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슬프거나 하진 않아. 애초에 없었으니까 그립지도 않고. 그저 남들은 모두 알고 있는 세상 사는 매뉴얼 같은 걸 나만 모르는 건 아닌가 싶은 기분이야." - P26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도담이 해솔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데?"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 P32

사람들이 숭고하다며 가치를 부여하는 일들은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벌어지거나 무모함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나중에 의미가 부여된 것일 수도 있다. - P39

어떤 말은 혀를 통해 입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의식을 붙들어 매고 돌이킬 수 없는 힘을 가진다.  - P59

사람들은 그들이 기대한 만큼 비극을 겪은 사람이 충분히 망가지지 않으면 일부러 망가뜨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 P85

희진의 말처럼 남 이야기를 수군거리는 것은 자신에게 집중할 일 없는 사람들의 가벼운 유흥에 불과했다. - P86

그들이 어리게 느껴졌다. 그들과 비슷한 나이인 태준은 남들처럼 추억을 만들고 웃고 즐기는 연애를 바랄 뿐이었다. 상대방의 지옥을 짊어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연애라는 건 상대방이라는 책을 읽는 거라고, 그렇게 두 배의 시간을 살 수 있는 거라고, 태준은 말한 적이 있었다.
도담은 자신이 펼치고 싶지 않은 책, 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 책처럼 느껴졌다. 전부 말뿐이었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은 태준에게 자신이 그토록 상처를 받은 게 놀라웠다. - P99

일단 도담이 자신을 망가뜨리려 하자 그 일을 도와줄 사람들은 넘쳐났다. 상처 입은 사람의 냄새는 애써 덮고 감추어도 눈빛에서, 걸음걸이에서,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도담이 외롭다는 것을 감지하고 남자들은 어디선가 나타나 접근했다. 시체를 뜯어 먹으려고 강바닥에 숨어있다 모여드는 다슬기처럼. 도담은 그들과 술을 마셨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누군가에게 쉽게 빠졌고 쉽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도담은 고백해 오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 P100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신 도담은 냉소에 빠졌다. 결국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소통보다 침묵을 더 신뢰했다.  - P100

분노는 그 분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 더욱 쉽게 뿜어져 나온다. 상처도 아무도 모르는 상처보다 그 상처의 존재를 아는 사람 앞에서 더 아프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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