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슨 스토리 - 창의와 혁신의 브랜드
레인 캐러더스 지음, 박수찬 옮김 / 미래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가끔 외국에 출장 갈 일이 생기면, 호텔이나 공공기관 또는 공중 화장실 같은 곳에 설치된 기계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그 지역에서 유행하는 제품이 무엇이며, 내가 머물러 있는 곳의 성향이나 수준을 확인하기에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호주에 갔을 때 건물 화장실에 가서 보니 대부분이 다이슨(Dyson) 에어블레이드(Airblade)라는 멋들어진 이름의 건조기를 설치하고 있었다. 별로 들어보지 못한 브랜드인데 이곳에서는 자주 보이는 걸 보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손을 넣어보았는데 강력한 바람으로 젖은 손이 금방 건조된다는 느낌은 있었지만(소음은 엄청났다), 다른 건조기에 비하여 특별히 월등한 장점을 지닌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다이슨은 내게 별로 특별히 기억되지 않은 제품 브랜드였다. 그러다가 얼마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자, 잠들어 있던 약간의 호기심이 깨어났다. 잘 모르는 브랜드이니 한번 알아보고 싶어 책을 집었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개의 목차는 창업에서부터 전개되어 몇 번의 위기를 맞이하고 그것을 극복한 성공기라는 시간적 수순을 밟지만, 여기서는 중간중간에 '작동하거나 말거나(2장)', '기업가 이야기(5장)', '생산적 나르시스트(7장)'과 같이 중간중간에 다이슨에 대한 분석이나 해설을 끼워 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구성이 딱히 장점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2장에서의 다이슨에 대한 소비자 설문조사나, 5장에서 다이슨의 스토리를 영웅서사에 비교하며 각 시기들을 분류한 표, 7장의 제임스 다이슨과의 면담들은 내게 오히려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대체적으로 특정 기업을 분석하는 책에는 '창의'나 '혁신'이라는 단어가 붙는데 이 책도 역시 그러하다. <창의와 혁신의 브랜드 다이슨 스토리>. 그러나 그 창의와 혁신이 어떤 생각에 의하여 동기화되었는지는 그 기업의 특징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그것은 'Think Different'(애플)이기도 하고, 'Leg Godt'(레고)이기도 하고, 'Just Say Yes'(스타벅스)이기도 하며, 'Story is King'(픽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이슨사의 정신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는 단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I just think things should work properly)"라고 말한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의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즉 다이슨의 이야기는 창의성과 고집에 관한 이야기다.


제임스 다이슨은 스스로가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임을 자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매우 섬세한 소비자이기도 하다. 그는 후버(Hoover) 청소기를 몇 번이고 분해한 끝에 청소기로 빨려 들어가는 먼지가 먼지봉투의 미세한 구멍을 막으면서 흡입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공신화가 그렇듯) 그의 집 뒷마당 창고에서 3년을 더 실험한 끝에 '사이클론(Cyclone)'이라는 방식의 모터를 개발하는데, 이것은 먼지봉투 없이 먼지를 분리하면서도 흡입력을 잃지 않는 방식이다. 몇 번의 고전을 했지만 그의 청소기 DC01은 영국과 호주는 물론 미국에까지 입성을 하며 후버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다이슨이 그 특별함을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어필을 했을까? 


그것은 전략적인 마케팅도 적극적인 홍보도 아니었다. 너무나 뻔하게도 제품 자체로 승부한 것이다. 그는 제품이 중요하다는 것을 매우 강조하는 경영자다. 카페트는 물론이고 그 아래 숨어 있는 먼지까지도 죄다 빨아들이는 다이슨 청소기의 강력한 흡입력은, 그동안 사람들이 낮은 성능의 제품을 썼다는 생각과 더불어 자신의 주변이 매우 더럽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후버를 사용하고 있던 한 소비자가 다이슨을 쓰고 나서는 먼지통을 두번이나 비웠다는 입소문이 여기저기에서 전해지며 그 강력한 힘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이끈 것이다. 게다가 디자인에 대한 안목도 있기 때문에 마치 우주선에서 사용하는 기기를 연상시키듯 독특한 제품의 형태와 청소기에서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 오렌지 배색을 사용한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이 제품에 대한 뭔가 다른 것을 어필하게 된다. 


