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꽤 오랫동안 소설책을 읽지 않았다. 아니, 읽지 않았다기보다는 끝까지 읽기가 힘들었다. 물론 첫째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 특히 노벨상 수상작은 한동안 기피대상이 되었다. 노벨상을 받았다 해서 읽는 건 왠지 촌스러운 짓 같고, 숙제하는 중학생이 된 기분도 크게 작용했지만, 몇 번 숙제하는 심정으로 읽은 책들이 도무지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도 사실 별로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누가 꽤 재미있다고 하는 게 거짓말 같지 않았다. 게다가 마침 도서관에서 막 반납된 1권을 발견했다. 그래서 읽었는데 와우, 재미있었다! 잘 짜인 카펫 모양 정교하게 짜여진 플롯, 천연덕스런 이야기 솜씨, 거기에 적절히 버무린 문명과 예술에 관한 지식들. 가슴에 오래 남는 감동적인 소설은 아니지만, 아주 잘 쓴 소설을 읽는 즐거움과 기쁨은 더없이 누릴 수 있다.

이슬람의 세밀화를 소재로 하여 추리소설 형식으로 써내려갔는데, 추리소설 형식은 요즘 자주 만나는 것이라 식상할 수 있는데 여기선 개, 말, 악마, 검정, 빨강 등이 화자로 나서는 독특한 서술로 새로움을 준다. 소설에선 몇 가지 주제가 꽤 진지하게 추구되고 있다. 파묵은, 신의 시선을 빌어 평면적이고 자기스타일을 죽인 터키식 세밀화와, 인간의 시선을 빌어 사실적이고 고유 스타일을 추구하는 서구식 초상화를 대비시키고, 서구식 화법에 침윤되는 전통 화가들의 갈등을 통해 예술가의 고뇌와 욕망을 드러낸다. 소설은 동서 문화의 갈등과 영향, 대립으로 읽힐 수도 있고, 나아가 예술이 지극해질 때 그것은 고유의 스타일을 추구함으로서인가 혹은 지극함 자체를 성실히 추구함으로서인가 등의 문제까지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재미있게 다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왜 내 이름은 빨강인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한 쪽도 건너뜀 없이 열심히 읽었는데... 단순히 정열과 피와 열정의 상징이 빨강이니까 빨강이다는 아닐텐데... 이슬람 미술책까지 펼쳐 놓고 빨강의 표현법을 찾아봤지만 특별히 빨강이 다른 의미를 갖는 것 같지도 않았다. 긴 역자 후기도 이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고, 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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