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 10인의 작가가 말하는 그림책의 힘
최혜진 지음, 신창용 사진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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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디렉터 최혜진이 유럽 -주로 프랑스어권에서 활약하는 그림책 작가 열 명을 인터뷰한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읽었다. 거의 매 페이지 사진이 들어간 300쪽 남짓한 책을 읽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 여러 책을 동시다발로 읽는 독서습관 탓도 있지만 다양한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곱씹다보니 좀체 책장이 넘어가지 않은 까닭이다.

제목을 봤을 땐 그림책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과 그림책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맞다. 덕분에 소개된 책들을 다 찾아 읽고 싶을 만큼 그림책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책에 담긴 내용은 이뿐만이 아니어서, 읽다보면 아이 양육, 독서법, 예술가의 삶과 창작 등 여러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책에서 중점을 두는 건 어떻게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최혜진은 주입식 교육과 경쟁의 일상에서 잃어버린 창의력을 되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 작가들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당신의 독특한 상상과 창의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부모나 학교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창의성을 키우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 창작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나이, 환경, 작품 스타일, 작업방법이 다 다른 만큼 그들의 대답은 모두 다르다. 꼼꼼한 판화작업으로 일가를 이룬 조엘 졸리베는 ‘관찰력’을, 빨간 털실 그림으로 유명한 세르주 블로크는 ‘뭔가를 할 작은 용기’를, 스테디셀러 <노라와 친구들> 시리즈의 이치카와 사토미는 ‘계속하는 끈기’를,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의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창의성의 원천으로 꼽는다.

흥미로운 것은 부모나 학교의 교육 덕분에 이만큼 성장했다고 말하는 이가 드물다는 점이다.(미술교육을 받은 적 없는 작가가 한둘이 아니다.) 몇몇 작가들은 부모의 가르침과 영향을 고마운 마음으로 회상하지만, 프랑스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클로드 퐁티나 <책놀이>로 화제를 모은 에르베 튈레 같은 이들은 어두운 유년시절이 자신을 키웠다고 이야기한다.

두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작가들 역시 어린 날의 장애와 외로움, 열패감, 불안이 자신을 읽고 상상하고 그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토로한다. 이는 각종 교구와 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는 세간의 믿음을 배반하며, 그런 믿음에 부응하지 못해 자책하던 부모들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그렇다고 이들이 부모나 교사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교육이나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이의 삶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창의성을 키우고 발휘해온 방식은 다르지만 작가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주라는 것이다. 혼자 있을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심심하게 있는 시간, 너무 심심해서 주위를 관찰하고 공상하고 책을 뒤적일 시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하고 시도해 볼 시간, 실패를 통해 배울 시간. 남다른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우는 것은 바로 이런 시간이라고 그들은 경험으로 말한다. 잘하려는 생각이 오히려 창의성을 방해하더라는 실패담까지 곁들여서.

어디 창의성뿐이랴. 일도 사랑도 간절한 치열함보다 무심한 은근함이 힘이 될 때가 많다. 가지를 놓아버린 낙엽이 겨울나무에게 좋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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