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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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간직한 채 소설의 마지막까지 가야 하는 여정은 꽤 불안하고 답답하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어쩌면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근거에 의존하면서도 맹목적인 확신을 품으며 살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억이라는 건 제각각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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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음 / 해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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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대학생들에게 `왜`라는 화두를 던져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을 `인재가 되기 위하여`로 풀어갈 것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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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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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생각하기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역사란 무엇인가, 라고 말이지. 뭐 생각나는 것 있나, 웹스터?"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 입니다." 내 대답은 좀 빠르다 싶게 튀어 나왔다.
"그래, 안 그래도 자네가 그렇게 말할까봐 걱정을 좀 했는데, 그게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는 것 기억하고 있나, 심슨?"
콜린은 나보다 더 잘 준비된 답변을 했다. "역사는 생 양파 샌드위치입니다. 선생님."
"어떤 이유로?"
"죽자고 반복하니까요, 선생님. 우리는 이제껏 역사가 트림하는 것을 보고 또 보았고, 올해에도 또 보고 있습니다. 폭정과 폭동, 전쟁과 평화, 번영과 빈곤 사이를 오가는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와 천편일률적인 동요뿐이죠."
"그걸 샌드위치 속에 다 넣기엔 좀 많지 않은가 싶은데?"
우리는 학년 말 특유의 신경증에 의존해서 과하게 웃어댔다.
"핀?"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 25쪽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게 하려면 언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낮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야 진짜로 이목을 끌 수 있게 된다. - 46쪽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 78쪽

청년을 매료시키는 천재에 무슨 잘못이 있을까. 그보다는, 천재에 매료되지 않는 청년쪽이 문제다. - 82쪽

누구나 그렇게 간단히 짐작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예를 들면, 기억이란 사건과 시간을 합친 것과 동등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다.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렸다고생각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또한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만 한다. - 85쪽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유순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잘 살았다고 상을 주는 게 인생이란 것의 소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생이 저물어갈 때 우리에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할 의무도 없는 것 아닌가. 생의 진화론적 목적 중에 향수라는 감정이 종사할 만한 부분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 111쪽

한 구절로 표현하자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삶을 책임졌고, 그것을 지휘했으면, 온전히 포착했다. 그리고 놓아주었다. 우리 - 살아남은 우리 - 중에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살면서 좌충우돌하고, 대책없이 삶과 맞닥뜨리면서 서시히 기억의 창고를 지어간다. 축적의 문제가 있짐나, 에이드리언이 의미한 것과는 무관하게 다만 인생의 토대에 더하고 또 더할 뿐이다. 그리고 한 시인이 지적했듯, 더하는 것과 늘어나는 것은 다른 것이다. - 118쪽

그리고 내가 지금 느끼는 건 수치심이나 죄책감이 아니었다. 천만에, 내 인생에선 상대적으로 드문데다 더욱 강렬한 종류였다. 회한의 감정. 더 복잡하고, 온통 엉겨붙어버린 원싲거인 감정이다. 그런 감정의 특징은 속수무책으로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고, 그만큼 상처도 깊어 개선의 여지조차 없는 감정이었다. - 133쪽

그에 비하면 나는 언제나 흐리멍덩했고, 인생이 내게 던져주는 얼마 되지도 않는 교훈에 대해 크게 깨달을 깜냥도 못 되었다. 내 식으로 말하면, 나는 삶의 현실에 안주했고, 삶의 불가항력에 복속했다. 만약 이렇다면 이렇게, 그렇다면 저렇게 하는 식으로 세월을 보냈다. 에이드리언 식으로 말하면 나는 삶을 포기했고, 삶을 시험해보는 것도 포기했고, 삶이 닥쳐오는 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난생처음, 나는 내 온 인생에 대해 한결 총체적인 - 자기연민과 자기혐오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 후회의 감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살아온 어느 하루도 후회되지 않는 날이 없었다. - 133쪽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 140쪽

베로니카와의 관계, 몇 년을 함께 보낸 그 관계는 당시의 내겐 꼭 필요했었다. 배반당한 청춘의 심장, 농락당한 청춘의 육체, 전락한 청춘의 사회적 자아. -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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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음 / 해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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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춘

