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역사
니콜 아브릴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니콜 아브릴의 이 책은 주제 자체가 매력적이다. 그녀는 여기서 '얼굴'을 보는 시선의 역사와, '얼굴'을 드러내는 표현의 역사를 동시에 추적한다. 얼굴은 보는 것이며 보이는 것이다. 감출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얼굴을 '인간의 문제'로 만든다. 죽음 앞에서조차 문제가 되는 건 얼굴이다. 왜? 죽음은 망각을 동반하며 망각은 무엇보다 얼굴의 망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집트 파이윰의 공동묘지에 켜켜이 놓인 수많은 초상들, 그건 죽은 이를 추억하는 방식이며 죽음을 부인하는 안간힘이다. 살아 있는 얼굴을 죽은 이의 몸에 놓음으로써 남은 자는 죽음을 부정한다. 망자 또한 그 의식을 통해 자신의 불멸을 기약할지 모른다.

얼굴에 가장 정면으로 대응한 것은 미술가일 것이다. 때론 모델이 없어서 자신의 얼굴을 그리고 때론 일종의 낙관으로 작품 속에 자신을 그려넣었지만, 결국 자화상은 어떤 경우에든 자기탐구를 수반한다. 자서전이 자기미화와 자기변명의 덫을 쉬 피하지 못한 것처럼 자화상 또한 종종 나르시시즘의 표현으로 애용되곤 한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거짓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 그래서 가슴을 울리는 자서전보다 우리의 넋을 흔드는 자화상을 만나기가 쉬운가 보다. 렘브란트, 고흐, 쉴레가 보여주는 통렬한 자화상은 인간이 얼마나 진실을 열망하는지, 그 열망 자체가 보잘것없는 삶을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얼굴의 표현을 추적한 이 책은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이 얼마나 난감하며, 내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시대적인 제약을 받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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