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살림지식총서 136
강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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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말할 것 없이 무의식은 청개구리와 같은 것이다. 의식은 `노`(no)라고 하는 데 무의식은 `예스`(yes)라고 하는 경우가 학계엔 의외로 많다. 생태주의자들은 현대사회의 반생태성을 비판하지만 자신들 논리의 반생태적인 부분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문화평론가들도 자신들의 글에 `문화`와 `비평`이 빠져 있고, 오히려 자신들의 글쓰기가 `문화비평`의 대상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 학문의 미국의존성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유럽 의존적이라는 점을, 민족 의존적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다. 정말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희극(戱劇)이 존재하는지 모른다. 진정한 공부는, 아니 진정한 `사유`는 사유하기를 통해 형성되지 않은, 즉 교육되고 주입된 자신의 무의식을 발견하고, 그것을 객관적 의식공간에 올려놓고 점검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진정한 실천은 단순하게 `언행일치`를 잘 감시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의 건강한 타협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 4, 5쪽

엄격한 형식주의는 학술자들의 표정을 모노톤으로 바꾸고 풍성함을 사라지게 한다. 얼마전 <모색>이라는 잡지에서 조사한 결과 최근 몇 년간 국내 학술지에서 기획 특집이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엄격한 형식을 추구하다 보니 자유로운 발상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는 것이다. - 31쪽

"혁명적 좌파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에 관해서 본의 아니게 일종의 제국주의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진보주의자라면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에 대해서 끊임없는 자기반성으로 생리적 판단을 자제하고 소수자를 위한 정치적 실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나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일종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모순을 구조적인 차원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비판하는 진보주의자가, 자신의 주 고민 영역이 아닌 부분에서까지 일관되게 행동하기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의 두뇌활동과 정서 구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역행하는 무리한 주장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페미니스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게 해당 진보주의자더러 일상의 영역에서 뼈를 깎는 정치적 실천을 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일반의 젠더 의식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큰 문제 될 게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모든 개체와 관계를 동등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과 각각의 개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차이의 정치학`은 서로 다른 게 아닐까? - 50, 51쪽

나는 생태주의자들이 그들과 생각이 다른 지식인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어야 지속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다소 위험한 발언이지만 위로부터의 생태화가 아래에서의 생태화와 만날 수 없다면 결국 요즘 벌어지는 것처럼 생태주의와 상품화와 개인화, 그리고 온정주의와 결합된 기형적 생태운동 등의 반복될 것이다. - 67,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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