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모두가 곧잘 따라 불렀다. 무언가를 가져보기 전에 도둑맞는 게 가능한지 생각했다.  - P84

회사에서는 업무적인 유능함이 인간적인 호감으로 전이되기 쉬웠다.  - P87

그는 그들이 말하는 어떤 결혼에도 동의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어려웠다. - P91

사람들이 이상형을 물으면 언젠가부터 그는 짧게 대답했다.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재밌고 저를 사랑하는 사람이죠."
그는 최대한 농담처럼 발음하려고 노력했다. 그럼 사람들은 "미쳤네 미쳤어"라고 말했고 그중 일부는 진담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것을 이상형이라고 부르는 한 더 나은 요약은 없었다. 길게 대답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걸 전부 듣기에 사람들의 인내심이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그 자신조차 설명이 얼마나 길어질지, 무엇이 핵심적이며 무엇이 부차적인지 자신할수 없었다. ‘이상‘이라는 단어는 너무 많은 것을 지시해서 거꾸로 아무것도 의미하지 못하는 듯도 했다.  - P91

그는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존재를 추정해야 했다. 그건 천체물리학자나 발명가의 일과 같았다. - P92

그 말은 가성비를 따지라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전자제품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으므로 ‘이 정도면 괜찮은......‘ 따위의 판단에 기댈 수는 없었다.  - P92

"자는 거야?"
그가 조수석의 그녀에게 물었다. 자고 있지 않다면 들릴 만한, 그러나 자고 있다면 깨지 않을 만한 목소리였다. 자고 있지 않지만 자고 싶다면 자는 척을 해도 좋았다.  - P98

후미등을 등진 그녀의 그림자가 아스팔트 위에 길게 드리워졌다. 어디라고 하기도 어려운, 어디와 어디 사이일 뿐인 한밤중의 도로, 일렁이는 나무와 속살거리는 풀벌레들. 그의 재킷을 입고 그의 이름을 발음하는 사람. 아무도 멈추지 않을 곳에서의 아무도 모르는 한때. - P100

사제가 그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신랑과 신부는 일어나달라고 말했다. 그는 무릎을 꿇을 때 지난 삶의 일부를 잃은듯했으나 일어나면서 남은 삶의 전부를 얻은 것 같았다. - P104

그것이 꼬물거리는 손으로 그의 손가락을 움켜잡았다.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낳다니. 열 달 동안, 어쩌면 평생 아내의 몸에서 일어난 신비하고도 가혹한 일에 대하여 그는 겸손해졌다. - P105

그럼 그들은 아낀 시간으로 무엇을 할까. 마트에 와서 물건을 담는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고 오직 그 물건들이 주는 행복의 알맹이만을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 물건들을 사기 위해 자기처럼 또다른 누군가에게 시간을 팔고 있을까. - P127

집이라기보다는 이사와 이사 사이에 잠시 머무르는 방.  - P131

퇴직금이 입금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정확하고 깔끔한 자본주의의 맛.  - P136

금발의 양갈래 소녀는 인터넷 세계를 떠돌며 가끔 길을 잃기도 하는 꼬마 유령처럼 보였다. 또는 태엽이 풀릴 때까지 아장아장 걸으며 오직 한 문장만 되풀이하는 인형.
"기립하시오 당신도!"
어쨌든 태엽을 감아주는 사람들은 계속 있었다.  - P137

때로는 시시하고 때로는 끔찍했으며 결국에는 죄다 망해버린 연애들이 있었다. 초라하게 사라진 나라들조차 폐허 어딘가에는 영광을 남기는 것처럼 그 연애들에도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은 있었다. 연애가 망하더라도 사랑은 망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저렴한 각본으로 사랑하느니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어차피 첫 단추부터 이상했으니까. - P142

‘수업 첫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수업마지막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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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바다 앞에 오래 서 있지는 않았다. 십분. 길어야 삼십 분. 허술한 기대로 바다에 간 여행객이 그렇듯, 멋쩍게 ‘자 이제는 슬슬......‘ 하면서 다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 P37

번잡한 감정들이 눈을 감아도 침전되지 않았다. - P42

바보 같지만 가끔 되풀이 하고 싶은 모든 소란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 P51

사랑은 걷잡을 수 없는 정열일까, 견고한 파트너십일까. 둘 다일 수도, 둘 다 아닐 수도. 왜 사람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부재를 느낄 수 있는지. 걔였는지 쟤였는지 이름과 얼굴은 지워졌어도 촉감과 온도와 음향, 아득한 형체로 남은 것들. - P51

갱신을 원한다면 모험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몰랐다. - P52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외모를 초월한 사랑이 더 진실하다 여기면서도 정말 그것들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면 자격을 물었다. 인생을 반도 안 산 사람에게 어떻게 ‘도태‘되었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지, 596명이나 거기에 추천을 누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의아했다. - P70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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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 날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두렵다. 가슴이 두근대고 숨이 가빠진다. 그렇다고 평생 숨어 살고 싶지만은 않다. 비록 깨지고 상처 받을지라도, 당당해져야지. 더는 나를 미워하거나 불쌍하게 여기지 않고, 나를 사랑해야지.
소장님은 내가 스스로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소중하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더는 미룰 수 없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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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 뭔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계속 버티고 글을 쓰는지는 희미하게 감이 잡힌다.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실패와 좌절을 동반하는 작업이다. 애초에 이상적인 결과물을 상상하지 않고서는 글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은 특히 그렇다. 모든 영화 글쓰기는 자신이 본 영화를 닮고 싶어한다. 자신을 감동시킨 영화에 최대한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떤 영화 글쓰기도 근본적으로 영화와 일치할 순 없다. - P7