비록 드럼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는 강력한 세탁효과로 세탁시간을 줄여주는 CR01은 큰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이후 다이슨은 에어블레이드의 원리를 응용하여 제작한 날개 없는 선풍기 에어멀티플라이어로 다시 한번 그 창의성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의 생각은 단순하다. 왜 사람들은 100년이 넘게 날개 있는 선풍기를 불평없이 사용하는가, 이다. 청소도 불편하고, 날개에 아이들 손이 다칠 수도 있고, 안전을 위해 망을 씌우면 바람의 출력이 뚝 떨어지는 선풍기를 말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처음에 밝혔던 바와 같이 기기가 그 목적에 맞게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에 있었다. 본질에 충실하지 않은 채 요란한 외형이나 색체만을 내세웠다면, 기기 자체가 아니라 그 마케팅에 많은 집중을 하였다면, 지금의 다이슨이 누리는 성공은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업에 관련 경영서적들은 대체로 그 기업의 정신과 조직운영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아무래도 현대 경영학이 제품 자체보다는 제품의 생산과 관리 그리고 마케팅, 재무와 인력 관리 같은 것에 더 비중을 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성공한 기업을 대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기업의 이미지나 분위기, 스타일을 궁금해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보다는 엔지니어링 자체에 대한 다이슨의 노력에 보다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이슨사가 어떻게 일하고 성과를 공유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이 책을 통해 명쾌하게 풀리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또 하나의 단점은 문체가 너무 번역투여서 부드럽게 읽히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우리는 제임스 다이슨이 기존 산업계, 특히 자신이 속한 업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세계는 차선이 충분히 좋은 것으로 여겨지고, 좋은 제품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실제 제품을 써 볼 때 경험하는 것과 같지 않은 곳이다."와 같은 문장이다. 무슨 말인지...

  

엔지니어는 일생의 대부분을 실패하느라 쓴다. 예상대로 작동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고통스러운 실험을 반복한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럼에도 전구가 작동하지 않는 2000가지 방법을 찾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수천 곳의 공방, 실험실,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수 없는 실패 속에서 엔지니어들은 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점점 더 분명하게 생각하게 된다. 엔지니어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 겪었던 고통과 불편함을 당신이 또 다시 겪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다이슨사는 그들 스스로를 브랜드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누군가를 속이고 등쳐먹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이념의 대변자들이다. 더 나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엔지니어의 이념 말이다. - 49쪽

다이슨사의 사람들을 비롯해 엔지니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이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실용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더 좋은 제품과 기술을 만들고 싶어 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탐구한다. 땅에 발을 딛고 선 이상주의자들인 셈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엔지니어들은 거대한 계획과 길고 긴 실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몇 달, 몇 년을 수없이 실패작을 버리느라 소비한다. 클라이맥스는 그들이 만든 제품이 실제 작동했을 때다. 그 클라이맥스는 진공청소기 밑, 아무도 보지 않는 플라스틱 부품을 조립할 때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개발한 비행기가 시험비행에 나설 때일수도 있다. 우주 조종사가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했을 때일수도 있다. 그 누구도 이 순간만큼은 엔지니어들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다.
엔지니어들은 인생의 상당부분을 문제 해결에 매달리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엔지니어의 삶에서 두 가지 기본 가치가 있다. 첫째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완성하는 것이다. 도로든 소프트웨어든 말이다. 둘째는 그 완성을 통해 엔지니어로서의 신념이 더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 50, 51쪽


