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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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는 것은 아주 길고 긴 항해를 하는 것과 같다.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지만 흔히 추리하면 떠올리는 어떤 전형성과는 거리가 멀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는 얘길 들었기에 벼르다가 도서관에서 빌렸다. 처음엔 깜짝 놀랐다. 철학적이랄까,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깊은 시선이 느껴지는 문체. 한 아이의 죽음에서 시작하는 긴장감이 책장을 착실히 넘기게 했다.

하지만 도무지 흥분하지 않는 페터 회의 문체와, 마치 사방에 촘촘한 그물을 쳐놓고 조금씩 조여오듯 사건을 전개해가는 검시관 같은 서술은 끊임없이 나를 고문했다. 수학에 정통한 작가와는 정반대의 서있는 내 성향도 작용했다. 헌데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 꼬박 열흘이 걸렸다. 마지막 30장 정도를 남겼을 때부터 다시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책장을 덮자, 마치 빙하의 깊은 심연으로 잠수하다가 문득 그 끝에서 빛을 본 듯 환해졌다. 희열!

눈에 대한 페터 회의 표현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성취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다음부터 눈과 얼음은 이전의 눈과 얼음과는 다르리라. 길고 긴 항해 끝에 다다른 땅에서 아주 은밀한 장미향을 맡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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