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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평점 :
텔레비전만 켜면 먹는 프로그램이다. 맛있어서 먹고 제철이라 먹고 몸에 좋아 먹고 값이 싸서 먹고, 심지어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먹나 시합까지 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한국의 먹방 열풍을 두고 경기침체로 인한 불안감 때문이라 한 것이 2년 전인데 그 사이 변한 것은 없다. 경기가 더 나빠진 탓인지 먹방에 쿡방까지 열풍이 광풍이 되었을 뿐. 불안한 현실을 잊는 데에 먹는 것만큼 쉽고 편한 위로가 어디 있으랴 싶으면서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목숨인 밥을 웃음거리로 삼는 게 불편하고 불쾌하다. 매일 550억 원어치의 음식물쓰레기가 나오는 시대(2015년 한국)에 고리타분한 감상이라고? 그렇다면 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가이며 기자인 헨미 요가 쓴 <먹는 인간>을 읽어보라. 먹고사는 게 뭔지, 인간 존재의 밑바닥부터, 삶의 기본부터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20년간 교도통신 외신부에서 일하던 헨미 요는 세계에 대한 실감을 잃고 무감각해진 자신을 깨치고 싶어 여행을 떠난다. 주제는 음식이나, 미식을 찾아다니는 식도락이 아니라 “호강에 겨워 무뎌진 혀와 위에 분노의 맛, 증오의 맛, 슬픔의 맛”을 일깨우려는 여정이었다. 첫 식사는 방글라데시 다카역 앞 포장마차에서 파는 75원짜리 고기볶음밥. 설렘으로 시작한 도전은 구역질로 끝난다. 다른 사람의 이빨자국이 선명한 고기토막이 말해주듯 그것은 부자들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만든 것이었고, 그가 차마 먹지 못한 밥은 순식간에 굶주린 소년의 성찬이 된다. 헨미 요는 “먹는다는 것이 삶과 죽음으로 직결되는 당연한 이치”를 눈앞에서 확인하며, “짐승은 먹이를 먹고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미식 예찬>)는 프랑스 미식가의 말에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사람도 때론 짐승처럼 ‘먹이’를 먹는다.
아시아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전쟁터와 난민촌, 탄광과 군대, 고양이 사료공장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그가 만난 것은 먹이를 먹는 인간이며 먹이조차 제대로 먹기 힘든 세상이다. 그 세상엔 음식 찌꺼기는 물론 낙타 껍질같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는 인간이 있고, 모두가 죽고 없는 땅에서 홀로 신경안정제를 먹는 인간이 있으며, 먹으면 안 되는 방사능 오염 식품으로 목숨을 잇는 인간과 결코 음식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사람을 잡아먹은 인간이 있다.
상상할 수 없는 극한의 음식과 그걸 먹는 사람들 앞에서 저자는 당혹감과 슬픔, 절망을 느끼지만 섣불리 동정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먹을거리를 찾을 수 있었음에도 굳이 식인을 한 잔류 일본병사들에 대해서조차 그는 비난보다 먼저 ‘왜 그랬을까?’ 질문을 던진다. 대신 그가 비판하는 것은 식인의 역사를 조장하고도 그걸 지우고 싶어 하는 일본국이고, 개밥만도 못한 원조음식을 주면서 현지인을 모욕하고 무력을 행사하는 선진국들이다. 반려동물에게 수입산 통조림을 먹이면서도 그걸 만드는 개도국 노동자의 현실엔 눈감은 자기 자신이다. 한마디로, 먹고사는 일의 무거움을 잊은 포식 사회에 그는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는 오래가지 않는다. 지금의 포식은 머잖아 공복으로 바뀔 것이기에. 하여 그는 말한다. 닥쳐올 기근의 날을 위해, 사랑하는 모든 먹는 인간에게 책을 바친다고. 참으로 쓰디쓴 헌사요 절실한 경고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