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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화질세트] 기생수 애장판 (전8권/완결)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 / 2014년 10월
평점 :
판매중지
만화가 보고 싶어 뒤적이다가 골랐다. 일본 만화를 '쫌 봤다'는 사람들을 통해서 익히 많이 들었던 책이라 진작부터 보고 싶었지만, (손 발에 눈 달린) 이런 그림체를 좋아하지는 않는터라 그동안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일종의 슬럼프가 생겼고 그에 따른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하여 만화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중 완결된 만화책을 찾다보니 이 책 <기생수>가 걸려 들었다.
작가가 이 만화를 일본 잡지에 연재를 시작한 것이 90년대 초반이고, 이후 2-3년에 걸쳐 완결되었다고 해도, 발간된지는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일본도 그랬던 것 같은데, 9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에콜로지'에 대한 붐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이것은 환경보전을 둘러싼 국제적인 흐름과 전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환경정책이나 환경법의 연혁상으로는 1992년 리우회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용어가 매우 중요하게 언급되기 시작하였고, 의제 21과 더불어 '기후변화협약'이나 '생물다양성협약'이 체결된 것도 이 때이다. 만화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국제환경조약 얘기를 해서 이상하기는 하지만, 모든 작품은 시대적 산물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 만화 역시 한창 에콜로지에 대한 논의가 치열했던 그 시기에 발행되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존재의 이유도 모른 채 어느날 기생수가 등장한다. 인간의 뇌에 침투해서 그 인간을 숙주로 조정하며, 숙주의 육체적 생존을 위해 다른 인간을 잡아 먹는다. 이것만으로는 괴기만화 혹은 영화 <연가시>와 같은 류의 재난 만화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에서 독자들에게 '종'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생존에 맞물린 살육에 대한 선과 악의 모호성이 그 뒤를 따라온다. 분명 기생수들이 인간을 잡아먹으며 숙주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살육일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살육은 거시적으로 보면 지구적 관점에서의 개체에 대한 균형 유지일수도 있다. 인간들에 의해 훼손되고 오염된 지구, 인간들에 의해 지배 혹은 멸종된 동식물들의 처참함을 생각한다면, 기생수라는 천적으로 통하여 인간의 개체수를 자연발생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인가 악인가?
일부 지각을 갖춘 기생수들에게는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기생수는 왜 존재할까? 기생수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인간을 먹어야만 하는 것일까? 인간과 기생수가 공생할 수 없을까? 이러한 의문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실험이 시작되고, 기생수 집단들은 마침내 작은 지역을 거점화하는데 성공한다. 기반을 확보하여 인간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기생수와의 공생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 공존에 대한 질문에 인간은 군대를 동원하여 기생수를 박멸 혹은 멸종시키는 것으로 답한다. 이것은 선인가 악인가?
동물이 식물을 먹는 것, 동물이 동물을 잡아먹는 것,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 먹이사슬에서 생존을 위한 살육에 선과 악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면서도 그것이 인간이라는 종에 해가 된다면 '악'이 된다. 얼마전 읽은 <종의 기원>에서의 유진처럼 본능적이고 태생적인 사이코패스의 살인에 대해서는 그것을 '악'이라고 명명하는데는 주저함이 없지만, 단순히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살육이 아니라 유희를 위하여 또는 보다 편한 식육을 위하여 비윤리적으로 행해지는 사냥이나 공장식 축산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것을 '악'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은 얼마나 자의적이고 편협한가.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현재와 이 책이 발간되었을 과거와의 시간차를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분명 생각할 여지를 많이 제공하는 책이었다.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 바로 주인공이 외부적 상황에서만 선과 악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점이었다. 주인공 신이치는 기생수가 뇌로 침투하지 못한채 오른팔에 침투하여 본의 아니게 기생수와 공생하게 된다. 그는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선을 지키고 악을 섬멸하기 위하여) 기생수와 싸우고 그의 팔에 기생하는 '오른쪽이'는 신이치의 의지대로 다른 기생수들을 죽인다. 그러나 신이치는 그런 오른쪽이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른쪽이가 변형을 해서 다른 사람의 차를 열거나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서 돈을 슬쩍하는 것을 더욱 크게 문제 삼는다. 기생수를 통해 그 기생수의 동족을 살해하면서도 그것이 악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신이치에게는 생략되어 있는 셈이다.
