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읽어도 누가 뭐라는 건 아닌데 그동안 한국소설들을 너무 안 읽었다는 생각이 들자 의무감 비슷한 게 생겼다. 그래서 요즘 유명짜한 작품들을 몰아 읽었다. 

공지영의 [도가니]는 성폭력에 대한 소설. 소설의 계몽적 역할을 믿는 작가답게 이번 소설도 성폭력이라는 사회문제에 대해 대중적으로 호소력있게 전달하고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문제를 안이하게 풀어나갔다면 이번 작품은 그보다는 고민이 깊었던 느낌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여운은 짧고, 독자의 몫은 너무 적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참 편안한 소설이다. 작가도 쓰기가 편했을 것이고 독자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엄마 얘기다. 엄마에 대해 새로운 발상이나 고민은 없다. 그냥 누구나 엄마는 이럴 꺼야, 아니 엄마는 이런 거지, 이래야 하지, 라고 생각하는 그런 엄마를 얘기한다. 엄마의 은밀한 사랑 같은 에피소드를 집어넣은 건, 작가가 그렇게 너무 상투적인 엄마상을 그리는 게 민망해서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 같지만, 작품 내적으로 유기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작가의 영악함을 보여주는 듯해서 오히려 읽는 내가 더 민망하다. 신경숙은 글 쓰는 법을 아는 작가인데 왜 아직 늙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자신을 소비하는지 모르겠다. 성공이라면 충분히 했지 않은가. 

김훈의 [공무도하]는 앞에서 절반까지 읽다가 맨 뒤부터 다시 1/3를 읽다가 결국 그만두었다. 김훈은 역시 산문이고, 소설은 단편이 좋다. 장편은 정말...건너기 힘든 강을 건너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자의식 과잉이 읽는 이를 지치게 한다. 한국의 지가를 올린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때도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지만 이번 작품은 그 정도가 더하다. '삶은 비루하고..던적스럽다'는 소설 속 문장을 읽는 순간, 그런 말까지 하는 것이 그야말로 던적스럽게 느껴졌다. 세상에서 제일 입맛 쓴 것이 포즈의 허무주의를 보는 게 아닌가 싶다. 허무는 허무로 말해질 수 있는 게 아닌데, 그건 문장 너머의 절망이고, 그 절망은 스타일이나 포즈로는 닿을 수가 없다.  

알라딘에 책을 주문했더니 김연수의 신작단편집의 일부를 담은 소책자가 함께 왔다. 그 짧은 소설을 아직도 읽지 않았다. 김연수의 수다스러움을 지금 내가 감당하기엔 이 세상이 너무 수다스럽다.   

한유주의 [얼음의 책]이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평론가들이 통속소설을 굉장한 예술적 성취로 상찬하는 데 대해 스스로 자괴감을 느껴 이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 작품의 무엇이 그리 대단한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대중성을 과감히 포기하고 스스로의 문법으로 글을 쓰는 그 과감함에는 물론 나도 한 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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