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경식의 글은, 발부터 어깨까지 이불을 덮고 읽어야 한다. 발이 시리고 몸이 서서히 얼어붙는 느낌, 그의 글은 내게 늘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읽은 [디아스포라 기행]의 더욱 그랬다. 머리는 뜨거워지는데 가슴은 차가워지는, 그래서 목울대는 아픈데 눈물은 나오지 않는 독서랄까.

'노마드 '라는 말이 유행이다. 우리는 경계를 허물고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해석하는 존재를 꿈꾼다. 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자본의 시대에 과연 그 유목의 꿈이 가능할까? 자본 없는 유목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까, 어떻게 그 꿈의 연대를 만들어낼까? 노마디즘은 내겐 질문의 연쇄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디아스포라'를 만나니 이젠 온통 슬픔과 부끄러움의 연쇄다. 유배당한 자, 지배권력에 의해 뿌리뽑히고 유배당한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은 끔찍한 꿈이고 고향은 절망이다. 조국을 가진, 모국어를 가진 내게 이 절망은 도달불능이다. 민족주의를 '탈'하는 것은 이 절망, 이 끔찍한 꿈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그것은 또하나의 회색 이론이며, 또하나의 지배담론일 뿐이다.

서경식이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대목에서 크게 공감했다. 과문한 탓인지, 그만큼 진지하게 민족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저자를 최근에 본 기억이 없다. 탈민족주의가 유행할 수록 국수주의 이데올로기가 더욱 성행하는 세태를 보면, 이론의 공허함이 현실에 얼마나 무기력한지 실감하게 된다.

서경식의 '디아스포라'를 통해 몰랐던, 아니 모르고 싶었던 내 존재의 한 부분을 만났다. '타인'을 생산하고 '그들'을 배제함으로써 나를 살고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을 읽고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도 읽었다. 아우슈비츠 이후의 인간, 광주 이후의 인간을 묻는 이 책들을 보며 어느새 그 질문조차 잊고도 편안한 내 삶의 끔찍함을 보았다. 이불을 덮고 서경식의 글을 읽으며 오랫만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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