지금의 '청춘'이 갖는 의미는 그 옛날 순진했던 젊음, 해방, 자유, 방황, 갈등, 혼돈 이상의 것이다. 이 모든 불투명한 것과 더불어 '생존'의 의미는 보다 강하게, 희망의 의미는 보다 약해져 버리고 말았으니까. 지금의 구조 하에서 청춘들은 무엇 하나 다짐받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과 구체적인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2. 대학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오글거리는 수식어는 이미 사라져버린지 오래이다. 대학진학률이 70-80%에 육박하는 현 시점에서 대학은 고등학교의 연장일뿐이며, 졸업을 한다고 해도 별다를 것이 없지만, 안 거쳐가면 불안한 관문이 되어버렸다. 대학이 갖는 의미는 취직이라는 사회진출을 위한 집합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업이 대학을 운영하고, 기업에 맞는 인재를 양성한다면서 커리큘럼을 마음대로 바꾸는 시대다. 이에 맞추어 대학생들은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사회봉사 등 수없는 스펙 경쟁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취직이라도 된다면 다행인 분위기이다. 이런 마당에 과연 우리는 대학에 어떠한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일까.

 

3. 질문

누구도 질문하지 않는다.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니, 다른 것에 눈돌릴 여유가 없다. 그저 주어진 것을 충실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도구화 하는 반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언제가 즐거운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유보해야 한다. 그 질문들이 자신의 삶에 보다 위협적으로 다가올 때까지는.

 

4. 긍정적인 시도 & 아쉬움

대학을 왜 가는지에 대한 질문을 생략한 채 입학을 목표로 12년을 살고, 잠시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취업을 위해 또 다시 전력질주를 해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현재의 생활에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왜'라는 질문을 제시하면서 결국에는 '인재'라는 결론에 맞추어 코칭, 멘토링을 해주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찌되었건 대학의 효용은 인재 양성이라는 것인가. 물론 자존감을 잃어버린 채 좌절해 있는 청춘들을 앞에 두고 이런 아쉬움을 표하는 것 조차도 굉장히 사치스러운 게 현실인지도 모르지만.

인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르다. 골드만 삭스, 맥킨지 등 글로벌 인재들의 산실로 불리는 세계적인 기업에서 근무한 일본의 인재 전문가 도쓰카 다카마사는 자신의 저서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집중할까>에서 인재는 `기본`에 철저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화려한 스펙이 아니라 누구나 알지만 쉽게 지나치는 인간관계, 여유와 배려, 시간 엄수 등이 인재를 만든다고 말했다. - 67, 68쪽

취업하려면 대학생들에게 학점, 대외활동, 영어, 해외연수 등 원하는 게 정말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대중매체에 나와서 `꿈을 가져라` `너만의 길을 가라`고 말해서 학생들은 오히려 혼란스럽다고 했다. 사회가 원하는 `스펙`을 위해 달려왔는데 이제는 `스토리`를 가지라고 말한다. - 69쪽

조벽 교수는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차이는 실수한 후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아마추어는 실패 한방에 무너진다. 실패한 사실 때문에 자신에 대한 실망감, 창피함, 굴욕감, 다시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초조함에 의기소침해진다.
부정적 감정이 꼬리를 물고 더 강한 부정적 감정으로 이어지면 결국 사람은 절망하고 쉽게 포기한다. 실패 그 자체가 사람을 망치는 게 아니라 실패에 동반되는 부정적 감정이 독이 되고 그 감정에 매몰되었다가 파괴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반면 조벽 교수는 프로 페셔널은 실수하거나 실패하더라고 곧바로 자신을 진정시키고 평정심을 회복하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수해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람은 경험을 축적한다. 경험이 풍부해지면 위기 상황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게 되고, 그제야 비로소 성숙하고 중심이 잡힌 사람이 된다. - 88쪽

최성애 박사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설명하며 `화가`의 비유를 들었다. 기업에서는 창의적인 화가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채용할 때는 모작에 뛰어난 상업 화가를 뽑는다는 것이다. 설령 독창적이고 재능이 뛰어난 화가를 뽑았다 해도 그 화가가 창의력을 발휘하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꾸짖는 식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될아가면 생업이 필요한 화가는 어쩔 수 없이 기업의 눈치를 보면서 틀에 박힌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 - 116쪽

마윈은 자신의 성공 철학을 역발상에서 찾는다. 뒤집어보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대부분 열에 아홉이 찬성하는 아이디어를 채택하지만 그는 이런 아이디어는 버렸다고 한다. 90퍼센트가 찬성하는 아이디어는 어디선가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이미 뺏긴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업의 논리를 벗어난 그의 역발상은 15년 후 알리바바를 중국 최대의 전자 상거래 기업으로 만들었다. - 117쪽

