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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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책들은 겉표지가 없어 근사한 디자인이나 저자의 학벌, 수상경력 같은 것으로 책을 판단할 수 없다. 이럴 때 주로 보는 것이 머리말이다.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가 쓴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의 머리말은 “아버지, 개가 죽었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 굴러다니는 무의미한 단편에 대해, 그런 단편이 모여 이 세계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대해, 그 세계에서 다른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것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고 끝맺는다. 책을 읽게 만드는 머리말이다.

책을 빌려 정류장에 선 채 20여 쪽을 읽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대로 서점에 가서 책을 샀다. 한 꼭지 한 꼭지 천천히 읽었다. 눈으로 읽은 문장을 가슴이 이해하는 데 아주 오래 걸렸고, 많은 문장이 이해 못한 채로 남았다. 읽을수록 “분석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갔다. 그것이 마음의 오지를 이루었다. 그토록 안달하며 찾아 헤매던 평화가 거기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은 믿을 수 없는 책이다. 기시 마사히코는 무의미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도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유치원에 다닐 때 그는 길가의 돌멩이를 집어 들고 몇십 분씩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그러면 “무수한 돌멩이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 돌멩이’가 되는 순간”이 찾아오고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익숙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제껏 내가 읽고 쓴 글들이 그런 것이었으니까.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름 없는 네게 이름을 붙여주어 꽃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야기이고 글쓰기가 아닌가.


그런데 아니었다. 저자는 그런 “흔해 빠진 ‘발견의 스토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돌멩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이 온 천지에 굴러다닌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냐고 말한다. “누구에게도 숨겨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고, 무의미함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특별한 존재이며 한 번뿐인 인생은 소중하다고 설파하는 대신, 우리는 아무 특별한 가치가 없으며 인생은 시답잖다고 말한다. 하! 요즘 유행하는 ‘괜찮다’는 말보다 훨씬 위로가 된다. 인생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나 하나도 아니고 병증(病症)도 아니다. 그건 그냥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이 ‘그러니까 우리 모두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위로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부족하고 잘고 단편적인” 인생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하는 사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인생도, 그런 인생들이 모인 사회도 쉽게 이해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도 나처럼 부족하고 그래서 괴로운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고 아는 것도 힘들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당연시하는 사소한 행복, 예컨대 생일을 축하하고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는 일조차 누군가에겐 결핍과 배제를 일깨우는 상처가 된다. 그래서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책은 답을 주지 않고, 하여 상처도 주지 않는다.

답 없는 책을 읽고 꿈꾼다. 이렇게 살라고 답을 주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묻는 사회를,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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