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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애프터 유 : 전 세계를 사로잡은 『미 비포 유』 두 번째 이야기
조조 모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오랜만에 로맨틱 소설을 읽었는데 그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거기서 끝을 냈어야 했는데, 그 기쁨을 이겨내지 못하고 하지말아야 할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 속편을 사버리고 만 것이다. 정말로 후회한다. 다시 어제로 돌아가서 이 책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단순히 책 값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속편을 읽는 내내 밀려들었던 짜증이 오히려 전편을 읽은 후에 남았던 감동까지 싸그리 뭉게져버렸기 때문이다. 전편만한 속편이 없다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계의 강한 속설이지만, 이 책은 정말 그렇다.
<미 비포 유(Me Before You)>를 읽을 때 소설의 제목을 '당신을 만나기/알기 전의 나'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더는 윌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속편의 제목을 <에프터 유(After You)>라고 한 것을 보면 이 두 편의 소설, 즉 비포와 에프터의 기준점인 유(you)는 윌이 아니라, '윌의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법상 이 인칭대명사가 죽음을 가리킬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전편과 속편은 각각 윌의 죽음 이전의 나(루이자)와 그 이후의 내 모습을 나누어 소설에 담은 셈이다. 독자로서 윌이 죽은 후에 홀로 남게 된 루이자는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독자들은 비록 소설이 끝난 후의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루이자가 느끼는 깊은 슬픔과 아픈 상처에도 불구하고, 윌의 바람대로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궁금증과 바람을 작가로서 해소해주려는 의도로 속편을 쓰겠다는 의도는 알겠으나, 이러한 독자들의 기대가 전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운명을 접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스포 있습니다)
우선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다. 작가인 조조 모예스는 속편을 쓰는 동안 더글러스 케네디를 영접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허황된 설정들이 난무하다. 윌이 남긴 돈으로 얻은 아파트 옥상에서 술에 취한 채로 그를 그리워하다가 누군가의 등장에 놀라 루이자가 추락을 한다던지, 추락한 그를 병원까지 후송한 구급대원(샘)과 결국에는 사랑에 빠진다던지, 어느날 갑자기 윌의 딸이라며 존재를 전혀 알지도 못했던 열 여섯살 짜리 소녀(릴리)가 등장해서 루이자에게 친부인 윌에 대해 알려달라고 한다던지, 루이자가 단지 윌의 딸이라는 이유로 릴리를 보살피기 위해 헌신하며 그녀를 집으로 받아들이고 가출한 그녀를 찾아 헤메다가 직장에서 짤리고 너무나 가기 원했던 새 직장도 접는다던지, 릴리의 등장에 단지 '핏줄'이라는 이유로 그 완고한 트레이너 부인(윌의 어머니)이 받아들인다던지, 샘과의 애매한 사랑을 확인하고자 할 때쯤 샘이 총에 맞는 위기가 발생하고 이후 둘의 관계가 급물살을 탄다던지 하는 과도한 상황들은 읽는 내내 실소를 금하지 못하게 만든다.
