가을>(문학과지성사, 1997)은 '삶의 쓰라림'이란 장으로 문을 연다(이제나 저제나 삶은 쓰라렸던 것이다). 호이징하의 책들도 작년에 러시아어본이 나오고 한바, 내가 기꺼이 사들고 왔노라고 덧붙이는 건 사족이리라.   

 

 

 

 

네번째 책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아예 '시간이 사라진 세상(A World without Time)'에 관한 책이다. <괴델과 아인슈타인>(지호)이 국역본의 제목인데, 책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쿠르트 괴델'이라는 두 천재의 교우기를 겸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괴델의 연구와 그 의미에 대해서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어떤 연구인가? "1949년 괴델은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더 나아가 만약 그런 이론적인 우주들에서 시간이 부재하다면, 시간은 우리 세계에서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상대성이론의 아버지' 아인슈타인은 이에 충격을 먹고...

이 책을 꼽은 건 모처럼 눈에 띈 과학서이면서 동시에 괴델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이미지로 나열한 책들은 내가 모두 갖고 있는 책들이다). 그의 '불완정성 정리'라는 걸 제대로 이해할 만한 능력은 갖고 있지 않지만 아인슈타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의 '사생활'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해볼 용의를 나는 갖고 있다(이런 게 '대중심리'이다). <괴델의 삶>(사이언스북스, 1997)을 예전에 읽었었는데, 좀 실망스러웠다(그의 아내가 6년 연상의 연예인었다는 것 정도만 기억난다). 제대로 된 평전을 읽고 싶었는데(왜, '뷰티불 마인드'를 가진 수학자들의 전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가?) 이번 신간은 그런 갈증을 얼마간 해소시켜줄 걸로 기대된다. 올해 나온 따끈한 원서의 한 추천사는 이렇다: "괴델과 아인슈타인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동시에 물리학과 수학에서 그들이 이룬 업적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괴델이 이룬 업적을 매우 알기 쉽고 통찰력 있게 설명할 뿐 아니라 20세기를 괴롭혔던 철학적 전통을 예리하게 개괄하고 있다. 훌륭하고 인상적인 책이다."

 

     

 

 


마지막 책은 이런 책들을 만드는 출판인들 중 한 명에 관한 평전이다. 프랑스 출판계의 대명사이기도 한 '갈리마르'(시공 디스커버리 총서가 갈리마르에서 나온 것이다), 그 갈리마르의 창립자 '가스통 갈리마르'의 일생을 다룬 <가스통 갈리마르, 프랑스 출판의 반세기>(열린책들)가 그것. 처음 제목을 보고, 나는 '가스통 바슐라르'에 관한 책이 새로 나왔나 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갈리마르'였다. 이 갈리마르는 "앙드레 지드와 함께 NRF(갈리마르의 전신)를 창립하고 탁월한 작가 발굴 능력과 기획력으로 20세기 프랑스 문학과 사상의 산파 역할을 해낸 프랑스의 대표적 출판인이다." "저자는 갈리마르의 일생을 통해 출판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정신적 가치를 상업적 성공과 연계시켜야 하는 출판이라는 산업의 복잡한 실체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고. "숨겨진 작가의 발굴과 작가 쟁탈전, 문학상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 베스트셀러 탄생의 뒷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출판계 안팎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니까 읽어볼 만하겠다(왜, '뒷얘기들'이 재미있지 않은가?).

내주엔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국제도서전이 개최되며 알다시피 올해엔 우리가 주빈국으로 참여한다(작년엔 러시아가 주빈국이었다). '괴테와 박물관의 도시' <프랑크푸르트>(살림, 2005)에 대해서 한권쯤 읽어두는 것도 좋을 듯. '한국의 책 100권'까지 1년 만에 '성공적으로' 번역/출간해서 도서전에 출품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이 유일할 것이므로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출산률은 세계 최저이면서 평규수명은 선진국을 따라잡았다고 하니까 곧 우리는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것이다(제일 '어른'이 된다!). '작지만 강한 나라'가 우리의 모토이지만, 적어도 '작지만 늙은 나라'는 곧 확실하게 될 거라는 얘기. 늙어서 무엇하겠는가? 미리미리 책과 사귀어두길 권유하는 바이다...

05. 10. 13.

 


 

 

P.S. '앵콜'에 부응하여 한권 더 언급하자면, 라플랑슈/퐁탈리스의 <정신분석사전>(열린책들, 600쪽)을 넘어서는 가장 방대한 규모의 정신분석사전이 이번에 번역돼 나왔다.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편?)의 <정신분석대사전>(백의, 1551쪽)이 그것이다. 가격 또한 기록을 갱신하여 웬만한 전집 가격인 150,000원. 도서관에서나 구경해볼 책인데, 저자나 역자들이나 모두 놀랍다. 비록 번역어들이 통용될지는 미지수이지만. 루디네스코 여사는 자크 라캉에 대한 가장 방대한 평전으로도 유명하며 프랑스에서의 정신분석사에 관한 한 권위자이다(더러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나저나 라캉의 <에크리>는 언제 나오는 것일까?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나온다던 책 나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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