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언 드림 -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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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분야를 넘나드는 제레미 리프킨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책이다. 5백쪽 중 절반은 미국과 유럽이 서로 다른 문화와 지향을 갖게 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나머지 반은 유럽연합의 현재를 정치, 경제, 군사, 환경, 문화 등 여러 부문에서 조명한다. 앞 부분은 재미있고, 뒷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들 간의 경쟁을 통해 역사가 발전한다고 믿는 아메리칸 드림, 배려를 기본으로 한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서만 인류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 유러피언 드림. 자본과 노동의 세계화, 환경과 핵 문제 등은 지금 인류가 봉착하고 있는 과제가 더이상 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세계화된 문제는 당연히 세계화된 대안을 요구한다.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유러피언 드림이 이야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책에는 유럽연합의 헌법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사형제 폐지를 연합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한다는 것,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엄격한 통제들,...그것들은 21세기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헌법을 고치겠다며 고작 대통령 중임이니 내각제니를 논하고 있다. 세계화와 함께 민족국가의 위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서, 다문화가 이론이 아니라 사회의 현실이 되고 인종과 민족, 국경의 경계가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받고 있는 현실에서 고작 대통령 권력만을 문제로 삼는 정치인들. 환경도 세계화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추상일  뿐인가 보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의 정치를 현실로 만드는 유럽의 시도가 부럽고, 그런 비전을 가진 정치인을 가진 유럽인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마저도 비전의 정치를 시도하려는 지금, 여전히 19세기적 사고를 하고 있는 이 땅의 저열한 정치가, 그 정치를 낳은 우리의 수준이 참담했다. 우리의 꿈은 언제나 미래로, 세계로 향할 것인가.

사족: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저작이었지만 별 하나를 뺀다. 2004년에 나온 책을 계속 증쇄하면서도 달라진 유럽연합의 현실상황에 대해 역주도 편집자주도 달지 않은 무신경, 무배려가 불쾌하다. 그리고 종종 나오는 요령부득의 번역어는 교열 과정에서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민음사 책을 볼 때 이런 식의 무성의를 종종 느낀다. 좋은 책의 판권을 독점했다면 그에 걸맞은 성의도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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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길에 반하다 - 가벼운 걷기에서 울트라 도보까지
유혜준 지음 / 미래의창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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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멀미가 심했던 탓에 나는 차 타기보다 걷기가 좋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걷기를 좋아해'라고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하루에 10킬로미터를 훌쩍 넘게 걷는 지은이의 기세는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더 기가 죽은 건 내가 걸었던 길조차 그녀의 걸음을 좇다보니 영 낯설기만 한 것이다. 걷는 데도 '도'가 있구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제일 반가웠던 건, 내가 엄두도 낼 수 없는 먼 길이 아니라 언제든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길들이 소개된 점이다. 걷기 여행이 유행하면서 책도 여러 권 나왔지만 그 책들을 보면 나와는 영 거리가 먼 느낌이 들어 좌절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여러 번 "나도 여기 아는데!" "나도 가봤는데!" 하며 반가워하곤 했다. 그만큼 서울 사는 내게 익숙한 길들이 나온다.  

그런데 그 익숙한 길들이 지은이를 따라 걷다보면 왜 이리 낯설게 느껴지는지. 분명 나도 걸었던 길들인데 나는 그저 스쳐지나간 길을 그녀는 꼼꼼히 살펴보고 담담하게 전해준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과장된 감탄사도 없이 담백하게 쓴 문장 속에서 낯익은 길들이 새삼스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걸 발견하는 기쁨이 만만치 않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길에도 해당된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내 옆에 있지만 내가 모르고 스쳤던 길들에 새삼 눈이 뜨이고, 그 길들처럼 묵묵하게 다가오는 책의 문장들에 마음이 젖는다.  

맑은 가을, 나도 도시락 싸들고 지은이를 따라 걷고 싶다. 그래서 마음 속에 호젓한 길 하나 내고 싶다. 그 길에서 꿈꿔왔던 만남까지 이룬다면 더 바랄 게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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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 고려인이 쓴 삼국사기를 넘어 신라인의 눈으로 바라본 신라
김태식 지음 / 김영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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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김태식은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런데 화랑세기에 관해 읽은 책들 중 나는 이 책이 제일 좋았다. 역사학자나 국문학자들이 쓴 책을 보며 느꼈던 지나친 조심성과 상상력 부족을 김태식은 상당 부분 극복해 있었다.  

<화랑세기> 위작설에 대해선 문서 자료는 물론 경주 월성 현장 발굴을 증거로 설득력있게 비판하고 있으며. 위작설 주장자들에게는 신랄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논쟁이 되고 있는 역사를 다룰 때 이런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니, 인신공격만 아니라면 독자를 즐겁게 한다. 특히 <화랑세기>에 실린 미실의 향가에 대해 김완진 교수 등이 제기한 위조설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소개한 부분은 어지간한 드라마보다 재밌다. 학자들에게 조심성은 필수불가결하지만 새로운 자료에 대해 거의 냉소적으로 보이는 태도에는, 자신의 수십 년 공부를 지키려는 완고함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아쉬운 점은 서술이 쟁점 몇 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구성이 산만하고, 신라사에 대한 새로운 상을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화랑, 원화, 그리고 미실로 대표되는 대원신통 여성들의 역할 등에 대해 단편적인 서술만 있는 점이 아쉽다. 미실이 화랑과 특히 밀접했고 원화를 부활시킨 것은, 신라의 '선도'와 관련하여 미실계 여성들의 역할과 화랑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게 하는데, 그런 점이 더 탐구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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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 그가 구한 것은 동물원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The Earth)’였다!
로렌스 앤서니 지음, 고상숙 옮김 / 뜨인돌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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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바그다드 동물원에 갇혀 죽어갈 동물들을 구하러 간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면 당연한 듯 사람이 죽을 일만 생각하던 내게는 그 자체가 충격이었다. 그래,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도망도 가지 못한 채 포탄 소리에 떨다가 속절없이 죽어가겠구나. 뒤늦게 죄책감을 느끼며 이 책을 보았다. 그런데 철저히 미국의 시각에 선 저자의 글쓰기가 몰입을 방해한다. 아니, 몰입은커녕 나중엔 읽기가 힘들 정도였다.  

남아공에서 자연공원을 운영하던 로렌스 앤서니는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바로 바그다드로 떠난다.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죽어갈 동물원의 동물들이 걱정되었던 것. 온갖 빽을 동원해 바그다드에 도착한 로렌스는 몇 마리 남지 않은 동물원의 실태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동물원을 지키던 부원장 하샴과 힘을 합해 동물원 구하기에 나선다.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부풀린 글쓰기, 넘칠 정도의 미국식 유머, 그리고 이런 비극을 불러온 전쟁과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깊은 통찰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사고 등등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무엇보다 동물을 보호한다는 그의 가치관 자체가 어쩌면 동물에 대한 인간중심적 이용의 출발은 아닌지 의심스러운데, 유감스럽게도 그는 단 한번도 이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그가 구한 것은 동물도 이라크 동물원도 아니고, 명예욕에 가득한 그 자신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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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강곤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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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아파서 읽기 힘들고 글자가 빼곡해서 읽기 힘들고, 그래도 알아야 할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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