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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뉴스의 나라 - 우리는 왜 뉴스를 믿지 못하게 되었나
조윤호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5월
평점 :
종이신문은 물론이고, TV에서 뉴스를 보지 않게 된 지도 꽤 된 것 같다. 요즘은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언론사(방송사와 신문사)의 뉴스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예전처럼 뉴스를 보거나 듣기 위한 시간을 고스란히 남겨두지도 않게 되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고 뉴스를 검색하고 그것에 대한 짤막한 느낌을 정리하며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뉴스에 대한 책을 굳이 찾아볼 필요가 있을까만은, '나쁜 뉴스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우리나라의 현 상태를 한번 들여다 보고 싶은 생각에 이 책을 골랐다.
부제가 '우리는 왜 뉴스를 믿지 못하게 되었나'이다. 이에 제목이 대답해준다. '나쁜 뉴스'이니까. 뉴스에 대한 불신은 고스란히 해당 언론사로 연계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는 희망없는 이들을 버리고 다른 대안을 찾게 되었다. 지금은 주어진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끼리도 충분히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맥락과 다른 의견을 적극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9시 뉴스에서, 종이 신문에서, 라디오에서 점점 돌아서고 있다.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 언론사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페이스북에서 미디어오늘의 기사들을 받아보고 있지만, 미디어오늘이라는 언론사가 매체비평지인지는 미처 몰랐다. 이 책은 '언론을 취재하는 언론사' 미디어오늘의 기자인 저자가 국내 매스컴에 대한 불신의 원인을 해부한 책이다. 그렇기에 기자와 대중 사이에서 위치하여 뉴스에 대한 양방향적 고민을 제기할 수 있다.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현재의 문제점을 진단하고(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 뉴스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며(뉴스란 무엇인가), 뉴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갖는 방법을 제안하고(나쁜 뉴스 가려내기, 초중고급편), 앞으로 뉴스의 미래에 대한 과제를 제시한다(뉴스의 미래, 짐승 뉴스 전성시대). 그러나 여기에서 제시하고 있는 문제, 본질, 관점, 과제가 전혀 새롭고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사회문제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관심이 있고, 왜곡된 언론사들의 기사와 침묵이라는 횡포를 비판하는 다른 매체(기사나 팟캐스트)를 보고 들었다면 이미 알고 있거나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하다. 가려웠던 곳을 긁어준다기 보다는 그 가려움이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해주는 정도?
초반에는 연예 뉴스를 통해 정부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감추려 한다는 음모론, 정부에 대한 조선과 한겨레의 시각 차, 바이라인(by-line)없는 낚시성 짜집기와 어뷰징 기사의 등장 이유, 언론이 구사하지 못하는 드라마(미생, 송곳)의 언어에 대하여 다룬다. 이어서 뉴스의 가치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상과의 차별성을 그 본질로 제시한다. 하지만 불분명한 연결고리 제시, 기사의 청탁, 데스크의 보도 누락과 같은 현실적인 한계로 인하여 뉴스가 뉴스가 아니게 되는 상황을 첨부한다. 특히 나쁜 뉴스 가려내기에서는 영화 <내부자들>이나 세월호, 위안부 문제가 발발했을 때의 여론을 마사지하는 물타기 수법("문제를 제기한 놈이 나쁜 놈이다", "돈 더 받아 내려고 수작 부리는 거지?", "다 똑같은 놈들!", "지들끼리도 싸우는 걸 보니 뭔가 있구먼!"), 반세기 계속되어 온 '빨갱이' 프레임 등을 사례화 유형화 하여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한다.
나쁜 뉴스는 기레기 기자, 데스크, 정부가 만들어 내는 합작품이기도 하지만, 기업이 배후를 조정하는 데에서 발생된 필연적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언론산업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은 각 언론사의 지배구조를 통하여 그들이 풀어내는 뉴스에 대한 관점과 의도, 편향성을 짚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후반부에서는 언론산업을 통하여 언론사의 지배구조, 뉴스 전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유통에 대해서 다룬다. 광고라는 스폰서를 피할 수 없는 언론사의 현실, 이미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을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 구조를 설명하면서 오마이뉴스, 국민TV, GO발뉴스,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언론들이 그 영역을 더이상 확장하지 못하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언론사가 어뷰징에 집중하고 트래픽을 강조할수록 멀쩡한 기사를 쓰던 기자들도 클릭 수에 얽매이게 된다. 열심히 취재해서 쓴 심층 취재 기사는 조회 수가 별로 안 나오고, 대충 베껴 쓴 기사의 조회 수가 폭발하면 허무해진다. - 55쪽
언론이 약자들의 이야기로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 어려운 이유는 이 사회의 언어와 사고방식이 가진 자의 것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은 자신들의 가치를 대중에게 쉬운 언어로 설명할 필요성이 적다. 이미 즉물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진보 세력의 언어는 매우 복잡한 맥락을 가지고 있기에 항상 풀어서 설명해야 한다. 예컨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서울 대한문 앞에서 농성 중인 상황을 설명한다고 가정해 보자. 보수의 언어는 깔끔하다. 불법 점거, 이 한마디면 된다. 실제 조선일보는 이런 언어로 사안을 설명했다. 보수 언론들은 2015년 11월에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를 묘사하며 `폭력` `불법`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불법과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에 기초한 매우 명료한 설명이다. 반면에 진보의 언어는 복잡하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서 점거 농성을 하는 상황이 왜 불법이 아닌 합법인지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왜 이들이 불법을 각오하고라도 점거를 할 수밖에 없는지 또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 귀에 잘 안 들어온다. - 63쪽
