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는 그럴듯한 명분이 많아요

곧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는

그에게 전해줘요

한평생 나는 그의 적일 것이라고

등을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해주세요

뒤에서 쏘아버릴지 모르니

술을 마시고 타협을 하고 그의 그 무슨

대의명분이라고 하는 것까지

삭을 대로 삭아버린다면

총알 한 개로 숨을 끊어주겠어요

철학을 기만한 죄

나는 잘 모르는 사상을 기만한 죄를

톡톡히 갚지 않으면 안 될 거요

여자를 기만한 죄는

묻지 않겠어요 왜냐하면 우리에게도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야 하므로

남자들에게는 그럴듯한 명분이 많아요

여자들은 그들을 타락시킬 뿐

사실은

보다 인간적이 되는 일 축하해요

양애경의 이 시를 아침신문에서 읽는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많은 남자들이 숱한 명분으로 숱한 여자들을 속이고 스스로를 속여온 것이 남성의 역사라면, 많은 여자들이 숱한 명분에 기꺼이 속아주고 그걸 사랑이라 이름해온 것이 여성의 역사. 그리고 둘의 거짓이 어우러져 만든 게 인간의 역사이리라. 경쾌한 이 시를 읽고 하하하 웃고 말았지만 오래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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