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세상은 속고 싶어한다(Mundus vult decipi)

세상은 속고 싶어한다(Mundus vult decipi)

오늘 갑자기 전에 쓴 "서평"이 생각나서 뒤적이다 펴보았다. 거기에 보니 지금의 우리 현실하고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 있어서 일부만 다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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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스트 푸어만은 중세의 최고 통치 권력자 중 하나였던 교황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까닭은 중세의 이중적인 권력 체계에서 황제를 능가하는 전유럽적인 권력, 실질적으로 중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고의 권력은 역시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는 최초의 교황 베드로부터 시작된 교황이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런데 로마 주교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임명하면서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하면서 로마 사람 클레멘스를 후계자로 임명했다고 하는데, 이 내용은 위조된 편지에 들어 있었고, 이것이 진짜가 아니란 사실은 아주 일찍부터 알려졌지만 언제나 인용되고 있다. 이 부분은 다시 4부에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제4부 위조의 시대'였다. 그것은 어떻게 한 시대의 역사를 다루는 책에서 그것도 중세 1,000년의 역사를 위조의 역사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저자의 혜안에 이마를 짚지 않을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앞서 베드로가 로마인 클레멘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 그들이 대대로 이어진 로마교황청의 교황이 되고, 다른 신부들, 다른 성직자들 보다 상위에 서게 되는 권위의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중세가 얼마나 엄청난 위조의 시대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심지어 "어쩌면 중세의 문서 전체가 위조일지도 모른다"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중세의 사람들은 그토록 도덕성이 결핍된 이들이었던가? 토마스 만은 중세에는 "세계가 그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그것은 세계 속에서 현실이 되었다"고 말하고 허구와 전설이 실질적인 작용을 하던 시대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위조란 것은 형식의 위반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은 규정되고 객관화된 법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조는 중범죄로 다스려지고, 법조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따지기 위해 전문적인 지식을 요할 만큼 구문 자체에 집요하게 집착한다. 그러나 중세는 이와 다른 시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세의 사람들은 법은 곧 신의 명령이었다. 법은 인간이 규정한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 인간에게 내려온 것이다. 현대인들에게는 법이 곧 정의는 아니지만, 중세인들에게 법은 곧 정의였다. 그러므로 법조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정의만이 법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법령 안에 적힌 내용이 제 아무리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중세적 가치 판단에 의해)불의라고 판단되면 효력을 잃었다. 중세의 정의는 개인적으로 느낀 정의와 일반적인 도덕성이 합쳐진 개념이었다. 즉, 오늘날엔 판결이 내려지기 전엔 누구나 무죄로 추정되는 법 원칙이 설령 여론이 느끼기엔 확실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지켜져야 하는 시대이지만 중세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세를 지배하던 체제는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어야 했다. 그것은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신의 섭리가 합당하게 일치되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만 올바른 질서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가령 11세기 교회에서는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한 번 더 성수를 뿌리는 것을 낭비로 여겼다. 그러자 얼마 뒤 초대 로마 교황 클레멘스1세가 썼다는 편지 한 통이 나타났고, 그 편지엔 이런 일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중세의 사람들은 이것을 구분해낼 수 있을 만한 지각이 없었던 것일까? 그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의 영역에서 위조는 범죄겠지만 신의 영역에서는 그것도 진리라고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속고 싶어했고, 그리고 기꺼이 속아주었다. 예수 사후 수백여 년, 거의 천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짊어졌던 십자가의 목재부스러기와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던 아마포 천쪼가리가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이것들을 기꺼이 믿음의 증거로 삼았고, 수도원은 이런 예수나 성인의 물건들을 신주처럼 받들었다. 설령 누군가가 이것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더라도 효력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 시대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유일한 근거는 그것이 이단이냐? 그렇지 않은가라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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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말을 조금만 바꿔보면...

우리 시대에 진짜와 가짜는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국익에 보탬이 되느냐 아니냐?와 같이 종종 이단 심문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정말 속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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