기자에게는 대중을 분노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다. 기자들은 자신이 쓴 기사를 보고 사람들이 공감하고 분노하길 바라며, 자신의 기사가 널리 회자되어 군중이 벌떼같이 일어나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 자신의 기사가 `펜의 힘`을 갖길 바라는 것이다. - 73쪽
그러나 언론이 `팩트를 추구해야 한다`는 명제와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는 명제는 분명 다른 말이다. 팩트는 말 그대로 어떤 사건에 대한 `5W1H`, 그리고 이 정보에 살을 붙인 또 다른 사실관계를 뜻한다. 이때 사실관계를 어떻게 구성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은 팩트도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 우리가 기사나 방송에서 보는 뉴스들은 현실을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통해 `재구성`된 사실이다. - 125, 126쪽
반면에 손석희 JTBC 보도 담당 사장은 2015년 9월 21일 열린 `중앙 50년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아젠다 키핑(agenda-keeping)을 강조했다. 정보가 빠르게 소비되는 미디어 시장에서 언론사는 많은 정보 중 중요한 것을 고르고, 이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JTBC는 200일간 세월호 참사를 메인 뉴스로 다뤘고 4대강 문제 역시 반년 가까이 보도했다. 대중들에게 중요한 의제를 던지는 `세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회적 의제가 되도록 만드는 `키핑`이다. 이 키핑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프레임(frame)이다. 프레임은 언론과 미디어가 강조하고 싶은 의제나 정보를 `잘` 전달하기 위해 이들을 재구성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뉴스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틀을 뜻한다. - 128, 129쪽
기사는 가설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이 가설이 팩트를 바탕으로 잘 엮여 있는가 하는 것이다. 기사 안의 문장을 무작정 사실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문장을 해체해 원인과 결과로 나누고, 인과관계의 끈을 이어 주는 조건이 합리적인지 살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답은 텍스트 안에 있다. - 148쪽
정치학에는 `Two faces of power`라는 개념이 있다. 권력에는 두 가지 속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언론의 힘에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흔히 사람들은 언론과 미디어가 어떤 뉴스를 생산했느냐를 두고 왈가왈부하지만, 진짜 미디어의 힘든 보도하지 않는 데 있다. 권력을 바라보는 시각은 흔히 명시적인 힘에 집중돼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남을 강제하는 `명시적` 권력은 눈에 잘 띄는 힘이다. 언론도 이런 명시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 원하는 이슈를 의제로 설정하고 특정한 프레임 안에서 사안을 인식하도록 보도하는 힘이다. 반대로 `묵시적` 권력도 있다. 바로 침묵의 힘이다. 이는 사회 지배 계층에게 불리한 이슈는 아예 의제로 만들지 않는 것으로, 정치학에서는 이를 무의사결정(non-decision making)이라 부른다.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결정한다`는 뜻이다. 언론은 이런 묵시적 권력을 가진 대표적 집단이다. 즉, 언론은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언제든 의사를 표출할 수 있다. - 151, 152쪽
이제 뉴스는 고양이와도 경쟁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는 유통이 생산을 장악한 뉴스 시장의 현재를 잘 보여 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언론사 사이트에 들어가서 뉴스를 보지 않는다. 이런 경향은 젊은 세대일수록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들이 뉴스를 보는 통로는 스마트폰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가장 큰 특징은 말 그대로 모바일(mobile)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한자리에 앉아서, 정해진 시간을 투자해서 뉴스를 보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습관적으로 아침 신문을 펼치거나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9시 뉴스를 보는 어른들도 있지만, 젊은 세대는 출퇴근길이나 이동 중에 뉴스를 소비한다. 뉴스는 정해진 시간에 챙겨 보는 고정적인 일거리가 아니라 짬 나는 시간에 소비하는 여러 가지 콘텐츠 중 하나가 되어버린 셈이다. - 292, 293쪽
그러나 2000년을 전후로 등장한 1세대 대안 언론은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콘텐츠는 신선했으나 유통 경로는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대안 언론으로 시작한 오마이뉴스, 한겨레를 더 이상 대안 언론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1세대 다안 언론은 대부분 포털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포털의 뉴스 경로에 유입되지 못한 대안 언론들은 활로를 찾지 못한 채 삐걱거렸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을 계기로 등장한 대표적인 대안 언론인 뉴스타파와 국민TV의 한계점도 유통이다. 뉴스타파는 유듀브와 시민방송 RTV로 유통되고, 국민TV는 유튜브와 팟캐스트 사이트 팟빵이 주요 유통 경로다. 대부분의 뉴스 소비가 포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기성 언론에 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좋은 보도를 내놓아도 `보는 사람만 보는` 방송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대다수의 대안 언론이 영향력 확대를 위해 유통을 확장하는 모험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됐다. - 324,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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