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대해 위화는 말한다.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77쪽
"사회 구성원을 법적으로 살해하는 그런 사회의 일원으로 남고 싶지 않"았던 에릭센은 "그간 착실히 구상하고 준비해온 전체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그게 바로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다 읽고 나면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이 들어 책을 한동안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데, 평소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들어온 내가 이 대목을 읽고 사형 제도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걸 보면 유순한 분들은 대부분 설득당하지 않을까 싶다.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글을 꽤 여러 편 읽었지만, 이 소설만큼 설득력 있게 사형의 부당함을 말해주는 책은 없었다. - 114쪽
다시금 저자는 말한다. "마지막 거짓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스무 마디 백 마디의 진실을 열심히 이야기" 한다고. 저자의 대표작 <하얀 전쟁>에는 서울 사직공원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저자는 직접 답사를 나갔고, 심지어 시간대까지 비슷하게 맞추었단다. "독자로 하여금 소설에서 지어낸 이야기에 공감하고 믿게 만들려면 철저한 사실화가 도움"되기 때문에. - 184, 185쪽
프랭크 모트(Frank Mott)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했단다. "사랑 이야기를 엮어내기 위해 작가는 뉴욕에서 유럽으로 가는 여객선에 멋지고 매혹적인 젊은 남녀를 함께 태운다. 성탄절 전야에 짝이 없어 외로운 그들은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우연히 만나고, 사랑을 시작한다. (...) 책이 출판된 다음에 어디에선가 어느 족자가 연감을 찾아보고, 소설의 시간적인 배경으로 선택한 성탄절을 전후해 정말로 뉴욕에서 유럽으로 떠난 여객선이 있었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 성탄절이 음력으로 보름이었는지, 그날 밤 해상 날씨가 맑아 달의 관측이 가능했는지까지 확인할지 모른다. 따라서 작가는 작품에 등장하는 갖가지 사실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 185쪽
여기서 알 수 있듯 글을 잘 쓰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 - 이것이 글쓰기의 세 가지 원칙이다. 초등학생의 일기 쓰기는 그 3원칙을 몸에 익히는 기회이다." - 186쪽
김대식의 문제의식은 서울대학교 이공계 교수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박사를 땄다는 데서 출발한다. 과학이 가장 발전한 나라가 미국이니 유학의 필요성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아직도 우르르 미국으로 몰려가는 건 이상한 일"이란다. 일본의 경우 과학발전의 초창기 때 수십 명 정도가 유럽에서 배운 뒤 유학 가는 길을 아예 끊어버렸고, 그 결과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고 노벨상도 탈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노벨상을 탄) 15명 중에서 13명은 일본에서 박사를 딴 사람들이고 (...)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노벨상을 탈 때까지 외국을 다녀온 적이 없어서 아예 여권이 없었잖아요." - 232, 233쪽
이런 식으로 자기 나라만의 독특한 학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김대식은 "자기 집을 짓는다"라고 표현하는데, 그에 따르면 `자기 집`은 연구자의 국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단다. 즉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에서 박사를 받고 그 후에도 미국에서 계속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은 것은 우리나라 학문의 발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그보다는 인도에서 유학을 온 학생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노벨상을 받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라는 것. 그런데 일본이 일찍부터 일본 박사들을 중심으로 자기 집을 짓기 시작한 것과 달리 한국은 해외 박사만 우대해 자기 집을 짓는 데 실패했다. "자기가 하버드대 박사 출신 서울대 교수면서 자기 제자인 서울대 박사를 서울대 교수로 뽑지 않는 거에요. 대신 서울대 학부 나와서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딴 후배를 서울대 교수로 뽑는 거지." -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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