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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하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평범한 일상, 갑작스러운 사건, 커다란 좌절, 새로운 시작.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구성에 대한 패턴은 그의 책을 몇 권쯤 읽어보았다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어서, 언제부터인가 후반부에 있을 법한 반전에 대한 큰 기대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매번 그의 신작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소재로 일상의 소중함을, 또는 망가져버린 삶의 소생을 그렸을지를 궁금해하며 책을 구입하고 만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일상의 권태로움을 탈출하기 위하여 호주 다윈이라는 곳으로 여행을 한 주인공 닉 호손이 척박하고 낯선 환경에서 마치 과거의 어느 시점에 뚝 떨어진 것 같은 앤지라는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2부에서는 울라누프라는 오지에 앤지의 남편감으로 납치된 닉이 그곳에서 겪는 고난이 그려지고, 3부에서는 앤지의 언니 크리스탈과 울라누프를 탈출하게 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삶의 소소함과 무료함은 예상치 못한 큰 고난을 겪어야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 것임에도, 일상을 탈출하기 위한 여행에서 닉에게 닥친 국면은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작가는 닉의 일상을 아무런 즐거움이나 희망도 없이 한정된 사람들과 제한된 영역 내에서 단조로운 작업을 하며 매일을 맥주로 버텨갈 수밖에 없는 삶으로 전락시켜 그가 그토록 따분하게 여겼던 자신의 삶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으로 재인식시킨다.
결론이 해피앤딩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곳을 탈출했기 때문에 해피앤딩일 수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으니 해피앤딩으로 볼 수는 없는지. 어쨌거나 이 모든 상황과 감정들이 이리저리 뒤섞인 중에도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자기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욕망의 충족만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임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도 어찌보면 여행지의 낯설고 신기한 경험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일상으로 돌아와 또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가기 위함일 수도 있으니.
작고 사소한 행복이야말로 우리의 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진정한 축복일진대 왜 우린 평생 어렵게 행복을 찾아헤맬까? - 22쪽
쿠누누라는 사실 아무런 매력도 없는 마을이었다. 텅빈 원생대의 땅으로 멋모르고 뛰어든 나에게는 사람 사는 마을이 제공하는 안전이 절실히 필요했다. 눈을 돌릴 데가 많은 마을이 필ㅇ했다. 아무것도 없는 황야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니까. 그거야말로 오지에 도사려 있는 위험이었다. 오지의 공허는 자기 자신을 더욱 의심하게 만드니까. 원시적인 대자연 속에 있다 보면 사소한 근심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은 죄다 헛소리일 뿐이었다. 내 경우에는 오히려 두려움과 자기혐오가 증폭되었다. 대자연이 내게 말했다. ‘넌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 - 59, 60쪽
사람들은 힘든 노동에 더욱 큰 목적이 있는 척하며 삶을 견딘다. 노동이 그저 의식주를 해결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더욱 큰 목적이 있는 척한다. 결국 우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일할 뿐이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초라한지 마주하지 않기 위해 일할 뿐이다. 계속 바삐 일하다 보면 우리의 삶이 절망적으로 무가치하다는 사실과 우리 스스로 빠져든 막다른 길의 깊은 수렁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204, 205쪽
나는 시간낭비를 즐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망, 가족, 애정관계 따위를 인생의 동력으로 삼았지만 나는 달리 살고 싶었다. 내 동년배들은 인생의 안정을 가져다줄 성공의 터전을 구축하길 원했지만 나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늘 흐리컹덩하게 살며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적게 벌어 적게 쓰고, 맥주를 마시고, 오다가다 만난 여자들과 섹스를 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성공에 대한 관심이 없이 시간이 마냥 흘러가도록 방치했다. - 284, 285쪽
이제 예전생활보다 더욱 의미 없는 일상에 갇힌 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며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대디가 밴을 망가뜨렸을 때 내가 왜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도 깨달았다. 내가 마침내 소중한 시간을 들여 구축한 일이었기 때문이며, 혼신을 다해 일했던 성과가 눈앞에서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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