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고전이 진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온다. 다시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것이다.  - P15

비극은 대부분 우리보다 나은 사람이 내재된 성격적 결함으로 파멸하는 얘기다. 반대로 희극은 우리보다 못한 이가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는 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시나리오를 쓰려고 한다면 적어도 자기가 쓰는 것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를 결정해야 하고, 그에 따라 걸맞은 덕성 혹은모자람을 인물에게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비극에서 우리를 가장 매혹하는것은 급전과 발견"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극작의 초심자들이 사건의 결합보다 조사와 성격 묘사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말하는데, 이는 플롯을 성격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그의 이론과 일치한다. 그는 극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성격보다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플롯에서 중요한것은 스토리를 완전히 달리 보게 만드는 반전, 그리고 그 반전을 통해 주인공이 획득하게 되는 새로운 인식이라고 보았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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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미드나잇>에서 이제 사십대에 다다른 셀린(줄리 델피)은제시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이번에도 기차에서뛰어내릴 건가요?" 비엔나에서 만난 사람과 같이 살고 있지 않은 나는 비슷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녀를 만나리라는 확신도 없이 무작정 부다페스트행 기차에 다시 오를 수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행동은 스물여덟 살에게나 어울린다. 그럼 사십대의 남자에게는 무엇이 어울리나?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것들. 극장의 어둠 속에 몸을 파묻고 영화 보기, 달콤쌉싸름한 회고담 늘어놓기, 그러다 혼자 괜히 쓸쓸한 기분에 젖어 맥주 마시기, 그리고 글쓰기.
이십대는 몸으로, 사십대는 머리로 산다. 살아보니 둘 다 나름대로 좋았다. 이제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찍을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내가 어쩌면 살았을 수도 있었을 또다른 삶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 P67

죽음과 종말을떠올리면 현재의 삶은 더 진하고 달콤해진다. 로마인들은 이천년 전에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파국을 상상해보는 것은 지금의 삶을 더 각별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카르페 디엠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그렇게 결합돼 있다. - P90

에피쿠로스가 죽음의 무의미성이라는 계단을 통해 고귀한 쾌락의 세계로 들어갔다면, 우울증 환자들은 삶의 무의미와 고통이라는 다이빙대에서 죽음의 세계로 점프한다. - P94

그런데 자기만의 방식으로 약점을 커버하면서 살아남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샤워실 가수처럼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다. 우디 앨런이 샤워실 가수 에피소드로 보여준 것은 ‘아마추어 예술가도 자기 약점만 극복하면 충분히 프로페셔널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즉 스칼라좌에서 노래하는 가수가 된다는 것은 노래 실력만으로가능하지 않다는 것, 거기에는 노래 실력 이상의 뭔가, 예컨대최소한 담력이라도 필요하다는 것으로 나는 읽었다. - P102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호메로스는 이미 이천팔백여년전에 그런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 P115

"사람마다 연극적 자아라는 게 따로 있는 건가요?"
내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인간에게 연극적 자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연극적 자아가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어렸을 때 소꿉놀이를 생각해보세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데도 아이들은 엄마, 아빠, 의사와 간호사를 연기합니다. 인간은 원래 연극적 본성을 타고납니다.이 본성을 억누르면서 성인이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 다른 사람인 척하려는 욕망을 억누르면서 사회화가 되는 겁니다. 연극은 사람들 내면에 숨어 있는 이 오래된 욕망,
억압된 연극적 본성을 일깨웁니다. 그래서 연기하면 신이 나는거예요."
그의 말은 <시저는 죽어야 한다>에서 죄수들이 왜 <줄리어스 시저>의 배역은 태연하게 소화하면서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연기하는 일에는 서툴렀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힌트를 준다.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끝없이 변화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은 바로 우리의 일상일 것이다. - P122

파묵은 말한다. "꿈을 꿀 때는 그 꿈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꿈이니까요. 우리는 소설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읽습니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순되는 상황은 소설의 본질에서 옵니다. 소설 예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바탕을 둡니다."(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민음사, 2012) - P130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책과는 달리 영화는 어쩐지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 P131

그는 마치 정해진 운명을 읽어주듯 담담한 확신을 가지고 말했고 나는 그의 말을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고 여기고 피하지 않고 맞았던 셈이다.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운명예정 따위를 믿을게 아니라면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에게 자기실현적 암시가 꼭 필요한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 그 암시가 꼭 점쟁이나 관상쟁이에게서 나올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 P154

치밀하고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버지상은 별로 현실감 없이, 다소 성급한 윤리적 선언처럼 다가온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도시/시골, 외둥이/다둥이, 전업주부/워킹맘, 유능/무능, 냉정/친밀의이항대립항들 위에 구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항대립은문제를 명쾌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편리한 장치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은 이항대립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한다. 현대의 가족들은 전선이 분명하게 그어진 정규전이 아니라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시가전을 치르고 있다. - P167

여집합은 스스로 자신을 규정할 수가 없어 여집합이다.  - P174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우선은 자신이 예측 가능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전제를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탐정의 눈으로 자신의 일상을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이다. 출근길을 바꾸고 안 먹던 것을 먹고 안 하던짓을 하며 난데없이 엉뚱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점차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되어갈 것이다. 이런 엉뚱한 연습에서얻어지는 부산물도 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감수성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무심하게 내버려둔 존재, 가장 무지한 존재가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 P184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 P192

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위해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에서 좀더 나아가야 한다. 보고 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고, 그 글과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접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생각을 적는 것이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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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은 이제 빈자들의 마지막 위안까지 탐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선택의 여지 없이 닥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가누군가에게는 선택 가능한 쿨한 옵션일 뿐인 세계 세상의 불평등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 - P30

대중은 오래전에 ‘가난한 아빠‘를 버렸다. 그런데 믿었던 ‘부자아빠는 대중을 부자로 만들어주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골드만 삭스나 J. P. 모건으로 대표되는 이 ‘부자아빠‘들이 고급 사기꾼에 불과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중은 돈과 집, 직업을 잃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부자 아빠‘들은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부자 아빠‘를 선택한 대중의 무의식은아직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 P51

지금의 대중은윤리적 생존 대신 생존의 윤리를 가르쳐줄 아버지를 선택한것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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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방황은 곧 시행착오일 뿐인데 우리는 이것을 죄악시하곤 한다. 방황은 죄악이 아니다. 인간에게 방황이 없다는 것은 나아가려는 의지가 없다는 말과 같다. 인간은 욕망하는 동물이며, 그 욕망은 더 나아지려는 의지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방황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이며 그것을 넘어선 것이 성취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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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보다 간단한 일은 없다.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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