서로 다른 길을 걷던 두 마음은 찰나에 겹치고 이내 제 갈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끝내 멀어지는 이야기. 새벽녘 마법 같은 그 시간이 아름다운 건 그 완벽한 순간이 찰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 P9

예정된 소멸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웨스 앤더슨(혹은 아서)의 조언은 단호하다. "울지 말 것." 사라져가는 것을 연민할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다. <프렌치 디스패치> 마지막 호를 발간하며부고 기사를 쓰러 간 기자들처럼.  - P23

언젠가 삶은 정지하고, 나의 세계도 끝이 난다. 누구도 시간을 피해갈 수 없다. 영화는 시간에 저항한다. 그렇다고 죽어버린 시간을 되살리는 건 아니다. 과거를 기록하는 도구와도 다르다.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의 매혹은 끊임없이 ‘지금‘을 생산하는 데 있다. 무수히 많은 ‘지금‘들의 연결은 끝내 시간의 흐름마저 지워버린다. 모든 것이 바뀌는 중이다.  - P25

내러티브 영화에서 시간이란 고개를 젖혀 뒤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을 머릿속에서 복기하며 재구성하는 일종의 인과 작업이다. 현실에서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이야기는 인과의 완결된 세계 안에 갇혀있다. 영화는 그렇게 완성된 세계 안에 시간을 가둬왔다. 그러나 일상의 어느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 될지 알 수 없는 현실감각의 기준에서 보자면 인과관계란 뒤돌아보는 시점으로부터 결정되는 얇고 가는 실에 불과하다.  - P32

서사에 길든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는다. 과거, 혹은 미래의 시점에서 지금 이 순간을 해석하곤 한다. 때론 너무 많이 아는 게 문제다. 이야기라는 평행 세계의 감각을 거꾸로 현실 영역까지 가져와 버리기 때문이다. 그 순간 점찍은 사건 사이로 수많은 가능성이 빠져나간다.  - P34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전부를 알지 못한다는 걸. 우리가 볼 수 있는 건겨우 손전등 하나, 한 사람의 시선 분량의 시대다. 그거면 충분하다. 애초에 인간이 신의 시점으로 역사를 조망할 필요는 없다. 그건 신의 몫으로 남겨두라. 한 사람이 겪는 하잘것없어 보이는 일도, 아니 그거야말로 영화가 사랑해 온 대안의 역사다. 그 사건이, 그들이 거기 있었음을 증명하는 카메라들의 힘으로 영화는 세상의 일부가 된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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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우리 국민은 위선이 싫다고 위선조차 떨지 않는 자에게 권력을 주었다. 그 선택을 되돌리고 싶은 유권자가 있었기 때문에 조국혁신당은 약진했고 민주당이 압승했다. 윤석열이 권력을 무도하게 휘두를수록 조국혁신당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윤석열이 모든 것을 잃고 오욕의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져야 조국의 전쟁은 끝이 난다. - P220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누가 옳은지 가릴 방법은 없다. 그런데 정부는 하나뿐이다. 이념의 다양성은 정부의 단일성과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민주주의는 그 충돌을 해소하고 완화하는 방법과 절차이다. 무슨 이념이든 다 표현할수 있게 하고,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당을 만들게 하고, 다수의 신임을 받은 정당이 법이 정한 기간 동안 국가를 운영하게 하고, 다음 선거에서 이긴 다른 정당이 국가권력을 넘겨받게 한다. 이러한 ‘무한반복 게임으로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개인과 집단의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핵심이다. - P244

민주주의는 ‘극단적 이념‘도 배척하지 않는다. 극단적 이념을 왜 극단적이라고 하는가? 극소수만 이해하고 찬성하니까 극단적이라고 한다. 그런 이념은 사회를 위협하지 않는다.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니다. 다수의 이해와 지지를 얻으면 사회의 통념이 된다. 노예해방, 인민주권, 페미니즘도 처음에는 극소수만 옳다고 여긴 ‘극단적 이념‘이었다. 민주주의가 배격하는 것은 극단적 이념이 아니라 다른 이념을 폭력으로 공격하고 말살하려는 독선과 불관용이다. 다수파든 소수파든 상관없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이념을 폭력으로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 P244

아모스와 고블린의 권력 상실 과정과 상실 이후의 삶을 결정한 것은 인간의 윤리 도덕이 아니라 알파 메일에게 보안관 행동을 기대하는 침팬지 무리의 생물학적 본능이었다. 권력과 관련하여 인간이 형성한 윤리 도덕은 호모 사피엔스와 침팬지가 공유한 본능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 본능의 유전자는 두 종의 조상이 갈라진 6백만 년 전에 이미 자연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은 윤리 도덕을 무(無)에서 창조하지 않았다. 자연이 준 능력이 있었기에 문명의 규범을 세울 수 있었다. 본능은 끈질기고 힘이 세다. 역사의 시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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