인간은 오직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만 확신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게 언제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언제나 우리 일상생활에 작동되고, 우리 대부분은 최대한 사실을 무시하려고 한다. 우리가 이 문제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은 일련의 믿음을 체계화해 이 문제를 대비하는 것이다. 진보라는 것이 하나일 수 있다. 우리는 과학과 기술을 사용해 우리 주변을 통제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좋길 원한다. 다이슨사는 이런 믿음의 상징이다. 우리는 다이슨 제품을 사면서 이런 진보의 믿음에 재투자한다. 다른 제품들처럼 다이슨의 제품은 우리가 삶에서 겪는 문제들을 일시적으로 해결해 준다. 그 문제란 우리 집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깨끗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 51쪽

다윈주의의 접근법은 여전히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1990년대 초반 코넬대의 마이클 해넌(Michael Hannan)과 존 프리먼(John Freeman)이 다윈주의를 조직이론에 적응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 접근이 급진적인 이유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변화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조금씩 변화시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터져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삶이란 우리의 계획을 뛰어 넘는 우연에 따라 더 크게 변하고, 따라서 성공의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는 것뿐이다. - 106쪽

인류학자이자 자연사가인 그레고리 바터슨(Gregory Bateson)이 말했듯이 흥미로운 일은 언제나 변방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날씨를 관리, 통제할 수 없듯이 혁신을 관리할 수 없다. 당신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은 좋은 아이디어와 유연성, 규범, 주변으로부터 오는 좋은 피드백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 107쪽

다이슨은 브랜딩에 대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숨기는 것이란 뜻이다.

a. 첫째 당신의 제품이 다른 제품과 비교해 다르지 않다.
b. 당신도 남과 다를 게 없다.

내 생각에 이런 다이슨의 생각은 ‘해결책 순수성(purity of solution)`학파식 접근이다. 그는 실험복을 입은 사람처럼 말한다. 이 장비, 도구, 약품, 코드는 완벽하게 만들어졌고 철저한 테스트를 거쳤다. 이것은 우리가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다. 필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이 제품을 쥐어주는 것뿐이다.
많은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이 마케팅을 혐오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 그들은 마케팅이 소비자와 해결책 사이를 가로 막는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 174쪽

어떤 정의를 쓰더라도, 다이슨은 브랜드다. 제품의 의미가 성공적으로, 그리고 생생하게 관리되어온 제품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브랜드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경쟁사 분석이나 소비자 조사에 갇히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로 비유하면 다이슨은 그저 다이슨 자신만의 게임을 하면 된다. 괜히 상대팀의 지난 경기 녹화 비디오를 돌려보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이슨은 자신만의 확신을 따른다. 기술에 신경을 쓰며 당신의 P(좋은 제품)를 세계 최고로 만들면 된다. D(특별한 정체성)를 확고히 하라. 그리고 F(느낌)는 저절로 따라오게 하라. - 181, 182쪽

다이슨 기술자들이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이들이 개발한 원리는 이렇다. 모터를 선풍기 몸체에 해당하는 부분에 설치하고, 이 모터가 작은 바람을 흘려보내주면 주변의 바람이 합쳐지면서 큰 바람을 일으킨다. 마치 우물물을 길어 올릴 때 약간의 마중믈을 넣어서 큰 물을 뽑아 올리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기술자들이 금속 시제품을 만들고 다듬기를 4년. 다이슨은 2009년 10월 영국 시장에 에어멀티플라이어를 내놨다. 2009년 미국 주간지 <타임(Time)>이 ‘올해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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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10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자가 전문적으로 번역을 해본 사람이 아니군요. 그래서 어설픈 문체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붉은눈 2016-07-10 17:15   좋아요 0 | URL
역시 꼼꼼하시네요. 책이 기대에 못미쳐서였는지 마지막 본문을 읽고 저는 책을 그냥 덮어버려서 역자가 누군지 확인하지도 못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