재능 많고 실력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힘들어하고 절망하는 이유를 조벽 교수는 자기의 중심이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심이 바깥에 있다는 것은 성공과 행복의 잣대가 외부의 인정에 의해 정해진다는 의미다.
자신의 성공과 행복이 외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스스로 인생의 여러 문제들을 결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게 된다. 순간적인 행복이나 성공은 얻을 수 있어도 오래 가지 않는다. 명문대에 들어가도 대기업에 들어가도 외부의 요인에 의해 흔들려 뿌리 없는 나무처럼 혼란스러워 한다. - 131, 132쪽

"걷기 한 시간, 아니면 뛰기 30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것을) 일주일에 다섯 번 하라`, 그건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조벽 교수의 말처럼 인재는 살아가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타고난 머리가 좋다고 인재가 되는 건 아니다.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가 인재인지를 말해 준다. 과거에 내가 인재가 아니었다고 해서 앞으로 인재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재의 내가 인재가 아니라는 말도 현재의 살아가는 방식이 인재의 방식이 아니라는 의미 이상은 아니다. - 137, 138쪽

우리는 과거에 대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바로 과거 자신의 잘못을 부각해 스스로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 것인지, 좋은 점을 찾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인지 둘 중 하나다. 무엇이 나의 피와 살이 될 지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 171쪽

하브루타 교육의 장점을 예시바 대학생 케빈 포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다 보면 사고가 명확해지고 자신이 배우는 걸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유대인의 격언 중에 `말로 설명할 수 없으면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혼자 생각할 때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느끼지만 막상 말로 표현하면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 때가 많다는 뜻이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겨 논리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과, 실제로 내가 아는 지식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의 경우 막상 남에게는 설명하지 못하기 쉬운데 사실상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브루타 방식은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 좀더 명확히 생각하고 지식을 체계화하여 설명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252, 253쪽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 일어나는 배움의 과정에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느냐이다. 유학생에게 좋은 배움이란 토론과 질문 등 이질적인 수업 문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어휘력 이상으로 중요한데도, 한국 유학생들은 이러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유학생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또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을 디렌데 교수는 질문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라고 정리했다.
유럽 학생들은 답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말하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말을 하려는 시도부터 한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거나 답이라는 확신이 들 때라야 답을 하는 한국 유학생들과는 다르다. - 262, 263쪽

사람이 질문을 던지면 거기에 답하려고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교수가 개입하면 그 욕구를 자제하려고 한다. 결국 학생들은 질문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교수가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교수가 개입하지 않으면 그 분위기는 달라진다. 강의실의 주인은 학생이 된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교수의 생각도 궁금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을 남한테 전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함께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의 생각이 어떠한지도 궁금해한다. 그 호기심이 질문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호기심이나 질문은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하려고 한다. 그건 남이 지시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학생이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고, 교수는 그 과정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격려하고, 최종적으로 평가하고, 인정해 주면 된다. - 277쪽

경쟁이 아니라 도전을 시작하세요. 아픔이 찾아오면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보길 권합니다. 우리는 정답을 찾아 살아가지만 진짜 삶은 질문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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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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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에 돌아와서 느낀 변화라면, 예전보다 사회가 가진 희망의 총량이 많이 사라졌다는 거에요. 이제는 희망을 품는 것은 고사하고 다들 자기가 지금 차지하고 있는 자리라도 지키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고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문명보다는 야만을 향해 조금 더 움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자를 존중하고 사회적 계약을 준수하는 것이 문명이라면 그 반대쪽으로 많이 움직인 것 같다는 거죠. - 11쪽

예를 들면 그런 게 있더라고요, 압박면접이라고 하나요? 그 무슨 사디스트적인 행동인지 모르겠어요. 취업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거잖아요. 정확히 그건 나쁜 부모가 하는 행동이거든요. "너는 모자라다, 너는 왜 이렇게 부족해" 이런 얘기를 하면서 모욕을 주고 자존감을 깍아내리는 모습이 똑같아요. 그런데도 지원자는 웃어야 되잖아요.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되고, 자기는 모든 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처신해야 하고요. 심지어 실수로라도 반항하지 않도록 강자의 논리로 자기를 설득하잖아요. `경재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이런 걸 스스로에게 설득시키고 받아들이는 거죠. 나쁜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아이와 비슷한 거죠. - 12, 13쪽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해 죄송했지만 저는 분명하게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못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의 바람은 늘 그런 식이기 때문입니다. 대학만 들어가라, 졸업만 해라, 결혼만 해라, 아이만 낳아라, 그다음부터는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하지만 아무 조건도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날`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 17, 18쪽