전편에서 매우 강한 비중이었던 윌이라는 주인공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쯤은 이해한다. 그런데 도대체 왜, 윌의 존재를 상기시키기 위해서 숨겨두었던 딸이 등장해야 하며, 그 딸은 열 여섯살 까지 가만히 있다가 우연히 본 신문에서 엄마가 자기를 욕할 때 그렇게 부르짓던 아빠 '윌 트레이너'의 기사를 보고 갑자기 자신의 핏줄과 아빠의 인생을 궁금해하기 시작했으며, 얘는 곧장 할아버지, 할머니인 트레이너 부부를 찾지 않고 간병인인 루이자에게 왔어야 했는가? 왜 루이자는 릴리와의 동질성을 통해 윌의 부재를 재확인 할 수밖에 없으며, 자기가 릴리의 엄마 노릇을 하는 것과 같은 과도한 개입을 하는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한 읽다 보면 문체가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된다. 같은 작가의 작품임에도 전편과 속편의 번역 문체가 판이하게 다르다. 그것이 작가의 문체가 변한 것인지, 번역자가 바뀌어서 그런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소설 속 설정 자체의 난잡함은 차치하더라도, 전편에 비하여 상당히 가독성이 떨어진다던가 읽다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문장과 말투가 있는 것으로 보면 조심스럽게 번역자에게 원인을 돌려본다. 일부는 오역으로 의심되는 부분도 있지만 굳이 원서를 사서 원문과 대조해보면서 따지고 싶지는 않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작가는 속편 또한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불필요한 샘의 피격 장면이나 맨 마지막 루이자의 집 옥상에서 벌린 '새 출발 서클'의 수료식에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모여 기쁨과 환호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장면, 마지막 공항에서 루이자의 뉴욕행 출국 장면은 헐리우드 영화에 꼭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 장면들이다. 이런 진부한 장면들을 굳이 이 소설에서 또 접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동화를 보면 그 마지막은 항상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두 사람이 사랑을 얻게 되기까지의 희열은 동화 속에서 설정된 위기의 극복을 통해 극대화되며 그것만으로도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는지에 대해 서술하자면, <슈렉2>에서 보여주었던 너무나도 현실적인 결혼 생활과 일상의 권태로움 정도일텐데 이것으로 감동을 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로서 그 쉽지 않은 길을 감행한 시도는 좋았으나, 잡다하고 복잡한 관계와 설정에 밀려 작가가 도대체 이 소설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다시는 로맨스 소설의 속편들은 읽지 않을 생각이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면, 감당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그 사건이 자꾸만 떠오르고, 불면의 밤이 계속되며, 머릿속으로 그 사건을 끊임없이 되뇐다.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필요한 말을 한 것인지, 상황을 바꿀 수 있었는지, 조금이라도 다른 대처를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 46쪽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여러 단어가 입에서 맴돌았다. 윌과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이 세상 어떤 사람과도 다르게 그 사람이 나를 온전히 이해해준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몸에 구멍이 난 듯 고통스럽고, 다시는 채울 수 없는 부재를 끊임없이 일깨우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 애가 어떻게 이해할까? - 126쪽
아이들은 참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선이 없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이의 입에서 다음 질문이 나오고, 시선에서는 희미하게 탐색하는 기미가 보였다. - 127쪽
우리 모두 슬픔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그런 감정을 느끼길 원하고 있었다. 이 죽은 사람들의 지하세계에서 우리의 심장 절반을 거의 잃은 채, 또는 작은 도자기 항아리에 갇힌 채 지내는 일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 216쪽
"그 우울한 일자리에 들러붙어서 불평이나 하는 게 훨씬 편하니까. 가만히 앉아서 모험을 하지 않고, 언니한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핑계 대는 편이 훨씬 쉬우니까." - 318쪽
"있잖아, 네 아빠가 잊지 못할 말을 해줬어. `그거 한 가지로 당신을 규정할 필요는 없다`고." - 329쪽
"젠장, 루! 우린 모두 도넛이에요! 누나가 암에 걸려 죽어가는 걸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누나뿐만 아니라 조카를 보면서 평생 마음 아프지 않은 줄 알아요? 그게 어떤 건지 모르는 줄 알아요? 대답은 하나뿐이에요. 그걸 날마다 보며 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요. 그러니 뭐든 닥치는 대로 몸을 던지고 멍드는건 걱정하지 말아요." - 411쪽
"우리 모임 이름이 새 출발 서클이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고는 아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항상 잃어버린 이들을 함께 지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이 작은 모임에서 목표로 삼는 것은 그들을 짊어지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짐이 아니라는 것,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를 선물처럼 느끼고 싶습니다. 그리고 추억과 슬픔, 작은 승리를 서로 나누면서 배운 것은 슬퍼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길을 잃어도 되고 화를 내도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감정을, 오랫동안 느껴도 괜찮습니다. 모두 자신만의 여정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판하지 않습니다." - 4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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