작가는 기생수와의 최후의 결투에서 그의 생명을 끊는 것을 주저하는 신이치 보여준다. 신이치를 통하여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규정하는 것이 있다고 독자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작가가 강조하는 '그것'이 과연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본질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의문은 단 하나... 기생생물이 존재하는 의미에요. 대체 무엇 때문에..." "간단한 것 아닌가? 지구에 있어서 인간은 `독소`가 된 거지. 그래서 `중화제`가 필요해진 거고." - 3권 95, 96쪽
"비관적인 미래상을 보이며 `조금만 있으면 이렇게 됩니다`하고 협박하면서 효과를 얻는 방법도 있지만, 저는 도리거 `이렇게 하면 이만큼 아름다운 세상이 옵니다` 하며 아름답고 이상적인 미래를 보이고 싶습니다. 물론 그것은 누구라도 납득할 만한 현실적인 것이어야 하겠지요." - 4권 102쪽
"다른 생물을 예로 들어봐야 허사겠지만... 인간과 가축들도 공존하고 있잖아! 물론 대등하진 않지. 돼지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일방적으로 자기들을 잡아먹는 괴물일 뿐이야. 인간들 자신도 거창하게 떠들어대고 있잖아? `지구의 모든 생물은 공존해야 한다` 개중에는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 같은 말도 안되는 슬로건도 있고." - 5권 97, 98쪽
"난 인간이 아니니까, 인간이 만든 법률이니 도덕을 들먹이면 곤란해." "그래도 내 손이라구!" "신이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에 사소한 거 가지고 고민하지 말자. 내가 살기 위해 내가 한 짓이야. 알겠어? 너와 나는 협력관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종이 다른 생명체다. 각각이 종이 갖는 성질을 되도록 존경하고, 자기측의 이념을 강요하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후, 우리의 공동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 그건 우선 `살아남는` 거야. 안 그래?" - 6권 13쪽
"이번은 너희들의 승리라고 해도 좋다. `살상`에 관해서는 지구상에 인간을 능가할 생물이 없으니까. 하지만 자네들이 지금 들고 있는 도구는 다른... 더 중요한 목적을 위해 쓰여야 해. 즉... 생물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 7권 182쪽 "너희들의 진짜 역할은... `솎아내기`야. 조금만 더 있으면 온 인류가 알게 되겠지. 인간의 수를 당장 줄여야 한다는 것을..." - 183쪽 "좀 더 있으면 `살인`보다 `쓰레기 투기`가 훨씬 중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있으면 우리 존재의 중요성을 깨닫고 보호하려 들지도 몰라. 너희들은 자신의 `천적`을 좀더 존중할 줄 알아야 해. 그리고 이 천적은 아름다운 대자연의 피라미드 정상에 우뚝 선다! 인간보다 위에! 그러므로써 균형을 회복된다! 지구상의 누군가가 문득 생각한거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고..." - 184쪽
"인간 한 종의 번영보다 생물 전체를 생각해! 그래야 만물의 영장이다! 정의를 위한다고 떠들어대는 인간! 이 이상의 정의가 어디 있단 말인가!" - 7권 186쪽 "인간에 기생하여 생물 전체의 균형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우리에 비하면...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좀먹는 기생충... 아니... 기생수다!" - 187쪽
`누가 정하지? 인간과... 그밖의 생명의 기준은 누가 정해주는데?` - 8권 179쪽 "이놈은 인간과는 다른 생물이야. 인간의 편익만을 생각할 수는 없어." `나는 지금... 인간으로서 터무니없는 중죄를 범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에게 해롭다고 그 생물에게 살 권리가 없다는 건가? 인간에게 해롭다 해도 지구 전체로 보면 도리어...` - 180쪽 "생물은 때로는 서로를 이용하고 때로는 죽인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아니 상대를 자신이라는 `종`의 잣대로 재면서 다 파악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211쪽 "다른 생물의 마음을 아는 체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다른 생물들은 무엇도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설령 전혀 이해할 수 없어도 존중해야 할 동거인임에는 틀림없다.다른 생물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 외롭기 때문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 멸망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인간 개인의 만족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그게 전부니까. 인간의 잣대로 인간 자신을 비하해봤자 의미는 없다." -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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