작가는 실패 전문가다. 소설이라는 게 원래 실패에 대한 것이다. 세계명작들을 보라. 성공한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기껏 고생해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상어들에게 다 뜯기고 뼈만 끌고 돌아온다.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와 <마담 보바리>의 보바리 부인은 자살하고 만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는 옛사랑을 얻기는커녕 엉뚱한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젊은 생을 마감한다.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니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 - 21쪽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 23쪽

세상에 대해서는 비관적 현실주의를 견지하면서도 윤리적으로 건강한 개인주의를 확고하게 담보하려면 단단한 내면이 필수적입니다. 남에게 침범당하지 않는 단단한 내면은 지식만으로는 구축되지 않습니다. 감각과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지식만 있고 자기 느낌은 없는 사람, 자기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선 진정한 개인이라고 보기 힘들 겁니다. 우리 사회에는 자기 스스로 느끼기보다는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내 감정은 감추고 다중의 의견을 살펴야 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겠죠.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느끼는가, 뭘,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 - 33, 34쪽

Q : 반려동물의 존재가 오히려 인간에게 주는 깨달음이 있는거네요.
A : 고양이와 나는 다르니까요. 인간만 존재하는 세상에선 인간의 본질을 생각할 필요가 없죠. 그런데 동물과 함께 있으니까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은 대부분 신화인데, 신화는 계속해서 동물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 것이야말로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 말해주는 게 아닐까요? - 47, 48쪽

글쓰기는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동안 우리 자신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전까지 몰랐던 것들, 외면했던 것들을 직면하게 됩니다. - 57쪽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 60쪽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고 묻는 것,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것. 이 순간이 바로 스토리텔러가 탄생하는 마법의 순간입니다. - 70쪽

작가가 되는 데 책은 거의 백 퍼센트의 역할을 하죠. 오직 책만이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듭니다. 경험도 아니고, 주변 사람도 아니고, 정말 책만이 온전하게 작가를 만든다고 저는 생각해요.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작가는 독자였죠. 작가에서 출발해서 독자가 되는 사람은 없어요. 제가 우리나라의 동료 작가들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작가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다들 비슷한 과정을 거쳤어요. 처음에는 특정한 소설, 특정한 작가의 열렬한 독자가 되죠. 그것을 읽다가 그보다 더 깊은 만족을 주는 다른 작가, 다른 책들을 읽게 됩니다.
어느 정도 읽다보면, `나도 이런 것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그런 때가 있어요. 자기 안에서 쓰고 싶은 내용과 자기가 읽어온 책들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켜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는 거죠. 그게 대부분의 작가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작가들이 쓰는 소설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일 수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작가들은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해서 그것을 다시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가 읽었으나 백 퍼센트 동의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응답을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 84, 85쪽

<위대한 개츠비>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선인인지 악인인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웃긴 인물인지 불쌍한 인물인지 파악하기 힘들어요. 분명히 알 수 없는 윤리적 판단의 회색지대에 있는 인물들이죠. 밀란 쿤데라가 한 멋진 말이 있어요.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다." - 93쪽

저는 인간을 믿는 사람들, 인간을 믿는 휴머니즘 또는 어떤 종교를 믿거나 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수많은 역사의 악행들을 생각해보면 인간에게는 아주 굳건하고 경건한 허무주의가 필요하고, 그런 이들의 가장 좋은 벗은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소설과 함께 세계의 무의미를 견디고 동시에 휴머니즘이나 인본주의나 광신자들이 저지르는 역설적인 독선과 아집 그리고 공격성 이런 것들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해요. - 103쪽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 것은 `작가가 될 수 없는 백 가지 이유`가 아니라 `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인 것 같아요. - 105쪽

밀란 쿤데라의 산문들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소설은 현실의 역사와는 별 관련이 없다. 오직 소설 그 자신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 어떤 소설이 있었느냐와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지 현실의 역사와 관계가 없다는, 상당히 과감한 주정이거든요. 저는 제 소설들 역시 그 이전의 소설들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고 평생의 화두 같은 것을 정해놓은 것은 아닙니다. 대신 저는 제 소설들이 이전에 존재하고 있던 다른 소설들에 대한 제 나름의 응답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과대망상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모든 소설들은 이전에 나온 소설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137쪽

그것이 무엇에 대한 안티테제로 존재해왔든, 이제는 그것마저도 넘어갈 때가 다가오고 있다. 넘어가는 건지 대체되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96년 체제`의 종말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어요. -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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