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금은 낮추고 정부 지출은 늘리는` 양립 불가능한 정책을 추진한 결과 장기적 적자에 시달리며 자국 민주주의의 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투자자이자 싱크탱크 설립자인 니콜라스 베르그루엔(Nicolas Berggruen)은 `소비자 민주주의(Consumer democracy)`라는 표현을 쓴다. 소비자 민주주의란 정치인은 감세와 공공 지출 확대 경쟁에 몰두하고, 유권자는 그중에서 가장 후한 혜택을 약속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달기만 할 뿐 영양가는 없으니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 17, 18쪽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치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느냐가 문제다. 결국 우리는 우리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갖게 되어 있다. 우리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사회를 생각하고, 정치인의 빈말이나 현실성 없는 공약에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민주주의는 잘 작동할 것이다. - 21쪽
국회의원으로서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논하는 과정에서 `희망`이나 `꿈`을 언급할 수는 있지만, 아무런 알맹이 없이 희망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 29쪽
홍보 친화적이면서 모호한 정치적 수사는 실체 없는 허언이며, 장기적으로 해악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와 짝을 이룬다.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텅 빈 정치 구호로 당선된 정치인은 눈앞의 이득을 얻지만 국민의 삶은 한층 고달파진다. 값싸고 맛있지만 금방 배가 꺼지고 몸에도 좋지 않는 맥도날드 버거 세트를 닮았다. `새정치` 같은 문구를 한번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많은 것을 약속해주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듣기도 싫지 않은가? - 32쪽
오늘날 반(半)독재자들은 무식하게 탱크를 앞세우는 대신 언론을 이용해 교묘하게 통치하는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언론 비자유국`이나 `언론 자유국`처럼 명백하게 구분되는 국가보다 애매모호한 `부분적 언론 자유국`에 속하는 나라가 더 흔해진 것이다. 부분적 언론 자유국이란 국민이 자신들의 나라가 실제보다 더 민주적이라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까지만 일부 비판을 허용하거나 언론의 독립성을 용인하는 국가를 뜻한다. 99퍼센터의 투표율에 98퍼센트의 찬성 표를 받는 북한처럼 비현실적인 지지를 받아야만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를 지속적으로 지지하는, 평균을 상회하는 국민만 확보하면 충분하다. 집권 세력에 동조하는 인물을 규제 당국, 사법 당국에 앉혀놓고 언론을 이용해 과반수의 국민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든 선거에서 이길 필요도 없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선거에서만 이기면 만사형통이다. -61쪽
전경련이 내세우는 자유시장은 미국 신자유주의자들이 열령히 신봉하는 자유시장과 다르다. 미국에는 진정한 자유시장이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 전 공화당 하원의원 론 폴(Ron Paul)과 같은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은 시종일관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려고 애쓴다. 반면 한국의 사이비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정부가 허가해주는 독과점 혜택을 누려왔고, 막대한 규모의 정부 계약을 따내고 국민의 혈세로 제공되는 전기 사용료 등의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사회에 기여하라는 요구에는 사회주의 운운하며 불평을 늘어 놓는다. `나 먼저`라는 믿음 외에는 별다른 철학이 없다. - 71쪽
한때 미국인들이 오바마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것처럼 그들은 안철수가 이면의 공작이 난무하는 더럽고 썩은 기성 정치를 뒤엎고 새로운 정치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안철수는 기성 정치세력의 압력에 못 이겨 대선후보에서 물러났지만 결국 기성 정치세력 중 차악과 손잡았다. 그것도 그의 선량함과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안철수는 메시아가 아니라 또다른 정치인이 되고 말았다. 안철수 본인의 잘못은 아니다. 안타깝지만 선량한 구원자라는 초월적인 자질을 안철수라는 인물에 투사하여 안철수 신화를 만들어낸 대중과 언론의 탓이다. - 80쪽
영웅주의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솒나다. 영웅시된 정치인 개인에게 책임을 요구할 근거가 빈약할 뿐 아니라 정치인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지향하는 정책이 무엇인지보다는 인물 자체나 부풀려진 비현실적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나 논의 등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만다. 영웅이 정당정치 위에 존재하므로 정당마저 뒤로 밀러난다. 안타깝게도 이 일련의 과정은 영웅이 아닌 대중 스스로 주도한다. - 81쪽
한번은 김어준이 성차별주의자로 해석될 법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내가 아는 좌파 성향 친구들 절반 정도가 우리 영웅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SNS에 토로하며 큰 실망감을 표했다. 하지만 애초에 김어준을 구세주, 총수로 받들지 않았더라면 실망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김어주는 호감 가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명박을 싫어한다. 하지만 단지 나와 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김어준 또는 그 누구라도 완벽하길 기대하지는 마라. 또한 모든 사안에 대한 그들의 관점이 당신의 관점과 일치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금물이다. - 85쪽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토크콘서트는 실질적 사상을 논하거나 논의를 펼치는 장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토론과는 반대 양상이 나타난다. 토크콘서트는 한국 정치와 마찬가지로 연사에 대한 경외감을 기반으로 하는 하향식 의견 전달 구조에 가깝다. 토크콘서트는 소위 전문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나머지 사람을 평범한 관중으로 전락시킨다. 토크콘서트 대신 진정한 의미의 열린 대화가 자리잡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 일을 마치고 유명인사의 강연을 들으러 가기보다 술집이나 카페이 들러서 정치 사회 이슈에 대해 함께 토론할 수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보자. - 86, 87쪽
성공 지향적인 한국 사회에서 진보 진영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부자를 벌하는 정책이 아니라 진보적이되 유권자의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사회계층 고착화가 더 심한 나라도 마찬가지다. 네거티브 전략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대표 얼굴만 바꾸거나 계층 간 투쟁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포지티브 전략을 구사해야 진보 진영이 이길 수 있다. 평균적인 유권자들에게 보수주의는 일종의 `기본 세팅`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변화를 싫어한다. `얻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주의는 정치적 의미에서의 보수가 아니라 연속성을 선호하는 인간 심리의 보수성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연속성이란 박정희가 추진한 재벌 일변도의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를 잇는 새누리당으로 대변된다. 이 연속성을 깨기 위해서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만큼 큰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새누리당 때리기로 일관하는 새정치연합의 전략은 먹혀들리 없다. - 120, 121쪽
새정치연합은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일에 늘 젬병이다. 새누리당을 비판하고 정부 인사들의 스캔들을 공격하는 등 어부지리식 승리에만 기댈 뿐이다. 포지티브 선거를 통해 왜 새정치연합을 선택해야 하는지 보여주지 못한다. 포지티브 선거가 가능하려면 더 나은 나라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 기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새정치연합은 차기 정부라기보다는 만년 야당처럼 행동한다. 만년 야당처럼 행동하면 야당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 새정치 연합의 비극이다. - 123쪽
내부적으로 차이가 존재해도 주 권력층에 대항하는 집단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한데 묶여 있다는 의미로 새정치연합을 `부족주의(部族主義)` 정당이라고 칭했다. 즉 새정치연합은 당으로서의 독자적인 가치가 아니라 `반대한다`는 대명제로 묶여 있다. - 134, 13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