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
스티븐 J.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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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만 있는 줄 알았다. 근데 과학책이란다. 것도 나같은 문외한도 이름은 들어본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 아주 재미있게 쓴 진화론 비판서라고 해서 과감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푹 빠졌다. 세상에 내가 과학책에!

굴드는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선택은 적자생존을 낳아 진보를 향해 움직여왔다는 '진화론'을 부정할 뿐이다. 그의 주장은 이 책의 한국어판 부제인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짧은 명제로 요약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평균값'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파헤치고,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분석한다. 그렇게 해서 밝힌 것은 진화는 사다리 를 오르는 게 아니라는 것, 진화가 복잡성과 전문화를 향해 나아간다는 통념과 달리 생물학적 증거들은 오히려 단순한 것들이 생존에 유리하며, 진화엔 어떤 경향성도 없다는 것이다. 생명 진화의 역사는, 인간이 진화의 승자가 아니며 진정한 지배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박테리아임을 보여준다. 가장 단순하되 가장 중요한 일을 하며 끝까지 살아남는 존재!

굴드는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생물학적 진보론으로 이해되는 과정이 이미 다윈 생전부터 -다윈 자신의 애매모호함을 등에 엎고 진행되었다고 말한다. 다윈이 자신의 자연선택을 진화=진보로 이해하는 이들에게 분명하게 반대하지 않은 이유? 굴드는 그것을 다윈의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찾는다. 다윈의 보수적 '물질'은 진보적 '의식'을 규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다윈은 자신의 과학적 증거들을 통해 진보적 의식을 구성했고, [종의 기원]에서 그것을 최대한 표현한다.

굴드의 이 책은 종교 없는 내게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다윈주의가 이미 하나의 종교로 변해버린 시대에 -진화론이 사회생물학을 통해 우생학, 식민주의 따위로 나아갔듯이- 진화는 다양성을 말한다는 굴드의 주장은 피라미드 세계관에 갇힌 내 시야를 확 트이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과론적 설명이 얼마나 완강하게 내 발목을 잡고 있는지, 또 자못 과학적인 듯한 인과론이 사실은 우리 안팎에 속속들이 숨어 있는 우연의 힘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도 새삼 깨달았다. 굴드의 주장을 깊게, 넓게 뒷받침해주는 많은 연구와 저술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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